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07.23.月. 맑고 더울 테지 테지 서 태지 난 알아요
07월22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화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광주에 유명한 다리가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잘 알려져 있는 곳이라면 ‘농장다리’와 ‘배고픈 다리’였다. 벌써 다리 이름에서 포스가 화악~ 느껴지는데, 예전에는 다리 주변이라고 해봐야 인가人家도 하나 없는데다 외지고 으슥해서 사건·사고가 잦았던 일탈의 현장이기도 했고,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던 이런저런 소문들 때문에 은근히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정식 명칭이 동지교인 농장다리는 광주교도소 재소자들이 노역을 하러 농장을 오가게 되면서 농장다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동명동에서 지산동을 이어주는 농장다리 일대는 원래 구릉지라서 주변보다 지대가 더 높았다. 게다가 다리 아래로 기차 철로가 지나고 있었으니 위로 더 솟아있었다. 재소자들이 노역하러 다니며 땀을 흘렸던 다리 건너편에 있었던 지산동 농장은 법원으로 탈바꿈했고 다리 이쪽 교도소가 있던 자리는 주택단지로 변신을 했다. 동명동에 있었던 광주교도소가 1971년 7월 문흥동으로 이전함으로서 그 자리에 주택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가 교도소 자리였다는 것을 의외로 사람들이 대부분 몰랐다. 하기야 교도소 이전 사실이 광주 시민들이 다 알아야할 만큼 그리 유쾌愉快한 소식도 아니었을 것이고, 또 건축업자들 입장에서는 입주자들이 그런 사실일랑 전혀 모르는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살고 있던 친구도 그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소문을 듣고 알게 되었다고 했으니까. 그 친구는 그때 동명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 다른 가족들은 모두 서울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72년 그해 겨울에 서울에 올라가 그 친구네 집인 여의도 순복음아파트에서 며칠 동안 묵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 순복음아파트 12층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아마 12층 아파트라는 곳을 처음 들어와 봤었고 물론 잠도 처음 자보는 것이라 약간 흥분을 했던 것 같다. 그 친구 아빠가 숭실대 철학과 교수님이었는데, 소탈하고 자상하신데다 유머감각이 뛰어나서 철학이라는 학문도 분명 유쾌愉快한 학문일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그때 갖게 되었다. 철학 박사님이 구워주신 불고기도 먹어보고 이태리 잔에 타주는 커피도 마셔보았다. 왠지 항상 바쁘시고 별로 말이 없는 우리 아빠보다는 앞으로 나도 저런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12층 아파트 거실 베란다 창밖으로 내다보면 그 당시 휑한 여의도 벌판에 순복음교회 기초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억속의 뜨겁던 지난 여름과는 전혀 다르게 아파트 거실 창밖은 매우 추웠던 겨울날이었다.
마른데다 키가 크고 매끈한 용모에 말수도 거의 없는 그 친구와는 한 번인가 같은 반이었지만 그저 그뿐으로 친하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그런데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 비슷해서 이따금 서먹한 채로 함께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한 번은 그날따라 교련에 체육에 미술까지 수업이 함께 들었던 모양인지 가방 말고도 짐이 너무 많아 내가 일부를 거들어주었다. 이왕 짐을 들어준 김에 그 친구 집까지 함께 동행을 해주었더니 그 친구 말이 집에 들어가서 빵이라도 좀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엉겁결에 그 친구 집에 따라 들어가 음악을 듣고 빵과 주스도 먹으면서 한참을 놀았다. 그 친구는 지난해까지는 가족들이 같이 살았는데 모두 서울로 올라가게 되어 자신만 3학년인 1년 동안만 더 광주에 남아있게 되어 홀로 하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홀로 사는 하숙생 방으로는 꽤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방에는 당시로는 귀했을,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음악을 들었던 멋진 전축과 커다란 냉장고가 있었다. 여하튼 다음부터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러 그 친구 집에 종종 놀러 다녔고 시간이 좀 흐르자 하교下交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함께 오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가 하복을 입기 시작하던 무렵이라 6월경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친구가 내게 말을 건넸다. 요要는 날이 더워지면서 자기가 사는 동네 주변에 비가 오는 날이면 이상한 소문이 도는데 한번 들어보겠느냐는 것이었다. 한번 들어보겠느냐고? 나는 친구의 말솜씨가 꽤 능란하다고 생각을 했다. ‘이상한 소문’ 이라면 만약 누군가가 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는. 이라는 의미를 살짝 감추고 있어서 이상한 소문이나 괴이한 소문은 언제나 사람들의 구미口味를 은근 당기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낚싯밥을 던지는 노련한 화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뿐 아니라 별똥 님이나 달덩이 님이 들었더라도 알면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착한 대화법對話法이었다. 그러니까 얼마 전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단지가 예전 교도소 자리였고, 더군다나 그 근방 어느 위치는 사형집행을 하던 곳이라는 소문이었는데 알고 보았더니 그게 사실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그 소문이 돌던 무렵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주택가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의 말들이 여기저기 들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비가 왔던 날에 자신도 그것을 보았던 것 같다는 이야기가 다소 섬찟 했지만 그 친구의 표정으로는 그저 좀 이상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는 것뿐이어서 나도 그만한 표정으로 마음을 슬쩍 숨겨놓고 흥미로운 체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아무튼 그랬는데 혹시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친구 집에 와서 돌고 있는 소문이나 자신이 보았던 것이 진짜인가 확인해보고 싶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 친구에게는 벌써 이야기를 해서 함께 동행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가만 생각을 해보았더니 6월20일경이면 장마가 시작되는지라 그럴만한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마치고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웬걸 쾌청하고 뜨거운 날만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과연 우산을 쓴 귀신이 나올까싶었지만 장마라고해서 계속 비만 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가 멈추기도 혹은 쉬었다가 내리기도 하고 잠시 또는 하루 이틀 건너뛰기도 하고 주욱주욱 쏟아지기도 하고 주룩주룩 또는 주르르 내리기도 했다. 