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담그기
할아버지는 일어나자 마자 머리맡에 있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래서 옥계 큰댁에는 막걸리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외할아버니는 항상 나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켜셨다. 양조장에서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오다가 항상 주전자 주둥이를 물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취해서 돌아오곤 했다.
박정희는 막걸리를 금지 시켰다. 동네마다 있던 양조장들이 전부 문들 닫았다.
그러나, 막걸리는 밀주가 되어 어느 집이나 마셨다. 농사일에 막걸리를 마시고 취해서 농요를 부르는 것은 필수적이익 때문이었다.
일본은 동네 마다 양조장이 남아있어, 일본 정종은 지역 특산물이 되어 관광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박정희 때문에 막걸리의 전통이 사라지고, 이제 일부 대형 막걸리 공장만 남아서, 방부제를 집어넣은 막걸 리가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단편 소설 ‘술떡’은 사북의 막걸리 공장 아들과 나를 비롯한 친구들의 어릴 적 이야기다.
막걸리를 빗고 남은 술 지게미를 우리는 술떡이라고 불렀고, 막걸리 공장 사장 아들이 술떡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먹고 취해서 아무 생각도 없이 싸우곤 했다.
사북 탄광촌의 아이들의 이야기인데, 마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태를 연상 시키는 내용과 닮아 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막걸리를 훔쳐 먹으면서 술을 배워서, 나도 술을 좋아하게 되었고. 거의 알콜중독 수준까지 가게 되었다.
다행히 타고난 건강으로 병에 걸리지는 않았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지만 혈압이나 당뇨는 정상이다.
그러다가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막걸리 만드는 것을 많이 보아온 터라 쉬운 일이었다.
막걸리 만드는 법
꼬두밥을 해서 펼쳐서 증기를 날라가게 하고 습기를 거의 제거 한다.
누룩을 절구로 빻아서 꼬두밥과 잘 섞어준다. 누룩은 직접 만들 수도 있지만, 사는게 편하다. 한 개 4000원인가 하는데 그 정도면 막걸리 큰 단지 하나는 만든다.
항아리에 넣고 물을 약간 넘치도록 부어준다. 그때 솔잎을 넣으면 솔잎 막걸 리가 되고 오지마를 넣으면 오미자 막걸 리가 되고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자유자재로 막걸리 이름이 정해진다.
온도 15도에서 25도 정도 되는 곳에 공기가 잘 통하는 헝겊으로 덮어서 보관한다.
온도에 따라 익는 속도가 다르다. 높으면 빨리 익는다. 그런데 빨리 익으면 맛이 없다. 가능한 20 도 이하에서 천천히 익혀주는 것이 좋다. 3, 4 일이면 먹을 수 있다. 익으면 익을수록 독해진다.
막걸리를 오래두면 신맛이 나는 막걸리 식초가 된다. 한번 거르면 동동주가 되고 완전히 거르면 청주가 된다. 밑에 가라앉은 건더기를 먹는것도 괜찮다. 건더기에 밥을 비벼 먹기도 한다.
막걸리를 한 번 담가 먹고 다시는 않하게 되었다. 막걸 리가 너무 맛있어서 한 단지를 다 먹어치우고 이틀을 취해서 잠만 자고 나서, 다음 부터는 사서 먹는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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