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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3년 10월 25일 토요정례법회 ○
♧ 원불교 100년을 준비하는 안암교당 비전서원 기도식이 있었습니다.
♣ 김정원 교무님 설법
오늘 이 기도를 통해서 저희들이 얼마만큼 자기 스스로 마음을 밝히고 또한 아끼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각자 어떠한 마음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기도문도 같이 읽고, 독경도 하고, 비전 경과도 들어보고,
각자 서원도 쓰며 지장과 도장도 찍어보고.
오늘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설교를 해보고자 합니다.
항상 말로만 듣다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상을 같이 보고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봅시다.
<영상 - 거위의 꿈>
처음에 나왔던 영상 기억하시나요?
‘꿈은 이루어 진다’죠.
꿈은 이루어 졌나요? 아직 안 이뤄졌나요?
저희 대학 때 2002년도에 바래왔던 꿈은 이루어 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자기가 원하고 있는 꿈은 이뤄지고 있는 상태죠. 포기한 상태가 아니라.
거위의 꿈이 어떻게 탄생 되었는지 아시나요?
모르시죠.
그러면 거위의 꿈을 부른 인순이씨의 꿈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인순이씨의 거위의 꿈은 자기가 힘들었을 때 자기 마음대로 마음껏 노래를 부르는 게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위의 꿈이 자기의 노래가 됐고, 또한 현실이 되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저희들이 이야기 할 때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특별하게 영어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많은 기대는 하지 마시고 ^^;)
희망 = HOPE
저희가 희망을 이야기 할 때 hope 라고 이야기 하죠.
그런데 왜 희망인가.
H = Happy
희망이 있는 사람은 항상 행복합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겠죠. 여러분들 지금 다 꿈 갖고 계시죠?
무엇을 해야되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되지? 난 무엇이 될 것인가.
저희들이 함께 서원문을 쓴 것도 자기가 바라는 희망을 이야기 한거죠.
두번째는 O = Object
목적을 이야기 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이 자기 개인만을 위해서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하더라도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P = Person 사람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항상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게 동포은이죠.
스스로 얼마만큼 노력하는 가도 중요하지만 자력 말고 타력도 함께 있어야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E = Everybody
함께 하는 거죠.
hope 라는 단어를 다시 위의 네 가지 단어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 얼마만큼 자기의 희망을 생각했을 때 기쁜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인가. 다른 사람도 함께 위한 것인가.
저희들이 원불교 100년 안암교당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해 보고 다짐을 적어보았습니다.
안암교당이 존재하는 목적은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과 희망을. 세상의 은혜를 나투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자기의 꿈이 얼마만한 꿈이고, 어떠한 꿈인지
그리고 자기 스스로 가지고 있는 꿈이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미국의 인디언이 새끼 독수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새끼독수리가 날개짓을 해서 하늘을 날기 전에 독수리를 잡아서 꿩과 닭, 거위가 있는 우리 속에 넣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다른 동물들과 똑같이 살던 독수리가 어느 날 하늘을 봤는데
큰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거예요.
그 독수리를 보고 옆에 있는 거위에게 물어봤어요.
대체 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러니까 거위가 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은 너와는 다른 독수리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독수리는 자신도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저 독수리처럼 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그 의심을 갖기 전에 독수리가 한번이라도 날갯짓을 해 보았다면 어떠했을 것인가.
우리 속에 갇히기 전에 그리고 만약 갇히지 않았다면 그 독수리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들 스스로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모습으로 나올 수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좋겠다.
<폴 포츠 영상>
영상 잘 보셨나요?
폴 포츠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고 계신가요?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폴 포츠라는 사람은 평범한 휴대폰 판매원 사원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로 변신한 사람입니다.
앞에서 나왔지만 평범한 외모에 배불뚝이 아저씨의 모습을 지녔죠.
처음에 나왔을 때 모든 심사위원들이 그를 비웃었습니다.
제일 왼쪽에 있었던 피어스라는 사람은 제작자이면서 영국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신문의 편집국장이었습니다.
가운데 사이먼이라는 여자는 한국으로 따지면 강수연 정도급의 중견배우입니다.
맨 오른쪽에 볼펜을 씹고 있었던 그 친구는 한국으로 따지면 엄청난 프로듀서죠.
사이먼이라는 사람은 나왔다시피 엄청나게 잘 나가는 뮤지션이면서 독설가였습니다.
