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여행왔다고 해서 중심지만 보고 가는 것은
어쩌면 진짜 여수를 놓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를 타고 향하는 곳,
돌산읍을 지나 만날 수 있는 '화태도'로 향한다.
화태도로 향하는 길에도 여전히 배가 고픈건 어쩔 수 없다.
돌산읍에 어귀에 위치한 뭔가 로컬한 식당을 발견한 우리.
블로그에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식당 '별이네'에서 자동차를 멈춘다.
투박한 외관의 식당에 들어가니
구수한 현지 음식 냄새와 함께
여수 현지인들로 보이는 분들이 점심부터 컬컬하게 쏘주로 목을 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 로컬이란 단어가 저절로 목 한켠에서 새어 나온다.
걸걸하게 취한 현지분들의 미소에서 '정겨움'이 느껴진다.
별이네 식당은 돌산읍 평사리에 위치한 곳으로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집밥같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주인은 직접 끓인 육수로 샤브샤브와 칼국수 등을 만든다고.
여수에 와서 뭔가 계속 로컬 음식만 먹었던 나는 급 라면이 먹고 싶어
라면을 주문했다.
가격은 단돈 3500원. 김밥도 2500원으로 굉장히 저렴한 편이다.
라면을 시키고 보니 이 곳은 '해물칼국수'가 별미라고.
김밥도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그 맛 그대로다.
햄이며 맛살이며 계란까지 듬뿍.
프렌차이즈 김밥에 물들어 있는 나는 뭔가 집김밥을 늘 그리워했는데
그에 대한 로망을 여기서 풀게된다.
김치는 역시 빠질 수 없는 돌산 갓김치......
석박지와 배추김치도 맛깔스럽다.
이 곳의 총 평은 그야말로 '숨어있는 로컬 맛집'.
다음에도 여수에 오면 이 곳에 꼭 들리리라.
한상 잘 먹은 우리는 목적지인 화태도로 다시 향한다.
차를 타고 화태도로 향하는 길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란 팻말이 눈에 띈다.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화태도 또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우리나라가 가진 천혜의 비경 중 하나로,
여수 중심지에서 차로 30분만 이동하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화태도의 랜드마크 '화태대교'의 위용이 눈에 들어온다.
화태대교는 전라남도 여수시의 화태도와 돌산도를 잇는 교량이다.
2015년 12월 건설된 이 교량은
약 1575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다.
교량의 길이는 1345m, 폭은 14.2m로 주경간은 500m 로
인천대교와 부산항대교에 이어 국내에서는 주경간이 세번째로 긴 교량이다.
이 교량이 개통되기 전에는 화태도에서 육지로 나오려면 하루 4번씩 운행되는 여객선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고.
이 교량의 개통으로 자유롭게 화태도와 돌산도를 오갈 수 있게 되어 주민들을 비롯 여행객들이 편의성이 무척 높아졌다고 한다.
드디어 화태도 어귀에 도착한다.
어딘지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이 곳에는 낚시꾼들이 옥빛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고 있었다.
지나치게 불어오는 바람만 아니면 무척 평화로웠을 풍경.
점프하면 바람 따라 날아갈 것 같아
발을 바닥에 착착 붙이고 다녀야 할 지경이었다.
화태도는 전라도 여수시 남면에 딸린 섬이다.
면적은 2.171제곱키로미터, 해안선 길이는 17키로미터.
인구는 218가구에 482명이다.
임진왜란 당시 돌산도에 이순신 장군이 진을 치고 왜적과 대치하고 있는데,
왜적이 쳐들어올 때 섬이 저절로 울어 왜적의 침공을 알려주었다고 해서 '흿대 나팔섬'이라 불렀다고.
그 뒤 군량미를 위장했다는 뜻으로 수태도 등으로 불리다가 현재 '화태도'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서며 방파제 끝에서 포즈를 잡는 둘째 형님과 아인!
옥빛 바다와 함께 푸르게 빛나는 햇살이 인상적인 곳이다.
화태도에는 지도에 없는 마을이 많다.
어디를 가면 '묘두마을'이라 적혀있는데 또 어딜가면 어디가 어디인지 지명조차 파악이 어려운 곳이 많다.
섬 안에는 화태마을과 월전 마을이 있다고 하는데
화태 마을에는 조선 시대 병마용 말을 조련했다고 전해오는 기마장 터가 전해온다.
월전 마을은 '달밭구미'라는 우리말 땅 이름을 한자화한 마을 이름이다.
월전 마을은 달을 받는 마을 답게 동쪽 바다가 정면에 보이는 마을이다.
마을 앞 바닷가에 묻혀 있는 바위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석이라 전해오고 있어 이 바위에 정월 초 하룻날 동제를 올린다고.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와 보리, 쌀, 무, 마늘 등이 소량 생산된다.
근해에는 낙지와 전복, 붕장어가 많이 잡히고 굴 양식업도 활발하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어류는 타 지역에서 매우 인기가 높아 어민 소득이 매우 높았지만
최근 전반적인 경기 침체 영향으로 판로 개척에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또한 화태도에는 세 곳의 선착장이 있는데
덕천 선착장과 마족, 월전 선착장이 그것이다.
이 세곳 선착장 모두 낚시 애호가들에게 무척 인기가 높은 곳이라고.
운전을 하다가 우연히 내린 곳 또한 선착장처럼 보였으나
이름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자갈과 돌로 이루어진 자연 해변 같이 보였지만
선착장 같기도, 또한 양식장 같기도 해서 정체성이 불분명했다.
다만 한 가지, 굉장히 황폐하고 또 아름답다는 것.
혹자는 황폐함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황폐미'라는 이름을 붙였다던데
이 곳이 바로 그러한 곳에 가깝다.
자연은 원래 저마다의 규칙을 갖고 있으나 겉으로 보면 질서정연하지 않다. 황폐한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돌로 이루어진 해변에는 무수한 나무들과 또 이름모를 새소리가 아름답게 울려퍼진다.
바닥에 자근자근 밟히는게 뭔지 보니 엄지 손가락 만한 고동이 바닥에 가득하다.
고동인지 돌맹인지 자갈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흩어져 있다.
근처에 굴 양식을 하는지 묵직한 굴도 가득 달려있다.
만져보니 다들 살아있는 상태다.
바위 사이에도 가득 찬 고동들.
이 곳의 생태계는 설명이 불가능할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다.
주변에 양식장이 많아서일까.
바닥에 흩어져 발에 밟히는 고동과 소라들, 작은 게들이 너무 많아서 실로 징그러울 정도.
<겉보기에는 황폐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지한 화태도의 이름모를 해변>
해변의 숲 근처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무수히 자라고 있고.
뭐랄까,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원래 자연은 이런 모습이었겠지, 하면서도 기이한 기분이.
'내가 모르는 여수의 깊은 곳은 이런 기묘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
한창 이 곳의 기이하고 풍부한 생태계를 관찰하던 아인은 이제 그만 집에 가자며 징징댄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끝은 언제나 '아이가 원할 때'다.
그게 때론 아쉬울때도 있지만 선택지가 명확해서 편하기도 하다.
며칠동안 즐겼던 여수를 떠나며
하늘을 지나쳐 노을빛으로 물드는 태양을 본다.
여수 바다에 빛나는 노을을 못 본게 못내 아쉽지만
그 풍경은 다음 발걸음에 기약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