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지 임파선에 종양이 있네요. 고약한 곳이라 심할 것 같은데…. 바로 입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삼성생명 김영굉(金泳宏·42)이사는 11일 정기 건강검진 결과를 듣던 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 그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다행히 종양은 물혹으로 판명돼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종양제거 수술에서부터 퇴원까지 3박4일간 그는 ‘정신적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왔다고 고백했다.
그가 24일 ‘3박4일의 이별연습’이라는 제목으로 쓴 당시 일기를 회사 후배들에게 E메일로 공개했다. 김이사는 “엄살이라고 놀림당할까봐 묻어두려 했지만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일기 공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첫째날 (7.11, 화)
운명의 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너무나 평범하게... 잠깐 부서 업무회의를 하고 나오니 삼성의료원 건강의학센터에서 또 연락이 왔다 한다.
오후 2시까지 바쁘지 않으면 나와 달라고. 크게 걱정할 건 아닌데 가슴CT촬영에서 뭔 가가 보이니 설명을 들어보는게 좋겠다고.. 찜찜하다. 하지만 뭐 큰 일이야 있겠나, 아직 젊은데... 시간 맞춰 가보기는 해야 겠지만 바쁜데 정말 귀찮네.
10시 반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학교 시험이라서 일찍 끝내고 지금 남대문 시장 나가니 오랜만에 같이 바깥에서 점심이나 먹자고.
삼성의료원 전화가 마음에 걸려서 인지 갑자기 아내에게 잘 해 주고 싶다. 그래 나와서 함께 점심 먹자, 이렇게 시내에서 만나는 것도 정말 오래간 만이다. 점심하면서도 CT촬영 얘기는 결국 하지 않았다.너무 걱정할 것 같아서..
그냥 오후에 의료원 검진결과가 나온대서 거기 가봐야 할 것 같다고 가볍게 얘기했다. 그 순간 아내 얼굴위로 불안감이 스쳐 지나 간다.
결과면담하고 나면 곧 바로 전화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오후 2시5분 건강의학센터 전문의를 면담했다. 다른 곳은 모두 깨끗한데 기관지가 양쪽 폐로 갈라지는 부위에서 임파선이 부어있단다. 크기는 가로 2cm 세로 1.8cm라고. 임파선이 왜 부었지?
그래서 어떡해야 되나요 물으니 별일은 아니겠지만 호흡기내과에 외래예약을 해 놓았으니 가 보랜다.
어째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밖에 나오니 간호원이 영양면담과 스포츠의학 면담도 하랜다. 거의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하고 호흡기내과를 찾아갔다.
3시30분 호흡기 내과, 진료대상자가 밀린 관계로 20여분을 기다리다가 들어가 보니 담당전문의가 컴퓨터화면에 CT사진을 띄워놓은 채 들여다 보고 있다. 화면을 이리 저리 바꾸다가 탄성을 내 지른다. 아! 이 것 때문에 이리 보낸 거군요. 약 2cm... 순간 어두운 표정이 지나가는 듯 하다.
담배를 얼마나 피우시죠? 글쎄요, 하루 한 갑 약간 못되게... 그말을 하고 있는 내가 순간적으로 너무나 혐오스럽다...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자세히 쳐다 본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급한 맘에 용기를 내서 물어 본다. 저 그림의 의미가 뭐죠? 악성일 수 있다는 건가요?
수긍하는 표정으로.. 드문 경우인데.. 하면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가능성은 얼마나? 글쎄요 3:7, 4:6 ? 무언가로 세게 한 대 맞은 듯하다. 가까스로 심호흡하면서 다시 묻는다. 악성이라면 현 상태는?
이 쪽이(임파선) 아주 고약한 곳이어서 증상이 없더라도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봐야... 악성이면 사회생활은 포기하고 바로 투병생활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선 빨리 조직검사를 해야 겠으니 긴급히 입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조치하겠으니 서두르십시오.
이후 뭐라고 얘기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데 더 이상 귀에 말이 들리지 않는다. 웅웅거리는소리만 들릴 뿐...
그래, 이런 게 있었어. 인생에는. 언젠가는 부딪칠 줄 알지만 평소에는, 아니 마지막 순간까지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피하고 싶은 것, 외면하고 싶은 것, 그런 게 있지. 그런데 하필 오늘, 이런 방식으로 만날 줄이야...
차로 돌아 오니 핸드폰에 아내에게서 음성메세지가 와 있다. 왜 걱정하는 줄 알면서 이렇게 전화가 없느냐고.. 어떻게 이 얘기를 한다? 내일 중으로 입원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4시 30분 사무실로 차를 모는데 갑자기 길 위의 풍경, 차,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낯설게 느껴진다. 다시 한 번 조금 전의 면담내용을 더듬어 본다.
