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이야기..........
아래 글은...어느 님께서 올리신 글을 퍼왔고 자세히 읽어 내려가는 도중에...
어제 티배팅 볼을 던져 주시던 김 종석 프로님께서 생각이나 눈시울까지 붉어지고 코 끝이 찡해오는 느낌입니다...
프로야구선수 가운데 한화 김종석만큼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을 산 선수도별로 없다.혈기왕성한 20대 초반 “야구를 못하겠다”며 팀을 이탈해 파문을일으키기도 했고 일이 터지면 항상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야구선수로는 주변인물이었다.지난 94∼95년 잠깐 반짝했지만 대부분은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워머’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89년 프로에 데뷔한 지 벌써 13년째.가능성은 인정받았지만 화려한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던 김종석은 서른살이 되어서야 자신의 야구인생을활짝 꽃피웠다.
한화의 2번 지명타자로 ‘기록의 사나이’ 장종훈과 함께 초반 돌풍을 주도하고 있다.8일 현재 최다 안타 공동 3위(38개)와 타격 8위(0.342).13년간못다 푼 한을 올해 한올한올 풀어가고 있다.
●계약금 800만원 연봉 800만원의 고졸 최고 대우?
청소년대표를 지낸 김종석은 지난 89년 보성고를 졸업하고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다.당시 동국대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큰 물에서 놀겠다”며 청운의 꿈을 안고 프로팀을 선택했다.입단계약을 할 때 “고졸 최고 대우”라는 OB구단 관계자의 말에 순진한 김종석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즉석에서 사인했다.계약금 800만원 연봉 800만원.나중에 동기들이 계약한것을 보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 후 ‘야구판이 이런 곳이구나’라는 실망에 한달간 술에 빠져 살며 방황했다.나중에 ‘남자가 한번 사인했으면 인정하고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고 훈련을 시작했지만 프로무대 첫 출발부터 김종석의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은 예고돼 있었다.
●윤동균 코치와의 질긴 인연
지난해 말 윤동균 전 OB 감독이 한화의 수석코치로 온다는 소식을 접했을때 김종석은 무척 당황했다.어떤 표정을 지으며 옛 스승과 재회해야 할지 무척 난감했기 때문이다.
윤 코치와의 인연은 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프로 초년생 시절 윤 코치는 OB의 감독이었다.94년 3월 창원에서 합숙훈련을 하던 도중 김종석은 윤감독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느날 밤 짐을 싸서 서울로 왔다.감독에 대한반기였다.(이 부분은 다시 여쭤봐야 겠는데여...정확한지를...ㅋㅋㅋ) 자신의 포지션인 1루수를 자꾸 보강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고.그리고 몇 달 후 선수단 이탈 사건까지 터졌으니….
세월은 흘렀고 윤 코치는 요즘 ‘옛날의 반항아’ 김종석의 가장 든든한후원자다.
●OB선수단 이탈 사건
94년 9월 OB선수단 17명이 팀을 이탈했다.물론 김종석도 그 중 한 명이었다.윤동균 감독은 주동자들과의 만남에서 “나한테 혼이 날 사람은 남고 혼나지 않고 그냥 2군에 갈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17명 가운데 손을 들지 않은 유일한 선수가 김종석이었다.야구를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그로서는너무나 어렵게 확보한 주전자리이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방으로올라와 한참 고민하던 그는 동료들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다.“그래,평생 소원이던 100안타도 쳐봤으니 동료들과 함께 가자”며 짐을 쌌다.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파동
2000년 초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창립총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다.두산선수단에서는 12명이 참가했는데 김종석이 최선참이었다.프런트의 설득은 집요했다.사장이 만남을 제의해왔다.김종석은 후배들을 태우고 여의도에서 직접차를 몰고 사장과의 약속장소까지 간 뒤 후배들을 내려놓고 여의도로 돌아갔다.강병규 박명환과 함께.자신은 선배로서의 역할 때문에 빠질 수 없지만 후배들은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갸륵한 생각이었다.
