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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거제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옥건수
일짜 |
탐사 일정 |
비고 |
7/23 |
인천 출발/ 하바롭스크 도착 (러시아) |
20:25 도착 숙박 |
7/24 |
하바롭스크 출발/페트로 파블롭스키 도착 (캄카차) |
14:40 도착 시내관광 |
7/25 |
므트놉스키 출발/돌바치크 도착 (캄차카) |
아봐차 화산지대 관찰 |
7/26 |
파블롭스크 출발/톨바치크 도착(차로 10시간) |
톨바치크 설원 캠프 |
7/27 |
톨바치크 일대 식물관찰(트래킹) |
캠프 |
7/28 |
에소 이동/ 항가호수 헬기 투어 |
에소에 캠프 |
7/29 |
에소 출발/파불롭스크 도착 |
곰과 연어관찰 |
7/30 |
파불롭스크/하바/서울 도착 |
13:20 인천 도착 |
첫째날(7.23)
인천공항에서 시간이 남아 공황대합실에서 한국문화체험 장소에서 외국인들의 문화 체험하는 장면을 몇 컷했다. 15:45분 하바로프스키행 러시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좁은 비행기 꿍꿍한 냄새, 낡은 의자, 170cm가 넘는 키에 사탕만한 눈을 휘둥거리며 안내를 하는 안내양을 보니 정내미가 떨어진다. 날씨가 꾀 더운지라 에어컨을 돌려보니 부채보다 못하다. 15년 전 중국을 여행 갔을 때 비행기 안에 에어컨이 없어 부채를 하나씩 주던 기억이 떠 오른다. 인천공항을 멀리 한 채 비행기를 소음을 내고 높이 날아올랐다.
옆 좌석에는 희색바지에 흰 배꼽티를 입고 가슴을 반쯤 드러낸 러시아 여인이 세상가는 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옆쪽으로 자꾸 시선이 간다.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오연숙선생님께서 준비해온 자료를 한두 장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 두시간 지나 기내식이 나왔다. 빵과 스프, 연어고기와 감자 그리고 고추장과 김치도 보인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6.25를 맞아 우리나라는 초토화 되었다. 그러고 50년, 우리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후진국에서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고 있다. 물론 문화적으로나 삶의 질 문제에는 아직 후진국의 틀을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우리가 어릴 때 세계 열 강국이던 나라가 이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가는 동안 우리가 탄 러시아 H8 302 비행기는 채 3시간도 못되어 러시아의 극동 중요도시인 하바로프스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5척 단신으로 보이는 고려인이 마중을 나왔다. 호텔로 가는 도중 우리 일행은 한국산 중고차를 여러 대 볼 수 있었다. 여기도 몽골과 같이 한국산 중고차가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별세개정도 된느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는 그런대로 먹을 만 했으며 우리가 먹는 바로 옆 칸에는 주로 러시아 인들이 식사를 하며 춤을 추는 모습이 보인다. 몇 해 전 중국에 갔을 때 장춘에 있는 개나리 북한식당이 생각난다. 식사를 하면서 춤을 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나는 그때 세 번이나 홀에 나가 춤을 추었다. 이번 탐사에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있었으면 또다시 그대 기억을 되살려 흥겁게 춤을 추며 같이 어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탐사팀을 보니 그렇게 할 작들이 없어 보인다. 아쉬운 미련을 남기고 오늘은 일찍 잠을 청했다.
이튼날(7.24)
6시경 기상하여 보슬비를 맞으며 아무르 강변을 걸어가 보았다. 도로가에는 역사박물관 영화관과 성당 등이 즐비하게 있었는데, 땅이 넓어서 있지는 몰라도 극장은 매우 크다. 공연장도 겸한다고 하는데, 이런 연유로 아마 러시아의 발레나 희곡이나 오페라 등이 번창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이태리 양식의 성당은 아무르강과 잘 조화를 이루며 멋있게 서 있지 않는가? 아니 공산주의 국가에서 성당이 이렇게 버젓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일부 사상가들의 장난이고 일반 백성들은 다른 서구 나라 국민들과 별 다름이 없어 보인다. 강변에 잘 다듬어진 조킹 코스, 아름답게 꾸며진 계단, 강변과 주위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 뮤직하우스 등은 정말 이채롭다. 특히 일반인들이 이용 할 수 있는 휴게실의 모양은 정말 한국에도 한번 세우고 싶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낭만적인 휴게실을 만들면 아마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그러나 나는 나이가 있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만 만들 수 있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거야. 휴게실 주변에는 아침부터 참새들이 먹이 찾느라 야단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우리나라 참새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반갑다. 아침이라 그런지 중심도로에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고 엊저녁에 몰사한 나방들만 아스팔트 보도위에 나딩굴고 있다. 나는 가로수에 관심이 많은지라 자세히 살펴보니 대부분 버드나무류이고 다른 종류는 별로 없다.
거리나 건물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는 화려하지도 호화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경직되고 정형화 된 것도 아니고, 어딘가 고풍스럽고 엄숙한 무게를 느낄 수가 있다. 이런 연유로 유명한 극작가나 문학가가 나왔을까?
