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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극간(上疏極諫)
소(疏)를 올려서 극도로 간쟁(諫諍)하다
上 : 윗 상(一/2)
疏 : 성길 소(疋/7)
極 : 극할 극(木/8)
諫 : 간할 간(言/9)
요즈음 전통적인 상소문(上疏文)의 어투를 빌려 대통령에게 국민청원을 한 '시무(時務) 7조'라는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조은산이라는 사람은 공을 들여 상소문 형식으로 글을 지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득한 옛날 중국에서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시대부터 상소가 있었다. 신하의 보고, 건의, 비판 등이 다 상소였다.
중국 고대의 정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서경(書經)'에는 상소문 형식의 글이 많이 들어 있고, 춘추시대 역사서인 '춘추(春秋)'에도 상소문 형식의 글이 많이 들어 있다.
다만 그때는 상소문 등의 명칭이 없었다. 상소(上疏)라 할 때의 소(疏)자를 쓴 것은 삼국시대 다음의 진(晉)나라 때부터다. 후대에 와서 명칭이 점차 많아져 소 이외에도 차자(箚子), 계(啓), 전(箋), 표(表), 봉사(封事) 등의 명칭이 다양하다.
소(疏)라는 글자에는 '통하다', '조목조목 적다', '아뢰다' 등의 뜻이 있다. '상소한다', '소를 올린다'는 말은 되지만, 흔히 쓰는 '상소를 올린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상소문은 문학적인 가치가 적다 하여 한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사실은 문학적인 가치가 대단히 뛰어난 글이다.
선비가 임금을 감동시켜 자기의 뜻이 관철되게 하기 위하여 글을 쓰기 때문에 자신의 학식을 다 동원하고 수사학적인 기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지은 글이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도 선비정신이 가장 강하고 풍부하게 담긴 글이 곧 상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위로 대신으로부터 아래로 평민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임금에게 상소해서 건의하고 비판할 수 있었다.
신하들이 상소문을 올리면, 임금은 읽어 보고 반드시 비답(批答)이라는 상소문에 대한 답변을 내렸으니, 상하가 잘 소통되는 나라였다.
선비들의 문집에는 상소문이 많이 실려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상소문이 많이 실려 있다. 강직한 신하들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같은 주장의 상소를 연달아 20회, 30회씩 올리기도 했다.
심한 경우 대궐문 앞에서 거적대기를 깔고 밤을 지새우는 복합상소(伏閤上疏)를 하기도 하고, 자기의 의견이 틀리면 자기를 죽여 달라고 손에 도끼를 들고 상소를 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하기도 했다.
조선왕조 역사에서 목숨을 걸고 임금의 잘못을 바로 공격한 상소문으로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단성소(丹城疏)'가 유명하다.
선비들은 자기를 수양하고 나아가 남을 다스려 세상을 사람이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임금에게 건의를 하고 임금이 잘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 하고 바로 상소를 해서 극도로 간하여 바로 잡으려고 했다.
우리 조상들이 전해왔던 상소를 해서 임금의 잘못을 서슴없이 바로잡는 전통이 오늘날 잘 계승되어 국정이 바른 길로 가도록 각자 참여하기를 바란다.
李栗谷 先生의 上疏文
조선왕조 시대에 있어서 가장 손꼽혔던 수제(秀才)의 인물로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상소문을 올린 이도 이율곡 선생이라고 본다.
그의 상소문은 네 가지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상소문과는 달랐다. 첫째는 그 건수에 있어서 70 건을 넘고 있다는 점이요, 둘째는 그 내용이 시국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요, 셋째는 그 문장이 뛰어나고 설파력이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주고, 넷째는 자신의 상소 내용에 대한 확신을, 목숨을 걸고 책임진다는 것을 명백히 천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율곡 선생의 상소문 중 13대 明宗 21년(1566년), 선생의 나이 31세 때에 상소한 간원진시사소(諫院陳時事疏)의 내용이다.
상소 전년인 1565년에는 민생을 핍박하는 악덕관리들이 많아서 전국 8도에 암행어사를 많이 파견해야 했으며, 조정의 기강을 교란시킨 요승(妖僧) 보우(普雨)를 삭탈관직하고 제주에 유배하였던바, 현지에서 장살(杖殺)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가 하면, 권신 윤원형(尹元衡)이 모든 관작(官爵)을 삭탈 당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정국이 어렵게 돌아가자 조정에서는 이퇴계선생을 대제학으로 발탁하고, 일본과 유통하여 강철제련법(鋼鐵製鍊法)을 배우도록 하는 한편, 다음 해로 이어지는 문화풍토 선양의 기운이 솟구쳐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퇴계선생의 성학십도(聖學十道)요,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 紹修書院)이 등장하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민심이반이 극심하여 임꺽정(林巨正)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도처에서 발호하였으니 당시의 민심 동향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와 같은 상황 하에서 쓰인 것이 이율곡 선생의 진시사소(陳時事疏)다. 그 상소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고 정부 각료에게는 값진 거울이 아닐 수 없다.
거울에는 고금의 차이가 없다(鏡無古今). 다만 피조물(被照物)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경(書經)에서 보면 문이시이 치이도동(文以時異 治以道同)이라 천명한 구절을 몇 번이고 음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즉 문장의 표현은 시대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지켜야할 정도(正道)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옛날에 부국강병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나,
오늘날 선진국으로 발전하자는 것이나 서로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부국강병형의 나라도, 선진형의 나라도 따지고 보면 경쟁력을 확실히 갖추자는 동일한 의미의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율곡선생의 상소문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엄숙한 충고이며 경각을 주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李栗谷先生의 上疏文 要旨를 여기에 소개한다.
天下之事, 不進則退.
천하의 모든 일은 발전하지 못하면 퇴영할 뿐이요.
國家之勢, 不治則亂.
나라의 형세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지러워질뿐이다.
進退治亂, 實由於人.
발전과 퇴영과 치난(治亂)은 실제로 사람에게 달려있다.
人君, 當審治亂之幾, 應其所以治, 去其所以亂.
그럼으로 군주는 治와 亂의 기미를 잘 살펴서, 치도(治道)의 길을 찾아서 능란하게 대응하고, 변란(變亂)의 원인을 찾아서 과감히 척결해 나가야 한다.
內無聲色之好娛, 凡無戈獵之好.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풍류를 즐기면서 국고를 낭비하는 놀이판을 없애야 하고,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는 스포츠 빙자한 사냥놀이를 없애야 한다.
時政尙未有以大慰民心,
정치상황은 아직 민심을 달래주지 못하고 있으며,
紀綱尙未整肅,
사회기강은 아직도 가다듬어지지 않고 있으며,
公道尙未恢張,
공직자들이 지켜야할 도덕의식은 아직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貪風尙有戢斂,
탐관오리들의 비행과 불법 및 부패풍조는 아직 척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災異疊出, 民力已殫,
각종 재해는 날로 심해져서 백성들은 탈진상태인데,
惠澤未下, 良民積年痼疾, 一藥難救.
나라의 혜택은 내려가지 않고 백성들의 고질병만 해마다 더해가고 있으니, 이를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의 신약은 없다.
大官, 習於糊塗,
小官, 習於滑稽,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위직 관료들은 일을 얼버무리느라 급급하고, 하위직 관리들은 눈치 보며 교활할 뿐이며,
內而, 習於偸惰,
外而列邑, 習於誅求.
안으로는 틈만 나면 놀기 좋아해서 게으름 부리고, 밖으로는 일선 공직자들이 백성을 괴롭히고 있다.
군주께서는 다음의 사항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1. 正心, 以立治本.
마음을 바로하고 정치의 근본을 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一, 立大志
첫째, 뜻을 크게 세워서 대국적으로 상황을 살펴야 하고,
二, 勉學問
둘째, 학문에 힘써서 치도의 바른 길 찾기 위해 공부하며,
三, 親正人
셋째,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가까이해야 한다.
2. 用賢以淸朝廷.
학덕이 있는 인물을 기용하여 내각풍토를 맑게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一, 辨邪正
첫째, 간사한 무리와 정직한 사람을 잘 구별해서 중용해야 하고,
二, 振士氣
둘째, 성실한 사람들이 일 할 수 있는 사기를 돋우어 주며,
三, 求俊乂
셋째, 전문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합당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
3. 安民, 以固邦本.
민생을 안정시키고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다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一, 窮民轉爲逆民
첫째, 가난한 백성들이 逆民으로 바뀌지 않도록 하고,
二, 民將盡散
둘째, 떠도는 백성이 없도록 해야하며,
三, 選外官
셋째, 외직에서 일할 수 있는 인물을 다양하게 찾아 쓰고,
四, 平獄訟
넷째, 무질서하게 제기되는 송사를 공평히 처리해야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상소문의 내용을 깊이 살펴 들어가 보면 이율곡 선생께서는 오늘의 우리들을 통렬히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겨들게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논조가 오늘의 현실상황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정론(正論)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믿게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 뜻이 바로 서경(書經) 서문에 천명되어 있는 바와 같이 수사학적인 문장의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그 문장 속에 관류(貫流)하고 있는 정리(政理)와 정도(政道)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즉 문이시이 치이도동(文以時異 治以道同)임을 확인할 수 있다.
