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역경은 총 64괘로 되어 있으며, 분량에 따라 양분되어 있다. 1괘부터 30괘까지가 상경, 31괘부터 64괘까지가 하경이다. 기본적인 점치기나, 기타 역의 이치는 당연히 이 역경의 내용을 따른다. 내용으로는 64괘와 괘사, 효사로 나뉜다. 그리고 전설적으로는 이걸 만들었다는 사람이 다 다르다. 팔괘를 복희, 괘사를 주문왕이 잡았다는 것에는 일치하지만, 효사를 사마천은 문왕이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마융은 주공단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등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죄다 전설취급으로 실제로 만든 인물은 완전히 불명이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난해한데다 분량도 너무 짧아서 실제로 주역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 경을 풀이하는 책인 '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역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읽어야 하는 부교재다. 날개와도 같이 경을 지지하는 것이라 하여 '십익(十翼)'이라고도 불리는데, 총 10권의 전이 있어 역경을 풀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정립한 것은 기록에 따르면 공자이나, 혼자 다 서술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13] 후세 사람들이 차츰 정립해 온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괘사를 해설하여 알아듣기 쉽게 해 놓은 부교재. 상, 하편으로 되어 있어, 단전만으로도 전 2종이 되었다고 친다.
이 역시 상, 하편으로 되어있어, 상전만으로도 전 2종이 되었다고 치는데, 상편은 '대상大象'이라고도 하며 괘사를 유학사관에 맞게 풀이해 놓은 것이다. 이는, 진이 망한 이후 한漢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고대국가의 사상체계를 담당하던 신비주의적 학문에 유가儒家가 세력을 넓혀 스스로를 국가통치이념의 반열에 올리고자 했던 흔적으로 사료된다. 한편 상전의 하편은 '소상小象'이라고도 하며, 효사를 풀이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점을 칠 때에는 그래서 상전을 많이 참고한다.
점을 치는 법 등을 설명하고 있으며, 주역의 기원에 대한 설도 제시하고 있다. '자연의 숨은 뜻을 알고자 세상을 관찰, 그 결과에서 추론해낸 자연의 섭리를 도식화한 것이 주역이라'고 한 앙관부찰설과, '하도'와 '낙서'의 신비한 마방진에서 영감을 얻어 역이 정립된 것이라고 보는 하도낙서설이 소개된다. 또한 '역易'이라는 말 자체도 이 계사전에서야 비로소 나온다(이전의 경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없다!). 이것도 상, 하편으로 되어 있어 전 2종으로 친다.
건괘와 곤괘만을 유가적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다.
소성괘에 해당하는 기본 8괘만을 상세히 설명한 책이다.
괘의 순서를 무시하고, 잘 어울리는 괘끼리 짝을 지어서 설명을 한 책이다.
괘들의 순서를 밝힌 책이다. 이를테면, 일의 초기를 상징하는 둔괘 → 교육을 상징하는 몽괘 → 생명활동의 기본인 식생활을 해결하는 수괘 → 그러다 보니 욕심이 늘어서 생기는 분쟁시의 융통성 요수를 상징하는 송괘 → … 의 방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주역을 다루는 전적들 중 가장 인지도가 있는 공영달의 《주역정의(周易正義)》와 주희의 《주역전의(周易傳義)》에서는 서괘전의 내용을 준용하여 대성괘의 배열 순서를 정하였다.
상나라의 최고신은 '제(帝)'다. 이 당시 '제'는 각 부족별로 기리는 조상신에 해당하였다. 상은 자신들이 여타 중원 국가들을 주름잡는 패권국가가 된 까닭을, 자신들의 조상신 '제'가 다른 부족들의 조상신들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즉, '제'를 믿던 시기까지의 신앙은 선민사상(選民思想)이 묻어나는 기복신앙(祈福信仰)에 가까웠다.
그러나 주나라가 목야대전에서 여드레 만에 제신을 없애면서 종교관에 일대 변혁이 생겼다. 무왕은 새벽에 목야에서 쳐들어가 여드레만에 이겼지만, 자신이 승리한 이유가 주나라의 신이 상나라의 제보다 강해서가 아니라고 여겼다.