●행운의 트레이드
선수협 파동 후 지난해 초 두산에서 한화로 트레이드된 것은 김종석에게는행운이었다.포지션이 겹치던 댄 로마이어가 LG로 트레이드된 뒤 올 시즌 기회가 왔고,장종훈과 함께 지명타자와 1루수를 번갈아가며 주전으로 뛸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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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2004년 말 한화에서 은퇴기사중 일부 발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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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이 지난 시즌 막바지 권유했던 은퇴경기도 팀 분위기를 고려해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내년시즌 개막전에서 은퇴식을 갖기로 했다. 한용덕과 함께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김종석(33)도 프로 15년 세월을 마감하고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준비중이다.
한화를 떠난 뒤 모 구단으로부터 입단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이후 진척이 없다. 현역생활에 대한 집착은 버렸지만 ‘1000경기 출장 타이틀’은 못내 아쉽다. 지난 89년 OB 소속으로 1군 무대에 데뷔한 그는 지난 2000년 한화로 팀을 바꾼 이후 올시즌까지 1000경기에 꼭 26경기 모자라는 974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월까지는 기다려보겠다”이라며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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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생년월일 1971년 2월 28일 신장/체중 184 cm / 90 kg / A 형
취 미 산행
출신교 매원초(82)-보성중(85)-보성고(88)
투타 /
포지션 좌투좌타/좌익수
경력 OB베어스(89)-삼성라이온즈(92)-쌍방울레이더스(96)-두산베어스(99)-한화이글스(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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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퍼올수 있고 가지고 올수 있는 정보는 이정도가 다네요..^^ 95년도 베어스 우승당시 4번이고 동시에
0.299로 팀내 최고타율을 자랑했고었습니다.
지명타자와 1루수를 번갈아 갔었을 정도로 펀치력이 있었습니다.당시엔 김상호를 밀어낼 정도였습니다.
그랬다가 심클라스가 들어오자 트레이드를 당합니다.그이후론 트레이드 트레이드 여러가지로
야구 인생 편치 않으셨던 분입니다.아..95년 그 영광의 시대가 언제쯤 다시 올런지..
NO.33 김종석
개인기록 |
포지션 | 외야수(좌투좌타)
체격 | 184cm/90kg
생년월일 | 1971년 02월 28일
경력 | 보성고-두산
2007년 연도별 기록
연도 소속 타율 게임 타수 득점 안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4사구 삼진 병살 장타율
1989 OB 0.226 39 53 3 12 0 14 11 0 6 16 0 0.264
1990 OB 0.225 62 80 7 18 0 23 5 1 8 15 2 0.288
1991 OB 0.276 83 163 18 45 3 68 25 6 19 17 1 0.417
1992 OB 0.243 53 115 16 28 4 45 16 3 16 17 3 0.391
1993 OB 0.191 70 141 14 27 1 35 16 2 14 25 7 0.248
1994 OB 0.282 104 369 47 104 5 147 64 6 34 33 11 0.398
1995 OB 0.299 116 395 63 118 4 172 56 5 35 41 12 0.435
1996 OB 0.240 56 175 18 42 1 55 16 0 14 22 6 0.314
1997 OB 0.000 5 4 0 0 0 0 0 0 1 0 1 0.000
1999 두산 0.200 14 20 4 4 1 8 2 0 5 6 1 0.400
2000 한화 0.264 80 174 24 46 8 78 27 1 34 38 5 0.448
2001 한화 0.315 116 390 66 123 16 197 65 4 50 78 9 0.505
2002 한화 0.188 77 186 21 35 2 50 14 4 22 41 6 0.269
2003 한화 0.237 78 152 11 36 3 51 17 0 29 36 6 0.336
2004 한화 0.194 21 31 2 6 0 9 2 0 6 11 0 0.290
통산 0.263 974 2448 314 644 48 952 336 32 293 396 70 0.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