30대 젊은 나이에 올린 이율곡선생의 상소문(要旨만 소개)을 접했을 때
우리들은 마땅히 자책감을 느낄 줄 알아야 할 것이며 동시에 가슴속 깊이에서부터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율곡선생께서는 시폐광정(時弊匡正)을 위한 상소문도 많이 올렸지만 자신이 공직에서 사임하기 위한 상소도 많이 올렸다.
30대에 9번이나 관직사퇴를 하기 위한 상소를 했었는가하면, 40대(49세 卒)에는 무려 11번이나 사직소를 올린 바 있다.
중용(中庸)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길을 끈다.
擇善固執, 精一之謂也.
君子時中, 執中之謂也.
최선이라 여겨지거든 성실히 지켜라, 그것을 정일(精一)이라 하며, 선비로서 머물러야 할 곳에는 머물고 떠나야 할 때에는 떠나라, 그것이 중용지도를 지키는 길이라는 뜻이다.
요즈음 문제의 보도기사로 자주 오르내리는 것들 중, 임기문제를 많이 시비삼고 있다. 만약 그 문제를 이율곡선생에게 문의했다면 율곡선생은 분명이 일언반구의 대답도 하지 안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답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며, 지극히 소인배들의 말이라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상위직의 상사가 바뀌어도 그 상사로 하여금 뜻을 펼쳐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위직들은 예의상 사의 표하는 것이 직장윤리이거늘, 하물며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자기 자리 사수하기 위해 구차스러운 괴변을 늘어 놓는다는 것은, 기관기능을 위해서 봉직한다는 생각에서가 아니고 나의 밥통을 챙기겠다는 이욕동기의 발로(發露)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소문이란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지 않는 한, 설득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율곡선생의 그 많은 상소문이 불오(不汚)의 명문으로 전적(典籍)의 귀중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은 공명정대한 입각점에서 나라 위한 충정을 토로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도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정당 내부에서의 토론 풍토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일당일언(一黨一言) 뿐이기 때문이다. 즉 이구동성(異口同聲)뿐이다.
정치인 자신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치인 개개인의 정론(政論)과 정론(正論)은 이른바 당론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율곡선생의 시무육조방략(時務六條方略)상소와 십만양병론(十萬養兵論)이 당시 조정을 지배하고 있었던 세력들의 당론에 봉쇄 당했었기 때문에 임진왜란의 참상을 불러들인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보지 않을 수 없다.
토론문화는 국무회의 장면이 보도되는 내용을 놓고 보아도 짐작되거니와 일반적인 경우 국무위원 간의 토론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고 다만 국무위원들이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만이 비교적 많이 비추어진다.
그러한 장면도 이율곡 선생에게는 마땅치 않게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율곡선생이 언급한 바, 대관 습어호도(大官 習於糊塗)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회라는 국가 최고 최대의 토론장을 물리적으로 점거하여 그곳에서 노숙자의 모습을 연출하면서도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처럼 생각하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일부 의원들의 작태(作態)등은 용납할 수 없는 거기소이란(去其所以亂)에 해당하며,
건설 현장이나 소방 작업장에서나 쓰이는 온갖 용구를 동원하여 신성한 의사당의 기물과 영조물의 일부를 파괴하면서도 그것을 제지하는 이들에게 도리어 욕설과 폭력을 자행하는 그 몰골은 변사정(辨邪正)에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에 혀를 차는 타설지탄(打舌之嘆)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온 세상이 경제난으로 인하여 민생의 어려움을 걱정하면서 노심초사하며 지내고 있는 판국인데 9명의 현직 의원들이 그것도 임시회기 중에 부인을 대동하고 단순히 골프놀이를 하기 위하여 외유를 했다는 사실은 틈만 나면 유흥을 즐기겠다는 내이습우투타 (內而習于偸惰)에 해당되는 바, 율곡선생은 그러 현상 앞에서는 크게 노했을 것이다.
나라의 세금징수업무를 다루는 수장들이 줄줄이 비리혐의를 받고 고발을 당하는 불행한 모습과 그들의 가정과 가정으로 뒷거래되었던 값비싼 그림이 전달한 이도 없고 받은 이도 없다는데 그 그림은 실물로 그들 가정에 버젓이 보관되어 있다하니 과연 귀신부지(鬼神不知)의 괴상(怪狀)으로 믿어야할까? 이런 일은 습어주구(習於誅求)에 해당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넘었다. 그러나 출범초기에 미흡했던 정체성(正體性) 천명이라든가, 주요 인사 선정기준의 모호성 및 당력기반(黨力基盤) 구축전략의 실패 등으로 인한 지지자이탈의 표심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된 금융위기와 그로 말미암은 실업난의 가중추세는 민생의 곤궁함을 더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곤궁에 시달리는 일부 민중은 장부에 대하여 등을 돌리면서 사회적 분위기를 더 어렵게 느끼게끔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데올로기적 갈등현상의 심화추세는 사회의 불안정함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일근로자 계층의 사람들은 일당 수입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군중집회이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당(日當)에 이끌려 다니는 일부의 사람들은 그 때 그 때 군중 분위기에 휩쓸려서 반정부시위대열에 뛰어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전교조의 경우는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일제고사 거부도 불사하는 사태로 학생들을 몰고 가기도 하였는가 하면,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는 이미 수면으로 부상되어 좌냐? 우냐? 하는 이념적 분쟁선상에서 새롭게 도정(道程)을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고 있다.
어느 탈북인사가 전하는 e-mail의 내용에 따르면 그는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와서 놀란 일이 여러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거리에 자동차가 많다는데 놀랬고, 둘째는 도시마다 고층 빌딩이 많다는데 놀랬으며, 셋째는 언론의 자유가 많다는데 놀랬는데, 넷째로 더욱 놀란 것은 김정일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북한보다 많은 것 같다는데 참으로 놀랬다고 하였다.
물론 그의 말은 통계상의 비교치가 아니라 개인적인 감각치(感覺値)를 말한 것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북관(南北觀)의 정서풍토가 불안정하다는 단면의 노정(露呈)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일련의 상황을 이율곡선생의 표현을 빌려서 기술한다면 그것이 곧 궁민전위역민(窮民轉爲逆民)이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듭 언급하거니와 이율곡선생의 상소문을 거울삼자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역사는 4계절의 순한적(循環的) 변화처럼 되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변화가 불가변의 우주논리(宇宙論理)에 의해서 4계절의 변화를 정서(整序)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시유고금(時有古今)이요, 도무고금(道無古今)이라는 말이 있다. 율곡선생이 즐겨 쓰던 용어이기도 하다. 즉 시간개념에는 과거와 현재라는 차이가 있지만, 도리(道理)라는 이치에는 과거와 현재의 구별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위금용(古爲今用)을 늘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즉 옛 경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쓰인다는 뜻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1565년에는 요승(妖僧) 보우(普雨)도, 권신 윤원형(尹元衡)도 무두 삭탈관직 당했다.
당시 이율곡선생은 불과 30세의 청장년이었지만, 요승 보우를 논죄하는 상소문(論妖僧普雨疏)에서는 명종(明宗)에게 진간하기를 '온 나라의 공론을 믿지 않으시고 한낱 요승을 옹호했다 (不信擧國之公論而護一妖僧)'는 후세에 남겨질 오명을 어떻게 씻을 것입니까? 라고 했는가 하면,
같은 해에 윤원형을 논죄하는 상소문(論尹元衡疏)에서는 '윤원형의 죄는 머리카락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임금님께서는 끝내 잘못인줄 아시면서 그를 감싸려 하십니까(元衡之罪 擢髮難數而 殿下 終始曲護)?'고 진간(進諫)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시폐광정소(時弊匡正疏)를 참고하면 참고할수록 역사의 거울은 우리의 미래를 보다 뜻있게 비추어주지 않을까 해서 여기에 이율곡선생의 상소문 일부를 소개하였다.
花石亭 (李栗谷 八歲 詩)
林亭秋已晩
산 숲에 늦가을 풍경이 짙어져 가니
騷客意無窮
풍류객들의 생각은 끝없이 펼쳐지네.
遠水連天碧
먼 곳 강물은 하늘에 닿은 듯 푸르고
霜楓向日紅
단풍잎은 햇볕을 향해 붉게 물드네.
山吐孤輪月
산은 둥근 달을 하늘 위로 토해내고
江含萬里風
강은 먼 곳의 바람까지 품어 안도다.
塞鴻何處去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느뇨
聲斷暮雲中
그 모습 저녁구름 새로 사라져 가네.