Internental Hotal을 멀리한 채 캄차카를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즉시 화장실에 달려 가보니 남루하고 소변기도 없고 대변기만 있다. 공항이나 비행기 수준을 보니 몽골수준과 비슷한 것 같다. 시간이 있어 공항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관찰해보았다. 처녀들은 적당한 키에 노랑머리에 콧날이 쭈빗하고 전체모양은 쭉쭉빵빵이다. 옷은 다양하며 대부분 배꼽티를 입고 있다. 그런데 우리니라에서는 배꼽티를 보면 좀 어색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데 여기서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어느 정도의 키에 주욱 빠진 다리 때문일까?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나이가 좀 들은 여자들은 몸이 뚱뚱하고 얼굴생김도 쭈굴쭈굴하고 좀 지저분하다. 그 이유가 무얼까? 여행기간 내내 생각해 보았으나 마땅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사실 여행을 오기 전 소련 이라하면 우선 공산국가의 대표적인 나라로 세계에서 미국과 양대 산맥을 이룬 나라라고만 알고 있다. 겨우 생각나는 것이 러시아 해군기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가 기억에 떠오를 뿐이다. 블라디보스크는 연해주의 주요도시이며 우수리강을 끼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를 가만히 분석해보니 지형 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블라다보스토크, 백두산 주변의 길림성, 흑룡강성, 선양 등은 우리의 따이 되어야 했어야 했다. 광개토대왕이 좀 더 굳세었더라면 하고 생각해 본다.
비행기는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자욱한 관계로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출항했다. 기내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구입한 공지영작가의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을 몇 장 읽어 보았다. 책 내용의 인상적인 부분은 “만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다. 찌는 뜻한 여름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우리들은 산과 들로 찾는다. 으래 등산이니 수영이니 소주파티니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과 연인들과 동호인들과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것도 좋지만 물가나 산속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며 책장을 넘기는 재미도 또한 재미일 것이다. 서구 사람이나 일본인들은 휴기 기간 동안 가벼운 수영을 하면서 알몸으로 일광욕하면서 책을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 관광객은 그 시간동안 수천 키로를 달려 이곳저곳을 구경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다.
그렇게 달려와서 밤새도록 술 마시며 안마를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마는---.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책장을 넘겨야 하는 가을이 닥쳐온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내가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내 것이라고~~~. 공지영작가가 몇몇 책을 소개했는데 그중에서 정수일작가의 “소걸음으로 천 길을 가다”를 꼭 사서 읽어보고 싶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벌써 우리가 가는 목적지인 캄차카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시베리아트립 이규열사장님을 만났다. 이사장님은 지금부터 10여 년 전 SBS다큐촬영을 위해 이곳에 왔다가 여기에 정착되었다고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조류사진작가라고 했다. 아! 맞다. 내가 떠나기 전 윤교수께서 말씀하신 그분이 맞는 모양이다. 얘기를 해보니 역시 맞다. 헌출한 키에 아무렇게나 덮쳐 입은 외모는 사장냄새가 나지를 않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가는 도중 레닌동상을 보았다. 광장 주변에 50미터 높이에 우뚝 선 동상은 위엄이 있어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구소련의 붕괴 후 거의 파괴 되었으나 여기는 공상당에서 주지사가 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파괴하고 있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기념촬영을 하고 kOREA House에서 한국 음식을 먹었다. 음식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맛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하는 말 이집 주인은 마피아 두목이라고 한다.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러나 러시아마피아는 지하경제를 주름잡는 대규모 범죄조직체로 전국 곳곳에 퍼져있다고 한다. 1991년 말 옛 소련 붕괴를 전후해 범죄조직들이 당시 숙정된 소련 보안위원회(KGB)나 경찰·검찰 출신들을 고용해 이들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한편 권력기관과 결탁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해온 마피아 조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폭력만 일삼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사업을 벌여 막대한 이득을 올리거나 관료집단과 결탁해 엄청난 이익을 올리는 집단이라고 한다. 캄차카의 중심도시 페드로파블로프스키에서 마피아 총대장이 한국계라고 하니 실감이 안 간다.
식사를 마치고 이웃해 있는 상점을 찾았다. 여기에서 유명한 곳이라고는 하나 마음에 별로 와 닿는 것이 없다. 곰과 순록의 박제, 사양노루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추운지방에 사는 동물들의 박제품과 악세사리가 진열되어 있다. 나는 마땅한 것이 없어 러시아 음악CD두 장을 샀다. 다시 내려오면서 길가를 보니 젊은 남녀들이 삼삼오오 길거리에 앉아 담배를 피어대며 담소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간혹 술을 먹든가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다. 가이드의 말 러시아 여자들과 즐기려고 하면 말만 잘하면 하루 저녁이 유쾌하게 보낼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정조 관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남녀가 같이 목욕을 하고 등을 밀어주어도 연인관계가 아니고 절대 정조를 주지 않는 부류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거리의 자유 발랄한 러시아 젊은이들을 보고 정말 낭만과 여유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컴퓨터에서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하며 또한 운동을 하거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삼일체(7.25)
여덟 시경 조식을 하고 아홉 시경에 무트놉스키 화산 쪽으로 행했다. 나는 뒷좌석이 불편하여 앞좌석으로 옮겼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버디랑게이지로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담배도 서로 나누며 과자도 나누어 먹었다. 러시아 출신의 운전사는 내게 친근의 표시인줄은 몰라도 과자를 주며 먹으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고 딱딱하고 경직된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유럽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차장 밖을 보니 초원에 적당한 나무들이 어울러져 아름다운 정경이 나타내고 있다. 두해 전 몽골갔을 때 생각이 떠오른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 말과 양떼들---. 그런데 여기에는 아무리 달려도 가축이 보이지 않는다. 두어 시간 쯤 달렸을까 저 멀리 보이는 산에는 봉오리마다 만년설이 수를 놓고 있다.
