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3 경기관총은 분당 700~1,000여 발을 발사할 수 있으며 유효사거리는 800여m로 알려져 있다.<동영상: 김대영>
기관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탄환이 연속으로 발사되는 총을 얘기한다.
오늘날 전장에서 감초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기관총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무기 중 하나이다.
특히 기관총에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숫자는, 인류가 개발한 최악의 병기인 핵폭탄에 의해 죽은 사람보다도 훨씬 많다.
기관총은 거듭된 발전 끝에 점점 가벼워지고 화력 또한 강력해지고 있다. 또한 기관총의 종류 역시 세월을 거치면서
다양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기관총은 분대지원화기로도 불릴 정도로 보병 분대에서 화력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무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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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개의 총신으로 구성된 캐틀링 건은 사람이 수동으로 크랭크를 회전시켜 소총과 달리 빠른 속도로 탄환을 발사할 수 있었다.
최초의 기관총
캐틀링 건오늘날 기관총의 시초는 1862년 미국의 리처드 조던 캐틀링(Richard Jordan Gatling)이 개발한,
캐틀링 건(Gatling gun)이다. 10개의 총신으로 구성된 캐틀링 건은 사람이 수동으로 크랭크를 회전시켜
소총과 달리 빠른 속도로 탄환을 발사할 수 있었고, 동시에 탄환이 재장전 되어 속사가 가능했다. 캐틀링 건은
미국의 남북전쟁 기간 동안 실험 목적으로 일부 사용되었고, 전쟁 이후 미군의 제식 무기로 채택되었다. 캐틀링 건의
위력은 우리의 역사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과 관군 및 일본군이 맞붙은 우금치 전투에서
캐틀링 건은 화승총과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을 무참하게 학살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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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환의 장전과 발사 그리고 탄피의 배출에 이르는 일련의 동작을 완전 자동화된 맥심 기관총은 강력한 살상력을 자랑했다.
참호전을 만든 맥심기관총기관총의 시초는 캐틀링 건이었지만, 현대적인 기관총의 원형으로 꼽히는 것은 하이럼
스티븐스 맥심 경 (Sir Hiram Stevens Maxim)이 만든 맥심 기관총(Maxim gun)이다. 맥심 기관총은 캐틀링 건과는
완전히 다른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탄환이 발사될 때 생기는 반동을 이용하여, 탄환의 장전과 발사 그리고 탄피의
배출에 이르는 일련의 동작을 완전 자동화 시킨 것이다. 또한 탄띠를 이용해 탄환을 공급해, 캐틀링 건을 뛰어넘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강력한 살상력을 자랑하는 맥심 기관총의 등장으로, 뛰어난 기동력을 자랑하던 기병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종전까지 지루한 참호전이 지속된다. 맥심 기관총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놓은 혁명적인 무기였지만, 보병이 휴대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무게가 27kg에 달했고, 4명의 병사가 달라 붙어야
겨우 운용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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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이 사용한 M1918 BAR 경기관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분대마다 1~2정씩 배치 되어 분대 단위 전투의 혁명을 가져왔다.