그런데 사이먼이 인정을 받는 이유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잘한다고 박수 친 사람들은 무조건 떴습니다.
처음 나왔다시피 폴 포츠는 우승을 함과 동시에 사이먼이 한마디를 합니다.
다음 주면 폴 포츠 자네는 녹음실에서 앨범을 녹음할 수 있을 거라고.
우리나라 돈으로 18억이라는 계약금을 가지고, 계약을 맺고 앨범을 만듭니다.
앨범 발매 동시에 영국 차트에서 2주간 30만장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1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폴 포츠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오페라를 하고 싶어서 돈을 모아서 오페라 학교에 다니고
하지만 교통사고가 나서 노래를 못 부르게 되고, 종양수술 때문에 노래를 포기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폴 포츠는 자기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나와서 1위를 하게 되고 자기의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도 하였습니다.
제가 폴 포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자기가 얼마만큼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자 하는 것 이었습니다.
1864년에는 1마일, 1600미터를 4분 50초에 달리면 엄청나게 빨리 달린다고 했습니다.
1945년도에는 4분 1초까지 단축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절대로 1600미터를 4분 내에 달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45년에 어떤 의사가 4분 이내에 1마일을 달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에 근 100년동안이죠. 그 발표가 난 이후로 만 2년동안 127명이라는 사람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뛰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사람이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결과입니다.
폴 포츠도 자신의 희망을 버리고 그대로 살았다면 당연히 평범한 사람이 됐겠죠.
대종사님께서는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육신은 살아있으나 마음이 죽어있는 사람이니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마음이 살아나기 전에는 어찌할 수 없다고 요훈품에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희망이 살아있어야 진정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제 스스로 어떠한 삶을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가진 희망이 과연 실행이 가능한 희망인가, 꿈만 꾸고 있는가,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 얼마만큼 달려가고 있는가.
밖에서 우리의 소원은 뭐라고 하죠?
우리의 소원은 보통 통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서원은?
성불제중 제생의세라 많이 이야기 하죠.
일원상서원이 우리의 서원이죠.
저희들이 이야기를 할 때 왜 이야기를 하냐면,
제가 이 동영상을 본 지는 4개월 정도 되었는데, 이것을 보고 내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내가 왜 출가라는 서원을 가지고 나왔는가.
내가 왜 고난의 연속인 간사생활을 2년간 했는가.
2년만 끝나면 내가 원하는 학교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는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의 희망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서원이 성불제중 제생의세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교과서적인 일원상서원이 나의 서원인가.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 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 까지 서원함.
과연 이것이 절실하게 맞는 일인가.
흔히 희망이라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데 일원상 체성에 합한다. 망막하죠.
일원의 위력을 얻는다. 과연 얻는 것이 무엇인지도 체성에 합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과연 내가 이룰 수 있는 서원인가.
생각해 보았더니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방법은 제가 이루고 난 다음에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리서치 조사를 했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의 장래희망.
무엇일까? 연예인? 대통령? 틀렸습니다.
자, 일순위는 교사입니다.
여러분들이 말한 연예인은 초등학생, 중학교에서는 3등. 고등학교에서는 없습니다.
이것은 커가면서 현실에 맞는 자신만의 꿈을 찾아간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꿈과 희망이라는 것은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바뀝니다.
저는 중학생 때까지 꿈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대통령, 연예인 아직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드라마 안봅니다.
꿈을 가지고 있고 꿈에 대한 희망이 있고, 그 꿈을 이루려고 한 사람의 대부분은 그 꿈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러나 꿈이 없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꿈이 1년 단위로 바뀌고,
그 사람들의 90% 이상이 자신이 살아오면서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직업을 갖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울하죠.
하지만 희망이 있죠. 지금부터라도 꿈을 가지면 되니까요.
한 청년이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한번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전을 제시한 분이 누구일까요.
대종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종사님은 우리가 도저히 그러한 꿈을 꾸지 못할 것 같은데
모든 중생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큰 비전을 제시해 주셨죠.
그리고 일생동안 그것을 위한 밭 갈기와 씨뿌리기를 하고 떠나셨죠.
비전은, 세상은 내가 뜻하는 대로 호락호락 쉽게 이루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입니다.
현실을 너무 어렵게 보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씩 이뤄가는 과정 자체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즐거워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입니다.
꿈을 크게 갖되 실천은 지금 여기 가까이서부터 하는 것.
