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삶을 가꾼다. 이성과 감성 사이, 그 어느 지점에 놓이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다르게 변주된다.
쥰세이는 아오이로 상징된 냉정과 메미로 형상화된 열정, 그 중간의 지점에 놓여 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되, 의식은 늘 과거로 회귀한다. 쥰세이 삶의 존재 이유는 아오이와의 추억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메미의 열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화가의 길 대신 복원사의 길에 들어선 쥰세이는 의식이나 직업 면에서 과거 지향적인 인물이다. 훼손된 그림 작품을 복원하는 데 최고라 인정을 받는 쥰세이가 과거 속의 사랑을 재생시키지 못한다는 점은 그 자신만의 아이러니는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늘 똑같은 구조로 짜여진 회로 속에서도 가끔 길을 잃곤 한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사랑을 주축으로 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편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쥰세이의 직업이 복원사라는 설정은 사랑의 상실감을 심화시켜주는 데, 인간 존재의 한계성을 제시하는 데 적절하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의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원작을 먼저 봤기 때문일까^^a). 소설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을 두고 있는 메미의 존재 의미가 군더더기처럼 제시됐고 복원사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제대로 형상화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쥰세이와 조반나의 미묘한 관계도 놓치고 있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감독은 영상미로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듯이 아름다운 장면을 많이 삽입해 놨다. 영화란 매체가 지닐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감독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첫댓글 음... 나두 그렇게 생각해요.. 하고 싶었던 말임.. 글구 아오이.. 미스케스팅이당~
완벽 미스케스팅에 아마 그 배우는 책을 읽지 않은듯.....만약에두 읽었다면 연기로 밥 벌어먹기 힘들듯....하나! 영어발음은 다른 일본사람들에 비해 놀랄정도로 좋았는데 혹시....영어때문에 케스팅이?????????
진혜림은 일본사람아니궁 홍콩배우라 영어발음이 그런건데^^;;
오호~ 역쉬 일본인의 영어 발음이 아니더라니.....그렇군여~ 그래두 미스~
난 진혜림의 머리만 보이던걸요..... 몸이 넘마른건가??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