다소 젊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경험과 전문성면에서 자신감 있어 보이고 신중해 보이기도 하고 일단 신뢰가 가는 의사 같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하는 바를 잘 숨기지 못하는 타입인 듯. 나와 비슷해. 숨기려고 해도 어디든 표가 나거든.. 그리고 3:7, 4:6 어쩌구 할 때 표정이 뭔가 건성으로 대답하는 듯 했어. 저 사람은 상당히 나쁜 쪽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래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여기 와서 이렇게 끝나면서 영원을 살 것처럼 그 많은 인연을 만들고 때로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희로애락 사이를 맴돌며... 결국은 한치 앞도 못내다 보는 하루살이처럼 살아 온 게 아닌가?
중1, 초등5학년, 애들이 너무 어리지 않은가? 그 동안 엄하게만 굴려고 했지 한 번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아버지없는 상처를 잘 극복해 낼까?
아내는? 모든 짐을 혼자 지고.. 남은 자의 슬픔이 훨씬 클 텐데..
자존심 강해서 친구들이 남편얘기만 해도 상처받고 울텐데..
부모님은.. 내가 제일 큰 의지대상인데.. 내가 없으면 얼마나 버티실까?
아직 이별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이별의 순간이 온 것인가?
이것이 바로 한이란 것인가..
오후6시30분 윗분들께는 입원에 대해서만 간단히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감정억제가 잘 안되었나 보다. 걱정을 많이 하시면서 별 일 없을 거라고 위로를 하신다. 뭔가 약한 모습을 자꾸 보일 것 같아 사무실을 서둘러 빠져 나왔다. 자꾸 뒤돌아 보인다. 이 계단을 이 복도를 다시 밟을 수 있을까?
오후 8시, 비가 계속 뿌린 관계로 길이 엄청나게 막혔다. 얼마남지 않은 이 귀중한 시간을 도로위에서 허비하고 있다니, 기가 막혔다.
그리고 수년전부터 아내가 가장으로서의 책임론을 들먹이며 그렇게 담배를 끊도록 요구했는데 그 걸 들어주지 않았다는 자책감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이제 며칠후면 앞에 놓여진 두 갈래 길 중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판정을 받아야 한다. 진작 금연을 했더라면 어느 길을 가든 자신에 대한 혐오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지금보다 훨씬 덜 할텐데...
오후 9시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애써 불안감을 감추면서 검진면담결과를 묻는다. 별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밀진단을 받아야 하나 봐. 그래서 내일 입원하기로 했어. 뭐가 잘 못 됐는데? 글쎄 잘 모르겠지만 CT촬영에서 뭔가가 있나 봐? 심각해? 잘 몰라. 얼른 외면을 하고는 피곤하다면서 안방에 들어와 자는 척 한다.
누워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왜 그런가? 자기연민인가? 죽음이 두려워서? 글쎄 그것도 아직은 전혀 실감이 안난다. 아직 쌩쌩한데..
그래 바로 그거야. 남아 있는 자에 대한 미안함. 나로 인해 받을 그 모든 상처에 대한 연민. 평범한 가정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난다는 게 바로 이 경우구나. 정말 미안하다. 하필이면 나 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아버지로 만나서 이런 일을 당하다니..
살아 온 과정도 정말 후회스럽다.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이별과정이 아닌지. 좋아하는 것, 익숙한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흔을 넘긴 나이라면 적어도 한 달에 몇 번 쯤은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도대체 뭘하고 살았나? 뭘하다 막판에 몰려서야 갈팡질팡, 그동안의 무신경, 무관심에 몸을 떨며 후회하고 있으니...
밤12시, 잠시 거실로 나갔다. 잠든 둘째의 모습이 그렇게 안스러울 수가 없다. 미안하다...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둘째날(7.12 수)
아침 6시반 아내가 출근하면서 묻는다. 오늘 몇 시 까지 병원가야 돼? 10시쯤 까지 오라고 그랬어. 아침에 애들이 학교가면서 묻는다.
아빠 왜 출근 안해? 따로 볼 일이 있어서...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9시반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세시쯤 병실이 날 테니 그 때까지 도착하란다. 10시부터 망연자실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멍청하게 밖을 내다 보며.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째깍거리는 벽시계..
시간은 왜 이리 빨리 흐르는지..
오후2시, 이제 병원으로 출발할 시간이다. 다시 이 집으로 돌아 올 때 그 때도 현재와 같은 가정, 현재와 같은 나의 상태로 돌아 올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 행복했던 과거의 마지막 순간일까?