그리고 비전은 앉아있거나 그냥 보통 정도로만 해서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성을 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향한 열정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비전을 갖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열정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한 청년 분께서 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과연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우리 교당에서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했던 비전이 얼마나 나에게 와 닿아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나의 꿈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날씬한 몸매와 구릿빛의 건강한 몸매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있습니다.
교당에서는 교당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의 비전이 있어야만 합니다.
저희가 쓴 모든 내용들이 혼자만의 비전을 위함이 아니라 그 비전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이면,
교당의 비전이 되고 교단의 비전이 될 것이다.
원불교 100주년을 위한 안암교당의 비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한 군데 한 군데씩 그 비전을 실현해 나가면 교당 전체의 비전이 될 것입니다.
교단이 커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는 그 하나의 꿈이 전체로 보았을 때 큰 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한번의 염불 위력에 좁쌀만한 공력이 쌓인다고 하셨습니다.
자꾸 하다보면 좁쌀이 쌀이 되고 콩이 되고 어느 순간에는 큰 수박만한 크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가지고 있던 작은 꿈이 성불제중 제생의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다르다와 틀리다의 뜻을 알고 있으신가요.
다르다는 것은 저 친구와 나의 모습이 다르다, 서로 같이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죠.
틀리다는 것은 정답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죠.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저희들이 개인이 각자 쓴 비전은 서로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향해가는 비전이 가는 길이 다른 것일 뿐이지 그 길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서원이,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이
왜 다른 꿈을 꾸고 있느냐고 해야지, 틀린 꿈을 꾸냐고 해서는 안된다.
그 모든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옆의 동지는 성불제중을 향해 달려가는 한명의 경쟁자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와 나는 꿈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거죠.
정산종사님께서는 혼자만 100점 받지 말고 같이 80점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꿈이 있기에 그것을 이루는 원동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대종사님께서는 광대무량한 낙원을 밝혀주셨습니다.
그 낙원으로 가는 방법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D
M
두개의 단어를 보고 떠올려지는 것이 있습니까?
드림(DREAM)입니다.
꿈은 이루기 위해서 꿈이다.
계속 꿈만 꿀 수는 없죠. 무엇을 원하든지 간에 꿈은 계속 꾸고 있습니다. 저
희들이 모르는 사이에도 꿀 수 있고 아는 사이에도 꿀 수 있다.
꿈을 꿀 때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죠.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사람도 있고 엑스트라로 나오자마자 없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간사 때 제 선배 한 분이 저에게 한달 내내 꿈에 제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꿈에서는 자기가 주인공이고, 다른 간사 동기들은 악당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자기가 주인공이 아닌 꿈을 꾸어본 적이 없데요. 어떻게 보면 몽상가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이해를 못했는데 자기는 항상 똑바른 길로 가는데 저희들이 나타나서 쉬었다 가자, 힘드니 놀러나가자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때는 그 선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가 마군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 꿈의 주인공이 얼마나 되어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D라는 것은 드라마(DRAMA)를 이야기 합니다.
D- DRAMA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연극적인 상황에 맞게 내가 얼마만큼 주인공이 되어서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를 이야기 합니다.
항상 자기가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주위 친구들은 나를 도와주는 조연이 되는가,
아니면 나와 함께 길을 가는 주인공이 되는가.
R=REVOLUTION (혁명)
자기가 가진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실행에 옮기는 겁니다.
원불교 공부법은 삼학이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작업취사입니다.
얼마만큼 수양하고 연구했다 할지라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열매가 없는 튼실한 나무죠.
잘라서 뗄감이라도 될 수 있도록 해야하죠. 하지만 그 결과만을 이야기 할 게 아니라 과정도 이야기 해야죠.
그러면 혁명을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스스로의 노력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만큼은 자기 체질도 바꿔야 한다.
제가 4단에서 이야기를 했어요.
예전에 저는 심한 사색형이었다고. 사색형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앞에서 활달하게 이야기하는 주변 동지들을 보면,
그 속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어요.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사회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나를 보고 원불교가 사람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변화가 없다.
세계 신기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지 않고 자기 자신을 변화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거죠.
폴 포츠는 이야기 합니다. 나는 단지 다른 사람과 모습이 다를 뿐인데 왜 내가 괴롭힘을 당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성불제중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실행하기 윟서 부단히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A-AIR
공기입니다. 왜 갑자기 공기냐 의아해 하실지 모르지만 공기는 손에 잡히면 있을까 없을까요.
