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밥 / 유홍준
공사장 모래더미에
삽 한 자루가
푹,
꽂혀 있다 제삿밥에 꽂아놓은 숟가락처럼 푹,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느라 지친 귀신처럼
늙은 인부가 그 앞에 앉아 쉬고 있다
아무도 저 저승밥 앞에 절할 사람 없고
아무도 저 씨멘트라는 독한 양념 비벼 대신 먹어줄 사람 없다
모래밥도 먹어야 할 사람이 먹는다
모래밥도 먹어본 사람만이 먹는다
늙은 인부 홀로 저 모래밥 다 비벼 먹고 저승길 간다
- 유홍준, 『저녁의 슬하』(창비, 2011)
어머니의 밥 / 오봉옥
난리를 두 번이나 겪어봐서 안다
이 세상에 목숨 붙이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거 없다
잡상인으로 살며 사흘 걸러 잡혀가면서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잡아가는 순사도 지쳐 멀리서 호루라기 불었다
자식 놈 밥 넘어가는 소리 들으며
빈 수저로 허공을 퍼 올려 배를 채우던 엄니에게
밥은 무엇이었을까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세월,
난 늙은 엄니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눈밥을 떠먹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제 몸의 살점을 뚝 떼어내 자식들 입에 떠 넣어주는 일을
난 그저 거룩하다는 말로 포장해 왔다
- 오봉옥,『섯!』(천년의시작, 2018)
첫댓글 요즘은 젓가락으로 쑤석거려 밥덩이가 곤혹을 치루는 시대 = 라면에 익숙하다 보니 된장 시대도 수난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