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처음으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이탈리아의 형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1738∼1794)는 "인간은 오류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한 인간이 만든 법 역시 죽음을 언도할 만큼 충분한 확실성을 갖출 수 없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법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로크,루소, 칸트, 헤겔 등 유명 사상가들은 국가 질서 유지를 위해 사형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하고 미래의 흉악범을 막기 위한 제도라는 것이지요. 특히 칸트는 "나라가 바다에 가라앉을 상황이더라도 단 한사람 남은 사형수까지 집행을 하고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977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이 사형제 폐지를 공론화한 이래, 유럽을 위시한 세계 각국은 사형 폐지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현재 법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02개국이며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의 폐지국이 30여국에 이릅니다.
우리나라도 1997년 12월 이후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 상태지요. 아직 사형제를 유지하고 실제 집행을 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중국,일본 등 60여개국입니다. 하지만,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도 대부분의 사형수에 대해 종신형 등으로 감형을 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실제 집행 건수를 줄여나가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12월3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10년간 사형 무집행 기념식' 장면입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 참석자들이 수감 중인 사형수 64명을 상징하는 비둘기 64마리를 하늘로 날려보내는 모습이군요.
이같은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사형 선고와 집행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국가도 있습니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인데요.
10월28일 일본 후쿠오카와 센다이 구치소에서는 두 명의 죄수에게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올해 들어 15명째였다는군요. 9월에도 3명의 죄수가 사형 집행을 받았습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모두 28명, 두 달에 한 번 꼴로 죄수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셈입니다.
2003년~2006년 사이 3년 간 단 3차례만 사형이 집행됐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의 증가세인데요. 더구나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뒤 실제 집행까지 걸리는 기간도 과거 7년 정도에서 최근에는 1년10개월 정도로 짧아졌다는군요.
법정에서의 사형 판결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법무성 자료를 보면, 1989년~2003년 사이에는 매년 사형 확정 판결을 받는 죄수가 10명을 넘지 않았으나, 2004년 이후에는 11~21명으로 많게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현재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일본 수감자의 수는 101명으로 우리나라(58명)와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군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앰네스티 일본지부의 테라나카 마코토씨는 "사형선고와 집행이 늘어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정부는 범죄률 상승을 들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최근 들어 가혹 범죄를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 전 법무상(현 총무상)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1년 동안 13건의 사형을 집행, 역대 법무장관 가운데 사형 최다 기록을 세웠는데요. 덕분에 ‘사신’(死神)'이란 섬뜩한 별명을 얻었지만, 자신의 결정에 대한 신념은 확고해보입니다. 공개석상에서 "법무상의 서명 없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자동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을 정도니까요.
하토야마 구니오 전 법무장관. 그는 지난 6월 한 사형수가 집행 연기 요청을 하자, "저지른 범죄의 잔학성을 고려할 때 유예해 줄 이유가 없다"며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앰네스티,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난에 대해 하토야마 전 법무상은 "사형제는 각 국가의 상황과 국민 감정을 고려해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해외에서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며 "일본 국민들의 여론이 흉악범죄를 엄중 단속하는 쪽에 있는 만큼 사형 폐지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았습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2005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0% 이상이 사형제 존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이는 1975년보다 23%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반면, 사형제 폐지를 지지하는 의견은 6%에 그쳤다는군요.
이같은 사회 분위기는 반인륜적 흉악범이 늘어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위기의식일 것입니다.
지난 4월에는 범행 당시 미성년자 였다는 이유로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모녀 살인범이 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딸을 잃은 유가족은 9년 동안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하고 가해자의 인권만 중시하는 것이 국가의 도리냐?"고 절규했는데요, 유가족의 아픔에 대한 전국민적인 동조가 판결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사형수들의 범죄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의 주장에 일견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어집니다. 여자아이 4명을 유괴, 살해한 뒤 유골의 일부를 가족에게 소포로 보내는 엽기 범죄자,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가족을 살해한 패륜아, 이혼한 아내의 가족을 살해한 중년 남성...
특히, 지난 6월 사형이 집행된 여아 유괴살해범 미야자키 쓰토무는 어린 소녀들을 잔혹하게 살해, 인육을 먹고 범행증명서를 언론에 보내 1980년대말 일본을 경악에 빠트린 극악의 범죄자임에도 "교수형은 잔혹하다.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야자기 쓰토무(宮崎勤)의 방. 당시 26세였던 그의 방에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잡지 등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오타쿠'와 '은둔형 외톨이'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지요.
하지만, 이같은 사형 찬성론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형제도가 유달리 '잔인'한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국제적으로 일본의 사형제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2006년 크리스마스 아침 4명의 사형수가 교수형을 당하면서부터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상징성에 큰 무게를 두는 서구 사회의 시각에서는 놀라울 법도 합니다.
문제는 죄수들에게 사형 집행 1시간을 남기고 통보했다는 점입니다. 수형자에게 "당신의 인생은 앞으로 한시간 남았는데, 그 동안 감방을 정리하고 유언장을 쓰라"고 명령했다는 것이죠. 더구나 사형수의 가족과 변호인 등에게도 전혀 사전통보가 되지 않아, 가족들은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사후통첩만 받게 됩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집행일과 방법에서부터 사형수의 최후 식사 메뉴까지 당사자와 가족, 보도진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형을 집행할 때에도 가족과 피해자 유족의 입회를 허용하고 있고요.
교도관 출신인 토시오 사카모토씨가 2003년 펴낸 책 '사형집행과정(How the death penalty is carried out)' 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은 일본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아침, 사전통보 없이 교도관이 방문해 '사무실'로 동행할 것을 명한다.
사형수는 승려나 신부가 기다리는 방으로 인도된다. 이때부터 자신이 곧 사형당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유언장을 쓸 짧은 시간이 허락된다.
유언장을 작성한 뒤, 사형수는 눈을 가리고 수갑으로 몸이 묶인다. 몇 분 뒤 곧바로 사형이 집행된다.
눈을 가리고 수갑이 채워진 사형수에게 교도관들이 목 주변에 로프를 씌운다. 트랩도어 위에 서게 한 다음, 세 명의 교도관(한명에게만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이 트랩도어를 여는 버튼을 누른다.
트랩도어가 열리고 사형수는 교수형을 당한다.
교도관들은 사망이 확정되도록 5분간 기다린 뒤 시신을 내린다.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고 관에 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헌법재판소에 사형제 위헌 심판이 제청되었습니다. 지난해 전남 보성에서 남녀 대학생 커플 4명을 살해한 70대 어부 사건을 기억하시지요?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피고인이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판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한번 일어날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사형 대신 사면이나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종신형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반면, 부녀자 20여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산 채로 사람을 묻어 죽인 막가파, 인육을 먹은 영웅파, 혜진 예슬양 살해범 정성현 등의 사형이 미집행되고 있는데 대한 반발도 있습니다.
법무부가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주광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1998년 이후 10년간 살인범죄가 매년 평균 193건씩 32%가량 증가했다고 합니다. 주광덕 의원은 "사형수들은 일반 수감자와 동일한 처우를 받고 있으며 이들에게 소요되는 국가 예산이 1인당 연간 약 160만원에 이른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사형폐지론자들 역시 주장의 근거로 "유럽 등 사형제 폐지국에서는 폐지 이전보다 흉악 범죄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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