그 공기를 가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엇인가 틀에다 담아야 하겠죠.
풍선을 불면 그 안에 공기가 있을 것이요, 항아리 뚜껑을 닫으면 항아리 안에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담을 수 있는 꿈을 실현할 노력이 있는가.
얼마만큼의 틀 안에서 그 많은 공기를 담으려 노력 하는가. 실행하고자 노력 하는가.
공기는 한번 숨을 쉬면 사라지지만, 자기가 가진 꿈은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거죠.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어울리는 교화자의 모습은 무엇인가.
말이 안되니 교당 나가서 설교하기도 힘들 것 같고,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도 갖춰지지 않고.
그 때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번 해외로 나가 보자.
저는 한국에서 이만큼의 대우를 받고 이런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그런데 다른 나라에 가서 내가 받은 만큼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푼다, 쉽지는 않겠지만 구미가 당긴다고 하죠.
무엇인가 내가 한 번 하면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생긴 거죠.
그럼 해외를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말이 통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말 말고 다른 것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
너무나 많았습니다.
미국으로 가면 선을 좀 해야 한다. 선을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아야죠.
한국에서는 교화도 잘하려면 말도 잘하고 재미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얼마만큼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제 3국이라고 하죠. 만약 우리보다 약간 못 사는 곳에 갔을 때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안의 틀을 벗어나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보려 하니 너무 많이 있는거예요.
각자 가기가 있는 직업에서도 여러 가지 분야가 있겠죠.
어떠한 분야에서 내가 그 위에 맞는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한 분야를 계속 파헤치면 언젠가는 통하겠죠.
그 통함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M- MONEY죠.
마지막으로 돈이라고 생각한 것이 자기가 가진 이상향을 이야기할 때 꿈을 쫒는게 아니라 돈을 위한 꿈을 꾸는게 아닌가.
해외로 교화를 하러 나가려고 생각해 보니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교당도 지어야 하고 교화사업도 해야하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죠.
내가 조금이나마 풍족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항상 필요로 하는 것이 돈이죠.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 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자기가 알맞게 쓰고 있는 가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간사시절에는 용금이 5만원이었어요.
그래도 한 때 5만원으로 적금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들어갔더니 똑같은 5만원인데 내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또 재태크가 이뤄지더라구요.
대학원을 갔더니 15만원을 받습니다.
그 15만월을 받고 보니까 항상 5만원을 갖고 4년을 썼었으니 나머지 10만원을 어디다 써야할지 모르겠는거죠.
두 달 동안 20만원을 갖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이 돈을 어떻게 써야지 내 마음이 우러나는 돈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나이키 신발을 사기 위해서는 학부 때는 1년을 모아야죠.
좀 좋은 거 사려면 1년 반을 모아야죠.
대학원을 왔더니 두 달이면 삽니다.
그런데 구직자로 왔더니 3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아요.
대학원 때도 15만원이면 남았는데 여기 오니 더 남아요.
어떻게 보면 밖에서 보면 30만원이라는 돈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항상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에 만족하다가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게 되면 너무나 풍족한 거예요.
다른 사람 퍼줘도 남아요.
무엇인가를 내가 했을 때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어요.
똑같은 돈을 가지고 그 생활을 하다보면 남는 무언가가 있어요.
학부 1학년 때는 1학년만 마치자. 2학년 때는 2학년만 마치자. 3학년 때는 3학년만 마치자.4학년 때는 고시만 합격하자.
왜, 4학년 때 교무 1차 검정고시를 합격하지 못하면 대학원에 못 들어갑니다.
그러면 졸업식장에서는 졸업장만 받아요.
그런데 대학원 졸업할 때 2차 교무 검정고시를 봐서 합격하지 못하면 1년 쉬어야 하고, 또 못하면 쉬어야 하고
2번 이상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 몇 년을 고생해 왔지만 자기가 그 꿈을 위해서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솔직히 쉽지는 않았죠. 꿈을 이루기 위해서.
왜, 주위에 있는 까마득한 제 동기 동생은 정전 한 페이지를 10분에 외울 때 저는 정전 2줄을 이틀간에 거쳐 외웠습니다.
안믿기시겠지만 실화입니다.
6개월 동안 정전을 외워서 애써서 어느 정도 외우고 공부를 했죠.