토요일이었다. 그 친구가 “어때,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와볼래.” 라고 말을 걸었다. “응, 그래. 오늘 저녁이면 좋겠다.” 토요일 오후는 금방 시간이 갔다. 저녁을 먹고 나자 낮은 하늘은 잔뜩 흐려있는 채 비가 오고 있었으나 아직 훤한 시간이었지만 평소보다 빨리 어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집에서 나서면 동네 길을 빠져나가 큰 차도를 하나 건너서 작은 블록을 두 개 지나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그 친구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오늘도 밤새 거센 장맛비가 내릴 것 같아 박쥐우산을 골라 쓰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동네 길을 걷고 있는데 생각보다 어둠이 빨리 내렸는지 전신주의 등에 불이 켜져 있는 곳이 있었다. 넓은 차도를 건너고 주택 단지로 들어갔다. 친구 집으로 가서 친구를 불렀더니 응, 하는 대답소리와 함께 친구가 곧장 문을 열어주었다. 우산을 털고 방문을 열었더니 함께 동행을 한다던 다른 친구가 먼저 와있었다. 우리들은 우선 동네에 돌아다니고 있던 소문이 어떤 이야기인지를 물어보았고 한동안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귀신이 동네 마실 나오는 시간이 특별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이야기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밤이 이슥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밤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자 그 친구가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자고 했다. 들려오는 소문과 자신이 생각해볼 때 초대받지 않은 것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은 오른편으로 두 블록 더 들어간 방앗간 주변과 자신이 사는 집으로 들어오는 길모퉁이 슈퍼마켓 주변과 저 위쪽에 있는 미용실 골목이라고 했다. 이 세 곳의 공통점이라면 이곳이 사형집행 장소였다는 것이라면 교도소가 완전히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고급 주택단지가 들어선 마당에 어디가 어디인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아마도 호사가好事家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서 과장하거나 확대하고 있는 듯 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네가 본 것 같다던 그 상황을 좀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글쎄, 그게 말이지 일단 먼저 보고나서 이야기를 해야 설명이 될 듯하다”는 애매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내 생각으로는 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일이 있긴 있었는데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스스로 확신하기 곤란한 그런 경험을 했나보다고 느껴졌다. 우리들은 우산을 하나씩 받쳐 쓰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한창 나이 청년이 세 명이나 나섰더니 두렵다는 느낌의 불안한 마음보다는 어디 소문대로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는 야릇한 호기심이 앞장을 섰다. 한 삼십 여 분 동안 장맛비속에서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어느 장소에서 몸을 숨기고 살펴보기도 했으나 특별한 점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친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 장맛비가 힘을 잃었는지 세찬 빗줄기가 아니라 부슬부슬 이슬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친구 집에 들렀다가 오늘은 이만 헤어지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친구는 길 맞은편으로 곧장 가고 나는 왼편으로 꺾어져 슈퍼마켓이 있는 길로 박쥐우산을 접어든 채 서서히 걸어갔다. 그런데 슈퍼마켓 앞에 세 살가량의 여자아이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쫄래쫄래 걸어가고 있었다. 상당히 밤이 늦은 시간이어서 아니 이런 시간에 왜 여자아이가 혼자서 걸어갈까 생각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다음 블록 모퉁이에 어떤 아저씨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이아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직 부슬비는 내리고 길바닥이 빗물에 젖아 상당히 미끄러울 텐데 여자아이를 혼자 걷게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여자아이를 쳐다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자이이가 물 고인 길바닥으로 발을 내딛었는지 주르르 미끄러져버렸다. 그래서 흘낏 저편에 서있는 아저씨를 쳐다본 후에 여자아이를 일으켜주려고 고개를 돌렸더니 어느새 여자아이가 일어나서 다시 쫄래쫄래 걷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상상을 하다 잘못 보았나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으나 여자이아는 쫄래쫄래 걸어서 점차 멀어져버렸다. 나는 참 이상한 아빠도 다 있군. 생각했으나 별다른 의심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자아이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한 사나흘가량 지났든가 다시 장맛비가 내리던 날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때, 비도 오고 오늘 밤 말이야.”
