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구인의 모습으로는 다들 마지막이야
죽은 사람들은 녹거나 흐르거나 새털구름으로 떠오르겠지
그렇다고 이 우주를 영영 떠나는 건 아니야
생각,이라는 것도 아주 없어지진 않아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건 확실해
보이지 않는 조각들이 모여 ‘내’가 되었듯
다음에는 버섯 지붕 밑의 붉은 기둥이 될 수도 있어
죽는다는 건 다른 것들과 합쳐지는 거야
새로운 형태가 되는 거야
꼭 ‘인간’만 되라는 법이 어디에 있니?
그러고 보니 안녕, 하는 작별은 첫 만남의 인사였네
우리는 ‘그 무엇’과 왈칵 붙어버릴 테니깐
난 우주의 초록빛 파장으로 번지는 게 다음 행선지야
-『경향신문/詩想과 세상』2024.08.25. -
“안녕,”이라고 시작하는 이 시는 “지구인”으로는 마지막 인사지만 전혀 슬프지 않다. 죽음의 문턱에 선 자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안부 같기도 하다. 시인에게 “죽는다”라는 단어는 “다른 것들”과의 합체를 의미한다. 죽은 사람들은 “새털구름”이나 “버섯 지붕 밑의 붉은 기둥”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나’라는 집착을 벗어나, “무언가의 일부”나 “새로운 형태”가 되는 것이며, 끝나도 끝나지 않는 시간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조각들이 모여 ‘내’가 되었듯” 죽은 이후에는 비나 눈, 갈대나 버드나무가 될 수도 있다. 서로에게 번지면서 서로를 살릴 수도 있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누구인지 자꾸만 묻지 않아도 된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나는 오늘 당신으로 살아보겠습니다. 당신의 죽음까지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안녕”은 마지막 인사가 아니라, 첫인사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