상소문(上疏文)
다산 정약용
대중을 통솔하는 방법에는 오직 위엄과 신의가 있을 따름이다. 위엄은 청렴한 데서 생기고 신의는 충성된 데서 나온다. 충성되면서 청렴하기만 하면 능히 대중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
무릇 인간이란 욕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귀하 곁의 높은 관직의 위정자들도 마찬가지고, 저처럼 미미한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므로, 누구나 부를 쌓고 싶어함에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빈농의 후손으로 태어나 배움이 짧아 항상 자식 먹일 걱정과 입힐 걱정에 천원 한 장 쉽게 쓰지 못한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저같은 사람들의 바람은 단 한 가지입니다.
'내 자녀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게 하지는 않아야지.' 그래서 아끼고 또 아끼어 자산을 불릴 생각에만 몰두하고, 없는 돈에 빚을 얹어 투자를 하는 자들을 어찌하여 대역죄인으로 모는 것입니까.
번듯한 내집 하나 가져보고자 꿈을 꾸는 것조차 고관대작의 자녀, 만석꾼의 자녀가 아니면 허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공공주택이니, 장기임대니 하는 곳에 위정자들이나 그들의 자녀가 산다는 말을 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그저 당신들의 뜻이라면 저처럼 없이 태어난 중인 이하의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얹혀 사는 신세를 지어야 합니까.
저도 한 때, 나랏님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했던 사람이고, 죄없는 어린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 억울하게 슬픈 운명을 다하는 모습에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울분에 몸서리쳤던 자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회적 계층을 나누고, 그 계층 간의 경계를 더 뚜렷이 구분 지어 서로의 악다구니에 불을 피우고 상대를 증오하고 멸시하도록 만들어야만 당신들의 '선거'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그 '나쁜' 생각을 부디 거두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위정자들이 부르짖는 '평등'이라는 가치가 왜 어찌하여 당신들을 비껴간 뒤에 우리에게만 강요되는 것인지요.
그 '평등'이라는 것이 직장에서 멀고도 교통은 불편한, 하지만 값은 저렴한 주거지에 살며 아침마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퇴근 시간에 빨간 광역버스와 급행 전철의 빈자리라도 앉으려 안간힘을 써야 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것입니까.
나랏님들의 진심이 그러하거든 부디 당신들부터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러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여, 마음 속 어딘가에서 뜨거운 울분이 차오릅니다.
근로소득의 가치는 숭고하고 자본소득의 가치는 더럽다는 당신들의 '프레임' 안에서는 근로소득만의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백성들은 결국 도태되는 것을 당신들이라고 모를까요.
저는 제 아이가 저의 어린시절처럼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부모에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고, 그 마음조차 지워내야 했던 '쓸쓸함'을 갖고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진심으로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절대 다수의 행복이라면 백성들의 직장과 주거지를 멀리 떨어지지 않게 좋은 집들을 서울 안에 많이 짓게 하여 주시고 그 집을 향한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으로 빚까지 내어 집을 사는 것을 부러 막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말하는 진정한 '공급'이란 변두리 외곽에 하는 것이 아님을 정녕 모르십니까. '얼마나'도 중요하나 '어디'에 공급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또한, 더 좋은 직장과 사회의 기반 시설들을 지방에 더 많이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저들은 악마와 같은 존재다. 저들이 너희 서민을 더 가난하고 병들게 한다'고 선을 긋고 편을 가르어 총포없는 전쟁을 하게 하는 것이 당신들이 그리는 행복한 세상인지요.
주제넘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여쭙겠습니다.
고관대작 당신들은 '저들'이라는 사회의 암적 존재로 규정한 '투자자'들과 다른 삶을 살고 계신지요. 아니, 그보다 더한 삶을 살고 계셨던 것은 아닌지요.
저희같은 미관말직의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꿈꾸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평등입니까.
전술하였다시피, '무릇 인간이란 욕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귀하 곁의 높은 관직의 위정자들도 마찬가지고, 저처럼 미미한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댁들의 저 모습 자체에 화가 나지는 않습니다. 그럴 수 있지요. 인간이니 욕심이 없겠습니까. 다만, 당신들이 우리를 욕하고 죄악시하는 것에 부디 작은 부끄러움이라도 느끼시기 바랍니다.
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
진인(塵人) 조은산의 시무 7조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기해년 겨울, 타국의 역병이 이 땅에 창궐하였는 바, 가솔들의 삶은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어 그 이전과 이후를 언감생심 기억할 수 없고 감히 두려워 기약할 수도 없사온데 그것은 응당 소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백성들은 각기 분(分)하여 입마개로 숨을 틀어 막았고, 병마가 점령한 저잣거리는 숨을 급히 죽였으며, 도성 내 의원과 관원들은 숨을 바삐 쉬었지만, 지병이 있는 자, 노약한 자는 숨을 거두었사옵니다.
병마의 사신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가려 찾지 않았사오며, 절명한 지아비와 지어미 앞에 가난한 자의 울음과 부유한 자의 울음은 공히 처연 했사옵고, 그 해 새벽 도성에 내린 눈은 정승댁의 기왓장에도 여염의 초가지붕에도 함께 내려 스산하였습니다.
하오나 폐하, 인간의 본성은 본디 나약하나 이 땅의 백성들은 특히 고난 앞에 결연하였고, 인간의 본성은 본디 추악하나 이 땅의 백성들은 특히 역경 앞에 서로 돕고 의지하였나니,
아녀자의 치마로 돌을 실어 왜적의 골통을 부순 행주산성이 그러하였고, 십시일반 금붙이를 모아 빈사 직전의 나라를 구해낸 경제위기가 그러했듯, 이는 곧 난세의 천운이오 치세의 근본이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이듬해 봄, 폐하의 성은에 힘입어 권토중래한 이 나라 백성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짚신끈을 다시 매었고 민초들의 삶은 다시 용진하였으니, 지아비, 지어미는 젖먹이를 맡길 곳을 찾아 집과 집을 오가며 동분서주 하였고, 서신을 보내어 재택근무에 당하는 등 살 길을 찾아 고행하였는 바,
고을 안 남루한 주막에서는 백성의 가락국수가 사발에 담겨 남겨진 할미와 손주의 상에 올랐는데, 경상의 멸치와 전라의 다시마로 육수를 낸 국물은 아이의 눈처럼 맑았고 할미의 주름처럼 깊었사오며,
산파가 다녀간 고을 민가에서는 어미의 산도를 찢어내며 고군분투한 아이가 마침내 탯줄을 끊어 울음을 터트렸고, 창자를 저미는 고통에도 초연했던 어미는 아이를 받아 젖을 이어내고 울음을 터트렸사온데, 그 울음과 울음의 사이가 가엾고 또한 섬뜩해 소인은 낮게 엎드려 숨죽였사옵니다.
소인이 살펴보건데, 백성은 정치 앞에 지리멸렬할 뿐, 위태로움 앞에 빈부가 따로 없었고, 살고자 함에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으며, 끼니 앞에 영호남이 어우러져 향기로웠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 백성들의 삶이 이러할 진데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국회에 모여들어 탁상공론을 거듭하며 말장난을 일삼고, 실정의 책임을 폐위된 선황에게 떠밀며 실패한 정책을 그보다 더한 우책으로 덮어 백성들을 우롱하니 그 꼴이 가히 점입가경이라.
어느 대신은 집값이 11억이 오른 곳도 허다하거늘, 현 시세 11프로가 올랐다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며, 어느 대신은 수도 한양이 천박하니 세종으로 천도를 해야 한다는 해괴한 말로 백성들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고,
본직이 법무부장관인지 국토부장관인지 아직도 감을 못 잡은 어느 대신은 전월세 시세를 자신이 정하겠다며 여기저기 널뛰기를 하고 칼춤을 추어 미천한 백성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사온데, 과연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는 자들은 일터에 나앉은 백성들이옵니까? 아니오면 궁궐과 의회에 모여 앉은 대신들이옵니까?
또한 역사를 되짚어 살펴보건데 과연 이 나라를 도탄지고에 빠트렸던 자들은 우매한 백성들이었사옵니까? 아니오면 제 이득에 눈먼 탐관오리들과 무능력한 조정의 대신들이었사옵니까?
하여 경자년 여름, 간신이 쥐떼처럼 창궐하여 역병과도 같으니, 정책은 난무하나 결과는 전무하여 허망하고, 실(實)은 하나이나 설(說)은 다분하니, 민심은 사분오열일진데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제 당파와 제 이익만 챙기며, 폐하의 눈과 귀를 흐리고, 병마와 증세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 바,
소인이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뿌리는 심정으로 시무 7조를 주청해 올리오니 부디 굽어 살피시어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물론 각지의 군수들을 재촉하시고 이를 주창토록 하시오면, 소인은 살아서 더 바랄 것이 없고 죽어서는 각골난망하여 그 은혜를 잊지 않겠사옵니다.