처음에는 고시만을 위한 공부였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의 삶을 위한 공부가 됐습니다.
출가서원을 이야기 합니다. 할 거 없으면 성불제중 제생의생를 이야기 하라.
계속 물어봅니다. 스승님들 어른 분들
남들과 똑같은 성불제중 제생의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내가 과연 성불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때 떠올랐던 단어가 딱 하나 있어요.
무아봉공이라는 단어.
그런데 무아봉공이 제 서원은 아닌거죠.
그러나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더니 이 세상에 짐은 되지 말자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내가 출가를 해서 교당에 과연 짐이 되고 있는가. 집안에 짐이 되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최소한 짐은 되지 말자. 어디 가서 환영은 받지 않더라고 짐짝 취급은 받지 말자.
쉽진 않죠. 과연 짐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딱 내린 결론이 어디에 가든지 쓸모없는 사람만 되지 말고 무엇을 할 때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있으면 좋은 존재가 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사진 찍으라면 사진 찍고, 영상 필요하면 영상하고, 나무 피우라 하면 피우고, 땅 파라면 파고.
이런 모습들이 처음에는 아무 필요 없는 모습들이었는데 조금씩 살다보니까 도움이 많이 되더라구요.
간사 때 2년 동안 땅 판 게 도움 많이 됐습니다.
군대 가서 워드 작업 하면서 맞았던 게 많이 도움 됐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몰랐던 것들인데 하나씩 과거에 배웠던 것을 습득하다 보니까
그게 지금 제가 출가를 하고 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변했습니다.
간사 때 그렇게 운전을 하고 싶어서 선배들 꼬셔서 무면허로 총부에서 운전 해보고. 트럭을 몰 수 있다는 특권.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다 보니깐 운전대 잡는 거 자체가 싫어지는 거예요.
간사 동기들 중에 운전하는 사람은 많은데 트럭을 몰 수 있는 사람은 없던거죠.
왜, 그 때 당시에 다른 간사 동기들은 다 오토예요. 그래서 스틱인 트럭은 저만 전용이 됐죠.
그런데 지겨웠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으로서는 아무 부담이 없는거죠.
어떤 차를 빌려서 운전을 해야하는데 스틱이다. 그러면 저만 해요. 그런 모든 것들이 너무 편한거예요.
꿈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이루기 위한 하나의 것이지만
자기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하나하나를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은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거죠.
꿈을 꿀 때 어떠한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 그 꿈을 꾸기 위해서 다시 한번 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꾸었던 꿈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지.
하지만 그 실행에 옮겼을 때 자기가 만족하고 있는지.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1940년대부터 아니면 그 이전부터 꿈을 꿔오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있죠.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꿈을 찾아 떠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볼 영상이 있는데요.
그 영상은 자기가 원하는 꿈을 찾아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생 떽쥐페리 동영상>
아직도 꿈을 쫒아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 떽쥐페리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점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꿈을 쫒아서 하늘을 날아 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이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과연 생 떽쥐페리의 꿈이 무엇 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아직도 꿈을 찾아서 하늘을 떠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여러분들도 가지고 있는 꿈이 여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진행될 수 있는 현재형,
그리고 다가갈 수 있는 미래형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 김제원 교무님 설법
오늘 이렇게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오시고, 우리는 불단의 꽃꽂이라든가 미리 사인을 할 수 있도록 엄청나게 연구해서 만든 것이다.
교당 식구들이 저거 만드시느라고 애쓰셨다. 그리고 받으신 것도 부랴부랴 만들었다.
아까 영상에서 보시고 또 정원교무님께서 이야기해 주셨듯이 꿈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폴 포츠라는 사람의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많이 울었다고 한다.
너무나 어리숙하고 어줍잖은 얼굴인데 그 속에서 소리가 나온 것이 오히려 대중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저는 법회 때 많은 이야기를 했죠.
그 중에 우리는 누구나 다 무궁한 묘리와 조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소중한 존재다고 반드시 믿음이 있다면 이뤄낼 수 있다.
이것이 만사 성공 원동력인 신분의성이고
그것을 연구에 들이대든가 의두라든지 얼마든지 들이대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여기에 앉아있는 사람 중에서
누구도 폴 포츠와 같은 또는 대종사님이나 선진님들 훌륭한 역사의 인물들과 같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단순히 안 된다는 것은 꿈이 없다는 것이요, 배움이 없는 것이다.
