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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ernaum을 가버나움으로 쓴다.
예수의 제2의 고향이랜다. 감독은 어떤 상징의 의미로 이 제목을 선택한 듯한데
심오한 그 뜻을 난 깊이 붙잡지 못한다.
12살쯤의 소년이 감옥에서 부모를 고발하는데 영화는 법정에 나온 소년과
그 부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난한 부모는 어린 딸을 거의 팔아먹는다.
소년은 분노하여 집을 나가는데 차를 타고 도시로 가다가 놀이공원의 피에로 노인을 만나 따라 내린다.
그리고 그 공원의 식당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의 도움을 받아 그 집에 가 씻기고 아마 갓 돌을 지난 아이와 지내게 된다.
케냐에서 온 불법체류자 라힐은 아이를 화장실 한칸에 숨겨두고 일을 하다가는 이제 자인에게 맡기고 일을 나간다.
라힐은 거간꾼에게 가짜 체류허가서를 만드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아이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흑인여성은 잡혀가 돌아오지 못하고 자인은 어린 아이를 돌보게 된다.
두상 아이와 열두살 아이의 생존투쟁이 벌어지는데 눈물이 난다.
자인은 용감하게 훔치기도 하고 가진 애들 것을 빼앗아 아이를 데리고 아이의 엄마를 찾으러 다닌다.
그러다가 아이를 묶어두고 도망치려다 우는 아이를 보고 다시 돌아온다.
라힐의 행방을 찾아 시장을 헤매던 자인은 가짜 체류증을 만드는 사기꾼을 만나고
결국은 아이를 그 사람에게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와서는 팔려가다시피 해 시집을 간 여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칼을 들고 나가 그 남자를 죽인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자인이 방송을 보고는 전화를 해 부모를 고소하게 되는
줄거리인 듯하다.
자식을 키우지도 못하면서 또 임신한 부모를 고발하려는 그를 변호하는 여 변호사역을 맡은 이가
감독이란다.
실제 거리의 아이들을 배우로 삼았단다.
12살 아이의 눈빛과 세상살이에서 인간애를 배운다면 적절치 않은가?
아이를 못 보고 갇혀있는 불법체류자 엄마의 마음을 보는 장면이나
그녀가 감옥에 있는 자인을 발견하고 절망하는 장면에서는 바보는
훌쩍이며 운다. 다행이도 어둔 방에 갇힌 어린 아이들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구출된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전하며 끝난다.
얼마 전 본 로마도 현지인들을 캐스팅해 만든 영화인데
이 영화도 그렇다. 어떤 배우도 그들의 삶을 연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영화 안에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각박하고 어두울지라도 그래도 인간애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린 소년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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