하여 소인 조은산은 넙죽 엎드려, 삼가 시무 7조를 고하나니,
一. 세금을 감하시옵소서
세금이라는 것이 본디 그 쓰임에 있어 나라의 곳간을 채워 국가 재정을 이어나가고 군대를 키우며 나라의 발전을 도모해 백성들이 삶을 영위해 나가도록 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오나
이 나라의 조세 제도는 십시일반의 미덕이 아닌 육참골단의 고통으로 전락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오며, 부유한 것이 죄는 아니거늘 소득의 절반을 빼앗고, 부자의 자식이 부자가 되면 안되니 다시 빼앗고, 기업을 운영하니 재벌이라 가두어 빼앗고,
다주택자는 적폐이니 집값 안정을 위해 빼앗고, 일주택자는 그냥 두기 아쉬우니 공시가를 올려 빼앗고, 임대사업자는 토사구팽하여 법을 소급해 빼앗고, 한평생 고을을 지킨 노인은 고가주택에 기거한다 하여 빼앗으니,
차라리 개와 소, 말처럼 주인의 사료로 연명할지언정 어느 누가 이 땅에서 기업을 일궈 나라에 이바지하고, 어느 누가 출세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사옵니까?
또한 증세를 통해 나라의 곳간은 채울 수 있을지언정 소비 둔화와 투자 위축 등의 부작용 역시 존재하거늘 이토록 중요한 국가시책을 어찌하여 나라에 널린 학자들의 의견 한번 여쭙지 않고 강행하시옵니까?
폐하! 조세는 나라의 권한이고, 납세는 백성의 책무이나, 세율은 민심의 척도이옵니다. 증세로 백성을 핍박한 군왕이 어찌 민심을 얻을 수 있겠사오며, 하물며 민심을 잃은 군왕이 어찌 천하를 논하고 대업을 이끌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망가진 조세 제도를 재정비하시고, 세금으로 혜택을 받는 자가 아닌, 세금을 납부하는 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세율을 재조정 하시어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주시옵소서.
二.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시어 정책을 펼치시옵소서
스스로 벌어먹지 않고 노니는 백성이 스스로 벌어 토하듯 세금을 각출한 백성의 피와 땀에 들러붙어 배를 두드리고, 나라의 곳간을 갉아 재정적자를 초래하는 것은 감성이오,
진정으로 나라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곳간을 열고 자비를 베풀어 구휼하며 재정을 알뜰히 하여 부국강병의 초석을 닦는 것은 이성이니, 감성이 이성을 앞서면 게으른 백성이 고기를 씹고, 병약한 백성이 마른 침을 삼키는 것과 같으며,
이성이 감성을 앞서면 게으른 백성이 고기를 얻기 위해 화살촉을 갈고, 병약한 백성이 죽 한 사발로 기운을 차리어 다시 일터로 나가는 것과 같사옵니다.
또한 기업을 옥죄는 규제와 세금을 완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저절로 토해내게끔 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것은 이성이오,
비정규직철폐니 경제민주화니 소득주도성장이니 최저임금인상이니 세상물정 모르는 것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로 기업의 손과 발을 묶어 결국 54조의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감성에 불과하니,
감성이 이성을 앞서면 암탉을 때려잡아 그 고기를 잘게 나누어 굶주린 이들에게 흩뿌려 기름진 넓적다리살에 아귀다툼을 벌이게 하는 것과 같고,
이성이 감성을 앞서면 암탉에게 좋은 먹이를 내어 살을 찌우고 크고 신선한 달걀을 연신 받아내어 백성 모두가 닭 한마리씩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사옵니다.
또한 폐하께오서 그리 씹어대고 물어뜯던 22조의 4대강 사업이 그 실체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성이 감성을 누른 까닭이옵고,
마땅히 기업이 해야할 일을 백성의 혈세로 대신한 바 폐하의 54조는 증발하여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감성이 이성을 누른 까닭이온데,
폐하를 비롯한 대신들과 관료들이 모두 백성들의 감성을 자극해 눈물을 쥐어 짜내기 위한 지지율 확보용 감성팔이 정책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바,
이러한 조정 정책의 기조 변화없이 어찌 다가올 160조 신분배 정책을 지지할 수 있으며, 어찌 그에 따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 역사는 군왕의 업적을 논할 뿐 당대의 지지율을 논하지 않사옵니다. 부디 정책을 펼치심에 있어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히 여기시고 챙기시어 작금의 지지율로 평가받는 군왕이 아닌 후대의 평가로 역사에 남는 패왕이 되시옵소서.
三.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기시어 외교에 임하시옵소서
나라의 지정학적 요소와 주변국들의 정세를 간파하지 못하여, 한미일이냐 북중러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니, 앉은 자리는 가시방석이오, 일어서니 키는 제일 작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온데,
일본과의 외교 마찰로 무역 분쟁을 초래하였으나, 이를 외교로 해결하지 않고 정치로 해결하시려 불매운동을 조장하고 양국관계를 파탄낸 바,
여론은 반전되고 지지율은 얻었으나 결국 동북아 안보의 상징인 지소미아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명분의 외교이옵고,
중국의 패권주의와 북국 돈왕(豚王)의 핵도발의 엄중함을 먼저 고려하시어 한미일 3국의 동맹을 강화하시며 안보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절치부심하여 국력을 키워 극일을 이룬 후에야 비로소 아베의 골통을 쥐어박고 고환을 걷어차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취하는 것은 실리의 외교이옵니다.
또한 일본의 의류업체가 연이어 폐점하고, 일본의 자동차 업체가 한국 철수를 선언하며, 일본의 기업 또한 한국 기업과 거래를 끊고, 심지어 농산물과 수산물까지 수입금지에 처한다니,
의류업체 근로자, 매장 근로자, 유통업자, 자동차 업체 근로자, 영업사원, 수리기사, 농민, 어민, 수출입 관련 근로자, 항공사, 항공사 근로자, 관광사, 관광사 근로자 등 수많은 백성들의 일자리와 생계가 위태롭게 된 것은 명분이 실리를 앞선 까닭이온데,
이는 결국 백성이 다른 백성의 밥그릇을 걷어찬 꼴과 무엇이 다르며, 손이 발을 밉다하여 입을 틀어막아 함께 굶어 죽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사옵니까?
또한 평화와 화해 따위의 허황된 말로 감성에 목마른 백성들을 현혹시켜 실질적인 핵폐기는 안중에도 없는 북국의 돈왕과 더불어 성대한 냉면잔치를 열고,
결국 구밀복검한 무리들로부터 토사구팽 당하여 백성의 혈세로 지은 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삶은 소대가리라는 치욕마저 당하는 것은 명분의 외교이옵고,
국제적 합의에 따라 대북제재를 충실히 이행하시고, 적극 동참하시어 북국의 돈줄을 막아 서서히 고사시키시며, 동시에 한미일 동맹을 굳건히 하여 북국의 돈왕이 스스로 처지를 깨닳아 핵개발을 포기하고 시장을 개방토록 하는 것은 실리의 외교일진데,
과연 폐하께오서는 외교에 임하시오며 명분과 실리 중 무엇을 택하셨사옵니까? 또한 명분과 실리 중 무엇을 얻으신 것이오. 북국과 일본과 중국과 미국 중 무엇과 화친하였으며, 작금에 이르러 결국 무엇이 남았다는 말이옵니까?
미국의 트럼프는 미치광이지만 자국민의 이익을 확실히 보호했고, 중국의 시주석은 공산당의 수령이지만 중국의 시장경제를 대외로 이끌었으며, 북국의 돈왕은 독재자이지만 최빈국의 지위를 핵보유국으로 끌어올렸고, 일본의 아베는 굴욕외교로 이름났으나 그만큼 실리는 챙긴다는 평이 있으며, 러시아의 푸틴이 장기집권을 꿈꾸는 건 백중 칠십을 넘나드는 지지율이 있기 때문일진데,
폐하께서는 핵도 없고 백성의 삶은 파탄이오, 시장경제는 퇴보하였으며 굴욕외교 끝에 실리 또한 챙기지 못하였고 또한 지지율은 절반도 채 되지 않으시면서, 어찌 장기집권을 꿈꾸며 독재자의 길을 걷는 미치광이가 되려 하시는 것이옵니까?
영명하신 폐하! 저들은 폐하의 정치적 신념과 감성의 논리에 귀기울여 줄 만큼 한가로운 자들이 아니옵니다.
시국은 시급하여 촌각을 다투고 늑대와 표범과 호랑이는 굶주려 먹이를 놓고 다투고 있는데 어찌 폐하께오서는 한가로이 초원에 풀이나 야금야금 뜯어 삼키고 계시는 것이옵니까?
