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새로운 문을 향해… 질문을 찾아 헤맨 망명자
문학평론가 김현 20주기… 재조명 활발
김치수·김병익·김주연과 '평단 4K'로 활약, 심포지엄…
연말엔 고향 목포에 문학관…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이 작가에게는 말과의 싸움이라는 것(그 말 속에서는 말을 만들어낸 무수한 묘상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오)을 깨닫는 일이 아닌가 하오.'(문학평론가 김현이 제자인 소설가 이인성에게 보낸 편지 일부)

김치수·김병익·김주연과 함께 1970~80년대 이른바 '한국 문학평단의 4K'로 활약했던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 전 서울대 불문과 교수의 20주기(27일)를 맞아 김현 비평의 문학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의 주 활동 무대였던 문학과지성사는 18일 오후 '말들의 풍경과 비평의 심연'이란 주제로 문학 심포지엄을 열었다. 인터넷 블로그(blog.moonji.com)에서는 '김현문학전집'(전 16권) 30% 할인 이벤트가 7월 4일까지 진행된다.
김현의 고향인 전남 목포에서는 올 연말 개관을 목표로 '김현문학관'건립이 추진 중이다. 이 문학관은 그의 장서와 문방구, 생활용품,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병상에서 쓴 글, 일기장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김현은 대학시절 '나르시스의 시론'으로 평단에 데뷔했고, 소설가 김승옥, 시인 최하림, 문학평론가 김치수 등과 함께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다. 계간지 '문학과지성'의 창립 주역이었던 그는 이청준·박상륭·김승옥·김지하 등의 동년배 작가들에게 비평적 울타리를 제공하며 당대 최고의 문학평론가로 이름을 날렸다.
'말들의 풍경과 비평의 심연'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나선 박성창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김현 전기(前期) 비평과 한국 비평의 새로운 가능성'이란 발표에서 김현에 대해 자주 거론되는 '4·19세대 비평가의 선두주자, 모국어의 감수성을 제대로 표현한 첫 번째 한글세대'라는 평가에 대해 "김현을 특정한 시기의 비평가로 가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평적 원리에 충실하고자 했던 김현의 비평은 "문학비평을 문학주의로 부를 수 있는 틀 속에 가두는 것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문학비평이 사회비평으로 확대되며 텍스트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한순미 전남대 HK연구교수는 '나변의 겨울: 김현 비평 속의 〈나〉와 그 주변'이란 글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일 작품의 해석에 변화를 보여 온 김현 비평의 궤적을 추적했다.
한 교수는 김현이 김승옥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분석한 네 편의 글 '존재와 소유'(1966년 3월), '미지인의 초상1'(1966년 8월), '자기 세계의 의미'(1969년),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1978년)에서 소설 속의 '외판원 사내' '나' '안' 등 등장인물에 대한 해석의 변화를 주목한다. 가령 1970년대에 쓰여진 '김승옥의…'에서 '안'과 '나'는 1960년대의 닫힌 의식을 상징하는 인물들로 재해석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김현을 하나의 해석을 향한 정주(定住)의 읽기가 아니라 해석의 새로운 문을 열어가는 독법을 지닌 비평가로 파악하며, "질문에 답하는 것을 미루면서 다른 질문을 향해 가는 망명자"라고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