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549) - 제6회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일본기행록(7
1. 미노로(美濃路)를 걸어 이치노미야(一宮)로
5월 6일(토), 흐리고 오후쯤 비가 온다는 예보다. 아침 7시에 다카기 노리코 씨 집에서 조반을 돌고 미유기 씨의 차로 타루이역으로 향하였다. 8시에 출발식, 하야세 타루이관광협회장이 인사말을 한다. ‘관광협회와 홈스테이 가족을 대표하여 타루이 방문을 환영합니다. 다음에 오시면 다시 환영하겠습니다. 오늘 약간 불안정한 날씨인데 37km 먼 거리를 잘 걸으시기 바랍니다.’ 홈스테이 가족을 대표한 분(기후현의 의원)의 인사, 다음에 오면 다시 그 집에 가고 싶다는 분도 있는데 언제든 환영합니다. 도쿄까지 무사히 가시기 바랍니다. 선상규 회장은 따뜻한 환영과 인정을 베풀어주어 감사하다고 인사.
홍보담당 가나이 씨가 조선통신사 일화를 한 꼭지 소개한다. ‘통신사 일행이 잠시 후 들리는 오카기(大垣)에서 묵을 때 3사(三使)는 절에서 묵고 수행원은 민가에서 묵었다. 사신들에게는 정성을 다해 고급음식을 대접하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대동한 조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었다. 오늘 코스에 들어 있는 네 개의 강을 건너는데 그 중 가장 넓은 기소가와(강폭 860미터)를 건널 때는 270척의 배를 이어 만든 다리(船橋, 정조가 화성행차 때 한강을 건너기 위해 배로 연결된 다리를 이용하였다)를 만드는데 3개월이 걸렸다.’
8시 반에 타루이를 출발하여 곧장 다리를 건너는데 약 300여개의 고히노보리(잉어 모양의 종이깃발로 어린이날에 즈음하여 내건다.)가 장관이다. 한 시간 쯤 걸어 주택가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미유기(우리를 픽업한 분) 씨와 노리코(우리 팀 홈스테이 주인) 씨가 곳감을 일행들에게 대접한다.(그들은 10km쯤 걷고 돌아갔다)
오카기 시내를 통과하여 이비가와를 지나 직선도로를 따라 열심히 걸으니 12시 지나 안하치(安八)학습센터에 이른다. 그곳 잔디광장에서 각기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나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며칠 전부터 6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여서 배낭에 덮개를 씨는 등 준비를 하고 1시 지나 오후 걷기에 나섰다. 다행히 오후 내내 비는 내리지 않고 흐린 날씨가 이어져 한 시름 덜었다.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요시무라 코스리더는 목적지까지 가는 행로를 일부 변경하여 간선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걸어가니 예정보다 7km쯤 줄어든 30km 걷기가 되어 한결 수월하다. 비도 피하고 행정도 줄어들어 보너스를 받은 기분, 종일 구름 끼어 날씨도 선선하다. 멀리 높은 산에 드리운 구름을 보니 ‘철령(鐵嶺) 높은 봉(峰)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삼아 떼어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뿌려본들 어떠리’라는 시조가 떠오른다.
조선통신사들이 배 다리로 건넜다는 기소가와를 현대식 다리로 건너 강변 길 걷는다
나가라가와를 거쳐 통신사들이 배로 연결된 다리를 건넜다는 기소가와를 지나니 아이치(愛知)현에 접어든다. 강변을 따라 잠시 걸으니 조선통신사들이 선교(船橋)를 지나는 장면을 묘사한 전시관(一宮市尾西歷史民俗資料館)에 이른다. 학예연구관이 조선통신사 일행이 기소가와를 건널 때의 정황을 지도와 그림 등을 통해 자세히 설명해주어 유익하였다. 자료관을 돌아본 후 열심히 걸으니 5시가 되기 전에 이치노미야 메이테츠 역에 도착한다. 당일 참가자들에게 완보증을 수여하고 역에서 가까운 숙소(도요코 인)에 여장을 풀었다. 숙소를 들어서는 순간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마치 우리가 도착하는 동안 유예라도 한 듯.
걷는 동안 주변을 살피며 두 가지 표현을 마음에 담았다. 하나는 건설회사의 건물 벽에 붙은 홍보 내용으로 현장으로 오라, 눈으로 보라, 손으로 만지라, 비교하라. 다른 하나는 안하치마치(安八町)에서 도로변에 내건 표어, 사람을 만드는 것은 ‘당신의 사랑의 말 한 마디로부터.' 걸으면서 이를 확인하였다. 一宮市尾西歷史民俗資料館에 가는 동안 보면서 걸었던 길의 구체적 내용을 자료관의 전시물을 접하며 확인하는 것이 건설회사의 홍보구호처럼 오고, 보고, 만지는 사례의 좋은 체험이 되었다. 어제 시가현과 기후현의 경계지점에 오미국(近江國)과 미노국(美濃國)의 표지가 있었는데 오늘 걸어온 길이 옛 길 다섯 가운데 하나인 미노로(美濃路)인 것도 자료관의 지도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일행 중 오사카에서부터 걷는 나카후치 모녀는 매일 오사카를 오가며 열심히 걷는다. 4년 전 초등학생 때부터 이 지역을 지나는 동안 조선통신사 걷기에 참가하는 딸(나카후치 미노리)은 어느새 고등학교 1학년, 일행은 따뜻한 말로 격려하며 힘을 북돋운다. 뭇 사람의 사랑을 받은 소녀야, 반듯한 인물로 성장하라.
