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정(黃鶴亭)8경 (2017. 2. 14)
半山 韓相哲
1. 백악청운(白岳晴雲); 구름이 맑게 갠 백악(북악)
2. 자각추월(紫閣秋月); 자하문(창의문) 누각 위의 가을 달
3. 모암석조(帽巖夕照); 인왕산 모자바위에 비친 석양 빛
4. 방산조휘(榜山朝暉); 인왕산 바위에 비추는 아침 햇살
5. 사단노송(社壇老松); 사직단 주위의 늙은 소나무
6. 어구수양(御溝垂楊); 경복궁 배수로 담장의 수양버들
7. 금교수성(禁橋水聲); 금천교 아래 흐르는 물소리
8. 운대풍광(雲臺楓光); 필운대(인왕산)의 고운 단풍 빛깔
* 戊辰 菊月 錦巖 孫完根 題 (무진 국월 금암 손완근 제, 1928년 9월). 황학정 주변의 승경 여덟 곳이다. 경내 바위에 새겨졌다.
* 황학정 개요; 인왕산 밑에 자리 잡았던 필운동(弼雲洞) 등과정(登科亭)은 도성(都城) 서쪽 5개의 사정(射亭)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무사(武士)들의 궁술(弓術) 연습장으로 유명했으나,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총(銃)에 밀려 활이 무용화되면서 부터 사라져, 그 표지석만 남아 지난 역사를 더듬게 만든다. 이 정자는 광무 2년(1898) 고종이 경희궁 회상전(會祥殿) 북쪽에 세웠든 활쏘기용 사장(射場)이었으나, 1922년 조선총독부가 경성중학교(옛 서울중고등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궁내 건물을 일반에 불하할 때, 이를 받아 사직공원 북쪽 현 위치로 옮겨 와, 국궁(國弓)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출처; 수당(水堂) 한상복(韓相復) 한수당자연환경연구원 원장, 2015. 10. 9 발표, 일부 수정). 수당은 필자와 같은 한국고서연구회, (사) 서울역사포럼 회원이다.
* 황학정이란 이름은 중국의 3대 누각인 ‘황학루’(黃鶴樓)에서 따왔다. 중국 최고의 명시인 당 최호(崔顥 704~754)의 ‘등황학루’(登黃鶴樓) 칠언율시를 소개한다. 출처 《고문진보》 전집. 한국에서는 시조창으로 많이 부른다.
昔人已乘黃鶴去 (석인이승황학거); 옛 사람은 이미 황학 타고 떠나고
此地空餘黃鶴樓 (차지공여황학루); 이곳에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일거불부반); 한번 간 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白雲天載空悠悠 (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만 천년을 한가로이 떠있네
晴川歷歷漢陽樹 (청천역력한양수); 비 개인 냇가엔 한양의 나무 뚜렷한데
芳草萋萋鸚鵡洲 (방초처처앵무주); 싱그러운 풀꽃은 앵무섬에 우거지다
日暮鄕關何處是 (일모향관하처시); 해질녘 돌아갈 내 고향은 어디인가
煙波江上使人愁 (연파강상사인수); 강 위에 비낀 안개 시름만 더하는 것을 (번역 한상철)
* 黃鶴樓(황학루): 고대의 신선인 왕자안(王子安)이 황학을 타고 이곳을 지나갔다 하여, 또는 삼국시대 촉(蜀)의 비위(費褘)가 신선이 되어 황학을 몰아 이곳에 쉬어갔다 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한다.
* 漢陽(한양): 호북성 한양(漢陽)현
* 鸚鵡洲(앵무주): 호북성 무창현 서남쪽에 있는 섬.
* 이 시는 2011년10 월 중국 전 중학생이 뽑은 당시 중, 제 4위를 차지한 명시다.(출처 2012.3.12 인민일보 중국망)
* 바람에 날린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고종 임금의 모습이 마치 누런 학이 춤추는 거와 같다.
* 필자는 20대(60년 말~70년 초)에 황학정에 잠시 적을 둔 적이 있다. 경남 김해 가락정(駕洛亭)에서부터 시작해 사원(射員)이 되었으나, 지방으로 자주 발령 받는 바람에, 이곳 붙박이로 활동하지는 못했다.
