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고원에서 춤추는 쇠재두루미
김종록 우화소설 <질라래비 훨훨>
‘단동10훈(檀童十訓)’을 아시는지요? 우리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전통놀이육아법으로, 아기 때 부모나 어른들이 해보라하던 도리도리, 쥐암쥐암, 쩍짝궁짝짝궁, 섬마섬마, 곤지곤지 등이 , 이른바 단동 10훈입니다. ‘단군(檀君)의 아이(童)들’이 배우는 열 가지 배움. 그 10번째가 ‘질라래비 훨훨’인데, 아이가 양팔을 벌려 ‘질라래비 훨훨~’ ‘질라래비 훨훨~’ 새처럼 춤추는 흉내를 내는 것이죠.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이제 세상과 우주의 모든 이치를 알았으니 기쁘고 즐겁고 건강하게 자라나 마음껏 꿈을 펼치며 살아가라는 세상 모든 엄마의 축원을 담고 있습니다. 몽골초원 알타이산자락 검은 호수에서 살아가고 있는 쇠재두루미(현학玄鶴 또는 선학仙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라는 철새 부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해마다 늦가을이면 해발 7천m급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따뜻한 북인도에서 겨울을 난다는군요. 그런데 수백 년 전에는 한반도, 그것도 진안(전라북도) 용담댐 근처에 와 겨울을 날고 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들이 찾지 않은지 오래 되었지만 말입니다. 질라래비는 선천적인 기형으로 날기보다는 춤추기를 좋아하는 소녀 쇠재두루미의 이름입니다. 설산(雪山)을 넘지 못하자 질라래비의 할머니는 막내손녀를 데리고 아주 어릴 적 가본 적 있는 진안고원을 찾아나섭니다. 비록 공해와 미세먼지 등으로 오염이 되고 먹을 것이 빈약하지만, 원초적인 고향을 순례하면서 원래 인간과 새가 한몸이었고, 진화된 다음에도 친하게 지냈던 왕년의 전설과 신화를 들려준다는 줄거리의 우화소설이 최근 한 지역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김종록 지음/은섬 그림/266쪽, 다슬기 펴냄/14,900원>.
글쓴이는 20여년 전 <풍수>라는 대하소설로 ‘삼성문학상’을 받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작가로 현재 진안 정천면에 있는 ‘진안고원 치유의 숲’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데, 젊은 시절 히말라야, 바이칼, 카일라스 등 세계의 유명한 영성(靈性)지역을 순례했다고 합니다. 그의 꿈은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환타지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라기보다는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인문학자라는 지칭이 더 맞을 것도 같습니다.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한국문화대탐사> <붓다의 십자가>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근대를 산책하다> <바이칼> <현장 인문학> <달의 제국> <금척> 등을 펴냈지만, 우화소설은 처음입니다.
우화소설은 동물이나 식물 또는 어떤 사물을 주인공으로 인격화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담는 야야기입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등이 그것이지요. 작가는 할머니 쇠재두루미와 소녀 쇠재두루미의 대화를 통해 현대문명의 허와 실을 냉철하게 바라봅니다. 인간이든 새든 왜 생존적 가치관에서 자기표현적 가치관으로 전환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할머니 새의 어록을 주의깊게 귀 기울여보면, 이 문명을 바라보는, 사람과 사람관계를 정리해볼 수 있는 혜안(慧眼)이 돋보입니다. 질라래비가 왜 물질주의와 산업화를 벗어나야 한다는 노래를 부르며 부단히 춤을 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흔히 이런 책을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라고 말하지만, 이 좋은 내용의 그림책을 이미 굳을대로 굳어버린 어른들이 읽으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청소년들이야말로 이런 좋은 우화소설, 그림동화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이 정립되기 전에. 어떤 책 한 권, 어떤 한 사람, 어떤 한 사건을 제대로 만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환골탈태하는 그런 계기가 중요하기에 좋은 선생님이나 좋은 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림을 그린 '은섬'이라는 작가의 여러 편의 삽화도 삽상하고 쌈박해 책의 품위를 더합니다. 더구나 책을 펴낸 ‘다슬기’라는 출판사도 재밌습니다. 본사가 전북 진안이고 지사가 서울로 되어 있는 지방출판사로, 조합원들이 출자해 만들었다는군요. 현실적으로는 영업이 힘들겠지만,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문화는 서울과 지방, 상호 교류가 되어야 흥성(興盛)할 것입니다.
최영록<생활글 작가>
*이 글은 '전라도의 사람-자연-문화'만을 다루는 월간 토종잡지 <전라도닷컴> 10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