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이는 광주서 밤차 타고 올라오는 애인
맞으러 서울역으로 가는 길이구요,
나는 한강변 달리러 가는 겁니다.
얼마 전부터, 다시 달리기 하려고
맘먹었습니다. 지난번 증평 한약방 갔을 때
선생님이 그랬거든요. 나더러 운동하라고..
훌라후프나 줄넘기 같은 거.. 근육이 풀어져 있대나
어쨌대나. 아니, 그렇게 강도가 센 운동(요가)을
열심히 몇 년간 하고 있건만, 운동이 모자란다니..
아무튼.. 그 때문만은 아니구요,
다시 달리고 싶어졌거든요.
그래, 요가 안 가는 토요일 같은 때,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한강변 달리려고 합니다.
근데 새벽에 잠에서 깨니 빗소리 들리고, 하여..
첫날부터 빵꾼가 했는데, 비도 거의 그친 듯하고, 해서..
혜정이 나올 때 같이 나온 겁니다.
혜정인 이수역에서 타도 되지만, 나랑 같이
한 정거장 지난 역인 동작역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워낙 걸음 빠른 혜정이라 거의 내 뛰는 수준입니다..
님 만나러 가는 마음이 바쁘기도 하겠지요.^^
동작역 앞에서 헤어져, 저는 지하철 타러 들어가고
난 그 아랫길로 해서 한강변으로 내려갑니다.
비가 그친 듯하더니, 조금씩 내리기 시작합니다.
..오다 말다 하겠지. 이내 그치든지..
어차피 달리기로 작정한 거, 날씨에 구애될 필요 없을 듯해
(매니아-일명 중독자^^-들은 빗속을 달리는 맛을 얘기합디다만..)
그냥 빗속을 달리기로 하고, 잠바 쟈크 채우고 달린 모자도
뒤집어씁니다.
여의도 방향이 아니라 반포대교 방향으로 길 잡았습니다.
오랜만입니다. 한 일 년 되었지요. 한강변 달리다 만 거..
비와서 그런지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자전거 타는 분 마주치고..
길가에는 때이른 코스모스가 군데군데 피어나 있네요.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비 뿌리기 시작합니다. 점점 세게..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반포대교가 눈앞에 보입니다. 어쩌까.. 되돌아갈까.. 잠깐 망설,
계획대로 한남대교까지 가기로 다시 맘먹습니다.
거까지 한 5킬로 남짓 되나..
반포대교-잠수교 아래로는 걸어서 곧장 건널 수 없습니다.
주욱 이어지던 사람 다니는 길이 끊겨 있단 말이지요.. 그래서
일부러 내놓은 옆 언덕길로 올라갔다 다시 강변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잠수교는 발 아래, 반포대교는 내 머리 위를 지나는,
그 길 위에 내가 서 있습니다.(그 반포대교가 비를 막아주네요..)
바로 곁에는 88올림픽도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습니다.
잠깐 쉬어 가기로 합니다. 난간에 서서 잠수교를 내려다봅니다.
차들은 달려가고, 나는 이 자리에 가만히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달리고 차는 제자리걸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저―위에서 내려다보면 둘다 매한가질 테지요..
언덕길 내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이 한 사람 만났습니다.
비도 조금 약해지고.. 강 가까이로 조금 더 다가가 보까..
달리기하라고 만들어놓은 길 버리고, 강둑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강둑길에는 사람 모습이 조금 더 띕니다.
모두 우산 쓰고 걷는 사람들입니다.
둘이 나란히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 걸으며
목청 가다듬고 발성 연습하는 이도 있습니다.
강물이 바로 옆으로 흐르는 길을 따라 달립니다.
저 위, 멀리서 들리는 빗물을 가르며 달리는 차 소리도
여기서는 그렇게 못 견딜 소음으로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역시 그 속에서 복닥대지만 말고 나와 있어 볼 필요가 있군요.
여유가 생깁니다. 안 보이던 틈이 보입니다.
내 발걸음 소리에 강 가장자리(둑 옆)에서 사랑놀음하던
오리 한 쌍 놀란 듯 후르르 날아 강 안쪽으로 떠갑니다.
한남대교가 이내 눈앞에 나섭니다.
이제 강을 버리고 조금 더 윗길로 올라왔습니다.
잘 가꾸어 놓은 꽃밭.. 주황, 샛노랑, 주홍빛의 나리꽃들
한데 어우러진 꽃밭 지납니다.
근데, 저쪽 긴의자 몇 개 놓여 있고 위엔 천막까지 쳐놓은 쉼터..
에 사람이 아니라 비둘기들이 수십 마리 땅바닥에 가만히
서 있습니다. 꼼짝도 않고.. 뭔일이지?
가만히 다가가 봅니다. 얘네들이 뭘 먹는 것도 아니고,
뭘 찾는 것도 아니고, 그냥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습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게중엔 눈감은 놈도 있는 거 같았는데..)
졸고, 자고 있는 거예요.. 그 자리에 서서..
하, 비둘기 자는 모습은 또 첨 보네요..(자는 거 맞겠죠?)
"새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고 했는데, 아직도 덜 깼나..
아무튼.. 새들도 이렇게 쉬어.. 가는군요..
한남대교 닿기 직전에 마을로 나가는 굴길로 빠져
잠원동 아파트길로 들어섭니다. 조금 걷다 왼쪽으로 돌아
신사역 쪽으로 다시 뛰어갑니다.
비는 내내 뿌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원고 디스켓도 받을 겸, 신사동에 있는 요가원 들렀습니다.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온통 물 뒤집어쓴 생쥐 꼴일 텐데..
마른걸레 갔다 주셔 다리만 닦고 방 안으로 들어갔어요.
오늘 요가 쉬는 날이지만, 개인 지도 받으시는 회장님 와계시고,
로사님, 강교수님, 그리고 단식 시작한 효진씨도 나와 있네요.
요즘 오후에 운동 못 나가 며칠 만에 뵈니 더 반갑습니다..
단식에 대한 준비사항 얘기 듣고,
회장님네 제사떡(녹두떡) 한조각 얻어먹고,
차비까지 받아들고 나왔습니다..
첫댓글 언니, '애인'이란 말이 너무 어색해요. 그냥 '친구'라고 해요. 아직은...
이 글 읽다보니 저도 뛰고 싶은 마음 생깁니다. 한 번 뛰어볼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