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44】 10
6, 여염인(如焰忍)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如焰忍고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知一切世間이 同於陽焰하나니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아지랑이 같은 인[如焰忍]이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일체 세간이 아지랑이와 같음을 아느니라.”
▶강설 ; 아지랑이란 주로 봄날에 햇빛이 강하게 쬘 때 공기가 공중에서 아른아른 움직이는 현상을 아지랑이라고 한다.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실체는 없다. 보살은 세상의 일체를 아지랑이와 같이 알고 있다.
금강경에서는 “일체 유위의 법은 마치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침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하라.”라고 하였다.
譬如陽焰이 無有方所하야 非內非外며 非有非無며 非斷非常이며 非一色非種種色이며 亦非無色이로대 但隨世間言說顯示인달하야
“비유하자면 마치 아지랑이가 있는 장소가 없어서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끊어짐도 아니고 항상함도 아니며, 한 색상도 아니고 갖가지 색상도 아니고 또한 색상 없는 것도 아니니, 다만 세간의 말을 따라서 나타내 보이는 것과 같으니라.”
▶강설 ; 아지랑이는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실체는 없다. 그래서 장소가 없어서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끊어짐도 아니고 항상함도 아니다.
菩薩도 如是하야 如實觀察하야 了知諸法하고 現證一切하야 令得圓滿하나니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五如焰忍이니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실상(實相)과 같이 관찰하여 모든 법을 알고 그 자리에서 일체를 증득하여 원만함을 얻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다섯째, 아지랑이 같은 인[如焰忍]이니라.”
▶강설 ; 보살은 일체 법의 실상을 관찰하여 모든 법을 알고 그 자리에서 일체를 증득하여 원만함을 얻는다. 법의 실상이란 실체가 없는 아지랑이와 같다는 뜻이다.
7, 여몽인(如夢忍)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如夢忍고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知一切世間이 如夢하나니라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꿈과 같은 인이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일체 세간이 꿈과 같음을 아느니라.”
▶강설 ; 불교에서는 일체 인생사나 세상만사가 모두 꿈과 같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일체 세상사를 꿈과 아는 것이 여몽인(如夢忍)이다. 불교에는 많은 경전에서 꿈을 이야기하며, ‘술몽쇄언(述夢瑣言)’이나 ‘조신(調信)의 꿈’이나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술몽쇄언은 월창(月窓)거사 지은 것으로 불교의 정수를 꿈에 가탁(假托)하여 서술한 책이다.
譬如夢이 非世間非離世間이며 非欲界며 非色界며 非無色界며 非生非沒이며 非染非淨이로대 而有示現인달하야
“마치 꿈은 세간도 아니고 세간을 떠남도 아니며, 욕계도 아니고 색계도 아니고 무색계도 아니며, 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물든 것도 아니고 청정한 것도 아니지마는 나타내 보임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강설 ; 꿈의 세계란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다. 옛 사람들은 꿈을 주사야몽(晝思夜夢)이라고 하여 “낮에 생각한 것이 밤에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꿈이란 “정신의 놀이[夢是神遊]다.”라고도 하였다. 아무튼 몸은 가만히 잠들어 있는데 꿈을 꾸는 주인공은 생시와 다름없이 우주만유와 삼라만상을 만들어놓고 그 만들어놓은 자신의 세계에서 온갖 것을 다 펼쳐 보이는 작용이 꿈이다. 이것이 실로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知一切世間이 悉同於夢하나니 無有變異故며 如夢自性故며 如夢執着故며 如夢性離故며 如夢本性故며 如夢所現故며 如夢無差別故며 如夢想分別故며 如夢覺時故니 是名菩薩摩訶薩의 第六如夢忍이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 세간이 모두 꿈과 같음을 아느니라. 달라짐이 없는 까닭이며, 꿈의 자성과 같은 까닭이며, 꿈의 집착과 같은 까닭이며, 꿈이 성품을 여읜 것과 같은 까닭이며, 꿈의 본 성품과 같은 까닭이며, 꿈에 나타나는 것 같은 까닭이며, 꿈이 차별이 없음과 같은 까닭이며, 꿈이 생각으로 분별함과 같은 까닭이며, 꿈이 깨었을 때와 같은 까닭이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여섯째, 꿈과 같은 인[如夢忍]이니라.”
