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둘째 해_2월 16일)
<욥기 15장> “욥과 세 친구들의 신앙의 근본적 차이”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 어찌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욥15:1-5)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욥15:14-1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욥1:8-10)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시73:25-28)
『욥과 친구들 간의 2차 논쟁이 시작되고 엘리바스가 먼저 변론을 개시하는데, 그는 여전히 고난은 죄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인과응보의 도식적 주장을 고수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굴복하지 않는 욥을 더 심하게 공박합니다. 그는 일시적으로 형통했던 악인이 당하게 되는 여러 재앙과 불행한 결말들을 제시하면서 욥이 바로 그런 경우임을 강변합니다. 그럼에도 욥이 죄를 자백하지 않고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엘리바스는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는 말로써 인간의 전적부패의 교리를 제시하면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말하는 욥을 교만하다고 질책합니다. 그러나 욥도 이미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으로(14:4), 단지 욥은 현재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상응할 만한 죄악이 없다는 주장이었는데, 엘리바스나 세 친구들은 욥이 분명 무언가 죄악이 있음에도 자기의(自己義)를 내세우고 있다고 비난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도리어 욥을 비난하는 자들로 태도가 바뀐 까닭은 애초부터 욥과 그들의 신앙의 특성이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욥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욥이 소중히 여긴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였으며, 지금 그가 탄식하고 있는 것도 고난 자체보다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심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 있다고 느껴지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복을 받게 마련이고 고난은 필연적으로 죄의 결과라고 강변하는 친구들의 인과응보의 논리는 율법주의와 기복주의가 혼합된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의 신앙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현세적인 축복이었고 또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재앙과 고난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믿음의 목적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한사코 욥을 죄인으로 규정하고자 했던 것은 경직된 율법주의 교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욥의 무죄함을 인정하는 경우 그들 역시 의롭게 살더라도 고난이 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지만 그들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세적인 축복과 평안과 형통함으로서, 이런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사단이 욥을 참소했던 기복 신앙과 다름이 없었습니다(1:9-10).
그러나 욥은 비록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며 항변하고 있지만, 그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었으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욥의 신앙의 중심을 보셨기에 그를 순전하고 정직한 자라고 인정하셨던 것입니다(1:8). 오늘도 우리의 신앙은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하게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목적이 되어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uKU/52
첫댓글 아멘
순진하고 정직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