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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 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시들을 읽다가 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지식인이 느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읽을 때에는 비록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마치 나 자신의 일인 양 반성을 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들, 배운 것은 있고 그만큼 사회에 쓸모는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나아가 시대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라 없는 지식인이 느끼는 그 괴리감은 비참했으리라.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을 읽으면서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배우고 익힌 것이 있으니 머릿속으로는 사회를, 국가를 경영하며 정치나 사회의 문제들을 꿰뚫어보고,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기에 무지몽매한 정치인들의 행태에 주먹을 쥐기도 하며 때로는 민주주의를, 나아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일의 끼니와 함께 이 달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초라한 모습에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다.
거기에 조국마저 잃은 백석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자신의 초라함에 안타까웠을까. 일반 독자들은 이 시의 제목에서부터 막힌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 실은 편지봉투에 적힌 발신인의 주소이다. 즉 ‘남신의주 유동에 살고 있는 박시봉 집에 세를 든 사람이 보낸 편지’란 뜻이다. 그 사람은 당연히 이 편지를 쓴 사람, 즉 시 속 화자이다. 시를 읽기 전에 시 속 어려운 말들 - 우리가 잊고 있는 어휘들부터 정리해 보자.
◇ 삿 : 삿자리,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 한방(寒房) : 냉랭하고 쓸쓸한 방
◇ 쥔을 붙이다 : 주인집에 세를 들다
◇ 달옹배기 : 작은 질그릇
◇ 북덕불 : 짚이나 풀 따위가 뒤섞여 엉클어진 뭉텅이에서 피운 불
◇ 굴다 : 구르다
◇ 나줏손 : 저녁 무렵, ‘나주’는 ‘저녁’의 평안 방언
◇ 어니 : ‘어느’의 평안 방언
◇ 섶 : 옆
◇ 정한(靜한) : 바른
화자는 ‘아내도 없고, 또,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 바람 부는 쓸쓸한 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추위가 점점 더해오는 겨울, 겨우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 한방에’ 세를 들어 기거를 한다. 구들장이 있고 군불을 지피는 방이 아니라 삿자리만 깔아놓아 냉기가 도는 방이다. 즉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인데 그 방은 ‘낮이나 밤이나’ 화자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지낸다. 그만큼 비좁은 곳이다. 침대와 책상 하나를 놓고 나면 방바닥에 따로 앉을 자리도 없는 요즘의 고시원 셋방과 똑같다.
끼니는 어찌 해결했는지 모르지만 혹 깨어진 질그릇 같은 화로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워낙 날이 춥고 방안에 온기가 없으니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지내는 것으로 보아 지식인이다. 그러나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기만 한다. 어찌 살아왔는지,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지, 그리고 익힌 것 배운 것을 왜 써먹지 못했는지를 생각하며 어쩌면 앞날도 설계했으리라. 그러나 배운 것을 통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현실이 배운 지식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자의 ‘가슴이 꽉 메어 올’ 것이요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도 많을 것이리라. 어디 그뿐이겠는가. 화자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도 있을 것이요 자신의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일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반성을 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화자 자신의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화자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운명론자와 같은 사고이다. 그만큼 하려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는 의미이리라.
고민이 많으면 사람은 흔히 자포자기를 하게 된다. 그러니 운명론자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그것도 여러 날 지속되다 보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게 되고 자신만이 외롭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결코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저녁 무렵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다시금 생각을 한다.
언젠가 보았던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 있던 나무이다. 날은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다. 즉, 지금은 비록 어느 목수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지만 자신의 삶이 ‘갈매나무’와 같아야 한다는 각오이다. 그 나무는 날은 어둡고 하얀 눈이 내리더라도 ‘굳고 정한’ 마음가짐이 굳고 또한 깨끗하고 곧은 나무이다. 바로 자신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 전편에 흐르는 분위기는 외로운 사람의 신세 한탄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운명론 혹은 숙명론에 어쩌지 못하는 패배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한다. ‘갈매나무’로 표상되는 화자의 삶은 바로 추위, 눈을 이겨낸 ‘굳고 정한’ 갈매나무와 같아야 한다는 각오이다. 비록 무기력한 삶이었지만 그렇게 끝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반성과 함께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가 비쳐진다.
시 속 화자가 느끼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은 가난과 고독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과 시련이리라. 어쩌면 무기력해지고 죽음까지 생각하는 절망적 상황에까지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화자 자신의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화로에 담긴 재 위에 글을 써본다. 지식인이기에 그렇다. 그 글에는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현실에 대한 절망 그리고 화자의 번민이 담겨 있으리라. 그럼에도 겸허하게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여기서 운명을 긍정하고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독자들도 알겠지만 시 속 화자는 시인 백석 자신의 모습이다. 객지의 낯선 방에 칩거한 채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인 - 그러나 슬프고 부끄러운 무기력했던 삶을 돌아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크고 높은 것’의 존재를 느끼며 새로운 자아를 깨닫는다.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갈매나무는 ‘드물고 굳고 정한’ 존재를 향한 시인의 꿈이 구체적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아닐까. 일제 강점기에 쓴 이 시가 훌쩍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러나 상실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힘은 바로 ‘갈매나무’와 같은 삶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오늘, 경기도 부천의 우거(寓居)에서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을 읽으며 새삼 나의 ‘갈매나무’를 그려본다. 더구나 백석과 달리 나는 나라마저 빼앗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첫댓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남신의주 유동에 살고 있는 박시봉 집에 세를 든 사람이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