부디 통촉하시어 안목을 넓게 가지시고 정치와 이념을 외교와 따로 다루시어 실리를 위한 외교에 임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북국 돈왕의 핵탄두 아래 백성들을 지켜주시옵고 국토를 보전하시옵소서
四.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시옵소서
소인이 여염의 촌락을 하릴없이 거닐다 막연히 들린 주막에서는 고을 무뢰배들이 만취해 젓가락을 두들기며 장단을 맞추었고,
주막 한 켠 작은 탁자에서 홀로 산낙지를 씹으며 탁주를 들이키던 한 노인이 그에 맞춰 읇조리니 좌중의 시선이 쏠리며 일순간 적막이 흘렀던 바, 그 이야기가 하도 기가 차고 신명이 나 폐하께 아뢰오니 통촉하여 들어 주시옵소서
'반도의 어느 작은 나라에 돼지가 혁명을 일으켜 돼지의 나라를 세웠으니 이를 숯불 공화국이라 칭하였고, 연호를 한돈이라 칭하였으니 한돈 사년 어느 날,
돼지의 왕이 몸소 교지를 내려 나라의 모든 돼지들에게 이르길, '과인이 듣기로 작금의 돈륜이 무너질 대로 무너져 축사가 쪼개지고 울타리가 넘어지니 돈권 또한 참담하기 이를 데 없도다. 구유통의 쌀겨가 귀중하기로소니 너희들의 돈격보다 귀중하랴.
하여 과인이 이르노니, 이 나라의 모든 돼지들은 그 품종과 육질을 막론하고 앞으로 꿀꿀 거리는 소리를 금하며 또한 먹는 것을 금하여 돈성을 다스릴 것인 바,
이를 어길 시 모두 육절기에 넣고 갈아 소시지와 순대로 만들어 정육점에 효시할 터이니 그리 알고 너희는 마땅히 받들라'라고 명하였으니, 이에 나라의 모든 돼지가 꿀꿀 거리며 아우성일진데 족발에 불똥이 튄 건 다름아닌 조정의 관돈들인 바,
비서실 돼지는 제 목소리가 제일 큰 줄도 모르고 도리어 수석 돼지들에게 꿀꿀거리지 말 것을 종용했으나 이내 제 몫의 구유통이 청주와 반포에 걸쳐 두 개인 것이 발각되었고,
국토부 돼지는 별안간 궤엑 멱 따는 소리를 내며 꿀꿀 파시라 꿀꿀 파시라 구유통을 파시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대변돈실 돼지는 흑석동 상가에 몰래 기어들어가 대부업자에게 빌린 돈으로 뻥튀기를 처먹다 발각돼 족발이 안보이도록 줄행랑치니,
결국 여섯의 관돈이 한날 한시에 사의를 밝히고 축사 담을 넘어 도주하다 말린 꼬랑지가 밟혀 목살을 잡힌 채 대궐로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그 광경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어,
대포집이 껍질을 뜯고 족발집이 족을 잘라내며, 국밥집이 머릿고기를 삶아내는 고통에 여섯의 관돈들은 이실직고 하였으니 이와 같았다더라.
돼지는 꿀꿀거려야 제 맛이오, 돼지같이 처먹어야 돼지다운 것인데, 어찌 폐하께서는 돼지에게 돼지답지 않을 것을 강요하고, 돼지의 본능과 욕구를 버리라 하시옵니까?
돼지는 처먹어야 그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오, 돼지가 돼지다워야 돼지로써 살 수 있는 터인데, 애당초 돼지의 본능을 무시한 교지를 내리시니, 저희 대신들이 어찌 이를 백성들에게 강요할 것이오 또한 스스로 이를 따르겠나이까? 라며 돈지랄을 하고 이구동성으로 꿀꿀대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성문 밖에 성난 백성 돼지들이 숯불을 들고 모여 꿀꿀거리기 시작하였고, 숯불로 흥한 자 숯불로 망하리라 외치며 결국 성문을 깨어트리고 왕의 침소를 향해 치닫은 바, 금과 은으로 치장하고 비단으로 감싼 침소에는 돼지의 왕 또한 꿀꿀대며 구유통에 머리를 박고 있었고, 머리맡에는 '돼지가 먼저다'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하더라.'
……………………
폐하! 영끌의 귀재, 희대의 승부사, 대출 한도의 파괴자라 불리우는 흑석 김O겸 선생이, 재개발 상가를 튀기려다 결국 발각되어 언론에 튀겨지고 백성에게 씹히다 결국 신기전과 같이 꽁무니에 불이 붙은 듯 내빼고,
지역구의 배신자, 절세의 교과서, 50분의 기적, 대변인 사냥꾼이라 불리우는 반포 노O민 선생이 대신과 관료들에게 집을 팔라며 호통치다 본인 또한 다주택자인게 발각되어 결국 지역구인 청주를 버리고 한양의 노른자위 반포를 택해 뭇매를 맞았는데,
소인은 큰 엿과 작은 엿을 양 손에 쥔 아이에게 무어라 설득해야 작은 엿 대신 큰 엿을 버리게 할지 몰라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였고, 또한 양 손에 멀쩡히 들고있는 제 엿을 무슨 이유를 들어 버리게 해야할지 몰라 더욱 골똘히 생각하였사옵니다.
하오면 폐하! 큰 엿을 버리고 작은 엿을 쥔 아이의 검소함과 청렴함을 칭찬하여 본보기로 삼는 것이 마땅하옵니까?
두 손에 멀쩡히 들고있던 제 엿을 함부로 버린 것도 모자라 큰 엿을 버리고 작은 엿을 택한 아이의 무지함과 성급함을 나무라는 것이 마땅하옵니까?
그저 백성들을 기만하여 지지율을 확보하고 세금을 긁어 모으고자 만천하에 벌인 정치적 놀음에 누가 누구의 발목을 잡는 것이옵니까?
폐하! 臣김O겸과 노O민은 죄가 없사옵니다. 이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욕구를 죄악시하여 폐하 본인 스스로도 지키기 힘든 것을 아랫 것들에게 강요한 폐하 스스로의 잘못이며,
이 불쌍한 자들의 죄는 그저 지키지 못하여 깨어질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폐하의 엄포와 성화에 못이겨 머리와 손과 입이 각기 따로 놀아나 백성들을 농락한 죄 밖에 없사옵니다.
말은 말답게 달려야 제 맛이오, 개는 개답게 짖어야 제 맛이고, 돼지는 돼지답게 처먹어야 제 맛이며, 인간은 인간답게 제 이득을 챙기고 주판알을 튕겨 손익을 따지며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제 맛인데,
애초에 인간의 욕구에 반하는 정책을 내시고 이를 대신과 관료들에게 막연히 따를 것을 명하니 어찌 백성이 따를 것이오 어느 신하가 제 자리를 지킬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 조정이 우왕좌왕하니 백성 또한 다르지 않사옵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아야 인간이 보이는 법이거늘, 조정의 모든 정책이 인간의 욕구에 반하는 모순덩어리들 뿐이옵고 인간의 욕구를 죄악시하여 이를 말살하려는 극단책 뿐이온데, 어찌 백성들의 동의를 바라고 어찌 그 성과를 바랄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통촉하시어 정책을 전개하심에 인간의 욕구를 받아들이시고 인정하시어 더 이상 이러한 참담한 광경이 백성 앞에 펼쳐지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五. 신하를 가려 쓰시옵소서
정세는 역동하여 요란하고, 민심은 역류하여 요동치니, 나라는 좌우로 갈라졌으며, 간신은 역행하여 요사스럽고, 충신은 역린하여 요절하니, 국법은 깨어져 흩어졌사옵니다.
나라의 위태로움은 풍전등화와 같고, 백성의 곤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굽은 목을 겨우 세워 동서남북을 널리 살펴보니, 영웅은 깊이 잠들어 몽중이오, 현자는 깊이 숨어 은둔하니 보이지 않사옵니다.
犬王(개의 왕)은 곰과 범을 부리지 못하고 鳥王(새의 왕)은 수리와 매를 부리지 못하니 들끓는 것은 이리요 까마귀떼 뿐이라. 소인은 통탄하며 먹을 갈고 신음하며 붓끝을 가지런히 해 삼가 아뢰올 뿐이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조정의 대신 열 중 셋은 허황된 꿈을 좇아 국사를 말아먹는 이상주의자요, 나머지 일곱 중 셋은 허황된 꿈을 팔아 표장사를 하는 장사치나 다름없고, 나머지 넷 중 셋은 시뻘건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폐하의 귓구멍을 간지럽히는 아첨꾼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저 자리만 차지해 세금만 축내는 무능력한 것들이니,
폐하 청하옵건데, 한날 한시에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을 기립시키시어 폐하의 실정에 대한 의견을 물으시옵소서.
실책과 실정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백성을 팔아 폐하의 업적을 칭송하며 용비어천가를 목놓아 부르는 자에게는 진하게 우려낸 사약 한 사발을 내리시어 폐하의 눈과 귀를 흐리고 조정을 농락한 죄를 물어 국법의 지엄함을 널리 알리시고,
함구하여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좌중의 눈치만 살피는 자에게는 차가운 냉수 한 사발을 내리시어 복지부동하여 세금만 축내는 것을 꾸짖으시며, 폐하의 실책과 실정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지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에게는 잘 빚은 술을 한 잔 내리시어 격려하시되, 비판과 더불어 해법과 계책을 내놓는 자에게는 한 잔의 술과 함께 영의정의 명패를 하사 하시고, 조정의 중심이자 폐하의 지기로 삼으시어 폐하의 자비로움과 영명함을 천하에 알리시옵소서.
