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SNAKE SENSE
뱀처럼 예민한 감각이 필요한 시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지키느냐 바꾸느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키다' 또는 '바꾸다'.
굳이 말하자면, 일본은 지키는 쪽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지키려 애쓴다. 대기업 간부를 지내던 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낙향해서 아버지가 경영하던 작은 식당을 이어받아 지키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일까? 일본에는 100년, 200년 동안 가업을 지켜온 노포가 흔하고, 평생 한 가지 업에만 몰두해온 장인이 많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바꾸는 쪽이다. 소도시의 작은 식당 사장님께, "이 가게 아드님이 물려받아서 오래오래 지속되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네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무슨 소리야? 우리 아들 대기업 간부인데! 자식들은 이런 일 하지 않게 하려고 내가 평생 식당 하면서 이 고생했어"라고 대답하는 분이 휠씬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키는 것과 바꾸는 것,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할까? 양쪽 모두 세상을 사는 소중한 덕목이므로,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는 일장 일단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대답을 해보자면, 아날로그 시대에는 '지키다'가, 디지털 시대에는 '바꾸다'가 중요하다.
1980년대 말까지 일본은 세계를 호령했다. 미국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매입하기도 하며, 세계 최강국 미국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 바탕에는 자기 업을 대대로 지켜온 장인들이 버티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는 수많은 부품을 깎고 다듬고 조립하는 일본 장인의 손길을 능가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과거 우리가 들어왔던, "한 우물을 파라",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같은 수많은 금언이 아날로그 경제에서는 잘 지키는 것이 경쟁력이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에는 얘기가 다르다. 디지털 개념이 등장한 이후, 인터넷, 스마트폰, 플랫폼, 인공지능 등 하루가 다르게 기술적 진보를 거듭하는 지난 30여 년의 변화를 상기해보라. 이런 격변의 시기에는 누가 더 잘 바꾸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하지만 잘 지켜온 일본은 변화가 더디다. 아직도 팩스를 보내고, 도장을 찍는다. 이메일을 보내 팩스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한다든지, 도장을 없애보자고 했더니 '도장 찍는 로봇'을 개발했다는 에피소드가 우리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날로그 경제에서 최고의 미덕이었던 '잘 지킴'이 디지털 시대에는 발목을 잡는 격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부지런히 바꿨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 아래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했으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한일 간의 격차는 좁혀졌고, 일부 지표는 이제 한국이 앞선다.
2024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6,194달러로 일본보다 401달러 앞섰다. 가구당 순자산 역시 18만 6,100달러로 일본보다 3,500달러 많다.
문화적으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대중가요는 힘이 셌다. 국내에는 수입이 금지된 엑스재팬x-Japan의 노래를 숨어서 듣는 젊은이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블랙핑크와 BTS를 위시한 K-팝의 위세가 J-팝을 능가한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상대적으로 탄탄한 내수시장을 가진 J-팝은 여전히 CD 발매 위주의 아날로그 시장을 지키는 데 연연할 때, 우리 뮤지션은 유튜브를 발판으로 세계 무대를 직접 두드리는 등 다양한 변화를 모색했다.
물론 국력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고 경제나 문화에도 여러 지표가 있으므로,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전의 한 배경에는 지킴과 바꿈의 문제가 있다. 대중가요 생태계가 CD에서 디지털 음원.유튜브 플랫폼으로 바뀌듯, 브라운관 TV가 LCD,LED,OLED로, 내연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로, 만화책이 웹툰으로, 산업마다 그 '판'이 근본부터 바뀌는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바꾸는' 것에 주저하지 않은 결 과다.
나라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더욱 빠르게 바뀌고 있다. 결국은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누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서서히 주저앉을 수도 혹은 빠르게 도약할 수도 있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많겠지만, 불가피하게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바꾸다'를 선택해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게 됐다.
트렌드 코리아 2025 서문 중에서
대표저자 김난도
첫댓글 오늘도 마음에 똑똑 노크해주는 글....
깨달음이 있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당 ^^
백경미 지부장님~
2025년 트렌드~
한발 앞서 나가시네요♡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서문만 예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