* 필자는 위 8경을 각 2경 씩 계절별로 할당해 우리나라 최초로 시조를 지었다. 같은 시어(詩語)는 한 시조 안에서는 물론, 전체를 통틀어 거듭 사용하지 않았다.
1. 백악청운(白岳晴雲)
뾰족한 세모 골패(骨牌) 하늘은 쪽색인데
쏜 화살 바람 쫓아 꿩 울음 구성지고
궁궐 뒤 새하얀 뫼에 구름 한 점 없어라
* 골패; 납작하고 네모진 작은 나뭇조각 32개에 각각 흰 뼈를 붙이고, 여러 가지 수효의 구멍을 판 노름 도구(어학사전).
2. 자각추월(紫閣秋月)
창의문(彰義門) 일곱 잡상(雜像) 보라 놀 삼킬 제에
상쾌한 저녁바람 세상 시름 쓸어가니
이끼 낀 기와지붕 위 가을 달은 둥두렷
* 창의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소재, 보물 제1881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건물이다. 서울 성곽의 4소문(四小門) 가운데 하나로, ‘옳음을 밝히는 문’이라는 뜻이다. 義는 오상(五常, 仁義禮智信) 중, 서쪽에 해당한다. 일명 ‘자하문(紫霞門)’이라 한다.
* 잡상;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놓이는 와제(瓦製) 토우(土偶)들이다. ≪조선도교사 朝鮮道敎史≫에 의하면,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神像)을 일러 잡상이라 하는데, 이는 소설 ≪서유기 西遊記≫에 나오는 인물 및 토신(土神)을 형상화하여 벌여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라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말로 ‘어처구니’의 유래이다. 맷돌 손잡이도 이렇게 부른다.
3. 모암석조(帽岩夕照)
기암은 아기자기 가인(佳人)을 품에 안듯
인왕에 신록(新綠) 들어 산새들 지저귀자
눌러 쓴 모자바위로 가라앉는 석양아
* 감투바위로 지는 석양을 뜻한다. 이 바위는 횡학정 왼쪽에 있다.
* 조선시대 일부 풍수가는 인왕산 산세를 ‘독기 품은 지네’로 보았다.(위키 백과 참조).
4. 방산조휘(榜山朝暉)
괴석에 눈 내리자 산광(山光)은 더욱 밝고
백호(白虎)가 울어대니 방산(榜山)이 쩌렁쩌렁
따스한 아침햇살은 시린 연정(戀情) 데워줘
* 인왕산은 서울의 내사산으로 서쪽을 진호하며, 우(右) 백호(白虎)를 상징한다.
* 산광수색(山光水色); 산의 빛과, 물의 색 즉, ‘산은 높고, 물은 맑다’를 뜻한다. 조선후기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의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 초서가 유명하다. 뱀 4마리가 꿈틀거리는 것으로 평한다.
5. 사단노송(社壇老松)
토지는 살이 찌고 곡식은 풍성하라
나라를 상징하니 늙은 솔 짙푸른데
가지에 눈 가득 쌓여 세한도(歲寒圖)가 멋져요
* 종로구 사직동, 사적 제121호.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가리킨다. 두 신을 제사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社稷壇)이다.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사직은 오른쪽(서쪽)에, 종묘(宗廟)는 왼쪽(동쪽)에 두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수정). 둘 다 국가를 상징한다. 주위에 울창한 소나무가 많다.
* 세한삼우(歲寒三友); 추운 겨울철의 세 친구라는 뜻으로, 추위에 잘 견디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묶어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松竹梅).
6. 어구수양(御溝垂楊)
대궐 밖 실개천엔 봄빛이 졸졸 흘러
짝짓는 원앙 한 쌍 담장 길 호젓한가
연초록 수양버들은 머리 감고 낭창대
* 어구는 대궐에서 흘러나오는 개천을 말한다.