나는 앞자리에 앉아 있는 관계로 이 황홀한 광경을 만끽했다. 다시 삼십분 더 달려 작은 계곡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자작나무 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힘차게 흐르고 그 옆에는 먼 길을 잘 다녀오라고 흰 천으로 표시를 해 두었다. 몽골에서는 좀 더 규모가 있고 여러 가지 천으로 다양하게 장식되어 있었으나 여기는 단순하다. 다시 두어 시간 더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설산들, 그 아래에 키 작은 나무들, 백두산에서는 여러 곳을 헤메야 볼 수 있는 것을 여기서는 한곳에서 다 관찰할 수가 있다.
땅에 갈려 누워있는 누운잣나무, 땅에다 몸을 붙이고 주걱 같은 잎과 꽃을 피우는 두메오리 ,3-4센치의 낮은 키에 분홍색과 흰색 꽃을 피우는 가솔송, 나무 종류 중 가장 키가 작다는 암매(돌매화),마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산마늘, 식물학자 린네가 이름 붙여진 린네풀, 좀채 보기 힘든 함경딸기, 잎을 층층이 돌려나는 능수쇠뜨기 그리고 홍월귤, 노랑만변초, 좀참꽃나무,콩버들,톱바위취,산석송,토깨비엉겅퀴,앵초,이삭송이풀,구름송이풀,넓은잎제비꽃,풀잎산딸나무, 나도수영, 도깨비엉겅퀴, 큰금매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좁은 지역에 함께 몰려있다. 저 멀리 한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한국인은 아니고 모두 일본 관광객이다. 캄차카는 일본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연중 6000-7000명이 몰려오나 한국인은 채 5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도 한국 사람들은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3-4년이 지나면 곰 사냥, 순록사냥을 하기 위해 몰려 올 것이다. 그리고 유럽 관광객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유럽인들은 아직 개발되지 않는 자연, 만년설로 뒤 덮흰 산과 분화구, 아직도 검은 연기를 품어내는 활화산, 정글사이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불곰 떼를 보기 위해 여기를 찾는다고 한다.
캄차카에서 꼭 해야 할 것이 바다낚시라고 하는데 우리 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를 않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아바차만은 범고래, 물개, 바다사자를 비롯하여 광어, 가자미, 대구 등 수많은 어종이 서식하고 있어 낚싯대만 들고 바다에 나가면 힘 안들이고 30-40키로는 쉽게 낚을 수 있다고 한다. 정말 아쉽다. 꼭 한번 해보고 쉽었는데---.
석양을 뒤로 한 채 돌아오다 생각해보니 왜 왜 왜 여기 산에는 눈들이 섭씨 30여도에도 녹지 않고 남아 있을까, 아마 겨울 동안에 너무 많아 싸인 눈들이 여름에 녹기는 하나 그 층이 너무 두꺼워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일까?
사일 째(7.26)
오늘은 우리가 탐사 온 주 무대인 클류치 돌바치크로 가기 위해 5시에 기상하여 6시에 출발했다. 들과 산을 15시간 정도 달려야 하기 때문에 12톤 츄럭같은 산악용 관광차가 대기 했다. 조금가다 캄차카인 3명이 더 탔다. 캠프 시 식사 담당을 할끼라고 한다. 20인용이라 좌석이 모자라 짐을 동개고 세 명은 그 위에서 가기로 했다. 약세시간 달리고 잠시 멈쳐 담배도 피고 볼일도 보고 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덮고 모기가 기성을 부린다. 특히 여지들은 더 곤욕스럽다. 남자들이야 그냥 쟈크만 내리고 볼일만 보면 되지만 여자들은 속옷까지 내리고 앉아야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차에서 내렸다 올라오면 차에 들어온 모기 잡느라 야단법석이다. 개중에는 모기에 약한 체질이 있는지라 얼굴과 팔뚝에 붉은 반점이 여럿 보인다.
약을 바르고 문지르고 야단법석이다. 한번 나갔다 오면 십 여 군데에 물리고 만다. 그런데 이놈의 모기는 많기는 해도 우리나라 모기에 비해 그렇게 독하지는 않는 것 같다. 모기와 전쟁을 하면서 달리고 또 달려도 끝이 없다. 모기 때문에 점심도 밖에서 먹지 못하고 에어콘도 없는 차안에서 대충대충 먹어 치었다.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험악하고 길주위에 있는 나뭇가지들이 쉴새없이 차창을 때린다. 비가 조금씩 오는 관계로 만약 차가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일반 차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 거의 차량이 없는 곳이다. 근 한 시간을 숲을 달려왔는데도 차량을 한 대도 보지를 못했다. 산 밑에 다 달으니 고랑폭이 100여 미터나 되는 큰 개울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물이 없지만 만약 비가 많이 오면 오도 가지를 못할 것 같다. 움퍽움퍽 패인 고랑을 지나가노라니 왜 이렇게 큰 바퀴를 가진 차를 이용했는지 이해가 간다.
