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후생(利用厚生)은 경세치용(經世致用) 학파와의 차이를 나타내면서 실학이 추구하는 실용 정신과 부국안민(富國安民)을 뒷받침해주는 논리이기도 하다. 간혹 이용후생이 천민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쓰이는 일이 있기에 이용후생을 떠받치는 미적 기반을 잘 살펴보려 한다.
이용후생은 사물과 도구를 잘 활용하여 인간의 삶을 도탑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잘 들여다보아야 이용후생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홍범우익서(洪範羽翼序)」에는 이용후생과 사물과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에서 연암 박지원은 글방 선생의 입을 빌려 전통적인 오행상생설(五行相生說)을 비판하고, 오행을 이용후생과 연결하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연암은 물[水] 불[火] 나무[木] 쇠[金] 흙[土] 등 오행(五行)은 도구를 만들거나 농사를 짓거나 백성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데 소용되는 물질로서 각각의 성질을 잘 활용하여 백성과 만물이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이 있어도 쓸 줄 모른다면 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불이 있어도 쓸 줄 모른다면 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먼저는 사물을 잘 이용하는 ‘이용(利用)’을 한 후에야 ‘후생(厚生)’할 수 있고, ‘후생(厚生)’한 후에야 ‘정덕(正德)’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물을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그 성질을 잘 활용해 인간과 사회를 위해 쓸모있게 만들라는 주문이다. 그렇지만 오행의 이용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어느 것이고 물질이 아닌 것이 없지만, 유독 나무, 불, 흙, 쇠, 물만을 오행이라고 말한 것은 이 다섯 가지로 만물을 포괄하면서 그것들의 덕행을 칭송한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 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성(城)을 침수시키는 수공(水攻)에 남용하였고, 불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화공(火攻) 작전에 남용하였다. 쇠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뇌물을 주는 데에 남용하였으고, 나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궁실을 짓는 데에 남용하였으며, 흙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논밭을 만드는 데에 남용하였다. 이로부터 세상에서는 홍범구주의 학설이 단절되었다. 「홍범우익서(洪範羽翼序)」
사물을 쓸모 있게 활용하되 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인용문의 ‘남용’은 원문이 ‘음(淫)’인데 ‘정도를 넘어서다’,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사물을 활용하되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데 쓰거나 생명을 해치는 데 활용하는 것은 정도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나무를 사용해 집을 짓되 지나치게 화려하고 높게 쓰거나 논밭을 일구되 끊임없이 땅을 넓히는 행위는 정도를 넘어선 행위이다. 사물을 잘 활용한다는 것은 사물의 본래 성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용후생이 잘 드러난 글 한 편을 더 보자. 연암은 조선이 가난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목축의 요령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말을 올바로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말을 다루는 방법이 틀렸다 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무릇 동물의 성질도 사람과 같아서 피로하면 쉬고 싶고, 답답하면 시원하게 뻗치고 싶으며 구부리면 펴고 싶고, 가려우면 긁고 싶다. 말이 비록 사람에게 먹이는 얻어먹기는 하지만 때때로 제 스스로 유쾌하게 지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므로 때때로 고삐나 굴레를 풀어서 물이 있는 연못 사이에 내달리게 하여 울적하거나 근심스러운 기분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동물의 성질에 순응하고 기분에 맞게 하는 방법이다. 『열하일기』 8월 14일.
말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도록 돕는 가축이다. 그런데 연암은 동물과 인간의 감정을 동등하게 둔다. 사람들은 말을 다룰 때 말이야 죽든 말든 많이 실으려고만 욕심을 내고, 오로지 바짝 옭아맨 것이 더 단단하지 못할까 당기고 압박하는 고통을 준다. 그렇지만 연암은 말도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갖는 동물로 보고, 말의 기분과 느낌, 생리와 습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용후생이 단순히 인간의 입장에서 사물을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이용후생(利用厚生)에서 이용(利用)한다는 것은 사물의 성질을 함부로 남용하지 않고 선용(善用)하는 것이다. 나아가 생명을 가진 존재를 이용할 때는 그 대상을 도구적으로 보지 않고 먼저 그 본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대단히 생태적이라 할 수 있다. 이용후생은 경제성을 위한 개념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되며, 21세기 이용후생의 가치는 이와 같은 생태적 면모에서 찾아야 한다. 이용(利用)을 하되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하고, 기술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공생을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이용후생의 정신이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경험하면서 인류는 인간과 동물, 환경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이용후생의 정신이 오늘날의 시급한 기후 환경 위기를 헤쳐가는데 좋은 안내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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