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많은 곳에서 근무할 때는 손톱에 항상 봉숭아 물을 들였다. 나이가 들면서 손톱 끝이 약해져서 손톱을 보호하려고 물을 들였다. 색깔 매니큐어보다는 봉숭아 물이 좋았다. 봉숭아 가루를 물에 개어 물을 들이고 투명 매니큐어를 바르면 내 손이 밝아져서 마음까지 환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봉숭아를 키워서 진짜 봉숭아 꽃잎과 초록잎을 넣고, 백반가루를 섞어서 만든 봉숭아로 여름마다 물을 들이곤 했다. 손톱 끝에 빻은 봉숭아를 얹고 비닐로 싸서 실로 칭칭 묶고 잠이 들면, 손가락에서 붕숭아가 빠져나와 이불에 묻기도 했고, 손가락까지 심하게 물이 들어서 손빨래를 열심히 하기도 했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아무리 바빠도 화단을 가꾸었다. 우물가의 주황색 난초와 하얀 함박꽃, 장독대 주변에 색색의 백일홍과 담장 앞을 장식하던 봉숭아가 떠오른다. 자주색과 빨간색, 흰색 등 딱히 손톱에 물을 들이자는 목적이 아니라 꽃이 좋아서 심어 놓은 듯 여러 가지 색이 예쁘게 피어나곤 했다. 긴 고랑을 채우던 작약꽃밭도 있었다. 그러느라고 엄마 손은 늘 거칠었다. 엄마의 화단에는 지금 수국이 지고, 상사화가 피고 있다.
농부가 되면서 봉숭아 물을 들이지 못했다. 손톱에 신경 쓸 여력도 없었고, 금방 닳아서 손톱 끝이 온전치 못했다. 부러지고 갈라졌다. 새 장갑을 끼고 일을 시작해도 금방 구멍이 생기곤 했다. 특히, 오른손 장갑은 손가락 끝이 빨리 닳는다. 지면과 접촉하는 부분부터 뚫려서 손톱까지 닳게 한다. 풀들이 씨앗을 퍼트리기 전, 조금이라도 더 억새지기 전에 뽑아야 해서 풀이 보이면 마음이 바빠진다.
하우스 주변에 풀들이 날씨 탓인지 추분이 내일모레인데도 계속 올라와서 틈나는 대로 뽑아주고 있다. 제초제를 뿌리면 노랗게 변하는 모습이 싫어서 직접 손으로 뽑다 보니 그 일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금방 뽑아도 며칠새에 또 올라오고, 손봐야 할 곳도 군데군데 많아서 늘 역부족이었다. 뜯으면 다시 올라오기 때문에 완전히 뽑아내야 할 것 같아 땅바닥에 바짝 손을 대고 뽑으려다 보니, 손톱의 손상이 크다.
손톱엔 흙이 들어가고, 손가락 끝이 갈라지고 찢어졌다. 원래도 예쁜 손은 아니었지만, 점점 더 볼상사나워 지고 있다. 여름을 견뎌낸 농부의 훈장처럼 내 손끝엔 여름이 지나간 흔적이 거칠게 새겨져 있다.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에서 심하게 아프고 있다. 신경성이라는 편두통이 며칠째 지속되고 있다.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다. 더위를 먹었는지 몸살까지 겹쳐 며칠 힘들게 보내고 있다.
집 앞 상가에 자그마한 네일숍이 생겼다. 마트에 가려면 네일숍을 지나야 한다. 언뜻 안을 보게 되는데 항상 손님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도 지나가다 많이 보았다. 그때마다 내 손톱을 만지게 된다. 나도 들어가서 손톱을 맡겨 볼까 하다가도 '내 손을 보면 기절하겠다'라는 생각에 미친다.
나도 젊었을 때는 손톱 속살도 잘라내고, 쓱쓱 밀어서 모양을 만들기도 했더랬다. 손톱을 뾰족하고 길게 기르고 있으면, 엄마께 타박을 듣기도 했다. 뭉툭해져서 애처로운 내 손톱을 보며 슬퍼졌다. 봉숭아 물이라도 들여야 내 마음도 손톱도 기운을 차릴 것 같다.
첫댓글 삶의 흔적!
모두가 만족스럽고 완벽할 수 없음을...
아쉬움이 크게 남네요.
삶이라는 것이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딸내미 아파트에 봉숭아가 많이 피었던데 차마 꽃잎을 딸 수가 없었어요 혼날까봐서요
또 손녀가 보는데서 뚝뚝 딸 수가 없어서요
이럴땐 시골에 살고파요
손녀랑 꽃물 들이는 거 해보고 싶은데
작년에 이생진 시인님과 함께 찻집에서 봉숭아 물들였어요
모두 손을 내밀고 얼마나 크게 함박웃음을 웃었던지
벌써 추억이 되었네요
사랑스러운 손녀와 함께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이는 선생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마음만 먹고 저도 아직 실행을 못했습니다.
나중에라도 봉숭아 물들이는 모습 사진으로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