7. 금교수성(禁橋水聲)
녹음(綠陰)이 우거지니 송사리 반짝이지
돌다리 단단해도 두드려 건널진저
청아해 세찬 물소리 세속탐욕 씻느니
* 궁궐 정문 안에 흐르는 명당수를 금천(禁川)이라고 부르는데, 금천교는 그 위에 놓인 다리를 가리킨다. 이를 건너는 관료들은 ‘청렴한 마음을 가지고, 백성과 나라를 위해 임금에게 나아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서울지명사전)
* 이 다리를 왕래하는 고위공직자는 송사리(민초)를 천대하는 마음을 버리고, 시민의 바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다른 시조와 어휘가 겹쳐, 시조 중장과 종장 일부 수정함.(2017. 3. 30)
8. 운대풍광(雲臺楓光)
꽃 시든 풀숲에는 간간이 벌레소리
재담(才談) 푼 암벽 뒤로 백운(白雲)은 용 그리나
명당에 단풍 불 번져 붉게 물든 내 허파
* 조락과 숙살의 계절, 가을은 인생을 성찰케 한다. 이 철은 백색을 상징하고, 장기는 오행 중, 폐에 해당된다. 건조가 시작되므로 호흡기 관리에 유념해야 한다.(필자 주)
* 필운대; 조선 중기의 명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살던 곳으로 '필운'은 그의 호이다. 종로구 필운동의 배화여자고등학교 뒤뜰에 큰 암벽이 있는데, 그 왼쪽에 '필운대(弼雲臺)'라는 글자가 세로로 크게 새겨져 있다. 가운데에 시문이 음각 되어있으며, 오른쪽에는 가객 박효관(朴孝寬) 등 10명의 인명이 나열되어 있다. 2000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다. 이 암각문은 1873년 필운의 9대손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예서체로 쓴 것이라 전한다.(위키 백과 수정)
我祖舊居後裔尋(아조구거후예심); 조상님 예전 사시던 곳에 후손이 찾아오니
蒼松石壁白雲深(창송석벽백운심); 푸른 소나무와 바위벽에 흰 구름만 깊었구나
遺風不盡百年久(유풍부진백년구); 백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유풍(遺風)은 가시지 않아
父老衣冠古亦今(부로의관고역금); 부로(父老)들의 차림새는 예나 지금이나 같아라
癸酉月城李裕元(계유월성이유원) 題白沙先生弼雲臺(제백사선생필운대)
* 필운의 뜻: 1537년 3월 명나라 사신 공용경(龔用卿)이 황태자의 탄생 소식을 알리려고 한양에 들어오자, 중종이 그를 경복궁 경회루에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중종은 그 자리에서 북쪽에 솟은 백악산과, 서쪽에 솟은 인왕산을 가리키면서, 새로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손님에게 산이나 건물 이름을 새로 지어 달라는 것은 최고의 대접이다. 이에 공용경은 경복궁 오른쪽에 있는 인왕산은 ‘필운산’ 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리 지은 까닭을 ‘우필운룡(右弼雲龍)’ 이라고 설명했는데, “운룡(雲龍)은 임금의 상징이다. 인왕산이 임금을 오른쪽에서 돕고 보살핀다”라는 뜻이다.(출처 ‘조선의 중인들’에서 발췌 수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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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약력; (사) 한국한시협회 회원. (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산서회 이사. 한국고서연구회 이사.
저서; 산악시조집 《山中問答》 등 5권. 한시집 《北窓》.
첫댓글 조장빈 이사 ! 조금 전 통화한 대로, 2017. 3, 4(토) 인왕산 인문산행 자료 미리 보내니, 적의 활용하기 바랍니다. 총총
황학정 8경 좋네요~~
한 일 주일 매달려 겨우 완성했습니다. 시조 지을 때마다 고민고민하고, 식은 땀이 납니다.
잘 감상해주셔 고맙습니다.
별말씀으로요~~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씌운 서울에서 자연의 숨결을 오롯이 읊어 내셔서 백사 이항복이 북극성 에서 문자 왈 '장원급제!!!!'
하하! 우리 오영태 선생의 과찬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하긴 오성대감도 해학이 넘치는 어르신이니..ㅋㅋ 고맙습니다.
한이사님. 감사드립니다.
첫번째 인문산행지인 인왕산 일정이 더욱 깊이 있고 즐거운 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부족하나마 졸작을 올려봅니다.
인문산행 덕분에 나도 많이 배웁니다. 늘 고맙습니다.
@半山 韓相哲 무리한 요청에 미발표작을, 인문산행을 위해 선뜻 내어주시니 무어라 감사 말씀을 드려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햐...올 한국산서회의 특별사업 정말 기대가 됩니다.^^
한국산서회 다운 좋은 사업입니다. 젊은 회원의 열정이 돋보입니다. 다같이 응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