식생은 별다른 것이 없고 버드나무와 자작나무, 사스레나무, 낙엽송 등이고 야생화는 별로 보이지가 않는다. 14시간이 좀 넘어서야 우리의 목적지에 다 달았다. 화산이 분출하여 아직도 화산의 열기와 용암들로 가득 찬 산 정상을 달렸다. 그리고도 30여분 더 달려 카멘볼카노브 산 아래에 짐을 풀었다. 저녁 9시 인데도 아직 해가 지지를 안았다. 각자 텐트를 치고 그 틈새를 이용하여 카메라를 들어 데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 텐트 주위에는 우리가 그렇게 보기 힘든 암매(돌매화)가 지천으로 갈려있다. 높이는 채 1센티 되지 않는 것이 무슨 이끼 모양으로 바위 뒤 덮고 있다.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을 필름카메라를 꺼내어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10여분 만에 저녁놀은 사라지고 가이드와 러시아 식당 종업원의 식사 준비한 밥과 연어 국에 보드카를 몇 잔 드리키니 점차 아루 헤아릴 수 없는 스릴을 맞볼 수가 있다. 대학교 시절에 캠프해보고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그 뒤 몇 번 있었지마는~~~ .
캄차카 인들이 피운 장작불에 탐사대원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반찬을 꺼내어 보드카에 설산을 배경삼아 술을 계속 들이켰다. 여행은 이런 재미로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여기는 주로 독일인들이 만년설을 보기 위해 임시 텐트를 치고 트래킹하기 위한 코스라고 설명했다. 저년 9시.20분에 도착하여 밥1시10분에야 잠을 청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은 12시경이다. 이것이 백야 현상 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침 5시면 해가 뜨니 러시아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민족인가보다.
백야현상은 위도가 높은 고위도 지방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나라는 러시아, 스웬덴, 노루웨이, 덴마크 등인데 남극과 북극에서는 6개월은 낮이고 6개월은 밤이라고 하니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주신 천혜의 땅일 것이다.
오일째(7.27)
오전 8시에 식사를 하고 9시경에 탐사를 나셨다. 우리가 간 곳은 크루체부스크 공원의 돌바치크화산이다. 시커먼 화산재와 용암덩어리 이제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바위들, 그 속에서도 어디서 날아왔는지 야생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이렇게 생육환경이 매우 험악한 곳에 있는 식물일수록 꽃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원래 도전적인지라 저 멀리 보이는 화산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있으니 캄차카 가이드 나타샤와 운전기사가 함께 올라왔다. 중턱 중 올라오니 저 밑에 있던 탐사대원들도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다. 화산이 분출한 정상에 다 달으니 아직도 산전체가 뜨거운 느낌이 들며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펑 뚫린 구멍사이로 뜨거운 열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활화산이 캄차카에는 300여개의 화산과 16개의 활화산이 존재하고 있어 그중 16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산의 최정상에도 거밀르 발견 항ㄹ 수가 있었고 이끼류기 상당히 보였다. 수십억년전 지구도 이렇게해서 탄생되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본다. 모기란 놈은 사람을 따라 왔는지 몇 군데 쏘아댄다. 火山이 분출한 곳에는 큰 골자기를 만들고 나무들을 모조리 까라 뭉게고 커다란 바위 산골자기를 만들었다. 산 정상에서 보니 우리가 캠프치고 있는 카멘볼카노브의 설산과 이제 막 화산의 불출이 끝난것 같은 4개의 봉오리와 분화구 저 멀리 林海가 만녈설과 잘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 놓은 것 같은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여 준다.
화산 탐사를 끝내고 캠프로 돌아왔다. 우리가 가고난후 식사 당번은 우리의 허긴 배를 채워주기 위해 메밀국수를 준비했다. 국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맛이 있다. 두 그릇을 먹었다. 일부 아낙네들은 조리 방법을 물어 보기도 했다. 나도 묻고 싶었지만 그냥 쑥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자유 시간이다.
짝지와 함께 야생화와 경관 탐사에 나섰다. 아침에 히멀것게 내려가던 물은 완전 흙탕물이다. 양도 엄청나게 많아 보인다. 아마 낮에 기온이 올라가므로 높은 산에 있던 만년설이 녹아 내려 이렇게 흙탕물을 이루는 것 같다. 고랑 쪽으로 내려가면 또다시 모기들이 달려든다. 조금 높이 올라가면 좋을 상 싶어 짝지와 함께 위로위로 올라갔다. 용암으로 흘러내려 큰 골짜기가 생기고 용암덩어리가 형형색색 모양을 하고 있다. 위로 올라 갈수록 화산의 위험을 실감 할 수 있다. 여기에도 간간이 분홍바늘꽃과 같은 야생화가 더러 보인다. 저녁에는 김치찌개에 보드카를 안주삼아 맛있게 먹었다. 오늘 석양은 어제보다 화려하지는 않다.
육일째 (7.28)
아침8시경에 라멘과 누룽지로 배를 채우고 9시 넘어서 출발했다. 출발하기 전 우리가 묵었던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대충대충 할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뒷마무리를 깨끗이 한다. 같이 따라온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열심히 주방 일을 한다. 물을 데우고 그릇을 씻는 일에서부터 거의 못하는 일이 없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러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주방의 일을 돕는 일이 생활화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변했지만 더욱 변해야 할 것이다. 갔던 길을 돌아 나오는데 우리가 그제 본 고랑에는 물이 상당히 내려가고 있었다. 만약 비가 조금만 더 왔더라면 냇물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 나오면서 처음으로 추럭을 한데 만났다. 길은 외길인데 어떻게 비키는가 보니 몇 미터 후진을 하더니 울창한 산속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런 방법이외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상 싶다. 여기 캄차카에는 차들이 그렇게 많지 않고 광활한 영토이기 때문에 차가 고장이 나면 지나가던 모든 차들이 달려들어 차를 빼내어 주거나 수리를 해준다고 한다.
