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이 어디 따로 있다던가!
솔향 남상선/수필가
오는 가을인가 싶더니 금세 지는 단풍잎이더라. 이 가을이 다하기 전에 모임 한 번 갖자고 연락이 왔다. 우리가 63년도에 중학교 입학, 65년도에 졸업했으니 60년 만에 만나는 대흥중학교 14회 동창들이다. 애들 때 헤어져서 할매 할배가 다 되어 만나는 얼굴들이니 60년 만의 이산가족 상봉이나 다를 게 뭐 있으랴!
덩달아 설레는 마음으로 금년 9월에 출간한 제 5수필집‘하늘이 내려 주신 향내 나는 보석’40권을 모임 장소 동방명주(충무로 소재)로 발송했다. 챙기는 마음인지 아니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인지 하나하나 사인하고 낙관까지 찍어 기다리는 마음까지 얹져 보냈다. 16일 출발하는 새마을호에는 낙창 성재 친구가 동승하여 외롭지 않게 해 주었다.
모임 장소 서울‘동방명주’에 도착했다. ‘우리 나이에 만나야 몇 번이나 만나겠어!’하는 심정으로 달려온 얼굴들은 이산가족 상봉이나 다름없는 표정들이었다.
세월의 위력이 위대함을 실감했다. 세월은 그 풋내 나는 이팔청춘의 얼굴들을 온 데 간 데 없이 만들어 놓았다. 머리는 서릿발이요, 얼굴에 새겨진 인생 계급장은 쭈글쭈글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한 친구는 내 손을 잡고 흔들며 하는 말이,
“야, 너 최상선 아니냐? 반갑다!”
하며 좋아하였다. 누가 보아도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나는 죽마고우(竹馬故友)의 그 표정들이다. 세월이 오래다 보니‘남상선’을 ‘최상선’이라 불러도 흠이 되지 않을 그런 친구들이다. 그래서 만나면 반갑고 술 한 잔이라도 기울이고 싶은 그런 얼굴들이다. 아니, 차 한 잔이라도 나누고 싶은 그런 심정들이었으리라.
그리하여 제주도 사는 권혁모를 비롯 경기도 희순이, 환근이, 정숙이, 인천 거주 하는 두영이도 단걸음에 달려왔다. 서울 있는 박보영은 몸이 불편한 데도 그저 보고픈 얼굴이 그리워 몸과 마음을 같이 했다. 아니, 중국 광저우에 있는 민주평통 중국광저우 회장 완택 친구도 열 일 제쳐놓고 뛰어왔다. 제주 서울 인천 대전 충남 경기 할 것 없이 전국에 있는 친구들이 삼삼오오(三三五五) 짝을 지어 몰려왔다.
형제자매 같은 그 이름 두고두고 불러 보다 마음에 새기고 싶어 담아 본다.
최낙영, 정낙일, 김영선, 박승우, 오부근, 김정숙, 이상학, 이병옥, 김영운, 이근환, 강환근, 강명숙, 이숙재, 이종학, 김한예, 김선순, 오기환, 이광수, 이석모, 이철주, 정낙창, 김성재, 이영호, 방영수, 박일상 ,권혁모, 김완택, 노문수, 황희순, 이기태, 이두영, 박보영, 이숭주, 강낙준, 김성숙, 남상선.
할배, 할매 얼굴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그저 중학교 그 시절 그 옛날 얼굴이 그리워서 이산가족 상봉하는 그런 심정으로 많이도 달려왔다. 만나는 즐거움만으로는 안 되겠던지 오부근 친구는 타월 선물로 기념이 되게 했고, 황희순 동창은 금일봉으로 자리를 더욱 훈훈하게 해 주었다. 거기다 문구 상사를 하는 박일상 친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전 동창에게 점심을 사더니 이번에는 기념이 될 만한 볼펜이며 문구를 챙겨 왔다.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시간이 멎는다 해도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우리 대흥 중학교 14회 동창 모두가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싶은 그런 친구들이다.
얼마나 좋은 자리인지 평시에는 술 한 잔 않는 남상선이를 흥이 나게 만들었다. 나는 평시에는 술을 안 마신다. 하지만 좋은 자리나 내가 분위기를 띄워야 할 자리에서는 그냥 사양하지 않고 마신다. 낯가림하는 술이라 하겠다. 평시엔 샌님으로 통하는 내가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할배 할매가 다된 친구들에게 술 한 잔씩을 다 돌렸다. 못 다한 정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평시 않던 음주 탓인지 대전서 내려야 할 ktx를 내리지 않고 동대구역까지 갔다. 배려심 많고 친절한 여승무원의 선처로 다시 대전까지 무사히 올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고마워서 집에 오자마자 금년 출간한 내 수필집 한 권을 등기로 보내 주었다. 11월 16일은 추억에 길이 남을 동창회 모임이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동창들 머리는 서리 밭이요 얼굴은 잔주름 검은 버섯 세상이다. 절로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안 되겠던지 우탁의 탄로가가 아는 체하고 꿈틀거린다.
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 가시를 쥐어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렷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주럼길로 오매라.
불교에서‘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애별리고(愛別離苦)라 했던가!
또‘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는’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이산가족 상봉이 어디 따로 있다던가!
얼굴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 하는,
육력동심(戮力同心)으로 살아 가세나!
인생무상 애별리고,
회자정리의 숙명적 아픔을
우리는 육력동심의 위력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게 바로
대흥 중 14회 졸업생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으로 아름답게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셨군요...
모두 다 선한 인상을 하고 있을 동창들을 상상해 봅니다.
6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참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 우정 오래 오래 지속되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