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27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개심사開心寺에서’]
개심사開心寺에서
어느 천 년에 놓여졌나
홍단풍 비탈길 만고풍상에 걸려있네
고달픈 몸 정오 햇살에 기우뚱
밭은 숨 장탄식으로 토해내니
타는 고뇌 단풍잎에 점점이 젖어든다
저 선원禪院 가는 그윽한 대숲 길은
내 벼린 옹이 가슴 닮은 시누대 대오 속에
전설마냥 누워 있구나
단풍도 가을 술에 취했는가
연분홍 장삼자락 천지에 펄럭펄럭
깊은 산음山蔭 처마만 보이는 저 암자
문득 골방 문고리 와락 끌어당기면
우연이라도 만날까
이태 전 훌쩍 떠난 그 친구
새파란 면도자국 빙긋 웃는 두타 얼굴로
반길 것만 같은데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切同*
개심사 느티나무 샛노란 낙엽 비
피안으로 어서오라 깃털마냥 너울너울
내 듬성한 무명초 어루만지네
쏟아져라 낙엽 비 노란 섭리들
망각의 내 어깨에 흘러라 아픈 심연의 죽비 소리들
이제 가을도 다 가는데
늦었어도 청산을 앞세울 수 있을까
서러워 서러워 떠돌아 온 반생이 서러워
아슴히 방울눈 들어 질긴 풍진 더듬어 보네
소쩍새는 이미 만추를 담고 있는데
(2005 . 11 . 5)
*三世如來一切同 ~
佛身普遍時方中 三世如來一切同. 부처님의 몸은 시방세계에 두루 하시니,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몸이 다르지 않다는 뜻. 서산 개심사 대웅전 주련柱聯인데, 타오르는 가을빛을 받고 있었다.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개심사(開心寺)에서>**는 서산 개심사의 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먼저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고뇌, 그리고 불교적 성찰을 노래한 서정시입니다.
시의 흐름에 따른 주요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을의 정점과 고뇌의 투영
시의 전반부는 개심사로 향하는 길목의 가을 풍경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풍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시인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홍단풍 비탈길" / "고달픈 몸" : 붉게 물든 단풍길을 걸으며 느끼는 육체적 피로와 세월의 무게(만고풍상)가 교차합니다.
⚫"타는 고뇌 단풍잎에 점점이 젖어든다" : 시각적 이미지(단풍)와 심상(고뇌)을 결합하여, 붉은 단풍을 화자의 타들어 가는 마음으로 형상화했습니다.
2. 떠난 벗에 대한 그리움
시의 중반부는 개심사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부재의 아픔'을 다룹니다.
⚫"이태 전 훌쩍 떠난 그 친구" : 2년 전 세상을 떠났거나 인연이 다해 떠난 친구를 떠올립니다.
⚫"새파란 면도자국 빙긋 웃는 두타(頭陀) 얼굴" : 친구의 생전 모습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묘사하여 그리움을 극대화합니다. 고통을 씻고 수행하는 수행자(두타)의 모습으로 친구를 기억하며, 그가 어딘가(암자)에 살아 있을 것만 같은 간절함을 표현합니다.
3. '삼세여래일체동'과 깨달음의 비
결구에 이르러 시인은 불교적 세계관을 통해 슬픔을 승화시키려 노력합니다.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切同)" :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모두 하나라는 뜻입니다. 이는 삶과 죽음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섭리 안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샛노란 낙엽 비... 내 듬성한 무명초 어루만지네" : 붉은 단풍(고뇌)에서 노란 낙엽(섭리)으로 색채가 대비됩니다. 낙엽은 '피안(깨달음의 세계)'으로 오라는 손짓이며, 번뇌의 상징인 '무명초(머리카락 혹은 미혹함)'를 어루만지며 위로합니다.
4. 반생(半生)의 회한과 청산
마지막 대목에서는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 드러납니다.
⚫"서러워 서러워 떠돌아 온 반생이 서러워" : '서러워'의 반복을 통해 세속의 풍진(먼지 같은 세상사) 속에서 방황했던 세월에 대한 회한을 직접적으로 토로합니다.
⚫"늦었어도 청산을 앞세울 수 있을까" : 이제라도 집착을 버리고 자연 혹은 진리(청산)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 총 평
이 시는 **개심사(마음을 여는 절)**라는 절의 이름처럼, 가을의 끝자락에서 죽음과 이별의 아픔을 마주하고 비로소 마음을 열어 세상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붉은 단풍(고뇌와 열정)**에서 시작해 **노란 낙엽(망각과 섭리)**을 거쳐, **청산(초연한 경지)**을 바라보는 시선의 확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