내려오다 96년 화산폭발 시 이곳을 지나던 헬기가 추락한 지점을 찾았다. 잔해는 거의 간곳이 없으나 일부 동체만 남아 땅에 박혀있다. 러시아인들이 비행기술이 세계최고라고 하지만 화산폭발에서는 꼼짝도 못한 모양이다. 화산이 폭발한 후 식생이 어떠한 방법으로 재구성 되는지를 관찰하고 나서 우리가 가는 에소를 향하여 차에 몸을 실었다.
차에 오면서 너무 지루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캄차카의 교육제도는? 우리는 6.3.3.4의 제도인데 캄차카는 기본교육을11년, 그리고 전문대학2년 일반대학은 5년제라고 한다. 우리와 비교해서 어떤 장점이 있는지는 몰라도 너무 지루할 것 같다. 학생들의 가정교육은 우리와 좀 다른데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체벌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할 점은 초등학교 때 대부분의 학생이 술을 먹으며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그런 점은 좋지 않는것 같다. 두 번째 질문은 토, 일요일은 어떻게 보내는가? 아이들과 함께 농장을 찾아 체험활동을 하거나 산이나 강을 찾아 캠프를 하며 낚시도 하고 자연을 벗 삼아 즐긴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제도도 정규수업 후에는 특별활동을 중시한다고 한다.
안내를 맡은 가이드의 말, 자기 친구 중에 총경이 한명 있는데 하루는 돈 빌리려 왔는데 어째 돈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니 카드를 장만하여 멋모르고 쓰다 보니 빵구가 나서 왔다는 것이다. 경찰총경이면 상당히 높은 직위에 있는 편인데 돈 100만원이 없어 이렇게 쩔쩔메는가 싶어 그의 가정을 방문해보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월급을 얼마 받는냐고 물어보니 4십 만원이라고 한다. 총경이라면 여러 가지부분에 쓰임새도 많을 것인데 그 돈으로 가능할까? 그리고는 그냥 빌려주었다고 한다. 그 뒤에 한국에서 여행 온 사람이 물건을 잊어버렸는데 그 경찰의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고 하면서 역시 여행업을 하다보면 경찰하나 쯤은 알고 있는 것이 덕이라고 하면서 캄차카 인들의 평균 월급은 한국 돈으로 250.000원 선이라고 하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이 우리나라에 돈 벌려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월급이 낮다고 해도 물가가 싸고 월래 무사안일하고 낭만적이라 우리나라와같이 심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캄차카 인들은 직업에는 貴賤이 없기 때문에 교수나 선생, 의사등도 선망의 직업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다른 이와 똑같은 월급을 받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사’자가 붙으면 월급이 많고 귀하게 여겨주는 慣習이 있는데 좀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캄차카 경찰들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몇 년 동안 돈을 왕창 벌어 직장을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르고 정직하게 생활하여 높은 자리가지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캄차카 인들은 어떻게 하면 오늘을 재미있게 보낼까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는 우리와는 전연 다르다고 한다. 자연히 飮酒歌舞를 해야 하니 돈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좀 도독이 많고 거짓말 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얼마 전 음주에 걸려 운전자격증 뒤에 200루블(1루불이 40원정도)을 끼어 주었더니 다시 가져와서는 스티카를 끊을려고 하기에 조금 전에 200루블 주지 않았느냐 하니까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다시 끊으려고 하여 할 수 없이 다시 200루블을 주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15-20년쯤 뒤떨어졌구나하고 생각했다.
우리의 목적지인 에소에 가기 전에 헬기투어가 있다고 한다. 날씨가 바람이 불기는 해도 자기들 말로는 워낙 비행실력이 좋다보니 별문제 없다고 하였다. 1인당 29만원이라 작은 돈이 아닌데, 한 선생님이 저는 배가 고파서 도저히 갈수 동행 할 수 없는데요. 그렇다. 우리가 아침 9시에 출발하여 지금 저녁 6시가 되도록 빵 한 조각을 먹고 모기와 전쟁을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것은 변명이고 비행기 싹이 너무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잡비는 얼마 남지 않고 선물비도 모자라는데 동행을 해야 하나. 그러나 여자들도 그리고 어린 학생들도 다 같이 가는데 우리만 빠질 수 있나. 아무 말 없이 자동으로 응낙한 샘이 되어 버렸다. 혹시나 비행기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그러나 러시아 조종사는 역시 최고의 조종사다. 헬리곱터가 이륙하는데 아무런 요동이 없다. 물론 러시아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탓는 데도 이,착륙 시 아무런 요동이 없지 않았는가? 헬리곱터는 높이 날지 않고 낮게 날아 촬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특이 나는 창문을 열고 카메라를 들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작나무와 낙엽송으로 덮 흰 산야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설산이 보인다. 우리가 탄 헬리꼽터는 최정상의 설산위로 가볍게 날았다. 숲이 너무 울창하여 지상의 야생동물들은 보이지 않고 산정의 물줄기와 강, 툰드라 지역의 식물들만 만끽했다. 1시간 쯤 비행하여 산 정상에 백두산 천지와 같은 항가 호수에 닿았다. 지상에 내려 본 항가 호수보다 비행기에서 본 호수가 더 아름다웠다. 비록 곰이 뛰놀고 연어가 춤추는 곳은 아니지마는 그런대로 신기하고 참신했다. 이 호수가 외부의 출입이 거의 없는 관계로 자연그대로 순수함을 유지했다.
