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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모세
민수기 12:1-8
하나님이 특별하게 쓰시는 사람이라면 흠잡을 것이 없을 정도로 완전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치고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중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불러 쓰신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였습니다. 모세만 보더라도 모세는 의인이 아닙니다. 모세는 실수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쓰셨습니다.
만약 완전한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을 쓰신다면 아무 사람도 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허물이 많은 사람들을 들어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 쓰시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자세히 상고해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그 어느 한 부분이 있으면 나머지 다른 부분은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시고 덮어 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실 때에는 그 중심에 귀한 점이 하나 있으면 그것을 크게 사랑하시고 다른 것은 다 용서하시며, 용납하시고 덮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쓰신 위대한 영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모세는 미리암과 아론으로부터 비방을 들을 만큼의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구스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모세에게는 이미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였습니다. 아마도 본처였던 십보라가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무려 백세가 넘었을 나이에 구스 여자를 후처로 삼았습니다. 그것도 피부색이 검은 에디오피아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자세히 살펴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2)는 말씀에서 모세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모세가 이방인과의 혼인 때문이 아니었음을 밝혀줍니다. 다시 말하면 미리암은 누이요 아론은 형으로서 자신들이 모세보다 못한 게 없는데 이스라엘에 대한 지휘권을 모세 너에게만 있느냐는 불만과 불평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미리암은 모세를 위해 목숨을 건 역사적 모험을 했던 누이입니다. 모세가 나일 강변의 갈대 사이에 버려졌을 때에 이를 지켜보았고 바로의 딸인 공주가 목욕하러 왔다가 갈대 상자 속의 어린 동생을 발견하고 측은히 여기는 모습을 보고 히브리 사람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해 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할까요(출2:7) 라고 하며 곧장 어머니를 데리고 간 사람이 미리암 입니다.
그리고 보면 모세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도와 준 사람입니다. 미리암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동생 모세가 이제 와서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을 보자 모세를 비방합니다. 미리암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여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출15:20,21). 아론은 말 잘못하는 모세를 많이 도와준 형이면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2:1). 그러므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통치권에 대한 시기와 질투와 명예욕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방을 들었지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하더라’(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실수와 잘못을 보신 것이 아니라 모세의 온유함을 보신 것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굽히다’는 뜻으로 굴복한다, 절한다. 구부린다. 낮아진다, 혹은 비천해진다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의미에서 겸손과 경건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에게만 불려지는 덕성입니다. 그 때문에 겸손한 사람, 혹은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가리켜 겸손하다, 경건하다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온유라는 말은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까지 쓰여지는 특별한 성격의 말입니다.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삼하22:3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와 나아가 하나님에게까지 관계되는 특별한 성경의 묘사입니다. 그런고로 온유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온유의 반대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교만입니다. 그런고로 모세의 온유함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온유’는 강하면서도 스스로 약해지는 것이요, 높으면서도 스스로 낮아지는 것이며, 알면서도 스스로 모른 것이요,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자로 뜻을 굽히는 것을 온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온유는 절대로 약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 37:11에도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산상보훈에서 예수님께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마5: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기업으로 땅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길이길이 이어질 축복이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생태학적으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이란 말이 있습니다.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강한 동물은 다 멸종되거나 쇠퇴했지만 약한 동물은 그대로 남아 번식하고 있습니다. 온유한 동물이 온 지면을 덮고 있습니다. 강한 동물은 살아남지를 못합니다. 이 중요한 원리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유한 자가 승리를 합니다. 온유한 자가 진정 강한 자입니다.