또한 새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각지의 서생들을 불러 모아 민주와 인권, 자유를 각각 새긴 세 개의 명판을 나눠주시고, 한 손에 하나씩만 들 수 있으니 참고하여 이행하라 명하신 후, 민주와 인권의 명판을 양 손에 든 자는 따로 불러 모아 감옥에 모조리 투옥하시고, 또한 일가의 재산을 모두 압류하도록 명하시어 자유를 버린 댓가를 치르도록 하시고,
자유와 인권의 명판을 양 손에 든 자는 폐하의 어수(御手)를 높이 들어 양 볼따귀를 힘껏 후려치시고, 나의 자유가 너의 인권과 상충하니 누가 이기겠는가. 하문하시어 민주적 절차에 의한 입법과 그로 인한 법치의 귀중함을 일깨워 주시옵고,
자유와 민주의 명판을 양 손에 든 자는 조정의 하급 관리에 임명하시되 사헌부와 포도청 그리고 고을 관아의 대민업무를 도맡아 처리케 하시어 인권의 진정한 뜻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시며
만에 하나 왼손에 자유와 민주 두 개의 명판을 들고 오른손에 인권의 명판을 든 자가 아뢰길, '자유가 없는 민주는 독재와 마찬가지요, 민주가 없는 자유는 무법천지와 같은 바, 둘은 양분될 수 없고 필히 양립해야 할 것이니 본디 이 둘은 하나인 것과 다름없어 함께 왼손이오, 오른손에 인권은 이들을 능히 거들 수 있으니 여기 세 개의 명판이 다 있소이다'라고 답한다면
그 자를 즉시 진사의 자리에 올려 국사의 중책을 맡기시옵고 한양의 대궐같은 집과 조선 제일의 명마가 끄는 마차 또한 하사하시어 그로 하여금 나라의 대업을 이끌고 폐하의 업적을 함께 빛내도록 하시옵소서.
폐하! 인사는 곧 만사라 하였사옵니다.
이 땅에 널린게 학설이거늘 태반이 반쪽짜리 이념에 지나지 않고 또한 널린게 학자이거늘 태반이 한쪽으로 치우친 선동꾼에 불과하온데 하물며 조정의 대신들은 어떻겠사옵니까?
부디 민주와 인권을 앞세워 감성과 눈물을 팔고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백성들의 표와 피를 팔아 제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삼는 저 들쥐와 같은 무리들을 긁어모아 스스로를 박멸하라 명하시옵고, 자유의 가치를 알고 몸소 행하며 자유와 민주와 인권의 조화를 논하는 총명한 인재를 신하로 쓰시어 나라의 평안을 되찾아 백성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六. 헌법의 가치를 지키시옵소서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오 백성의 근간은 헌법이니 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규정한 헌법 1조와 그 뜻이 같사옵니다.
또한 나라의 크고 작은 집회에서는 위 헌법 1조를 가사로 옮긴 노래가 흘러나왔고, 폐하께서는 항상 그 자리를 지키셨으니 광우병 파동, 세월호 참사, 박근혜 퇴진운동이 그러했습니다.
헌법 제1조를 부르짖으며 백성들을 이끌어 헌법에 의거해 전대통령을 파면하였고, 헌법에 의거해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며, 헌법에 의거해 선서를 하셨사오니,
헌법에 의거해 직무를 수행하고, 헌법에 의거해 백성의 권리를 보장하시오며, 헌법에 의거해 국토를 보전해야함이 마땅하오나
헌법에 의거해 그 자리에 오르신 폐하 스스로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고 적시된 조항을 무시하며, 헌법에 내재한 백성의 가치를 짓밟고,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권리에 침을 뱉으사 헌법이 경계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무아지경으로 휘두르니
나라와 백성의 근간인 헌법이 조각나 깨어지듯 민심 또한 조각나 깨어져 흉흉하옵고 온 나라가 서로 쪼개져 개싸움을 벌이고 있사온데 그 꼴이 참으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그저 다주택자와 고가주택거주자를 잡아 족치시어 무주택자의 지지율을 얻겠다는 심산으로 건국 이래 최초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시고 임대차 3법을 강행하시어 헌법 제14조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하시고,
기회는 공정하며, 과정은 평등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폐하의 선포에 따라 학업이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모조리 섞어 한 교실에 집어넣어 하향평준화를 통한 진정한 평등을 이루어 내시어, 헌법 제31조 1항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시고,
이른바 6.17 대책으로 나라에 득이 된다하여 적극적으로 장려한 임대사업자를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아 법을 소급하여 토사구팽하며, 내 집 마련의 꿈에 들떠있던 백성의 중도금을 막아 뒷통수를 후려치는 등 헌법 제13조 2항 소급입법으로부터 재산을 지킬 권리를 박탈하시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마저 말살하여 개돼지의 표본으로 삼으려 헌정 이후 최초로 백성의 재산권 행사에 법적 처벌을 운운하며 겁박하여 헌법 제23조 재산권의 보장을 박탈하시니,
백성들은 무주택자 다주택자로 갈리고, 강남권과 비강남권으로 갈리고, 조정지역과 투기지역으로 다시 갈리고,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또 갈리어, 서로를 물어뜯고 씹어대며 쥐어뜯고 있사온데, 도대체 이제는 또 어디의 무엇을 갈라내고 도려내며 찢어내실 심산이옵니까?
백성은 각자 다르나 합쳐져 하나인데 이는 대야에 담긴 물을 쪼개어 반은 발을 닦고 나머지 반으로 세수를 하며, 다시 쪼개어 세안을 하고 양치를 하며 이내 마셔버리는 꼴과 같으니, 폐하께오서는 헌법을 찢어내고 백성을 갈라내고 이제는 폐하 스스로의 옥체도 갈라내고 찢어내어 육시를 할 참이옵니까?
폐하! 이 나라가 폐하의 것이 아니듯 헌법은 폐하의 것이 아니옵니다.
헌법은 불가변한 가치를 지닌 국법이오, 이 나라의 역사와 같은 성문법이며 백성을 위해 백성에 의해 제정된 민정헌법인 바, 헌법을 짓밟는 것은 백성을 짓밟는 것과 같고, 헌법을 저버리는 것은 나라의 역사를 부정하며 미래를 저버리는 것과 같사옵니다.
바라옵건데, 스스로 헌법을 지키시고 보전하시어, 깨어진 민의를 추스려 민심을 회복하시고, 사멸한 정도를 되살려 정의를 바로 세우사, 처참히 조각난 이 나라를 다시 합쳐 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폐하!
七. 스스로 먼저 일신(一新)하시옵소서
직언하옵건데, 이 나라는 폐하와 더불어 백성들이 합쳐 망친 나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옵니다.
이 나라에 상식과 신뢰와 도의는 사멸했고, 또한 헌법은 깨어졌으며 국회는 나락이니 오로지 죽고 죽이며 뺏고 빼앗기는 감성과 분노의 정치만 있을 뿐입니다. 이는 폐하만의 잘못도 아니고 조정 대신과 관료들만의 잘못도 아니옵니다.
그것은 백성 또한 무지한 까닭이며, 엄중한 현인들의 경고와 선대 공신들이 남긴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국의 지도자를 저잣거리의 광대 뽑듯이 감성에 젖어 눈물로 내세운 댓가입니다.
소인은 평생을 살아오며 무주택자 일주택자 다주택자라는 단어가 이토록 심오하고 엄중하며 잔인한 것인지 폐하의 실정 하에 처음 깨닫사오며, 일찍이 폐하의 막역지우였던 故노무현 선황의 통치 하에서도, 폐하의 정적이었던 이명박 선황과 폐하의 제물이었던 박근혜 선황의 통치 하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참담한 헌법유린과 처절한 수탈과 극심한 분열과 외교적 고립을 겪사옵니다.
개구리가 찬물에 담궈져 서서히 달궈지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듯 이 땅의 백성은 백성 스스로 선출한 폐하의 실정에 하나둘씩 권리를 내어주다 결국에는 헌법 조문 안에 조차 속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사오나, 아직 절반의 백성은 스스로 벌어먹지 않고도 내어지는 끼니 앞에 굴복하여 제 몸이 익어 껍질이 벗겨지는 것 조차 깨닫지 못하옵고, 가진 자에 대한 끝없는 분노에 눈이 멀어 제 자식들이 살아갈 삶이 제 인생보다 나아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 또한 느끼지 못하옵니다.
폐하께서 추구했던 인권은 고작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를 간음한 파렴치한 것들에게만 내려지는 면죄부가 되었고, 폐하께서 부르짖던 민주는 절반의 백성에게는 약탈이고 절반의 백성에게는 토벌이며 과반수를 넘는 자가 벌이는 정당한 도륙이자 합법적 착취의 수단으로 전락하였으니, 자유는 선대 공신들의 무덤을 파내어 찾으오리까? 아니오면 죽어 자빠져 저승길에서 찾으오리까?
