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性眞)과 팔선녀(八仙女) 꿈을 깨다
양태사가 매우 기꺼워하며 이르기를,
“우리 아홉 사람의 마음이 서로 합쳤으니 무슨 염려할 일이 있겠느뇨? 내 마땅히 내일 떠날 것이니, 오늘은 모든 낭자와 더불어 취하도록 술을 마시리라.”하시니
모든 낭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첩들도 마땅히 각기 한 잔씩 받들어 상공을 전별하오리다.”
바햐흐로 시녀를 불러 다시 술을 내어오게 할 즈음, 홀연 지팡이 소리가 돌길에 나는지라 모든 사람들이 의아히 여기기를,
“어떠한 사람이 이곳에 올라오는고?”하시니
이윽고 노승 한 분이 자리 앞에 다가오는데, 눈썹은 자만큼이나 길고 눈은 물결처럼 맑고 몸 놀림이 매우 이상하더라. 대에 올라 태사를 보고는 절하며 이르기를,
“산중 사람이 대승상을 뵈옵나이다.”하자
태사는 이미 그가 여느 중이 아님을 알아보고 황망히 일어나 답례하고 물어보되,
“대사는 어느 곳으로부터 오셨나이까?”
노승이 웃으며 대답하기를,
“승상은 평생 친구를 알지 못하시느뇨? 일찍이 들으니 귀인(貴人)은 잊기를 잘 하니라 하던데, 과연 그러하도다.”
양태사가 자세히 보니 낯이 익은 듯도 하나 아직 분명치 않더니, 문득 깨달으며 모든 낭자를 욽어보고 다시 노승을 향하여 하는 말이,
“내가 지난 날 토번국을 칠새 꿈에 동정용왕(洞庭龍王)의 잔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남악에 올라 갔다가 늙은 대사가 자리를 갖추고 앉아 여러 제자들과 더불어 불경을 강론함을 보았는데, 스님은 바로 그 꿈 속에 만나던 대사가 아니시나이까?”
노승이 박장대소하며 이르기를,
“옳도다, 옳도다. 비록 그말이 옳지만 다만 꿈속에서 한번 본 것만을 기억하고 십년 동안 같이 살던 일은 기억하지 못하니 뉘 양승상을 총명타 하더뇨?”
태사는 망연자실하여 말하되,
“소유는 십오륙 세 이전에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지 않았으며, 십육 세에 급제하여 이어서 직명(職名)을 받았으니, 동으로 연나라에 사신가고, 서로는 토번을 정벌한 일 밖에는 일찍이 경사를 떠나지 않았거늘, 언제 스님과 더불어 십년을 상종하였겠나이까?”
노승이 여전히 웃으며 하는말이,
“상공은 아직 춘몽을 깨지 못하였도다.”
양태사가 묻되,
“스님은 어찌하면 소유의 춘몽을 깨게 하실 수 있나이까?”
노승이 이르기를,
“그는 어렵지 않도다!”하고
손에 잡고 있던 석장(錫杖)으로 돌 난간을 두 차례 두드리니, 갑자기 네 골짜기에서 구름이 일어나 놀이터를 뒤덮는지라 지척을 분별치 못하니 양태사가 정신이 아득하여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하기에 한참만에야 소리를 질러 외치기를,
“스님은 어찌하여 정도(正道)로 소유를 인도치 아니하고 환술(幻術)로써 희롱하시나이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름이 걷히는데 노승은 간 곳이 없고, 좌우를 돌아보니 팔낭자 또한 간 곳이 없느지라 매우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다시 누대와 많은 집들이 일시에 없어지고 자기의 몸뚱이는 한 작은 암자 속 포단 위에 앉았으되, 향로에 불은 이미 꺼지고 지는 달이 겨우 창가에 비치더라.
스스로 몸을 돌아보니 백팔염주(百八念珠 )가 손목에 걸려있고, 머리를 손으로 만져보니 머리털이 깎이어 까칠까칠하니 틀림없이 소화상(小和尙)의 모양이요. 다신 대승상(大丞相)의 위엄있는 차림새가 되지 아니하고, 정신이 황홀하더니 오랜 후에야 제몸이 남악 연화봉 도량의 성진행자(性眞行者)임을 깨닫고 생각하되,
“처음에 육관대사께 책망을 듣고 풍도옥(酆都獄)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인간계에 환생하여 양씨문중(楊氏文中)의 아들이 되었느니라. 자라나 과거를 보아 장원으로 뽑히여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고, 다시 나아가서는 장수가 되어 들어오면 재상이 되며, 공훈을 세우고서 벼슬에서 물러나, 두 공주 여섯 낭자와 더불어 여생 즐기던 것이 다 하루밤의 꿈이로다. 짐작컨대 필연 스승이 나의 생각이 그릇됨을 알고, 나로 하여금 이런 꿈을 꾸게 하여 인간의 부귀와 남녀 사귐이다 허무한 일임을 알게 함이렸다!”