▶강설 ; 보통의 중생들은 꿈만 꿈으로 알지만 보살은 꿈을 꿈으로 아는 것을 넘어 일체 세상사를 모두 다 꿈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일체 세상사가 달라짐이 없는 까닭이며, 꿈의 자성과 같은 까닭이며, 꿈의 집착과 같은 까닭이며, 꿈이 성품을 여읜 것과 같은 까닭이며, 꿈의 본 성품과 같은 까닭이다.
8, 여향인(如響忍)
(1) 여래의 음성은 메아리와 같다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如響忍고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聞佛說法하고 觀諸法性하야 修學成就하야 到於彼岸하며 知一切音聲이 悉同於響하야 無來無去나 如是示現이니라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메아리 같은 인이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든 법의 성품을 관찰하고 배워서 성취하여 저 언덕에 이르며, 일체 음성이 모두 메아리 같아서 오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음을 알고 이렇게 나타내 보이느니라.”
▶강설 ; 메아리와 같은 인(忍)이란, 보살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든 법의 성품을 관찰하고 배워서 성취하여 저 언덕에 이르며, 일체 음성이 모두 메아리 같아서 오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觀如來聲이 不從內出하며 不從外出하며 亦不從於內外而出하야 雖了此聲이 非內非外며 非內外出이나 而能示現善巧名句하야 成就演說하나니라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음성이 안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안팎에서 나는 것도 아님을 관찰해서 비록 이 음성이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아님을 알지마는 교묘한 이름과 구절을 능히 나타내 보여서 연설하느니라.”
▶강설 ; 일체 메아리가 그렇듯이 부처님의 설법의 음성도 안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안팎에서 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잘 관찰한 가운데 온갖 교묘한 이름과 구절을 능히 나타내 보여서 연설하여 중생들을 교화한다. 이것이 설할 것이 없는 이치를 알고 법을 설하는 것[證無說而談詮]이다. 또 법을 설하는 것만이 아니라 육바라밀을 베푸는 것도 메아리와 같은 육바라밀을 행한다[施爲谷響度門].
(2) 비유로써 밝히다
譬如谷響이 從緣所起하야 而與法性으로 無有相違하고 令諸衆生으로 隨類各解하야 而得修學하며
“비유하자면 마치 골짜기에서 일어나는 메아리가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지만 법의 성품과 어기지 않고,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종류를 따라서 각각 이해하고 닦아 배우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강설 ; 메아리가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 법의 성품과 어기지 않는다. 법의 성품도 본래 공적하지만 인연을 만나면 온갖 일을 짓듯이 메아리도 본래는 없는 소리지만 골짜기에 소리를 지르면 그 인연으로 골짜기에 울림이 있다. 이 울림은 본래의 소리는 아니지만 이것이 메아리다.
如帝釋夫人인 阿修羅女를 名曰舍支라 於一音中에 出千種音호대 亦不心念하고 令如是出인달하야
“또 제석천왕의 부인인 아수라의 딸은 이름을 사지(舍支)라 하는데, 한 가지 음성에서 천 가지 소리를 내지마는 또한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이와 같이 내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강설 ; 또 한 가지 비유는 제석천왕의 부인인 아수라의 딸은 한 가지 소리 가운데서 일천 가지의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이와 같이 천 가지 소리가 나온다. 마치 메아리의 울림과 같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入無分別界하야 成就善巧隨類之音하야 於無邊世界中에 恒轉法輪이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그와 같아서 분별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 교묘하게 종류를 따르는 음성을 성취하여 그지없는 세계에서 법륜을 항상 굴리느니라.”
▶강설 ; 보살은 마치 메아리의 울림과 같이 분별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 교묘하게 종류를 따르는 음성을 성취하여 그지없는 세계에서 법륜을 항상 굴리어 한량없는 중생들을 교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