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5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장마철에 벼락으로 변압기가 터져서 하루 밤 동안 정전이 되었는데 칠흑 같은 밤에 촛불을 켜놓고 컴퓨터도 켤 수 없을 때 책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였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전기가 들어오면서 어둠에 벗어나 살 수 있었는데 예전에는 희미한 등잔불에 의지해서 책도 읽고, 어머니는 바느질도 하셨고, 부엌에서 아주 희미한 불빛 밑에서 요리도 하였습니다. 간혹 아주 부잣집에서는 촛불을 켰는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을이나 집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많은 등을 달았는데 그때의 청사초롱이나 연등이 그렇습니다. 그래도 제 아무리 밝은 등불도 세상 가득히 동터 오는 눈부신 햇살에 비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사 후, 어린이 복사들이 컵 모양의 도구를 가지고 촛불 위에 가만히 덮어두면 불이 꺼지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심지를 태우는 산소가 부족해서 더 이상 불을 밝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는 말씀을 다시 생각하곤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 안에서 밝은 등이 되시고자 하시는데도 우리는 그분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삶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 촛불을 대부모로부터 건네받으면서 주님께서 빛으로 오시고 대부모가 빛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빛으로 살고자 다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가슴에 가만히 가둬버리고 밖으로 드러 내 보이기보다는 캄캄하게 됫박으로 등불을 덮어두는 사람들이라고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나도 자주 주님을 밖으로 끌어내지 않고 주님의 빛으로 살지 못하여 그 분을 내 마음의 어둠 속으로 가둬두고 살았답니다. 그리하여 어둡고 칙칙한 내 모습을 보고 주님의 빛을 볼 수 없었기에 주님의 기쁜 소식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진리의 말씀이 세상의 쓸데없는 농담과 코미디에 짓눌려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는지 모릅니다.
조선왕조의 연산군은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여름이 되면 침상 밑에 독사를 많이 담은 대 바구니를 놓고 그 위에 보료를 깔고 잠들었다고 합니다. 독사의 서늘한 냉기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침상 밑에 등불을 놓는다는 것은 나의 이익을 위해서 주님을 무시하고, 나의 명예나 체면을 위해서 주님을 폭신한 깔개나 발판으로 삼는 것입니다. 주님을 깔고 뭉개는 행동이나 말로 주님을 “똥 친 막대”로 만드는 일입니다. 바리사이들과 같이 자신들의 명예나 체면을 위해서 교회와 주님을 이용하고, 주님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주님의 빛을 보고 마음이 밝아져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자신들 안에 주님의 빛을 마음 가득 밝히고 빛으로 주님을 믿고 고백하여 모진 고문과 박해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며 아주 기쁘게 순교의 은총을 청한 것입니다. '막현호은'(莫見乎隱) <모든 일은 숨기려고 할수록 남의 눈에 잘 띄는 법이고, 비밀은 오히려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기 쉽다.>는 말씀처럼 우리도 순교자들의 후손답게 주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있어서 그 기쁨과 설렘을 주체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분을 질식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감춰두고 싶어도 주님은 당신의 권능으로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 이라고 강조하여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고 계십니다.
저희에게 태양보다도 더 밝고 뜨겁게 오시는 주님! 저희는 당신을 등잔불보다도 더 미약하게 생각하고, 헛된 세상의 많은 유혹의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에 현혹되어 당신의 밝음과 뜨거움을 전하지 않고 감춰두고만 삶을 살았나이다. 이제 마음을 다소곳이 정리하고 당신에게 저희의 모든 것을 맡기오며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고 주님의 빛과 뜨거움을 어두운 곳에 전하는 새 빛을 주시어 순교자의 열정과 믿음의 삶을 본받게 하소서. 자비와 사랑의 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