배움이 있다면 꿈도 생겨나고, 그 안에서 알아지면서 새로운 재미와 꿈이 다시 설정되기도 합니다.
배움의 재미라는 것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悅乎)라고 공자님이 그러셨죠.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그 아니 기쁘지 아니한가 하셨다.
여러분이 원불교를 만나서 이렇다 하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바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통해서 그러한가. 나의 배움과 경험,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있어지는 것이다.
꿈도 자꾸 바뀐다. 경험이나 배움 등에서 관심도 접하는 것도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꿈꾸고 배우고 경험할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폴 포츠같은 사람입니다.
저도 역량이 없고 평범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서 저를 재발견 시켜 주셨습니다.
그건 뭐냐면 내가 일원상과 같은 존재라는 것, 나의 성품은 대종사님과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법을 공부하다보니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별한 사람만 가진 꿈을 저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누구에게 꿈을 이야기했더니 교무님이 웃어버리시기도 하였다. 제가 가진 꿈을 묵사발 만들어 버리신 거죠.
그러나 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여기에 앉아계신 분들도 아마 꿈이 있을 것이다. 그 꿈이 무슨 꿈인가. 진리에 근간한 꿈이면 더 좋겠다.
폴 포츠처럼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는 꿈도 좋지만, 이왕이면 이 세상이 지금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가,
나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하는 그것에 바탕 해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국한을 넘지 못한다.
쉽게 말하여 노래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정치도 개인의 장기자랑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한계가 있다. 범부의 세계일 뿐이다.
대종사님께서 이 법을 내신 것은, 개인의 장기를 살려서 이 세상 일을 하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전을 하면서 비전은 비전이고 나도 죽겠는데 무슨 소리인가 하는 것은 이해를 못한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자기를 내팽겨치고 나만을 위해 살라고 하지 않으셨다. 또 자기만을 위해서 살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참 자기를 위한 삶이 바로 비전을 이루는, 서원이 되는 그 접점지역을 우리가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와 타가 하나이면서 또 자기는 자기고 타는 타임을 둘인 것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오늘을 저는 역사적으로 생각한다.
93년 10월 25일, 이 날은 안암교당에서 대단히 역사적인 일이다.
원불교 100년, 약 6.5년을 남겨놓고 비전을 세웠는데 헛된 꿈이 될지,
아니면 정말로 여러분과 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인지.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리고 사은님의 호렴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아까 기도문에 그렇게 썼습니다.
원기 100년에 이전에 여기 들어온 사람은 대종사님의 특별한 인연이며 먼 원불교 역사에서 선진이 될 것입니다.
이 중에서 대호법, 대봉도, 출가위, 항마위도 나올 것입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년에 이름이 지워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 그것은 여러분이 선택할 문제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고집인가,
간디가 그렇게 무저항주의로 나온 것이 고집이고, 이순신이 배 두 척 가지고 무모하게 달려든 것이 고집인가.
슈바이처는 그 똑똑한데 아프리카 가서 산 것이 고집으로 그런 것인가.
대종사님은 자기 온 일생을 희생해 바친 것이 고집인가.
지금 종법사님이나 여러 많은, 이 중에도 서원을 품은 그 사람들이
너는 특별한 인생이고 나는 나대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계의 국한은 어디까지인지도 생각이 필요하다.
이 비전이 되려면 까닭 있게 더 공부가 되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하나의 감성의 울림이요, 공부하지 않으면 결국은 언젠가는 한갓 추억에 불과하게 된다.
여러분이 대종사님의 법을 공부하면, 이렇게 생각한다.
야, 내가 가졌던 이 기쁨. 내가 깨어져 버렸던 허상들 그 맛보는 세계관을 어떻게 함께 해보게 될까. 그
것을 나만 알기는 참으로 아깝다고 생각한다.
저보다 우리 대종사님은 더하셨을 것이고 우리 종법사님은 더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속없는 자식은 부모님을 보고 ‘엄마 소리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앉아계신 분들이 저의 마음을 어디까지 이해하실 것인가. 보겠습니다.
오늘의 기도식이 여러분의 소중한 삶에 전환의 기회가 되고,
또 함께 이 생을 마감할 때 내가 그래도 그 때 다행히 아낌없이 했다, 혈심으로 했다, 일심으로 했다,
정말로 내가 생각해도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기 바란다.
내 인생의 20대와 30대를 그렇게 장식해 주셨으면 좋겠다.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