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름다움, 미(美)에서 꽃피는 세상으로/송 명복(요셉)
아무렴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듯한 아련한 향수로 남아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멋진 남자 이쁜 여자가 좋고 좋다는 풍조(風潮)가 알게 모르게 확산하고 있다. 소위 외모지상주의(外貌至上主義)라고 해서 꽃미남이란 용어(用語)가 등장한 지도 꽤 오랜 인 듯도 하다. 우리 주변에선 실제로 자기 나이보다 젊고 건강한 육체에 아름다움이란 “미모(美貌)”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TV 화면에선 매일매일 예쁘고 날씬한 아이돌 그룹이 등장해서 외모지상주의(外貌至上主義)를 심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일부 연예인(演藝人)들은 자신이 스스로 성형(成形)을 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런 환경(環境)에 노출된 탓인지 수술(手術)대로 쉽게 달려간다. 수능성형, 방학성형, 취업 성형이라는 신조어(新造語)의 등장도 우연(偶然)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삶을 외모(外貌)로 재단하는 사회적 시선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외모(外貌)보다는 내면(內面)의 가치가 더 중요하고 아름다운 법이다. “얼굴이 잘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바른 것만 못하다”라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어록(語錄)을 참조해 본다. 얼굴과 몸매가 아니라 인성과 도덕성, 능력으로 평가받는 환경 조성을 위해서 우리가 모두 애써야 할 때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동서양과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능(本能)이 있는 듯하다. 매년 가을이면 우리 주변의 모든 산과 들이 천연(天然)의 색조 화장품으로 변신(變身)을 시도한다.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계절(季節)이다.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 아름다움의 중심(中心)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시기(時期)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아내와 아내의 친구가 바쁘게 움직인다. 인간(人間)의 아름다움에 관한 본능(本能)에는 예외(例外)가 없는가 보다. 매년 이즘에는 화장품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 있다. 며칠 전 TV 뉴스에서 2021 오송 화장품 뷰티 박람회가 KTX 오송역사에서 진행(進行)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確認)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화장품 박람회 장소에선 역시 기대했던 바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비록 코로나 19 여파로 통제(統制)되는 분위기(雰圍氣)이긴 했었다. 하지만 화장품 부스 판매대에는 업체(業體)의 관계자들이 자사 제품 홍보(弘報)에 여념이 없었고, 오가는 눈길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이었다. 서양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콧대가 조금 낮았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던가 싶다. 역시 아름다움이란 자연이 여자에게 주는 최초의 선물이며 또 자연이 여자에게서 빼앗는 최초의 선물이라는 말이 피부(皮膚)로 와닿는 순간(瞬間)이기도 했었다.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움을 주관(主管)하는 행사에 주인공은 여자(女子)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 미(美)적 관점(觀點)에서 어머니를 고려(考慮)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아주 희미한 기억(記憶) 속에 그 옛날의 한 장면(場面)이며 그림이기도 하다. 마을 골목길을 지나다 멈추어선 어머니의 눈길이 향한 곳이 있었다. 이웃집 마당에서 울타리를 넘어선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으면 향기롭고 이쁜 모습에 감탄사(感歎詞)를 연발하기도 하셨다. 참 고웁다. 참 고웁다. 그러곤 어느새 어머니의 발길은 이웃집 마당에 있었고, 이웃집 아줌마도 같은 곳 같은 장소(場所)에 관객(觀客)이 되어 있었다. 불현듯 어느 유명작가의 어머니 일화(逸話)가 샘물처럼 솟구친다. 자신의 어머니는 자기 친구의 어머니들보다도 스무 살 정도의 나이 차이를 보이는 연상(年上)이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머니가 사십에 가까운 나이에 태어난 늦둥이였던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들이 수업 참과 차 학교에 다녀가시던 날 학교 뒤쪽 온실(溫室)에 숨은 채 친구와 함께 바라보기만 했었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은 늙어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부끄러워 숨었지만 막상 어머니는 그런 아들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우리 아들은 나무라기보다는 잘한다 잘한다고 하고 칭찬해 주어야 정말로 잘한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골목길을 넘어온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았던 어머니가 아름 디운 꽃들이 가득했었던 온실(溫室)에 숨었던 아들에게 아름다움의 진미(眞味)를 가르치신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 인간(人間)이 영원히 갈망(渴望)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일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아름다운 방식(方式)으로 인생(人生)을 살고 싶다고 한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아름다운 흔적(痕迹)을 남기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한다. 혹시 이런 측면(側面)에서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으나 모든 사람이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일부 예술가(藝術家)들은 미(美)는 예술(藝術)의 궁극적 원리(原理)이며 최고의 목적(目的)이라 한다. 그뿐 아니라 미(美)는 도달점이지 출발점이 아니라는 주장(主張)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런 연유(緣由)인지 사물의 미(美)는 그것을 응시(凝視)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공감(共感)하게 된다. 잠시만 뒤돌아보면,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거칠고 황량(荒涼)한 그 속에서 어딘가에 오아시스 같은 샘을 숨기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인간은 그 꽃이 어디서 피기 시작했는지, 그 돌이 어디서 솟아올라 섬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人間)은 나무가 초록(草綠)의 무성한 팔을 들어 짙은 그늘을 줄 때 행복감에 휩싸인다. 아울러 인간에게 그늘이 답답해질 땐 가지 틈새를 열어 찬란한 햇빛을 보여주는 나무에서 황홀(恍惚)한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다. 오직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다(Helen Keller)”는 점에 전적(全的)으로 동의(同意)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겠지 싶은 부분이다.
우리에겐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일부(一部)에선 사랑하면 아름다워진다는 말이 있는데 최고(最高)로 아름다운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하긴 아름다운 것은 선(善) 한 것이고 그렇기에 선(善)한 사람도 역시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말과 부합(符合)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 이런 표현(表現) 속에는 거짓된 것은 절대 아름다울 수 없으니 진정(眞情)한 아름다움은 자신에게 진실(眞實) 한 것이다. 그러니 당신만의 아름다움으로 아름다워지라는 뜻이 담긴듯하다. 사실 외모(外貌)보다는 내면(內面)의 가치(價値)가 더 중요하고 아름답다는 움직임으로 “탈코르셋 운동”은 벗어나자는 뜻의 ‘탈(脫)’과 체형 보정 속옷인 ‘코르셋(croset)이 결합한 신조어이다. 코르셋처럼 여성에게 꾸밈 노동을 강요(强要)하는 것을 벗어나자는 뜻인 듯한데 벗어야 할 코르셋이 무엇인지 벗어야 알게 된다는 의미(意味)이다. 이쯤이면 매력적인 입술을 원한다면 친절한 말을 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날씬한 몸매를 원한다면 굶주린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여인(女人)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얼굴의 매력이 아니라 영혼(靈魂)에서 반사(反射)된다는 어느 시인(詩人)의 시 어귀(詩語句)에 빠져 본다. 마음이 푸른 사람, 푸른 잎사귀로 살아가는 사람, 바람 곁에 스쳐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밤하늘의 별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이 밤에 일렁이는 그림이 스쳐 간다.
2021. 11.23. 11:40, 오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