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절요> 온조왕24년, AD6년 기사 해석해 봅시다.
가을 7월, 백제왕이 웅천책을 세웠다.
*(백제)라는 글자는 편집하면서, 삽입된 글자이죠.
마한왕이 사신을 보내어 책망하길 "왕이 처음에 강을 건너왔을 때, 발을 디딜 곳이 없었다.
*'무소용족'에서 용은 동사로서, 담다, 놓다, 수용하다. 그런 뜻이군.
내가 동북 100리의 땅을 떼어서 주었고,
왕을 대접함이 두텁지 않았다고 할수 없다.
*<백제본기>에서는 '비지'가 '안지'로 변경되서 올라갔네요.
위의 글자가 더 오래된 걸로 보입니다.
마땅히 이를 보답할 생각을 해야 함에도, 이제 나라가 완비되고 백성들이 모이자, 나는 적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성과 못을 크게 만들며, 우리의 봉강을 침범하였다. 이것이 의리라 할수 있겠는가?"
왕은 부끄러워하며, 마침내 (웅천)책을 부수었다.
*봉강 = 봉토의 경계.
*'위아막여적'은 기존 해석이 더 어울리죠.
"나를 대적할 적은 없다고 말하면서,"
<백제본기>에서는 '아'가 뒤로 가면서, '위막여아적' 로 바뀌었죠.
해석은 별 차이 없죠.
*신라 멸망 935년 ~ 1476년 사이 약540년 중간에 188년 개로왕 마한 정벌 매몰 작업이 실행되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