여기 생존하는 식물도 여타 다른 지역에 있는 식물과 유사하다. 혼자 산골짜기를 탐사하던중 야생 쥐를 한 마리 보았다. 백두산에서 본 우는토끼 보다는 크나 우는 소리는 비슷하다. 그리고 보니 곳곳에 구멍이 뚫여 있다. 돌아 올 때는 신기함이 사라졌는지 어린 학생 세 명은 잠을 잔다. 그러나 같이 동행한 러시아 인들은 자기들도 이런 기회가 없었는지 차창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저년 9시가 되었는데도 식사를 하지 않아 배안에서는 밥 달라는 아우성이 귀전을 맴돈다. 삼일 만에 샤워를 하고 멘도를 하였다. 그런데 이곳은 이사장님의 양아버지 집인데 객실은 쓰지 말고 화장실과 샤워 실 만 쓰라고 하였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대체적으로 깨끗한데 이곳은 외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고급 펜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 주인이 당부 하는 말 “특히 정원을 걸어갈 때 잡초 있는 곳을 가지 말고 길을 따라 가라고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면 이 추잡한 정원을 깨끗이 베고 질서 정연하게 손님을 맞이했으련만, 주인은 정원에 난 잡초도 그 나름대로 멋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물은 온천이 많은 관계로 따뜻한 물이 나왔다. 그리고 온천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을 각 가정마다 공급하여 웬만한 가정이면 자그마한 온실을 각고 있으며 여기에 토마토나 오이 등의 과채류를 심어 자급자족하고 있다고 한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칠일 째 (7.29)
아침이 되니 어제 저녁에 병원에 갔던 초등학생 재현군이 돌아왔다. 재현군이 그제 저녁부터 배알이를 하여 곤욕을 치렸다. 별다른 일이야 있겠느냐는 안도감으로 여행을 감했으나 어제 저녁에 난 결론은 아마 맹장이므로 수술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느렸다고 한다. 밤중인데 의사 세명이 모여 합의한 내용이라고 한다. 잘못하면 부모님 둘 중에 한명은 이역만리 캄차카하고도 먼 에소에서 며칠을 지내야 했다. 그러나 밤새도록 링게르를 5병이나 맞고 아침에 밝은 으로 무사 귀환했다. 모두들 좋아라하고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다.
9시경에 밥과 닭고기로 반찬을 하고 오전 식물탐사에 나셨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에소는 샤먼을 중시 여기는 에멘족이 500호 정도 살고 있으며 순록을 키우는 전통정인 캄차카 토속촌이다. 에멘족은 여선이 남성으로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하면서 샤먼을 집전한다(남여간에 음양전환)
몇 해 전 김지하 시인이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 신화의 땅 캄차카를 찾아 에소에와 여러 가지 무속에 대한 연구를 하고 간적이 있다고 하였다. “이 곳엔 칠천 개의 신화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움보다는 도리어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비테르 박사의 말처럼 ‘포그리니즈나야 체리토리야’ 즉 경계지역이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 알타이·바이칼과 알래스카·캐나다 사이, 그리고 투르크·몽골 등 고대 아시아 문화와 아스테카·마야·잉카문명 사이, 그리고 고대와 현대 사이의 경계들….
▲ 캄차카의 빔차 지역에 사는 원주민 이텔멘족 샤먼(무당)들이 굿판을 벌이고 있다. 뒤에 우리의 솟대와 장승을 닮은 장식물이
. “캄차카에서는 모든 사람이 샤먼이다. 모든 사람 안에 신과 소통하는 샤먼이 살아 있다.” 이텔멘족 샤먼의 이야기에서 나는 고개를 깊이 끄덕이게 되었다. 이텔멘족은 여성이 남성으로,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하면서 샤먼을 집전한다. 이들은 첫째 의사소통(정치적 협의), 둘째 도움(경제적 호혜), 셋째 수확(집단적 생산활동), 넷째 병치료(제사에 의한 치유처방)라는 정치·경제·문화 삼축(三軸)의 현실 활동과 남녀 간 음양전환이라는 이축(二軸)의 차원변화, 그리고 누구나 샤먼으로서 신과 소통할 수 있다는 대전제를 갖고 있다.