학교가 파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뒤에 다시 박쥐우산을 받쳐 들고 그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내가 먼저 도착한 뒤에 친구 방에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고 있는데 다른 친구가 조금 뒤에 들어왔다. 그 친구 방에는 항상 빵이나 주스가 준비되어있는 것인지 음악을 들으면서 꺼내온 빵과 과자들로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맛나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대학에 다니는 누나가 있어서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가량은 꼭 동생에게 방문해서 방청소도 해주고 먹을 것을 사서 냉장고에 챙겨 넣어준다는 것이었다. 너는 좋겠다, 그런 누나가 있어서. 그리고 그 친구를 보면 친구 누나도 날씬하고 예쁠 것이라는 생각이 움퍽지퍽 들었다. 나중에 그 친구 누나를 우연히 만나보게 되었는데 내 상상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예쁘고 상냥했다. 너는 정말 좋겠다, 그런 누나가 있어서.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 밤이 이슥해지자 다시 우리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오늘밤에는 비가 엄청 쏟아져 내려서 조금 더 조금 더 기다리다보니 시간이 훨씬 늦어져버렸다. 그래서 잠시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서 바로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섰다. 동네를 슬슬 배회하면서 그 친구가 지적하는 장소에서는 잠시 몸을 숨기고 살펴보기도 했으나 역시 귀신이 동네 마실하기에는 적절한 시간이 아니었나보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들은 일단 친구 집으로 들어가 오늘밤 일을 정리한 뒤에 각자 집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슈퍼마켓이 보이는 길로 들어서서 우산을 받쳐 든 채 걸었다. 그런데 슈퍼마켓 앞에 어떤 여자아이가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한 여덟이나 아홉 살가량의 국민학생 여자아이가 깡충깡충 걷고 있었다. 아니, 자정이 가까운 이 시간에 여자아이가 혼자서 웬일일까? 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더니 다음 블록 모퉁이에 어떤 아저씨가 이쪽을 바라보면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렇긴 해도 이 시간에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는 여자아이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는 했지만 보호자가 저만큼 서있던 지라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여자아이가 걸어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그 아저씨 있는 곳까지 걸어가자 두 사람이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장맛비가 내리는데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으니 저만큼 멀어지는 사람들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주 토요일경이 되었다. 한 이틀간 소강상태에 들었던 장맛비가 주말을 맞아 전국적으로 활성화되어 또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만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에 그 친구 집에서 모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친구가 갑작스레 다른 일이 생겨 동행을 못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오늘밤에는 그 친구와 둘이서 행동을 하기로 했다. 역시 밤이 이슥해서야 밖으로 나가 동네를 두어 바퀴 순례하고 숨어서 살펴보고 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우산을 받쳐 들고 친구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늘까지 세 번째 연이은 허탕이라 사실 기운이 좀 빠진 감이 있었다. 잘 자라고 안부를 전하고 나는 박쥐우산을 펼쳐 쓰고 친구 집을 나샀다. 그리고 역시 왼편으로 방향을 꺾어 슈퍼마켓이 보이는 길을 걸어갔다. 그 길을 무심코 걸어가다가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날카로운 생각이 있었다. 역시 슈퍼마켓 앞에서 어떤 여학생이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중학교2,3학년 또래의 여학생이 가방을 들고 무심한 듯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는 걸음걸이에 중학생 되었으나 어딘지 눈에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여학생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다음 블록 모퉁이에 어떤 아저씨가 이쪽을 바라보면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도 줄곧 여학생을 따라가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고정시켰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끝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에서는 이상하게도 물방울이 튀기지 않았다. 여학생이 아저씨 있는 곳까지 걸어가자 두 사람은 무표정하게 서로를 마주본 후 함께 어두운 저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들이 사라져버린 곳을 잠자코 쳐다보다가 비가 더욱 억세게 내리기 시작하지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 아침에도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아침을 먹고 박쥐우산을 쓰고는 그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그리고 친구 방에 앉아 주스를 마시면서 어젯밤 이야기와 그전에 있었던 두 번의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도 보통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집으로 오면 밤11시가 넘어오기 마련이어서 내가 보았던 것처럼 꼬마 여자아이에서부터 여자중학생 모습까지 보게 되었는데 자신이 정말 무엇인가를 본 것인지 혹은 착각을 한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아서 우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노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 여자아이나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손짓을 하고 있던 아저씨나 우울하거나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기다렸다가 손짓을 통해서 만난 뒤에 어디론가 함께 가야만했던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