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거슬리는 것들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어떤 주제를 생각하고 글을 쓰기위해 사전에서 ‘거슬리다’를 찾아보니 그 뜻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뭇 다르게 나와 있다. ‘순순히 받아 들여 지지 않아 언짢고 불쾌함을 느낀다’로 풀이가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 뜻을 나대로 다소 순화하여 ‘안타깝고 안 좋은 생각이 든다’라는 정도로 해석하여 사용하려고 한다.
생각같아서는 보다 적확한 어휘를 찾으려 했으나 그러질 못해서이다. 어휘의 수는 수만 수십만 가지나 된다. 그러나 적절한 느낌과 감정에 합당한 것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늘 부족함과 미흡함을 느끼는데 특히, 그것을 제목으로 달 때는 축약의 의미가 있어서 어려움을 느낀다. 감정 상태나, 느낌을 전하기가 그만큼 어려움이 있다.
내가 보기에 요 근자 퍽 눈에 거슬리는 걸 듣게 된다. 몇 년 전 어느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서 관객을 향해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했는데, 여간 생뚱맞는 것이 아니었다. 참 별 꼴불견의 인사말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다. 급속히 퍼져서 순식간에 돌림병처럼 유행하더니 요즘에는 한층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또 다른 말로 진화하여 떠돌고 있다.
다름아닌 “대박 나세요!”이다. 그 즉물적인 말이 여간 뜬금이 없고 천박한 것이 아닌다. 무슨 요행수로 큰돈을 벌라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며 바람직 한가. 복권당첨이 되거나 아파트와 땅을 투기하여 요행을 바리지 않고서는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런데 '대박 나라' '보자되라' 고 하니 웬 뚱딴지 같은 말인가 싶어 천박하게만 느껴진다.
아무리 돈이 좋고, 돈이 있어야만 행세를 하는 세상이라지만 이런 말은 여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같은 말이라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하거나, “소원성취 하세요”라고 하면 어디 덧나는가. 아무튼 그 말은 내가 돈버는 일에는 무신경하게, 눈감고 귀 막고 벽창호가 되어 살아서 인지 모르지만 매우 낯설고 거북스럽다. 혹자는 이런 나를 두고 혹자는 급변하는 변하지 않고 어찌 살아가느냐며 나무랄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거부감이 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은 귀에 거슬리는 말에 해당한다. 한데, 얼마 전에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되었다. 그것은 마스크 판매로 인해 줄서기가 정착되어 가는 판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어서 실망되고 분개스러운 일이었다.
등기우편을 보낼 게 있어 우체국 대행 업무를 보는 창구에 갔을 때다. 갑자기 담당자가 나를 가로막았다. 먼저 들어온 손님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저 편을 보고는,
“어서 오세요”
하고 먼발치의 사람을 부르는게 아닌가. 쳐다보니 그 손님은 다른 창구에서 용무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저분은 지금 다른 용무를 보고 있지 않아요?”
하니,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문을 먼저 들어와 소포를 보낸다고 미리서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억지와 궤변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내가 계속 부당한 처사를 따지니 창구에서 일을 보던 손님이 말했다.
“난 조금 늦어지니 먼저 처리해 드리세요.”
하는 것이다. 그는 그 말을 듣고서야 나의 일을 봐주었다. 기분이 퍽 기분이 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거야 말로 꼴불견이 아닌가 말이다.
종종 대중버스를 타면 자리를 잡고 가던 사람이 서있는 옆사람을 특정하여 내리면서 자리를 인계하는 광경을 보는데, 그짓과 뭐가 다른가.
그날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용무를 마치고 나서 당담자를 눈물이 쑥 빠지도록 나무랐다. 당장 나도 기분이 나쁘지만 그대로 두면 다른 사람에게도 계속 그런 행동을 반복 할것 같아서였다. 나중에 그가 실토한 말이다. 담당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기가 창구업무를 대신 봐주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아서 용서가 되지 않았다.
거슬리는 일을 목격하고 겪은 건 또 있다. 어제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해괴망측한 문자를 전송받았다. 내용인즉 자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非對面)의 시국이지만 못오더라도 축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참고하라며 계좌번호를 적어 보냈다.
이런 일이 더러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가 막상 직접 받고보니 여간 생뚱맞지 않았다. 혹여 타지역에서 치르는 결혼이라면 모르겠으나 좁은 지역에서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어련히 친분 정도에 따라서 직접 가지 못하면 대리인을 보내서라도 알아서 할 것이 아닌가.
자고로 부줏돈은 예를 갖추어 정성껏 봉투에 넣어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이 축의를 표하는 법도이다. 한데, 통장으로 입금을 하라니, 무슨 빚 독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양새가 이래서야 되는가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와 같은 그런 연장선에서 보이는 천박함의 표출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것이 일상화되고 만성이 되어 버리면 어쩌나 싶어진다. 어쩌다 한번씩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 아파트를 사고 땅을 사서 돈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것도 듣기 불편한데, 앞으로는 일상으로 그런 자랑을 듣게 되루 것이 아닌가. 당최, 이런 사회현상이 잘 되어가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만 한다. (2020)
첫댓글 가장 기본적인 예의나 질서를 지키는 것이 더불어 사는 것의 기본일진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보니 생기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황금만능주의가 되고 기본적인 상식이 무너지다보니 별별일이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한다해도 국민의식속의 천박함을 벗어던지지 못하면 좋은 나라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를 티브이 에서도, 일상에서도 흔하게 하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마다 느낌이 어떨까 싶네요...결혼 부좃돈도 문화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 하는 건 좀 천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결혼 부조를 하라고 통장 번호를 적어공지하는 것도 외지에서 치르기 때문에 당연히 못올줄 알고 알리는 것이라면 또 모르는데, 좁은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어련히 알아서들 하지 않을까봐 적시해 놓은건 터놓고 돈을 받겠다는 적극적 의사표시로 보여 마냥 좋게는 보이지 않더군요.
부자가 되고 대박이 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겠으나 부자가 되라느니 댜박 나라는 둥의 표현은 다소 경망스러워 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조롱으로 들릴 수도 있겠어요 눈과 귀에 거슬리는 것이 비일비재한 까닭은 거스르는 짓을 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탓인지 요즘엔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적어넣는 일이 관행화한 느낌입니다
그 나름으로 장점이 있지만 좀 거슬리기는 하더니 면역이 되었는지 무신경해졌네요 법질서를 지키지 않고 공중도덕을 무시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을 대할 때면 성악설이 떠오르곤 합니다 물론 제 자신도 예외가 아니지요
세상이 돈에 의해 좌우되다보니 거의 모두가 돈돈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옛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아도 채통이라는 걸 중히 여겼는데, 현대인들은
경망스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시대적 현상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로 이 글도 한편 남기고자 해서 올렸습니다.
요즘 저도 계좌번호 찍힌 청첩장 간간히 받습니다.
추세라고 지인이 말하더군요.
그것이 추세라고는 해도 모양새가 좋지 않더군요. 마치 부줏돈 받기위해 알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