서둘러 세수하고 옷차림을 정제하고 법당으로 나아가니 다른 제자들이 이미 다 모여 있더라.
대사가 소리 높여 묻기를,
“성진아, 성진아! 인간계의 배미가 과연 좋더냐?”하니
성진이 눈을 번쩍 뜨고 쳐다보니 육관대사가 엄연하게 서 있는지라, 성진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뉘우쳐 하는 말이,
“제자 성진은 행실이 부정하오니, 스스로 저지른 죄오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나이까> 마땅히 만족함이 없는 세계에 있으면서 윤회(輪廻)하는 재앙을 받을 것이어늘, 스승께서 하루밤의 허망한 꿈을 불러 깨우시어 성진의 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스승의 깊은 은혜는 천만겁(劫)을 지나도 가히 다 갚지 못할 줄로 아나이다.”
육관대사가 경계하여 말하기를,
“네가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진하여 돌아오니 내 새삼 무슨 간여할 바 있으리오? 또 네 말을 들은즉 꿈과 세상을 나누어 들이라 하니, 이는 아직도 네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느니라. 엣닐에 장주(莊周-장가)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가, 다시 장주로 화하니 어떤 것이 참인가를 분별치 못하였다. 하니 어제의 성진(性眞)과 소유(小遊)에 있어 어느 것이 참이며, 어느 것이 허망한 꿈이뇨?”하시니
성진이 이에 대답하되,
“제자 성진은 이제 모든 것이 아득하여 꿈과 참을 분별치 못하겠사오니,
바라옵건데 스승은 법을 베풀어 그로써 이 몸으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하소서.”
육관대사가 쾌히 응낙하여 이르기를,
“내 마땅히 금강경(金剛經)의 큰 법을 베풀어 그로써 내 마음을 깨닫게 하려니와, 잠시 후에 새로 올 제자들이 있으니 너는 기다리렷다.”하시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지기 도인이 손들이 왔음을 아뢰니,
뒤이어 위부인(魏夫人)의 시녀 팔선녀(八仙女)가 다달아 대사 앞에 나아와 합장배례(合掌拜禮)하고 입을 모아 하는 말이 ,
“제자들이 비록 위부인을 모시고는 있으되 배운 바 없어, 망령된 생각을 억누르지 못하여 욕심이 잠시 고개를 쳐들매, 무거운 죄악이 뒤따라 이르러 인간계의 헛된 꿈을 꾸되 깨워주는 사람이 없삽더니, 대자대비(大慈大悲)하옵신 스승께서 저희를 깨워 다시 데려오시니 감격하였나이다. 어제는 위부인의 궁중에 가서 하직하고 이제 돌아왔사오니, 스승께서는 저희들의 묵은 죄를 사하시와 각별히 밝은 가르치심을 드리우소서.”하니
육관대사가 경계하여 말하되,
“여선(女仙)들의 뜻이 비록 아름다우나, 불법(佛法)은 깊고도 멀어, 큰 역량과 큰 발원(發願)이 없으면 능히 이루지 못하나니, 그대들은 모름지기 스스로 헤아리도록 힘쓰라.”
팔선녀가 물러나와 낯에 칠한 연지와 분을 씻어버리고 각기 사매(師妹)의 인연을 맺고, 금가위를 내어 구름 같은 머리를 깎아 버리고 다시 돌아와 대사께 사뢰기를,
“저희들 제자 팔인이 이미 얼굴의 모습을 고쳤사오니, 이제부터는 맹세코 스승의 가르침과 분부를 계을리 하지 않겠나이다.”하니
유관대사는 기꺼워하며 이르되,
“좋도다, 좋도다! 너희 팔인이 이렇듯 달라질 수 있으니 어찌 감동치 아니하리오?”
드디어 자리에 올라 경문을 강론하니,
“백호빛이 세계에 쏘이고(白毫光射世界), 하늘꽃이 비같이 내리더라(天花下如亂雨).”
경문의 강론이 끝나자 성진과 여덟 사람의 여승은 일시에 깨닫고, 생겨나지도 않고 죽어지지도않을 정과(正果)를 얻으니, 육환대사는 성진의 계율(戒律)을 지킴이 착실하고 순숙(純熟)함을 보고, 이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는 말이,
“내 불법의 전도를 바라고 중국(中國)으로 들어왔는데, 이제 비로소 정법을 전할 사람을 얻었으니 이제 나는 돌아가노라.” 하고는,
염주와 바리와 정병(淨甁)과 석장(錫杖)과 금강경 한 권을 성진에게 주고 서녘 하늘을 향해 떠나가더라.
그 후로 성진이 연화도량의 대중을 거느려 크게 교화(敎化)를 베푸니, 신선과 용신(龍神)과 사람과 귀인이 한 가지로 존경하기를 육관대사와 같게 하고, 여덟 사람의 여승들도 성진을 스승으로 섬기어 깊이 보살의 대도(大道)를 터득하더니 아홉 사람이 한가지로 극락세계(極樂世界)에로 가게 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