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처음 38선이 만들어 질 때는 미군과 소련군이 근무를 했고 미군이 철수 한 후 국군이 담당하는데 당시의 근무병력은 많지 않았지만 동란직전 상호 총격전과 포격전이 그리고 특히 강원도 인제 같은 경우는 국군이 38이북인 인제면(지금의 인제군청소재지인 인제읍)으로 병력이 들어간 적도 있었다.
동란전 인제군의 상당 부분은 38이북이었고 기린면이나 상남면 같은 경우는 이남 이었으며 지금이야 같은 인제군이지만 과거엔 기린면은 다른 고을이었다.
기린 그래서 이게 무슨 동물이야기 ? 아닌가 하는데 그 기린이 맞고 아마 상상속에 있던 동물이 아프리카에 있어 기린이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전주에 가면 기린봉이 있고 기린초등학교가 있다.
물론 기린면 소재지에 기린초 . 중. 고가 있다.
지난 이야기인데 과거 학교동기 한명이 기린면 현 4리라고 전화로 불러준 걸 현사리라고 받아적은 적이 있다.
현리라는 지명은 여러곳이 있는데 아마 가평의 현리가 유명하고 인제 현리가 유명한데 과거 이곳에서 대규모 병력들이 고립되어 군단이 지리멸렬 분산되고 해체된 사건이 있다.
지금이야 면소재지가 반듯하고 말끔하지만 70년 전만해도 고립되기 쉬운 산촌이었다 .
현재 3군단 사령부도 있고 인근에 고속도로도 통과하며 서울과 인근 양양과 교통이 좋으며 관광지가 되었다.
같은 인제라고 하더라도 휴전선 근방의 서화면 같은 경우완 많이 다르고 과거엔 다른 고을이었고 정체성도 달랐다.
그러함에도 이곳의 풍경은 군부대가 빠지면 설명이 안되며 과거에 부터 군인들의 영향력이 크며 38선이 기린면 위를 통과했었다.
기린면 북리 설악산 한계령 못미쳐에 도로를 타고 내려 오면 필레약수터를 지나 소설에도 나온 은비령을 지나 홍천방향으로 남진하면 휘어진 굴곡이 있고 이곳에 38선 표지석이 있다.
좁은 공간이라 차가 서기도 힘들며 응달이라 춥고 다른 표지석들이 큰 길가에 서서 눈에 들어 온다면 이곳의 것은 '어 이곳이 38선이내!'하는 느낌이 있고 조금 오르면 도로 표지판이 있다.
이날 실외온도가 낮인데 영하 7도 정도였다. 바람이 불지 않아 체감온도는 낮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 바로 밑에 부대가 있는 걸 보면 동란 전에는 검문소나 초소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지금도 버스가 지나 다니고 과거 진부령에서 용대리를 거쳐 인제읍 소재지로 가다 차가 밀리면 기사는 양해를 구하여 이쪽 도로를 타고 홍천으로 가기도 하고 서울로 떠밀리듯 도착하니 새벽이 되었던 적도 있고 평상시엔 차량이 적지만 여름엔 정체가 되던 곳이었다.
38도선을 알리는 표지석이 도로에 표시되어 있지만 이곳 기린면 북리 비석은 알려지지 않은 곳에 있어 그 의미는 더 한 것 같다.
주변에 큰 동네도 없고 현리까지는 20여리 위로는 설악산 ...
사람들은 이곳을 넘어 다니느라 목숨을 걸었을 것이고 또 누구는 바로 돌아 갈 것으로 믿으며 선을 넘었을 것이다.
도로바닦에 38이란 글씨가 빨간색으로 써있는데 아마 이 선이 실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의 휴전선도 세월이 지나 차를 타거나 걸어서 아무 방해나 통제 없이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