소인이 감히 묻사옵니다. 무릇 정치란 백성과의 싸움이 아닌 백성을 뺀 세상 나머지 것들과의 싸움인 바, 폐하께서는 작금에 이르러 무엇과 싸우고 계신 것이옵니까?
국내외에 어지러이 산적하여 당면한 과제는 온데 간데 없고 적폐청산을 기치로 정적 수십을 처단한 것도 부족하여 이제는 백성을 두고 과녁을 삼아 왜곡된 민주와 인권의 활시위를 당기시는 것이옵니까?
폐하! 스스로 먼저 일신하시옵소서.
폐하의 적은 백성이 아닌, 나라를 해치는 이념의 잔재와 백성을 탐하는 과거의 유령이며 또한 복수에 눈이 멀고 간신에게 혼을 빼앗겨 적군와 아군을 구분 못하는 폐하 그 자신이옵니다.
또한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끝내겠다는 폐하의 취임사를 소인은 우러러 기억하는 바, 그 날의 폐하 그 자신이오며, 폐하께서 말씀하신 촛불의 힘은 무궁하고 무결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 그 날의 촛불 그 열기이옵니다.
성군의 법도는 제 자신마저 품을 수 있으나 폭군의 법도는 제 자신 또한 해치는 법, 부디 일신하시어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비로소 끝내주시옵고, 백성의 일기 안에 상생하시며 역사의 기록 안에 영생하시옵소서.
간신의 글은 제 마음 하나 담지 못하나, 충신의 글은 삼라만상을 다 담는 법, 소인의 천한 글재주로 일필휘지하지 못해 삼라만상을 담지는 못하였으나 우국충정을 담아 피와 눈물로 대신하오니 다만 깊이 헤아려 주시옵소서.
이천이십년 팔월
인천 앞바다에서 塵人 조은산 삼가 올립니다
▶️ 上(윗 상)은 ❶지사문자로 丄(상)은 고자(古字)이다. 上(상)은 一(일)위에 짧은 一(일)을 쓰기도 하고, 또는 긴 一(일)위에 (ㆍ)을 쓰기도 하여 어떤 위치보다도 높은 곳을 나타낸다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본디는 무엇엔가 얹은 물건의 모양을 나타내며 下(하)에 대한 上(상), 위에 얹다, 위쪽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❷지사문자로 上자는 '위'나 '앞', '이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上자는 하늘을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上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二(두 이)자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만 아랫부분은 오목하게 윗부분은 짧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다. 上자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위'나 '윗'을 뜻하고 있다. 다만 소전에서는 二자와의 혼동을 피하고자 윗부분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上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上(상)은 (1)상감(上監) (2)위나 상부 (3)등급이나 차례 따위를 상(上), 중(中), 하(下) 또는 상, 하로 나눌 경우의 맨 첫째 , 중(中), 하(下) (4)무엇에서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 따위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위, 윗 ②앞 ③첫째 ④옛날 ⑤이전 ⑥임금 ⑦군주(君主) ⑧사성의 일종 ⑨높다 ⑩올리다 ⑪드리다 ⑫진헌하다(임금께 예물을 바치다) ⑬오르다 ⑭탈것을 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높을 항(亢), 높을 탁(卓), 높을 교(喬), 높을 준(埈), 높을 존(尊), 높을 아(峨), 높을 준(峻), 높을 숭(崇), 높을 외(嵬), 높을 요(嶢), 높을 륭(隆), 밝을 앙(昻), 귀할 귀(貴), 무거울 중(重), 높을 고(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낮을 저(低), 낮을 비(卑)이다. 용례로는 위로 올라감을 상승(上昇), 토의할 안건을 회의에 내어놓음을 상정(上程), 윗 등급이나 계급을 상급(上級), 높은 지위나 윗자리를 상위(上位), 위와 아래를 상하(上下), 정부에 세금을 냄 또는 진상품을 윗사람 에게 받침을 상납(上納),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오름을 상륙(上陸), 물의 근원이 되는 곳의 부근을 상류(上流), 높은 하늘이나 어떤 지역에 수직되는 공중을 상공(上空), 윗자리의 관원을 상관(上官), 위쪽의 부분을 상부(上部),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손을 상객(上客), 퍽 오랜 옛날을 상고(上古), 아래쪽으로부터 위쪽으로 향함을 상향(上向), 가장 좋은 대책 또는 방책을 상책(上策), 보통 사람보다 아주 많은 나이 또는 그 사람을 (上壽), 가장 좋은 계교를 상계(上計), 지붕 위를 옥상(屋上), 맨 위나 정상을 최상(最上), 책상이나 식탁 등 탁자의 위를 탁상(卓上), 상품을 사들임을 매상(買上), 더할 수 없이 가장 높은 위를 지상(至上),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끌어 올림이나 물건값을 올림을 인상(引上), 한 집안이나 한 민족의 옛 어른들을 조상(祖上), 위나 앞을 향해 발전함을 향상(向上), 산꼭대기나 그 이상 더 없는 것을 정상(頂上),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을 부상(浮上),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에서는 습기가 차 오른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비유하는 말을 상루하습(上漏下濕),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괸다는 뜻으로 몹시 꼬이는 일을 당하여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맞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상하탱석(上下撑石), 산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다는 뜻으로 당치 않은 데 가서 되지도 않는 것을 원한다는 말을 상산구어(上山求魚),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이 따름을 이르는 말을 상명하복(上命下服), 위에 있는 하늘과 아래에 있는 땅으로 곧 천지를 이르는 말을 상천하지(上天下地),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을 천상천하(天上天下) 등에 쓰인다.
▶️ 疏(소통할 소)는 ❶형성문자로 踈(소)의 와자(訛字), 疎(소)와 동자(同字). 뜻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음(音)을 나타내는 짝필(疋; 발, 소)部와 물의 흐름을 뜻하는 글자 㐬(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물이 잘 흐르게 한다는 뜻이 전(轉)하여 잘 통하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疏자는 '소통하다'나 '트이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疏자는 疋(발 소)자와 㐬(깃발 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㐬자는 물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그린 것으로 본래 의미는 '떠내려가다'나 '흐르다'이다. 여기에 발을 뜻하는 疋자가 더해진 疏자는 길을 가는데 막힘이 없다는 뜻이다. 즉 길을 걷는 것이 물 흐르듯이 매우 순조롭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疏(소)는 (1)죽은 사람을 위하여 부처 앞의 명부(名簿)에 적는 글 (2)임금에게 올리던 글 등의 뜻으로 ①소통하다(疏通--) ②트이다 ③드물다 ④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 ⑤깔다 ⑥멀어지다 ⑦멀다 ⑧새기다 ⑨상소하다(上訴--: 상급 법원에 재심을 요구하다) ⑩빗질 ⑪주석(註釋) ⑫채소(菜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라질 소(消), 놓을 방(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막힐 조(阻)이다. 용례로는 대수롭지 않고 예사임 또는 하찮게 여겨 관심을 두지 않음을 소홀(疏忽), 막히지 아니하고 서로 통함 또는 뜻이 서로 통함을 소통(疏通), 사귄 사이가 점점 멀어짐 또는 따돌려 멀리함을 소외(疏外), 지내는 사이가 두텁지 않고 버성김 또는 서먹서먹 함을 소원(疏遠), 당사자가 어떤 주장이나 사실에 관하여 법관에게 아마도 확실하리라는 의식을 생기게 하는 일 또는 이를 위하여 당사자가 증거를 제출하는 일을 소명(疏明), 변변치 못한 음식 또는 거친 음식을 소사(疏食), 아내를 박대함 또는 아내를 미워하여 아내로 생각지 않음을 소박(疏薄), 자질구레하고 까다로운 예절이나 형식을 찾지 않고 언행이 수수하고 털털함을 소탈(疏脫), 면밀하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함을 소졸(疏拙), 죄수를 너그럽게 다스려서 놓아 줌 또는 데면데면하고 방자함을 소방(疏放), 탐탁지 않게 여기어 헤어짐을 소산(疏散),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않음이나 소식이 뜸함을 소음(疏音), 하는 일이니 생각 등이 찬찬하지 못하여 거칠고 엉성함을 소루(疏漏), 상소에 대하여 내리는 비판을 소비(疏批), 서로 사이를 벌어지게 하여 물리침을 소척(疏斥), 성품이 소탈하고 바른 말을 잘 함을 소당(疏讜), 사람 됨이 데면데면하고 어리석음을 소당(疏戇), 사람 됨이 데면데면하고 그름을 소류(疏謬), 어떤 대상이 별로 대한 적이 없어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지거나 서먹함을 느끼는 상태에 있음을 생소(生疏), 임금에게 글을 올림을 상소(上疏), 몰래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일을 밀소(密疏), 언행이 들뜨고 거침을 부소(浮疏), 스스로 해명함을 자소(自疏), 친함과 친하지 아니함을 친소(親疏), 도량이 넓고 소탈함을 방소(厖疏), 어리석고 데면데면함을 용소(庸疏), 재주와 능력이 열등함을 재소(才疏), 거칠고 반찬 없는 밥이라는 뜻으로 안빈 낙도함을 일컫는 말을 반소사(飯疏食), 거친 음식과 나물국이란 뜻으로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소사채갱(疏食菜羹), 마음속으로는 소홀히 하고 겉으로는 친한 체함을 일컫는 말을 내소외친(內疏外親), 사소한 부주의를 일컫는 말을 반점소루(半點疏漏) 등에 쓰인다.