바로 한민족과 아시아 사상의 핵심 흐름이다! 알타이와 캄차카와 북미인디언의 ‘천지인-음양-한’사상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뚜렷이 밝혀준 데에는 아마 오래도록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탐사도중 냇고랑에서 긴 장대줄에 큰 낚시를 달고 겨울물만 쳐다보고 있는 에멘족 한 청년을 보았다. 아무런 말도 없 겨울물만 쳐다보고 있다. 옛날에는 우리가 최고였는데 요즘에 관광객이니 뭐니 해서 도대체 헤갈리고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야‘ 라고 하는 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개울물은 넓고 맑은데 모기는 끝도 한도 없이 달려든다. 간단한 탐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한 주민을 만났다. 앞사람과 악수를 하고 하길래 나도 악수를 했다. 얼굴생김새로 보아 고려인이라 추정해 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여자는 나에게 키스 공세를 했다
피할가 하고 생각했다가 멀리 고국에서 온 조국이 그리워서 나온 즉흥적인 일이라 생각하고 싶게 받아 들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따라 오면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러시아에는 술주정벵이가 많다고들 하던데 아마 그 부류가 아닌가? 아니면 고려인으로 들어와 적응하지 못하고 패인이 된게 아닌가 생각하고 불상해서 돈이라도 몇 푼 줘어줄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에소 마을의 원주민 이델족이라고 한다. 세상이 바뀌고 자유화 물결이 들어오면서 적응하지 못하고 타락해 가는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보니 집은 초라하고 못살아 보이지만 꼭 들어가는 입구 에 화단이 있고 거실 창문에는 화분이 몇 개 놓여있다. 어느 가정 화단에 야생화가 여러 개 피어있어 사진을 직고 있으니 다른 대원도 합세를 했다. 조금 있으니 여주인 밖으로 나와 방긋 인사를 한다. 귀부인 티가 나고 정말 볼륨 있게 잘 생겼다. 꽃과 함께 사진을 부탁하려고 하는 찰라 못생긴 건장한 남자가 들어와 실패하고 말았다. 오는 도중에 공회당으로 보이는 큰 건물을 발견했다.
같이 동행한 러시아 가이드 나타샤의 말은 체육관은 아니고 춤추고 노래하는 공연장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도 마을단위로 이러한 공연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쫒기기는 해도 라돈 목욕을 하기로 했다. 장시간 몸을 담그면 인체에 해롭기 때문에 5분이상은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몸만 담그고 다음 탐사지로 행했는데 독일인들은 5분 목용하고 잔디밭으로 가서 일광욕하고 다시 5분 목욕하고 다시 일광욕하며 책을 읽으며 소일하며 며칠 쉬다가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한가하지를 못하다. 경쟁이 심하고 관광을 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한꺼번에 많은 양을 보아야 한다.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
운전사는 시간이 없다고 성화다. 내일 운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빨리 가야하는 모양이다. 가는데 시간은 10시간 정도 걸리나 에어컨도 없고, 음악도 없고, 그렇다고 말재주꾼도 없이 그냥가기만 한다. 하도 심심하길 래 현박사 보고 고스톱하지고 하였다. 권선생님은 여선생이지마는 제법 해본 모양이다. 3-4시간 하는 동안에 약간의 돈을 딴다. 그리고 그것이 미안해서 중간 지점에 있는 상점에서 약간의 과일을 샀다. 물론 내 돈을 약간 보태어,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원래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나보다.
이렇게 하여 달려온 곳파블롭스키에응 밤12시가 넣어서 도착했다. 여관 주위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 디스코 클럽에서 러시아식으로 석식을 했다. 안에는 디스코클럽으로 요란하고 시꺼럽다. 알고 보니 오늘은 동내 친구들이 결혼한 삼일채로 축제 기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냥 보편적인 차림으로 나타나겠으나 여기에는 무슨 파티장인냥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들도 많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배꼽티를 입고 있다. 담배를 피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담배를 피며 담소하여 남녀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12위지만 행복지수는 102위라고 한다. 행복은 돈으로 살수가 없다. 월급25-30만원으로 이렇게 행복해 질수 있을까? 러시아인들이 우리에게는 길은 없고 다만 갈 뿐이다“ 라고 한 말이나 ”우리에겐 오늘은 잇고 내일은 없다.‘라고 하는 유유자적하고 한가로움을 배우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나름대로 조건과 환경이 있기 때문에 꼭 그런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날(7.30)
파브롭스키에서 10시에 출발하여 1시에 도착했다. 다시 하바롭스키에서 10경에 출발하여 1시경에 도착한다. 그것은 파브롭스키와 한국과는 4시간의 시간차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바롭스크에서 비행기에 몸을 싣고 7박8일간의 긴 탐사를 정리해 보았다. 막연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출발한 이번 탐사는 오늘로 막을 내린다.
미지의 세계! 공산주의의 나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세계를 탐사하고 온다는 자부심과 함께 곰 관찰이나 연어 낚시와 원주민의 대화 및 공연관람이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캄차카 지역은 천혜의 자연 관광지로 이 지구상에 곰이 가장 많이 살고 잇는 유네스코지정 세계자연보호 구역이다. 캄차카는 아시아대륙 동북쪽 오호츠크해와 북태평양 베링해 사이 고구마 모양으로 돌출한 지역으로 북위 50-60도 선이다. 한반도의 22만1천㎢ 보다 넓은 39만㎢에 39만 6천 명 중 27만 명이 페트로파브롭스크 캄차츠키에 몰려있다. 전체 면적은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합한 넓이와 같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만년설로 싸인, 활화산, 칼테라호와 분하구, 노천온천에서 즐기는 온천욕, 계곡에서 즐기는 연어 송어 낚시, 무진장 낚아 올릴 수 있는 바다낚시, 곰과 수록의 관찰. 캄차카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몸을 폭 담그고 있노라면 세포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든다. 캄차카는 20세기 초가지만 해도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신비의 지역 이었는데 옛 소련이 몰락하므로 비로소 일반인에게 공개 되었다. 지금도 곳곳에 군사기지가 남아있고 러시아 군대가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 신비감을 느낄 수가 있다.