모세를 비방하는 미리암과 아론을 하나님께서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4절에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를 비방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갑자기 세 사람을 회막으로 불렀습니다. ‘갑자기’란 생각할 사이도 없이 졸지에 세 사람을 호출하신 것입니다. ‘회막’은 하나님의 현현의 장소이며 거룩한 장소였으며 인간의 교만함이 스며들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모세를 제외시키고 두 사람 아론과 미리암을 불렀습니다(5). 그리고 두 사람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하시며 극도로 화가 나심을 암시합니다. ‘너희 중에 선지지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 특별한 존재였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에게는 환상으로나 꿈으로 말씀하셨지만 모세에게는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하시던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일반 선지자들보다 탁월하다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된 종임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에게 ‘내 종 모세를 너희가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8)고 무섭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신앙의 위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을뿐더러 반대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미리암에게는 나병에 걸려 이레 동안을 진영 밖에 가두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럼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처럼 칭찬을 받을 만한 온유함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거기에는 대단히 신비스러운 의미들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를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됨을 잘 지켜 나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지나친 칭찬을 들었을 때이며, 나머지 하나는 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들으면 교만해집니다. 칭찬을 들으면서도 자기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억울한 말을 듣고 분한 말을 들었다고 하여 불끈하여 화를 냅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신을 비방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절대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에게는 누이요 형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겨 불만을 품고 있다가 구스 여자를 취하는 것을 문제로 삼아 비방하였지만 모세는 그들의 비방을 들었음에도 조금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것을 좋게 보신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온유함이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힘입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말씀을 들었고 그로 인해 얼굴에는 광채가 났으며 그 빛난 광채를 두려워하는 백성들 앞에서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우기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는 권능의 사람이요 기적의 지도자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위대한 지도자 모세였습니다. 큰소리칠 만도 하고, 대중을 무시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됨을 잃지 않았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특별히 오늘 본문에 나타난 비방의 말은 매우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어려운 비방을 들으면서도 그는 조금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셨습니다. 결코 자기 방어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비방하는 미리암과 아론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큼, 하나님께서 친히 보상하실 만큼, 그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참기 힘든 비방을 참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온유함입니다.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비방을 듣게 되면 자기변명을 합니다. 모세로서는 구스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을 수 밖에 없었던 변명이 왜 없겠습니까? 모세가 40세 때 애굽에서 도망쳐 미디안으로 피하여 제사장 이드로의 집에서 양을 치는 종이 되었습니다.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게르솜과 엘리에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출18:3,4). 그리고 40년을 처가살이를 하며 양을 지켰습니다. 그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을 인도하는 영도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다보니 아내와 아들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어서 알 수가 없습니다.
큰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에게 문제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소월해지는 것입니다. 벌써 모세도 백세가 넘어 피곤한 인생 여정에 따뜻한 위로자를 필요로 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나이가 많아도 혼자 지낼 수는 있어도 남자는 나이가 많으면 혼자 지내는 것은 더 외롭고 불쌍하게 보여집니다. 그러던 중에 비록 피부는 검어도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하여 위로를 받기를 원했던가 봅니다. 이만하면 모세로서 얼마든지 할 말이 있고 변명도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론은 비록 형이지만 자신을 비방 할 때 ‘그래 내가 실수했다고 하자, 그럼 형 당신은 실수 한 일이 없느냐’고 하며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십계명을 받을 때 백성들로부터 금붙이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괴수가 아니냐고 하며 형을 공격할 수가 있었지만 모세는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충분히 변명도 공격도 할 수 있었지만 모세는 비난도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모세는 분명히 실수를 했지만 그의 온유함을 보시고 모세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비방하는 미리암과 아론을 책망하시고 벌하셨습니다. 이 신비로운 엄청난 진리를 우리는 똑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9:1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온유함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온유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고 큰 일을 했다고 해서 내 자신이 커진 것이 아닙니다. 내 인격이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모세는 엄청난 지위를 얻었습니다. 엄청난 명예도 얻었습니다. 엄청난 높임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도 모든 선지자와는 이상이나 꿈으로 말하였지만 내 종 모세와는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특별히 뽑아 세웠고, 특별한 일을 맡겼으며, 특별하게 취급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곧 온유입니다. 결코 자기됨을 잃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엄청난 존경을 받으면서도 자기됨을 잃지 않았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나면서부터 서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때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들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지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와 바울은 겉옷을 찢으며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행14:15)고 하며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온유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은 마음도 행위도 포학해져 갑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온유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온유한 자를 찾으십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며 그가 주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온유함을 배웁시다. 칭찬을 들었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책망을 들었다고 해서 변명을 하거나 화를 내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큼 굴복하고 낮아지고 자기됨을 지키는 온유한 자가 됩시다. 온유한 자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영원한 땅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복있는 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