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에 축성(방사) 하는 의미
십자고상이나 성모상, 묵주 등과 같은 성물에 사제가 십자가를 긋는 행위를 우리는 축복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이를 일컬어 방사(放赦)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이는 ‘은사(恩赦)를 베푼다’는 뜻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축복 예식을 통해 그러한 물건들을 일반 세속의 것들과 구별하여 성물이라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또 특별히 그러한 성물들을 통해 언제나 어디에서나 하느님의 도움을 받고 나아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항구하게 지니는데 교회의 전통은 이러한 축복을 받은 성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던가, 집에 잘 두고 기도할 때 특별한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왔습니다. 물론 반드시 축복받은 성물을 가지고 기도해야만 많은 은총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은총이 덜하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곧 사제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묵주를 가지고 묵주의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의 효력이 없어진다거나 감소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축복받은 성물이 갖는 의미는 그것을 가지고 신앙과 봉헌의 정신으로 기도를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마음과 자세에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성물이 그 자체로 어떤 효험이 있다는 등의 미신적 행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축복 예식은 준성사의 일종입니다.
성사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셨고 성사 그 자체로서 하느님의 은총이 표현된다면 하면 이러한 준성사는 그 자체로서 어떠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축복받은 십자가나 성패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할 때 그 성물 자체가 나에게 은총을 베풀고 또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미신적 행위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와 달리 축복받은 성물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나에게 내리시도록 기원하고 악마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면 그것은 결코 미신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축복 예식과 같은 준성사는 우리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또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도록 자극하여 애덕과 봉사의 정신을 갖도록 해줄 것이며,
더 직접적으로는 성사생활과 기도생활을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렇듯이 준성사의 의미와 내용을 잘 이해하면 그러한 예식이 단순히 형식적인 것으로만 생각되지는 않겠지요. 신앙심을 증가시켜주는 준성사라고 생각하시고, 기회되는 대로 선물받으신 성물들을 축복받아 사용하시도록 하세요.
【이 동 익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