다음날(7일), 집행부는 나고야까지 걷고 돌아가는 나카후치 미노리 양에게 명예회원 자격을 부여하고 대원 모자를 씌워주었다
* 2회와 3회 행사 때 함께 걸었던 신향순 씨에게서 다음과 같은 메일이 왔다.
교수님,
1976년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해에 제가 東京 三田(미다)에 있는 국제관계공동연구소(東京타워 인근)에 파견되어 6개월간 한국연구소의 책을 정리해주고 정리메뉴얼을 만들어 後任에게 넘겨주고 온 일이 있습니다.
歸國 한 달을 남겨두고는 휴가를 얻어 혼자서 배낭을 메고 新幹線에 올랐습니다. 東京에서 九州까지 신간선을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지금 걸으시는 코스의 나그네가 되었고 동경으로 돌아올 때 구주에서는 주로 버스로 highway를 이용하면서 지금은 지역이름도 잊은 많은 곳을 들렀고, 벳부에서는 세도내해를 페리로 건너 名古屋(나고야), 京都, 天里에서 제법 구체적인 역사여행을 했습니다.
내가 외로운 나그네로 그러나 부지런히 나부대던 그 시절의 기억보다 교수님께서 보내주시는 제목 있는 걷기 기록은 몇 갑절의 의미를 제게 각인시켜주고 있습니다.
21세기 韓日통신사팀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분들이 목적지까지 무사하게 完步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신 향순 드림
2. 일본 중부의 거점, 나고야를 관통하다
5월 7일(일), 맑고 바람 불어 걷기 좋은 날이다. 아침 8시에 이치노미야 메이테츠 역을 출발하여 나고야로 향하였다. 전날은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당일참가자들이 다른 때보다 적었으나 오늘은 20여 명, 그중에는 청도(淸道, 옛 조선통신사 행렬 때 선도하던 깃발의 글자)와 현대의 조선통신사라고 쓴 깃발을 들고 나온 이(그 중 하나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등장하여 37km를 완보)도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은 후 도쿄 인근에서 다시 걷겠다던 재일동포 김승자 씨가 앞당겨 합류하여 반갑다.
청도와 현대의 조선통신사 깃발을 들고 나온 당일 참가자
홍보담당 가나이 씨가 나고야에 오는 조선통신사들을 이 지역의 많은 문인, 학자들이 기다렸다가 밤늦게 도착한 사절단과 시문을 주고받느라 한숨도 못 잤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소개한다. 오늘 걷는 거리는 37km, 먼 길 걷는 우리를 기다리는 이는 누구인가?
시가지를 지나 한 시간쯤 걸어 한적한 공원에서 첫 휴식, 걸을 때는 덥더니 그늘에 앉아 있노라니 시원한 바람에 금방 땀이 식는다. 한국에는 미세먼지가 극심하고 기온도 30도가 넘는다는 소식. 지인이 보낸 카톡, ‘일본엔 미세먼지, 황사 염려 없지요. 오늘도 전국이 위험수준이라 외출자제령입니다. 집안에 있어도 기침이 나네요. 여러 가지 조심하시고 성공 걷기 하십시오.’
한 시간쯤 더 걸으니 이나자와 역, 이나자와 시를 거쳐 11시 경 기오쓰(淸須) 시의 기오쓰성(淸州城)에 이른다. 성 앞의 가게에 들러 따뜻한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하는 동안 엔도 대장이 사진을 건넨다. 4년 전 이곳에 들렀을 때 가오쓰 시 국제교류협회 관계자들이 찍은 사진의 복사본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는 기오쓰 성을 눈으로 살피고 계속 걷는다. 12시 20분 경 강물이 제법 많이 흐르는 쇼나이가와를 건너 나고야 시로 접어든다. 40여분을 더 걸어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임진왜란 때 조선출병의 지휘관이었던 가토 기요마사는 나고야 성을 쌓는데 중임을 맡는 등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실권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이 되었다.) 동상이 있는 공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었다.