경기관총이 활약한 제2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세계 각국은 경량화 된 신형 기관총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독일은 1930년대 공랭식
기관총인 MG 34를 개발한다. 맥심 기관총에 비해 무게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 MG 34 기관총은 병사 1명이 도수
운반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한 MG 42 기관총은 MG 34 기관총을 개량한 기관총으로, 빠른 발사속도와
독특한 발사음으로 히틀러의 전기 톱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면 연합군은 보병 1명이 운용이 가능한, 소총과
기관총의 중간 개념에 속하는 신형 기관총을 배치한다. 1938년 영국군이 채용한 브렌(Bren) 경기관총과 미군이 사용한
M1918 BAR(Browning Automatic Rifle)은 이러한 개념의 기관총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분대 마다 1~2정씩 배치
되어 분대 단위 전투의 혁명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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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던 MG 42 기관총은 개량을 거쳐 MG 3 기관총으로 재탄생 되었다. <사진출처: 미 국방부>
(우)미군은 1950년대 후반 M60 기관총을 개발해, 베트남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 <사진출처: 미 육군>
다목적 기관총의 전성시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기관총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전쟁 당시 독일군이 사용한 MG 34와 MG 42 기관총으로 인해
"다목적 기관총"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중(中) 기관총인 MG 34와 MG 42 는 전용의 삼각대에 거치하면
소대 및 중대지원화기로 운용이 가능했다. 또한 도수 운반이 가능하고 양각대가 있어 분대지원화기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나토 즉 북대서양조약기구는 군수지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7.62 × 51 mm 탄을 나토의 표준탄으로 선정하면서
소총 및 중(中) 기관총 또한 구경이 통일되게 된다. 그 결과 미국의 M60, 벨기에의 FN MAG 기관총이 탄생된다. 그러나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정글에서 싸우던 미군은 7.62 mm 탄을 사용하던 M14 소총을 버리고, 5.56 mm
고속 소구경탄을 사용하는 M-16 소총을 채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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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은 지난 1984년 미니미 기관총을 미군의 요구사항에 맞게 개량해 분대자동화기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기 시작한다. <사진출처: 미 해병대>
분대자동화기로 부활한 경기관총
베트남전 이후 5.56 mm탄을 사용하는 소총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7.62 mm 탄을 사용하는 다목적 기관총들은
5.56 mm탄을 사용하는 소총과 탄약이 호환되지 않았다. 또한 탄과 예비 총열까지 고려하면 사수 한 명이 운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부사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1970년대 초 벨기에의 FN(Fabrique Nationale)사는 5.56mm 탄을 사용하는,
미니미(Minimi) 기관총을 선보인다. 보병 1명이 운용 가능한 미니미 기관총은 경기관총의 부활을 알렸다. 총기에 관해
콧대 높은 미군도 지난 1984년 미니미 기관총을 미군의 요구사항에 맞게 개량해, "분대자동화기"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초 K-1A 기관단총과 K-2 소총을 개발 중이던 우리 군은 미군의 결정을 눈 여겨 보게 되었고, 미니미
기관총을 참조해 한국형 기관총 K-3를 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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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년부터 우리 육군에 전력화된 K-3 기관총은 기존의 M-60 기관총에 비해 가볍고 발사속도 또한 빨랐다. <사진출처: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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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해병대가 사용 중인 M-27 IAR은 무게는 3.6㎏에 불과하고 3.5배율의 조준경을 장착해 사격 정밀도를 높였다. <사진출처: 김대영>
가볍고 정교해지는 경기관총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을 거치면서 미군에서는 미니미 기관총의 미군형인 M-249가 무겁고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결국 지난 2005년 미 해병대는 M249 기관총을 대체할 신형 기관총을 찾기 시작했고 M-27 IAR(Infantry Automatic Rifle)
을 채택한다. 독일 헤클러 운트 코흐(Heckler & Koch)사의 HK-416 소총을 개량해서 탄생된 M-27 IAR은, 무게는 3.6㎏에
불과하고 3.5배율의 조준경을 장착해 사격 정밀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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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이 연구중인 LSAT 기관총은 탄약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벼운 플라스틱 탄피를 채용하였으며 탄두내장형 탄과 무탄피 탄이 사용된다. <사진출처: 미 육군>
이밖에 미군이 지난 2003년부터 연구중인 LSAT(Lightweight Small Arms Technologies) 기관총은 미래의 경기관총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기관총에 사용되는 탄약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벼운 플라스틱 탄피를 채용하였으며, 탄두내장형 탄과
무탄피 탄이 사용된다. LSAT 기관총에 사용되는 신형 5.56mm 탄은 기존 5.56mm 탄 대비 30% 이상 경량화되었다.
또한 기관총의 무게도 사용 탄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45㎏로 기존 M-249 기관총 대비 40%이상 가벼워졌다.
글 김대영 | 군사평론가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국방관련 언론분야에 종사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 겸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군발전자문위원 및 방위사업청 반 부패 혁신추진단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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