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5]
헨리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➁
1885년 7월 일본에서 다시 조선으로 입국한 아펜젤러는 정동에 마련해 둔 사저에서 10월 11일 우리나라 최초로 성찬식을 거행했고, 이 날은 ‘정동제일교회’ 공식 창립일로 한국 기독교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해 11월 고종으로부터 학교 설립을 허가받았고, 이듬해인 1886년 6월에 2명으로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1887년에는 고종이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학생 수도 많이 늘었습니다. 아펜젤러가 감리교 이념으로 시작한 학교였지만 종파와 교리를 초월해서 조선 선교와 조선의 근대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힘썼습니다. 아펜젤러가 선교를 시작할 당시 함께 온 언더우드가 활동을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온 메리 스크랜튼(M. F. Scranton) 선교사의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W. B. Scranton) 선교사가 정동에서 의료선교를 시작했는데, 아펜젤러는 조선에 입국하기 전 일본 요코하마에서 선교사들 모임에 참석했을 때 스크랜튼 모자를 만나 조선 선교와 관련해서 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1886년은 본격적으로 교육과 의료봉사를 통해 선교가 시작된 해가 되었습니다. 특히 선교사들 사이에서 협력이 잘 이루어졌는데, 메리 스크랜튼(M. F. Scranton) 선교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이화학당’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887년 9월에는 신자 박중상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나라 감리교 최초 세례식이 되었고, 아펜젤러는 남대문 안쪽에 한옥을 매입해서 예배처로 삼았는데 그 이름을 ‘벧엘예배당’(Bethel Chapel)이라 지었습니다. 11월에 다시 예배처를 옮겼으나 이듬해 봄(1888년 4월) 정부가 기독교 선교 금지령을 내림으로써 예배처가 폐쇄되기도 했습니다.
*참고: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 정동제일교회 홈페이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