캄차카는 4개의 자연보호구역과 1개의 조수 보호구역이 있는데 모두 주도(州都)인 페트로파블로스키에서 10시간 이상 달려가야 접할 수가 있다. 우리가 탐사한 클류체프스키야 자연공원과 비스트린스키 자연공원도 15시간 달려서 도착한 곳이다. 캄차카에 관광오는 부류는 방송사의 다큐촬영이나 조류학자, 샤먼연구가, 식물학자, 수산관계자와 일부 사업 목적으로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인간이 현대화 되고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연으로 회귀(回歸)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지는 몰라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기업들은 블라디보스크 주변은 투자가 많으나 하바롭스크나 캄차카에는 진출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엄청난 개발이 예상되므로 우리 기업의 진출이 요망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캄차카에 여행객은 몰려오는데 여행객이 묵을 수 있는 여관이나 호텔, 그리고 도로 사정은 원활하지 못하다. 매일 지구가 몰락하여도 우리는 오늘을 즐겁게 산다는 낭만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개발되지 않아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본다.
거제로 오는 차창너머로 짙은 녹색을 드리우며 빽빽이 들어찬 산야, 그 아래 통통한 나락을 잉태한 채 마지막 힘을 쏟고 있는 벼이삭들, 허수아비를 벗 삼아 뚜벅뚜벅 걸아 다니며 먹이를 찾는 백로와 왜가리, 이 모든 것들이 가을을 몰고 오는 파수꾼인가? 외국을 둘러보고 돌아오면서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거제로 오는 차창너머로 보이는 한국의 산야는 늘 정겹고 아름답다. 소나무와 참나무로 잘 어우러진 산야, 늘 푸른 들판, 졸졸흐르는 시냇물, 맑은 공기, 푸른 하늘 너머로 둥실둥실 떠가는 한국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고 생동감아 든다.
나는 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가 30-40도 선상에 있는 나라가 가장 축복받는 나라라고, 밤과 낮의 길이가 적당하고 , 특히 추운 겨울에는 잠을 많이 자라고 밤의 길이가 길며, 여름에는 여러 가지 작물과 식물이 잘 자라고 온도가 높으며 많은 비를 내려준다. 가을이 되면 강한 태양빛을 내려주어 곡식들이 여물어지게 하며 겨울에는 적당한 추의로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천혜의 땅을 부여 받은 우리나라는 분명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이 즐겁고, 신비하고, 유쾌하고 가슴이 벅차야하나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허전하고 돈 가치를 제대로 못한 것 같은 아쉬움도 남는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하는 여행도 거의 종말이 다다랐다. 이제 또 다른 삶을 위하여 인생설계를 해야 한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한지 4시간, 거제의 푸른 바다와 통통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2006. 8. 2 photo & holic 옥건수
에소?에 있는 노상온천, 우리 일행도 여기에서 온천목욕을 했다.
인천공항 대합실의 모습, 비행기 탑승하기 전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문화체험함.
헬리꼽터로 항가호수가는 길의 산야. 여름인데도 눈으로 덮혀있다.
하바롭스크 강가에 있는 야와카페
톨바치크 설원에서 본 석양 (저녁10시경)
톨바치크 화산지대에서 캠프 파이어
2박3일 캠프 투어
화산이 포발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모습
최근에 폭발한 화산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
레닌 동상 앞에서
화산지대에 선 동북아식물연구소장, 현진오박사님!
누구더라?
멋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라우
같은 룸메이트 자양고 조병현 선생님인가?
산정에 있는 이런 호수가 캄차카에는 50여개나 된다고?
더운 여름 시원한 냇물을 보며 마음을 녹이고 있는 ???
캄차카라고 하면 추운곳으로 알고 있으나 여름에는 따뜻하여 살기 좋은 곳이다.
인간은 왜 꽃을 사랑할까? 아주 가난하게 보이는 이런 가정에도 꼭 꽃이 보이니!!1
어느 가정의 잘 가꾸어진 화단
버스 정류장의 모습,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오른쪽 현진오, 이규열, 권희정
~ 같이 탐사한 선생님, 모두들 잘게시죠?~
첫댓글 이야기 보따리 끌러 놓으시니 재미있습니다. 누구더라? 최미숙샘은 차기 연구회 회장님이십니다. 조병현샘은 4.5기신가요? 2007년에 워크숍을 하셨을 것 같은데 2006년부터 탐사 활동을~~거제 사랑 교장샘께서는 사진 찍기에 폭 빠져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옥교장님 안녕하시지요? 작년 거제 통영 탐사 때 헌신적으로 도와주신 것 생각납니다. 여기 또 오래전 여행을 다시 기억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교장선생님 올리신 글 읽으며 4.5년전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재현이가 입원했던 것과 다음날 환영해주신 기억을 떠올립니다. 잠시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좋은 사진 많이 찍으셔요. 가끔 보여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캄차카 여행은 자주 저희 대화에 등장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는데 이렇게 자세히 글을 올려주시니 새삼 그때의 감흥이 되살아납니다. 화산폭발로 붉은 화산재가 덮혀 있고 드문드문 한 두 포기의 풀들이 꽃을 피워내고 있던 이 곳이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합니다. 모기만 아니면 한 번 더 가보고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