1시 50분부터 오후 걷기, 나고야 시내를 관통하여 외곽에 있는 나루미(鳴海) 역까지 17km쯤 더 가야 한다. 도심을 지나는 동안 여러 개의 신사와 절을 지나고 넓은 도로 양편에는 말끔한 고층건물들이 마천루를 이루는데 2차 대전 때 공습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가 새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는 주변의 설명이다. 나고야는 일본 중부의 경제적 중심도시, 도쿄까지 이어진다는 도카이도(東海道)의 표지가 세워진 구 도로를 따라 오후 6시 경 나루미 역에 도착하였다. 출발 행사를 주관하는 야나기다 씨는 긴 행렬이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질서를 지켜줄 것과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30분 마다 목을 축이라 매일 당부한다. 오늘도 물이 많이 먹힌다. 수시로 갈증을 다스리도록 휴식 때마다 냉수와 오차를 내 놓는 집행부, 오늘은 아이스케키와 도마도도 배급한다.
나고야 시내를 걷는 중 공원처럼 울창한 숲의 신사를 지나다
지하철을 타고 나고야 역으로 되돌아 와서 인근의 숙소(도요코 인)에 여장을 푸니 7시가 가깝다. 조별로 나누어 뒤늦은 저녁식사, 내일은 휴식일이라 다소 느긋하다. 택시로 야마 짱이라는 체인식당을 찾아 맥주와 여러 가지 음식을 고루 먹고 숙소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가깝다.
오늘은 생일, 어제 저녁 조별식사 시간에 나이를 묻는다. 일본은 생일 기준으로 나이를 세므로 내일로 73세가 된다고 말하니 모두 생일 축하한다고 박수를 친다. 오늘 숙소에 돌아와 카톡을 여니 가족들의 축하메시지가 여럿 뜬다. 7순이 넘어서도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생일에 37km 힘차게 걸은 것으로 자축하였다. 저녁은 선상규 회장이 속한 조와 합석하여 건배하며 생일축하, 내일은 전체가 저녁 먹을 때 케이크 자른다니 분에 넘치는 생일맞이다. 지금까지 잘 지내온 것을 은총으로 여기며 남은 때도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러분도 그러하기를.
* 4월 29일부터 오늘(5월 7일)까지 황금연휴를 이용하여 오사카에서 나고야까지 걸은 재일동포 김야스오 씨는 걷기를 마치고 나고야역에서 신간선 타고 도쿄로 돌아간다. 골든 위크(황금 연휴) 끝날이라 한국의 추석이나 설처럼 열차표 구하기 힘들어 피곤한 몸인데도 두 시간여 서서 가야 한다고 말한다.
3. 내실을 다진 나고야 문화탐방
5월 8일(월), 휴식일이어서 여유가 있다. 오전 10시 반에 한국 대원 3명이 나고야 성을 찾았다. 4년 전에 들렀던 경험이 좋은 인상으로 남아서 다시 찾은 것, 한 시간여 5층으로 이루어진 천수각을 개괄적으로 돌아보았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오다 노부나가, 도요도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무라이 세 영걸의 히스토리의 위치와 내용이 바뀌었고 현존하는 50여 일본 성(城)의 사진전시장이 없어서 아쉬웠다. 첫 번째 탐방 때 미처 깨치지 못했던 부분을 재확인하여서 다행이고. 특히 한글로 된 설명문이 있어서 나고야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에도 막부 이전, 에도 막부시대,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 역사를 일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위용을 자랑하는 나고야 성, 2차대전 때 폭격으로 소실된 것을 1959년에 복원하였다.
오후 2시 반, 일행이 함께 모여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문화탐방에 나섰다. 찾은 곳은 주로 사찰, 동국대하교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한국청년 박 진섭 씨가 일행을 안내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나고야에 4,800여 사찰이 있어 일본 전역에서 가장 많은 사찰도시란다. 찾은 곳은 大須觀音寺, 崇覺寺, 妙蓮寺. 崇覺寺에서는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는 1764년의 조선통신사 행렬도 병풍(일본 측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14미터, 36폭 중 12폭)를 사찰의 배려로 특별 관람하였다. 妙蓮寺는 통신사 일행이 지나는 길목, 나고야 성주도 에도에 있는 국왕을 배알하기 전에는 통신사 일행을 만날 수 없어 그들이 지나는 모습을 살피러 사찰 인근에 임시누각을 설치하여 통신사가 지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그 절의 스님이 말해준다.(그런 정황을 듣기는 처음이다.)
저녁 식사는 규모가 큰 시장통(여러 곳의 입구에 한글로 환영이라 적혀 있고 잠깐 들른 가게에서는 한국어 안내방송도 나온다,) 부근의 중국요리, 오후 탐방에 동행한 ‘현대의 조선통신사 나고야’ 멤버들도 합석하여 두 시간여 우정과 평화를 다지는 흥겨운 시간이었다. 모임멤버인 재일동포인 손재복, 한기덕 씨 등이 친선분위기를 북돋운다. 식사 중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생일 축하 노래 후 촛불을 끄며 한국, 일본, 대만 팀이 함께 한 모임에서 우정과 평화(내 가방 뒤에 써 붙인 메시지이기도 하다.)를 다지는 이벤트에 일익을 담당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인사하였다. 마무리시간에 손에 손을 잡고 부른 아리랑, 후루사또, 타이완 노래의 화음이 한국과 일본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메아리로 번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