모든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안방, 거실, 애들 방을 구석구석 둘러본다.
소품 하나하나, 가구 하나하나의 현재 모습을 기억해 놓고 싶다.
거실위의 1년전에 찍은 가족사진, 손길로 한 번 더듬어 본다. 그래 이때가 정말 좋았어, 행복한 한 때였지...
이젠 갈 시간이다. 차를 몰고 아파트를 나선다. 문득 군대 가던 날이 떠오른다. 맞아, 그 날도 이런 기분이었어. 엄청난 충격과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두고 바깥세상은 어제와 전혀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신호대기선에서 옆 차를 물끄러미 본다. 이른 휴가를 떠나는 가족인가 보다. 온 식구가 선그라스, 모자로 한껏 휴가기분을 내고 있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그런데 너무 부럽고 너무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권태로워 하고 불만스러워 하던 저 일상으로 다시 돌아 갈수만 있다면... 저런 순간이 이 생에서 나에게도 다시 올까? 다시 한 번 가슴아래가 허물어 지는 듯한
비애가 솟아오른다. 차라리 빨리 병원으로 가자. 거기서 아픈 사람들 속으로 숨으면 당장의 비애라도 좀 완화될지 몰라.
오후 3시,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갔다. 호흡기내과 1853호, 2인실. 병실로 올라가니 갓 외출에서 돌아 온 듯한 50대 초반 남자가 막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있다.
언제부터 입원하셨습니까? 오늘이 5일짼 데 귀하가 세번째 손님이네요. 왜 들어왔수? CT촬영에서 뭐가 나왔다고 해서 확인차...
저런 저런, 젊어 보이시는데 괜찮겠죠, 처음 병원들어 오면 아주 불안하지만 2~3일 지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아주 부지런하면서 고참답게 여유가 있다.
간호원이 오더니 링겔부터 꽂아준다. 오후 늦게 정밀CT촬영이 있으니 금식하시고... 수술은 언제쯤? 글쎄요, 모레쯤 할 것 같은데요, 오늘과 내일은 일반적인 검사를 해야 할 테니..
오후 5시, 담당전문의가 회진을 돌았다. 말을 상당히 아끼는 사람이다. 아내가 따라 나가면서 뭔가를 꼬치꼬치 묻는다. 한참 후에 심각한 표정으로 병실로 돌아온다. 막연하던 불안감이 아마 실제적인 공포로 변했으리라.
억지로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설마 별 일 있겠어. 서로가 눈 마주치기를 피한다. 왜 눈만 마주치면 눈물이 솟아 오르는지..
오후 여덟시 회사 직원과 처가쪽 친척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녀갔다. 밤10시, 본관 2층으로 가서 정밀 CT촬영을 하였다.
특수물감을 혈관에 주입하면서 그것이 몸 속에 퍼지는 형상을 같이 촬영하면 훨씬 정교한 사진을 얻을 수 있대나..
세쨋날(7.13, 목)
간호원이 아침에 또 금식을 요구했다. 이왕 검사한 것 지정의가 기관지내시경 검사도 하라고 했댄다. 오후 1시반, 본관3층에서 부분마취를 하고 기관지 내시경을 하였다.
마취를 하였다지만 코 속으로 호스가 들어가서 속을 헤집으니 기침이 나서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돌아와서 왜 기관지내시경 검사까지 했을까를 생각했다. 아마 임파선이 부은 원인이 다른 부분의 악성종양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CT촬영에서 일단 폐 자체는 깨끗하다고 나타났으니 기관지쪽에서 뭔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겠지.
임파선이란 게 다른 부문의 종양 때문에 붓거나 아니면 자체적으로 종양에 걸린 것 두 개 중 하나인데, 조직검사를 해 보면 바로 알테지.
그런데 조직검사 전에 이런 검사절차를 거치는 건 악성쪽에 상당한 가능성을 두고 악성의 발병장소를 찾는데 주력하는 것 같군..
여기까지 생각에 다시 한번 절망감이 엄습하면서 온 몸에서 힘이 빠진다. 잠을 청하는데 옆 침대 아저씨는 산책을 간 듯, 아주머니가 친지의 전화를 받으면서 흐느낀다.
그 00병원 놈들이 아프다는 사람을, 8개월간을 CT촬영 한 번 안하고 정형외과,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로 돌리더니. 여기와서 보니 폐암말기래, 이제는 늦어서 수술도 안된다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아직 저 양반은 이사실도 모르고 있는데.. 멀쩡하니까 사무실 나간대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내가 중학교 3학년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슴 절절한 사연에 차라리 눈을 꼭 감아 버린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생의 흐름이 있지. 밝은 편과 어두운 편.