▶️ 極(극진할 극/다할 극)은 ❶형성문자로 极(극)은 간자(簡字)이다. 용마루의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亟(극; 위아래가 막힌 곳에서 말(口)와 손(又)으로 빨리 하라고 지시함)의 뜻이 합(合)하여 지극히 높다는 데서 '지극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極자는 '다하다'나 '극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極자는 木(나무 목)자와 亟(빠를 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極자가 그려져 있었다. 갑문에서는 땅을 딛고 머리로 하늘을 받치고 있는 거인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까지 '다다라 있다' 즉 '극에 달하다'라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口(입 구)자와 攴(칠 복)자가 더해지면서 세상을 호령하는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고, 소전에서는 木자가 더해지면서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음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極(극)은 (1)지축(地軸)의 양쪽 끝, 곧 북극(北極)과 남극(南極) (2)지축이 천구를 자르는 점. 천구의 극 (3)은하면에 수직(垂直)된 직선(直線)이 천구를 관통(貫通)하는 점. 은하극 (4)전지(電池)에서 전류(電流)가 드나드는 두 끝, 곧 음극과 양극. 전극(電極) (5)자석에서 자력이 가장 센 양쪽의 끝, 곧 남극(南極)과 북극(北極) (6)한 구면상(球面上)에 그린 대원(大圓) 또는 소원(小圓)의 중심을 통과하는 구(球)의 직경(直徑)의 양쪽 끝 (7)극좌표(極座標)에 있어서 좌표의 원점(原點) (8)어떤 점의 한 곡선(曲線)이나 곡면(曲面)에 관한 극선(極線), 또는 극면(極面)을 생각할 때의 그 점의 일컬음 (9)동물축(動物軸)의 양끝 (10)어떤 명사(名詞)의 앞에 붙어 '아주', '극심(極甚)한', '극히' 따위의 뜻을 나타냄 (11)더할 수 없는 막다른 지경(地境) 등의 뜻으로 ①극진(極盡)하다 ②지극(至極)하다 ③다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다다르다 ⑤이르게 하다, 미치게 하다 ⑥세차다, 엄(嚴)하다(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혹독(酷毒)하다 ⑦죽이다, 징벌하다 ⑧바로잡다, 고치다 ⑨병들다, 지치다 ⑩괴롭히다 ⑪내놓다 ⑫멀다 ⑬잦다(잇따라 자주 있다), 재빠르다 ⑭극, 한계(限界) ⑮남북(南北)의 두 끝 ⑯하늘 ⑰별의 이름 ⑱북극성(北極星) ⑲정점(頂點), 최고의 자리 ⑳제위(帝位) ㉑임금의 자리 ㉒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㉓대들보(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큰 들보) ㉔중정(中正) ㉕근본(根本) ㉖흉사(凶事), 흉악한 일 ㉗깍지(활 쏠 때 사용하는 기구), 장갑(掌匣) ㉘매우, 심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진(殄), 다할 진(盡), 다할 궁(窮), 다할 갈(竭), 끝 단(端), 가난할 빈(貧)이다. 용례로는 몹시 심함을 극심(極甚), 더 갈 수 없는 극단에 이름을 극치(極致), 더할 수 없는 정도를 극도(極度), 사물의 끝닿은 데로 맨 끝을 극한(極限), 아주 옳음이나 매우 좋음을 극가(極可), 성질이 지독하고 과격함을 극성(極盛), 온갖 말로 태도가 매우 완강하거나 열렬함을 극구(極口), 있는 힘을 아끼지 않고 다함을 극력(極力), 지독한 심한 추위를 극한(極寒), 지독한 심한 더위를 극서(極暑), 힘이나 마음을 다함을 극진(極盡), 극구 칭찬함을 극찬(極讚), 맨 끝이나 맨 끄트머리를 극단(極端), 아주 매우 작음을 극소(極小), 몹시 가난함을 극빈(極貧), 매우 중요한 비밀을 극비(極祕), 몹시 악함 또는 더할 수 없이 지독한 악덕을 극악(極惡), 지극히 매우 큼을 극대(極大), 뜻을 다함을 극의(極意), 지극히 열렬함을 극렬(極烈), 끝에 있는 땅으로 남극이나 북극을 극지(極地),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움을 극미(極美), 더 할 수 없이 무거운 형벌을 극형(極刑), 몹시 궁함을 극궁(極窮), 극히 어렵고 고생스러움 또는 몹시 가난함을 극간(極艱), 극히 공손함을 극공(極恭), 말이나 행동이나 성질이 아주 아름다움을 극가(極嘉), 몹시 줄임을 극감(極減), 지나치게 심한 말을 극론(極論), 지극히 선량함을 극선(極善), 몹시 심한 더위를 극염(極炎),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움을 극려(極麗), 지극히 적음을 극미(極微), 사물에 대하여 그것을 긍정하고 능동적으로 활동함을 적극(積極), 극도에 달하여 어찌 할 수 없음을 궁극(窮極), 끝이 없음으로 동양 철학에서 태극의 처음 상태를 일컫는 말을 무극(無極), 더욱 심하게를 우극(尤極), 몹시 분에 넘침을 과극(過極), 몹시 바쁜 때를 방극(方極), 지구 위에서 가장 추운 곳을 한극(寒極), 어떠한 정도나 상태 따위가 극도에 이르러 더할 나위 없음을 지극(至極), 임금이나 부모의 은혜가 너무 커서 갚을 길이 없음을 망극(罔極), 더없이 악하고 도의심이 없다는 말을 극악무도(極惡無道), 너무 성하면 얼마 가지 못해 패한다는 말을 극성즉패(極盛則敗), 사물의 근원과 끝을 철저히 규명한다는 말을 궁원극위(窮源極委),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하늘이 넓고 끝이 없다는 뜻으로 부모의 은혜가 매우 크고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호천망극(昊天罔極), 성정이 음침하고 매우 흉악하다는 말을 궁흉극악(窮凶極惡), 총애가 더할수록 교만한 태도를 부리지 말고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는 말을 총증항극(寵增抗極) 등에 쓰인다.
▶️ 諫(간할 간)은 형성문자로 諌(간)은 통자(通字), 谏(간)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범하다의 뜻(干)을 나타내기 위한 柬(간)을 더한 글자이다. 웃어른의 면전(面前)을 무릅쓰고 말하다의 뜻이다. 그래서 諫(간)은 ①간(諫)하다(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다) ②헐뜯다 ③간하는 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간할 쟁(諍)이다. 용례로는 임금이나 윗사람에게 간하는 말을 간언(諫言), 말로써 굳게 간하여 실수를 바로잡고 잘못을 고치게 함을 간쟁(諫爭), 임금에게 옳은 말로 간하는 신하를 간신(諫臣), 간하여 경계함을 간계(諫戒), 임금을 간하여 정치를 의논함을 간의(諫議), 간하여 상소함을 간소(諫疏), 윗사람에게 그의 잘못을 간하여 옳은 일을 하도록 권함을 간권(諫勸), 죽음을 각오하고 간함을 간사(諫死), 어버이의 잘못을 간하는 자식을 간자(諫子),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간하여 말림을 간지(諫止), 타일러 가르침을 간회(諫誨), 훈계하여 간하는 것을 잠간(箴諫), 충성스럽게 간함을 충간(忠諫), 통절히 간함을 통간(痛諫), 자기의 잘못을 간하여 주는 것을 싫어함을 염간(厭諫), 간하는 말을 듣기 좋아함을 낙간(樂諫), 시를 지어 임금의 잘못을 풍간함을 시간(詩諫), 고충을 무릅쓰고 간절히 간함을 고간(苦諫),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온건하게 간하는 일을 기간(幾諫), 간하는 것을 듣지 아니함을 반간(反諫), 목숨을 끊고 죽음으로써 간함을 사간(死諫), 넌지시 나무라는 뜻을 둘러 비유로 잘못을 고치도록 깨우침을 풍간(諷諫),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순순히 간언을 따름을 일르는 말을 종간여류(從諫如流), 남이 말한 것을 듣고 간청하면 실행하라는 뜻으로 지도자는 아랫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고 사리에 맞으면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언청간행(言聽諫行)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