금계국 금빛 세상
강수가 예보된 오월 넷째 일요일이다. 지난해 여름 퇴직한 대학 동기가 내 고향 의령으로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했다. 농지도 제법 확보 전업 농부가 되다시피 여러 작물을 가꾸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꽃대감이 꽃밭에 키우는 조경수 두 그루를 귀촌한 동기에게 보낼 여건이 되어 캐 가라고 했더니 새벽임에도 차를 몰아와 일을 착수해 현장으로 나가 도왔다.
꽃대감이 키운 허브 계열의 ‘율마’라는 나무는 외양이 향나무처럼 생겨 조경수로 적합해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한 동기네 뜰에 심으면 어울릴 듯했다. 꽃대감은 꽃무룻 구근과 맥문동도 가득 캐 놓고 얼마든지 가져가도록 해 동기는 고마워했다. 동기는 시골집 정원 화초 모종이 손쉽게 구해졌다. 맥문동은 북면 상천 선산에 심으려고 이른 아침에 거기로 가려고 출발해 차에 함께 탔다.
동기가 운전하는 승용차 동반석에 앉아 교외로 나가면서 그간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동기는 어제 동호인들과 테니스를 치느라 창원에 들어와 하룻밤 머물다 오늘 시골로 가려는 즈음이라 했다. 오늘은 비가 오기 전 아침나절에 들녘으로 나가 들깨 모종을 옮겨 심을 일이 있다고 했다. 동기는 온천장을 지난 강마을 명촌에 나를 내려주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상천의 산소로 향해 갔다.
나는 강수가 예보된 날이었지만 많은 비가 내리기 전 산책과 온천욕을 하려고 북면으로 나갔더랬다. 4대강 사업으로 푸성귀를 재배하고 단감 농사를 짓던 드넓은 강변 둔치는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체육 시설이 들어섰다. 초여름이면 여러해살이로 그간 잎줄기를 불려 키운 금계국이 지천으로 피어 금빛 세상을 만들었다. 올봄에는 비가 넉넉히 내려 예년보다 금계국 꽃송이가 풍성했다.
명촌에서 둑 너머 둔치의 자전거 길을 따라 북면 수변공원을 향해 걸어가자 수천수만 금계국 꽃송이의 열병을 혼자만 받고 지나 황송하기만 했다. 구름이 낮게 낀 하늘에 성근 빗방울이 떨어져 우산을 펼쳐 손에 들었다. 안신천 근처에 이르니 오토캠핑장이 아님에도 차를 몰아온 이들이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웠다. 그 곁에는 자전거 리이딩을 나선 이들도 노천에서 밤을 보낸 듯했다.
북면 수변공원에 이르러 둑을 넘어 바깥신천으로 올라가 들녘 들길을 따라 걸었다. 예전엔 벼농사 일색의 농지가 과수원이나 밭작물로 전환되어 작목이 다양해졌다. 대파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이랑에다 모종을 심고 있었다. 어느 구역은 모를 내려고 트랙터가 무논을 다리고 있고 한우를 사육하는 대규모 축사도 보였다. 들녘을 지나 어느새 마금산 온천장에 닿았다.
가끔 찾아간 대중탕에 들리니 먼저 들린 입욕객이 넘쳐났다. 평소 내가 온천을 찾아갈 때는 새벽이라 탕은 텅 비기 일쑤였는데 일요일 아침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나는 본포나 오곡에서 부곡까지도 걸어가 온천욕을 하고 오는데 마금산 온천을 찾는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중탕에 들어가 절차 따라 1시간 남짓 걸려 목욕을 끝내고 바깥으로 나오니 비는 내리지 않았다.
국숫집에서 소진된 칼로리를 벌충하고 남은 여정을 나섰다. 다시 북면 들녘을 걸어 본포로 향해 갔다. 아득한 농로를 따라가니 길섶 뽕나무에는 오디가 까맣게 익어 손을 뻗쳐 몇 알 따 입에 넣었다. 여름에 열매가 익는 개량종 보리수도 제철을 맞아 잘 영글어 갔다. 천주산 꼭뒤에서 흘러온 샛강 신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생태 보도교를 돌아가자 본포 양수장이 나왔다.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 밑을 지난 둔치에는 야외에서 밤을 보낸 텐트족이 많았다. 비가 오질 않아 본포마을로 가서 버스를 타려던 마음을 바꾸어 자전거 길 따라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둔치의 물억새는 새로운 잎줄기가 시퍼렇게 솟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김해 한림으로 뚫리는 신설 도로 옥정교차로에서 신전으로 내려가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복귀했다. 2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