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20:24 ,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찬송가 384장(나의 갈 길 다가도록)
솔로몬 왕은 이르기를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언 20:24)고 말하였습니다. 즉 사람은 자기의 마음으로 자기의 길, 자기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지만 그 길을 자기 뜻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길은 미로와 같습니다. 평온하고 평탄한 길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나 한치 앞도 모르는 미로에 접어들어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걸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만 보아도 그러합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그의 나이 75세까지 메소보다미아 갈대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 우르에서 잘 살아왔는데, 그의 늘그막의 나이인 75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 바도 모른 채 정처없이 그 도시를 떠나 나그네 길에 오릅니다. 그리고는 가나안 땅을 후일의 그의 후손들이 차지할 땅이라고 하는 약속만 받은 채 그 본인은 평생 175세까지 백년을 정처없이 천막 생활을 하면서 이리 저리 떠도는 나그네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삭도 180세를 사는 동안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떠돌았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삭도 계속 떠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아들 야곱은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 곁에 있을 때만 제외하고 형 에서와의 갈등 후에 외갓집 밧단아람으로 올라간 후부터 야곱은 한 치 앞도 잘 내다 볼 수 없는 격랑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황혼의 나이인 130세가 되엇을 때에도 먼 땅 애굽으로 건너가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요셉을 거기서 보고 17년을 그곳에서 더 살다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야곱의 열한째 아들 요셉 역시 나이 17세까지는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으며 평안히 지냈지만 형들의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가서 남의 집 종살이하고 감옥에 들어가서 고생하다가 나중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 왕도 본래 아버지 자식 중 여덟째 막내로서 평범하게 아버지와 형들이 맡긴 어린 양이나 치면서 들판에서 수금이나 타면서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동네 베들레헴에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 아버지 이새에게 모든 아들들을 불러오라고 하였는데, 막내 다윗은 너무 어리니까 그 엄중한 선지자 앞에 감히 데리고 가지 않았더니 선지자가 양을 치던 막내까지 데려오라고 하여 들판에서 급하게 그 앞에 나아갑니다. 그러자 선지자가 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장차 사울 왕을 이어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다윗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고 더욱 영적으로 예민하고 깊은 영성을 가진 소년으로 자라나더니 양을 치던 중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당시 그 전쟁터인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적장 골리앗에 의하여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은 큰 곤경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새가 전쟁터에 간 세 명의 아들들을 위하여 다윗을 그곳에 심부름차 보냈는데, 다윗은 그곳에서 아낙 자손 천하 장사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말을 듣고 거룩한 의분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서 골리앗과 맞서 싸워 그를 이기겠다고 나서게 되었고 하나님을 힘입어서 골리앗의 이마를 물맷돌로 쳐서 꿰뚫어버리고 전세를 완전히 뒤집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 승리 뒤에 곧장 사울 왕이 다윗을 견제하며 그를 죽이려고 들므로 다윗은 그 때부터 약 20년 동안을 사울 왕의 칼을 피하여 도망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매일 다윗은 오늘은 굴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내일은 수풀 속에 숨어 자고 모레는 광야의 무너진 요새의 한쪽 방에서 숨어 자고 그래도 안 되면 동편 모압 땅에 망명하여 한참을 지내고 또 다시 서쪽으로 가서 블레셋의 가드 성의 군주에게 망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린 소년 다윗이 들판에서 손에 지팡이와 수금을 들고 양들을 따를 때에 자기 삶이 그렇게 얽히고 설키고 매일 그렇게 긴박한 도망 길을 계속 달려가야 할 줄을 어찌 조금인들 예상했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도 예루살렘의 북쪽 아나돗 성읍 출신인데 본래 제사장 가문에 속한 아론의 후손이었으나 평온하게 제사장으로 자기의 삶을 준비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더니 하나님의 탄식과 분노가 느껴지고 자기 동족의 죄악들이 보이고 자기 민족의 앞길에 곧 닥칠 무서운 재앙과 심판 곧 바벨론 군대의 침공과 멸망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지자의 사명을 맡기고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르는 말씀을 전하라는 선지자의 사명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않은 그러한 부르심에 예레미야는 많이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예레미야는 그것으로 시작하여 평생에 자기 동족 유다가 멸망하는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엄중한 사역을 온갖 고난을 받으면서 계속하였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 중에 전하여도 그 동족의 마음은 왕으로부터 신하들과 백성들 모두가 일체 들은 체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친구들과 그의 고향 사람들조차 그를 죽이려 들었으니 그는 참으로 외롭고 고단한 사역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10장 23절에서 고백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젊은 시절 제사장의 길로 가서 평안히 결혼도 하고 성전에서 순번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애초의 길가는 달리 그는 결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고 환영받지 못한 선지자의 길을 살다가 이국 땅 애굽에서 순교로써 생애를 마쳤습니다.
이렇듯 모든 인생의 길이 다 우리 자신의 예상과 다릅니다. 우리 미래를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 길은 한결같이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 지 모르는 미로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 길을 어떻게 해야 올바르고 복스러울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인 잠언 3:5,6 말씀에 이르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잠언 16:9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또 잠언 19:2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길은 우리의 계획과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많은 생각을 하고 정교하게 우리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렇게 흘러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안에 아무리 구름같이 피어나고 사라지는 수많은 생각과 계획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대단한 형체를 이룬 왕궁과 같은 규모일지라도 어디까지나 구름 왕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러 저러한 구체적인 방법을 가지고 이러 이러한 일을 해보겠다고 아무리 많은 계획을 세울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전혀 의미가 없는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의 모든 앞길을 기도로써 소상히 아뢰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묻고 행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난제들을 만납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장애물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인간의 힘과 지혜를 가지고 헤쳐나갈 방도를 찾지만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 어떻게 할 방법을 모르고 헤맬 때에 오직 길을 아시고 문제를 해결한 방법도 역시 만사를 그의 자유로운 뜻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시편 37:5,6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홍해 앞에서 막혀 있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갈 수도 없고 좌우로 갈 수도 없고 뒤로 없는 처지에 떨어졌을 때에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홍해를 둘로 가르고 바다 바닥을 길로 만들어 그들로 무사히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를 위하여 이와 같은 놀라운 새 일을 행하십니다.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얼마든지 없던 길로 새로 만드시는 분이요 막힌 길도 뚫어주시고 구부러진 길도 곧게 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마음에 깊게 아로새겨야 하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참으로 우리 자신은 자기의 길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알고 계시고 우리의 삶의 미래를 정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에게 우리 인생 길을 맡기며 그의 인도하심을 간절하게 겸손히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길이 험하고 미로를 만나 어디로 갈 지 모를 때에도 모든 길을 다 알고 계시고 없는 길을 열어놓으시는 하나님께 길을 열어주시도록, 바른 길을 걷도록 우리 걸음을 주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갈림길에서 길을 정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주의 백성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의의 길, 생명의 길,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길이 어디이며 죄의 길, 저주의 길, 멸망의 길이 어디인지 알려줍니다. 그래서 잠언 16:20 말씀에서 이르기를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고 지혜자는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시편 119:105 말씀에 이르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늘 주의를 기울여서 우리가 택할 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길인지 여부를 잘 살펴보고 걸어갈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 발걸음을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