주가 믿었던 신은 천(天)이었다. 사람의 위에 무언가 도도한 추상적 존재 하나가 있음을 상징하는 글자가 '천(天)'이었다. 이때 '천'의 성격이 '제'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천'은 타 부족에게 배타적인 조상신이 아니라, 하늘의 이치 그 자체였다. (이 때문에 본래 주나라의 신이었던 천이 훗날 '하늘'로 의미가 달라졌다.) '제'를 섬긴 상나라가 주에게 무너짐은 '제'가 '천'보다 약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천'은 하늘의 이치를 잘 따르는 좋은 지도자에게 힘을 빌려줄 뿐인데, 주나라는 그 이치를 따랐기 때문에 승리하였고 상나라는 거슬렀기 때문에 멸망하였다고 여겼다. 이에 따라 '제' 신앙 시대까지 공양과 기복적 제사는 중요한 의례였지만, 이제 하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들의 제례로 바뀌었다.
여기서 '천'은 어떻게 자기의 의사를 땅의 사람들에게 보였을까? 여기에 유가의 가르침의 기원이 있다: '천'의 뜻은 백성들의 생활에 반영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폭군은 천벌을 받고 성군은 추앙을 받는' 이념적 구도가 성립되었고, 지도자의 덕목에 이제 애민정신愛民情神이 명확히 추가되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천'의 지지가 그 뜻을 잘 따르는 지도자에게로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있었다는 점이다. 주 왕조가 은에 맞서 승리한 것부터가 그 때문이었고, 역으로 말하면, 한때 '천'의 총애를 받았던 부족이나 국가라도 폭정을 거듭하며 '천'의 뜻을 거스른다면 타 세력에게 '천'의 총애를 빼앗길 수 있었다는 뜻이다.
'천'의 뜻은 후세에 이르러, '천도天道'라고 불렸고, 다시 '천명天命', '자연自然'이라는 이름으로도 지칭되었다. 자연만물에 하늘의 뜻이 반영한다는 시각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논증이 동양에서는 자연스레 인정받았다. 예를 들면,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했던 말: 물이 흐름에 방향성이 있듯 사람도 그 타고난 선한 본성이 있다는 논지가 인정받았다. 물이 어디로 흐르거나 말거나 사실 사람의 본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하지만 물 또한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연물이기에 사람의 당위를 증명하는 증거로 사용되는 비약적 논리가 맹자의 시대에는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복희육십사괘방위도 |
복희육십사괘차서도 |
주역은 유교 철학의 한 갈래이며, 넓은 의미의 철학(종교, 사상) 안에는 점술과 같은 신비주의도 포함된다. 그리고 주역을 점술로 볼 것인가, 형이상학적으로 볼 것인가, 윤리학적으로 볼 것인가는 오랜 세월 동안 학파마다 다르게 보았던 주제이기도 하다.[17] 하지만 현대 대학 등 제도권 학술 기관에서는 점술과 같은 신비주의 계열로는 주역을 해석하지 않는다.[18] 즉 철학과의 주역 강의에서는 점술을 전혀 배울 수 없거니와 강단의 동양 철학과 점술은 관계가 없다.[19][20]
따라서 주역을 점술로 배우려면 주역을 깊게 연구하는 점술가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점술가들조차도 주역 자체로 점을 보는 일은 드문데, 주역은 점술로 쓰기에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역에서 일부를 따 온 육효를 하거나, 주역의 괘에 음양오행을 적용한 방식으로 해석 연구하고 접목할 뿐이다.
주역만으로는 점술로 쓰기에 다소 부족하여 주역을 활용한 점술이 다수 개발되었다.
이외에도 기타 점술이 있다.
조선시대의 주역해설본으로는 규장각에서 사용한 정이천의 이천역전(伊川易傳)과 주자의 주역본의(周易本義)를 합친 주역전의 및 주역전의구결과 정약용이 해설한 주역사전(周易四箋) 등이 전한다. 특히 주역사전은 정약용만의 독보적인 업적인 주역해설 방법이다. 14벽괘설이라는 독특한 괘변설(卦變說)을 전개하였고, 조선의 독자적인 효변법(爻變法)을 개발함으로써 주역에서 효변을 일종의 마스터키(master key)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여 학계에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2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