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장 7-14절 가이사랴에서 아가보가 바울에게 예언함. 요약설교
7절.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1. 두로 항에서 남쪽으로 35킬로 항해해가면 돌레마이 항구가 나옵니다.
이 돌레마이란 알렉산더 왕의 후계 왕조로서 톨레미(Ptolemy) 왕조와 셀루키드(Seleukid) 왕조 중 애굽과 수리아를 통치한 톨레미 왕조를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2. 두로에서 돌레마이까지는 35킬로 밖에 되지 않고,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까지도 60킬로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바울은 두로에서 곧바로 가이사랴까지 하루가 못 되어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일부러 돌레마이에 들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네, 돌레마이 교회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무섭게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일 때 피난 간 성도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레마이 교인들 중에는 바울의 핍박 때문에 불구자가 되었든지, 재산을 잃었든지, 심지어 가족을 잃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돌레마이 교회 성도들을 찾아가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돌레마이 성도들에게 과거에 자신이 핍박했던 것을 용서해달라고 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하여, 이방인 교회들을 설립한 전도자가 된 것을 간증했을 것입니다.
돌레마이 교인들도 하나님의 은혜에 놀랐을 것이고, 바울도 놀라운 간증을 했을 것입니다.
8절.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1. 바울은 돌레마이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에 이튿날 남쪽으로 60km를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이 가이사랴에는 일곱 집사 중에 하나인 빌립의 집이 있었습니다.
이 빌립 집사는 사도행전 6장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과부 구제 문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방인 과부들을 구제하도록 뽑은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지도자 청년 사울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스데반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빌립 집사도 사마리아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런데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서 능력 있게 전도를 잘했습니다.
즉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서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표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들을 고쳤습니다( 행 8: 4-7).
그리고 빌립 집사는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아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장관도 전도했습니다( 행 8:26-38).
그 후로 빌립 집사는 가이사랴에 가서 살았습니다.
이 가이사랴는 원래 사도행전 10장에 말씀한 대로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사는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가서 전도했던 곳입니다.
이처럼 가이사랴는 큰 도시이기 때문에 빌립은 가이사랴에서 많은 사람을 전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사랴에는 상당히 큰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 교인들과 빌립을 핍박할 때는 AD 34년경이고, 가이사랴에서 빌립을 만난 때는 AD 57년이기 때문에, 23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빌립이 만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때 빌립 집사의 집에 들어가서 23년 전에 자신이 무섭게 핍박했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무지막지한 핍박자요 폭행자였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변화 받고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한 일을 간증했을 것입니다.
9절.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 빌립 집사가 성령 충만하니까 딸들도 성령 충만한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 빌립 집사의 성령 충만한 생활을 네 딸들이 그대로 전수 받아서 예언을 했습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 예언의 은사는 가장 중요한 은사였습니다. (고전 14:1-4)
10절.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 바울이 빌립의 집에서 여러 날을 머물고 있는데,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유대의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에 대해 예언을 했습니다.
이 아가보 선지자는 사도행전 11장 28절에서 <천하가 크게 흉년이 들리라>고 예언해서 그대로 이루어진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아가보 선지자가 이 때 빌립의 집에 찾아와서 자기의 허리띠를 풀어 바울의 수족을 잡아매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유대인들이 이렇게 결박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11절.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 이처럼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을 가시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행동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아가보 선지자도 바울의 허리띠를 풀어서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이 띠 임자가 예루살렘에 가면 이처럼 결박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아가보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들에게 넘겨주리라고 했습니다.
이 아가보의 예언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교인들에게 결박을 당하고, 이방인인 로마의 총독들에게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분명히 아가보는 성령의 감동으로 정확한 예언을 했습니다.
2. 그러나 그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가이사랴 교회 성도들은 아가보의 예언을 듣고, 울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둘째로 바울은 아가보의 예언을 듣고,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될지라도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다면,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성령님께서 하신 말씀은 틀림없이 결박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바울이 각오를 하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12절.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 아가보는 과거에도 흉년 예언을 맞힌 유명한 선지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가보의 권위에 눌려서 바울에게 아가보의 말을 듣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이러한 권면은 바울을 아끼고 염려하고 사랑해서 하는 권면이었습니다.
이처럼 일행들과 가이사랴 성도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했지만, 바울은 이미 결박과 환난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자기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복음 전할 각오를 했기 때문에, 이 사명의 길을 방해하지 말라고 책망했습니다.
13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 바울은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동정과 사랑이 참 좋은 것이지만,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는 방해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려고 했을 때, 베드로가 만류하자 사탄아 물러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마 16:23)
2. 바울 사도는 주 예수님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죽는 것까지도 각오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이미 말한 내용이었습니다. (행 20:23-24)
이처럼 바울은 주님과 복음 전도를 위해서 한번 죽을 것을 각오했습니다.
바로 이 <일사각오>의 신앙이 한국 주기철 목사님의 신앙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유의 몸으로 전도하면 우리 생각에 참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의 뜻은 죄수로 전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재판을 받으면서 유대교의 높은 지도자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전도했고,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에게도 전도했습니다.
만일 바울이 죄수의 몸이 아니었다면, 이런 높은 관리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죄수로 재판을 받기 때문에, 유대교의 고관들이나 총독들이나 왕에게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감옥에서도 황실 자제들에게 전도해서 복음 전도의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 황제 앞에서도 재판 시에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억울하게 죄수가 되는 것을 참고 복음 전도한 것처럼, 우리들도 억울하게 죄인 취급을 받더라도 참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서 큰 상 받으시고, 자손들이 큰 복 받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