지금까지는 항상 밝은 편에 서 있어 왔고 또 그 걸 당연히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아, 삶에는 꼭 같은 양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어두움이 있고 그건 언제든 죽기 전에 한 번은 나눠 가지거나 겪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
생의 끝까지 전진하는 동안 저 쪽 편에서는 무수한 화살이 날라오고 있고 내가 그 화살을 오늘 맞을지 내일 맞을지 10년후에 맞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오늘도 내일도 수백 수천명이 화살을 맞고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확실한 사실말고는.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서 화살이 날라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는 것,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당연한 이 사실을 그 동안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외면하면서 살아 왔는지.
어두운 면을 느끼면서, 항상 옆에 두듯이 살아 왔으면 이런 시점에서 훨씬 담담하고 성숙하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후에 지정의의 회진이 없었다. 그래 지금 이순간 그 사람인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순히 운명이 어떤 식으로 결정해 놓았는지 확인하는 절차만 남았는데...
저녁에 회사의 여러분과 가족들이 문병을 다녀갔다. 의연한 척 하려고 무척 애썼지만 1분,1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래 내일 저녁이면 모든 것이 결정되리라. 기다리는 것이 차라리 더 고통스럽다. 저 위에 내 인생, 나의 가정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그 누군가가 과연 있을까?
넷째날(7.14, 금)
아침 7시, 내가 첫번째 수술대상자란다. 아내가 중앙수술실까지 따라 온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침대위에 누워 있는 나의 어깨를 감싸쥔다. 지금이라도 이 여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길이 있다면 그 무슨 짓이라도 하련만. 나는 잠시 후 의식을 잃으면 그만이겠지만 아내는 바깥에서 피말리는 3시간을 보내야 할 터이지.
7시반쯤 인가보다. 수술대로 옮겨졌다. 10번만 심호흡하세요, 자, 하나, 둘, 다섯번째도 못세고 정신을 잃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내이름을 계속 부른다. 일어나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잠시후 회복실에 누워 있는 나를 느낀다.
여러 명의 간호원이 주위를 부산하게 돌아 다닌다. 한 간호원이 가까이 다가와서 얘기한다. 수술이 잘 되었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10시 반,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기는데 아내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살핀다. 수고했어, 여보.
다른 별다른 말은 없다. 아마 수술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것이 없나 보다.
11시 반, 상태를 살피러 방에 온 간호사에게 수술결과에 대해 들은 것이 없는지 아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글쎄요, 수술은 잘 된 것 같구요, 암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던데요.. 순간, 온 몸에 전류가 흐르듯 생기와 희망이 솟구친다. 아내가 병동 주치의를 찾아 뛰어 나간다.
조직을 떼어낸 후 수술실에서 하는 급속 냉동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단다. 정밀검사 결과는 2~3일후 나오지만..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번 경우까지는 아직 밝은 쪽에 두기로 결정해 주셨군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삶에 보다 충실하게, 베풀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오후 4시, 지정의가 회진을 돈다. 병동 주치의와 레지던트, 병리사 등을 대동하고..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들으셨죠?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 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아내가 다시 확인한다. 정밀검사 결과는 아직 안 나왔는데 간이검사의 정확성이 얼마정도 인지? 99.9%입니다. 그럼 임파선 부은 것은 무엇인지? 물혹이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자리에 악성말고 물혹이 생기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그래,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구나. 내 가정, 내 친구, 내 일...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런 걸 덤으로 받은 인생이라고 해야 하는지.
앞으로는 정말 느낄 줄 알고,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나눌 줄 알고 연민할 줄 아는 그런 삶을 살리라. 이번은 비껴가지만 바로 옆에 삶의 어두운 면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 또 언제든지 나를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상기하면서 살아야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개인적으로 몇가지 원칙은 정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물론 첫번째는 금연입니다, 그리고 몸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40대 객기는 너무 위험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제 몸이 제 혼자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해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나머지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주로 포커스는 앞으로 그럼 순간이 다시 왔을 때 남아 있는 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후회를 줄이자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1. 금연
2. 사랑할 시간과 능력이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자 (이 보다 중요한 일?...없습니다)
3. 관대와 자비와 감사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생활 (지금이 행복하다는 걸 충분히 알면서 살아야 겠습니다)
4. 인생에 대한 주기적인 고찰과 명상 (집착말고 크게 생각하는 그 무엇을 찾아야...인생이 두려워졌습니다)
5. 안락사 합법화를 위한 사회운동 참여-말기암처럼 치유가 불가능하다면 인간으로서 마지막 품위를 유지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6. 암극복을 위한 연구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