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유언
손선희
수백 년 마을 어귀에 서서
인간을 수호하며
쉬지도 자지도 않고
한자리에 서서 살았다
이꼴 저꼴 다 보며 살아온 생
죽어서
기둥 책상 의자 식탁
면봉
이쑤시개
젓가락
휴지가 되었다
싱싱하게 산목숨
죽어서까지
인간을 위해 쓰여진다
불의 먹이가 되어 사라지며
하는 말
한 치 앞을 보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들아
우리의 죽음이 인간의 죽음이다
---이서빈 외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 시집 {새파랗게 운다}에서
우리 인간들이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게 된 것은 문자(말)를 발명하고 ‘사유하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원인에서 결과를 이끌어내고 결과에서 원인을 찾아내며, 모든 자연의 법칙과 진리를 밝혀냈다는 ‘인식의 혁명’은 그러나 지극히 근시안적이며, 이 지구촌의 유일무이한 어릿광대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세상은 만물의 공동터전이며, 어느 동물도, 어느 풀과 나무도 우리 인간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거나 복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이 지구촌의 적정 인구는 얼마이고, 인간의 수명은 몇 세가 적당하며, 이 지구촌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과연 우리 인간들의 최고의 업적이란 말인가? 지구촌의 이상기온과 자연의 재앙, 그리고 자연보호와 동물보호는 그처럼 걱정을 하고 강조하면서도 그토록 무자비하게 천연자원을 채취하고 문명의 이기와 쓰레기들을 배출해낼 권리가 과연 우리 인간들에게 있단 말인가? ‘저출산-고령화탓’으로 ‘나홀로족’이 그토록 늘어나면서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을 ‘반려동물’이라고 ‘인간화’시키고 있는 행태는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에게서 자연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이 짝을 짓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다 빼앗은 죄는 ‘성만용의 죄’보다도 더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모든 동물들이 다 반려동물이고 우리 인간들과 동등하다면 이제는 이 지구촌이 동물요양원과 동물요양병원의 천국이 되고, 그 어떤 생명체도 탄생과 소멸이 없는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닌 만물의 암적인 종양이며, 우리 인간들의 수많은 학문적 진리는 만물의 진리가 아니라 이 지구촌과 모든 생명체들을 다 몰살시키는 악성 종양일 뿐인 것이다. 이 세상의 참된 진리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고, 아들 딸 낳고 키우며 손자들을 볼 때쯤이면 아주 자연스럽게 떠나가 주는 것이 이 세상의 참된 도이자 진리의 삶이기도 한 것이다.
손선희 시인의 [나무의 유언]은 만물의 공적인 우리 인간들에게 나무가 보내는 진리의 말이자 최후의 통첩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수백 년 마을 어귀에 서서/ 인간을 수호하며/ 쉬지도 자지도 않고/ 한자리에 서서” 산 나무, “이꼴 저꼴 다 보며 살아”왔지만, “죽어서도/ 기둥, 책상, 의자, 식탁/ 면봉/ 이쑤시개/ 젓가락/
휴지가” 되어준 나무, “싱싱하게 산목숨”으로 죽어가면서까지도 화목연료가 되어준 나무----.
나무, 나무, 나무----. 지구촌의 천연자원의 대명사이자 대들보인 나무----. 모든 생명체들은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우리 인간들이 소멸하면 대축제를 벌이겠지만, 만물의 보금자리이자 하늘기둥인 나무가 사라지면 모두가 다같이 공멸하게 될 것이다. 나무는 인간보다 키가 더 크고 튼튼하며, 나무는 인간보다 더 오래 살며, 모든 만물들을 다 품어 기른다. 우리 인간들은 천하제일의 대역죄인이자 악마이며, 이미 그 최후의 살처분의 집행만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보호와 동물보호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인간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으며, 어느 산과 강이, 어느 바다와 들이, 어느 동물과 식물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그토록 간절하게 도움이나 보호를 요청한 적이 없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자연관은 타자의 존재와 그 주체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적반하장의 예법’이며, 이제는 그 ‘적반하장의 예법’을 반성하고 자연의 혜택과 자연의 은총에 무한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시하며 살아가라는 것이 손선희 시인의 [나무의 유언]이기도 한 것이다.
자연은 만물의 터전이고, 모든 만물들을 다 품어기른다. 나무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이고 그 모든 생명체들의 죽음이다.
손선희 시인의 [나무의 유언]은 최후의 심판이자 그 집행선고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