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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베드로전서 1:13-22
“데이비드 몽테뉴“라는 사람은 2019년 12월 28일은, 지구가 완전히 파괴되는 종말이 온다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의 근거는, 마야문명에서 사용하던 마야달력의 종료 시점에 두고 있습니다.
2012년에도,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예언이 있었지만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인류의 역사를 통한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크게, 두 가지 예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고
---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다른 종교와 다르게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왜 예언이 없는가 하면, 사람이 종교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되고, 예언된 말씀들이 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종말을 예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야기 하는 가 !
그것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 이루어진 것같이,
신약에 예언 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재림 예수다 하나님이다. 라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반듯이 이루어지고 성취 되는 예언입니다.
벧후 3:9-11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말씀합니다
주님이 언제 재림 하시는 지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시지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는 가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 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말씀합니다. (벧후 3:11)
예수님의 초림은, 자기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지만,
재림은, 인류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야하는 이유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찾아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시작이 됩니다.
창 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일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뱀의 모습으로 찾아온 사단의 유혹으로,,, 범죄 하였기 때문에 인류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세상에서 타락하고 부패하면서 번성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보면
--- 천지 창조에서, 아브라함까지 1000년
--- 아브라함에서, 노아의 홍수까지 1000년
--- 노아의 홍수에서, 다윗까지가 1000년
--- 다윗에서, 예수님의 탄생까지 1000년, 그래서 구약의 역사가 4000년이고
--- 예수님 탄생에서, 지금까지 2000년을 합하면, 인류의 역사는 6000년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 이전에,
영적인 것을 먼저 알고 이해를 해야,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는 영원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세계는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즉, 하루는 24시간이고, 1년은 12달 365일이라는 제한적이고,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영원한 공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왜 제한되고, 흐르는 공간 속으로 오셔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왜 인간을 창조 하셨을 까 ?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이전에, 영원한 영의 세계에서 천사들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백부장 천 부장을 세워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인도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천 사장을 세우셔서 다른 천사들을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 루시퍼라는 천사장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장입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고,
하나님 같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계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하나님께서는 루시퍼를 멸망시킬 수 있었지만,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른 천사들이 볼 수 있는 시청각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탄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용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 해보라고, 허용하신 시간 속에서 우리가 지금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환란을 당하는 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세계에서, “크로노스”의 시간, 즉 제한 된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것은, 순종하는 자는 구원하시고, 불순종하는 자를 영원히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타락한 천사들을 영원히 진멸하시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입니다.
16절 말씀에, “기록 되었으되 내개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 말씀합니다.
1,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하는 이유는, 휴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전 4:16-18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예수 믿으면서 제일 큰 위로는 휴거입니다.
휴거가 없으면, 7년 대 환란을 받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애녹처럼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휴거하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휴거를 세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첫째, 7년 대 환란이 오기 전에 휴거한다.
두 번째는, 7년 대 환란이 끝나고 휴거한다.
세 번째는, 7년 대 환란의 중간, 3년 반이 지난 후에 휴거한다고 해석합니다.
신학자들이 휴거를 어떻게 해석을 하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휴거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마 24:14-21에, 대 환란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7년 대 환란은, 계시록에 보면, 일곱 봉인의 재앙과, 일곱 나팔의 재앙과,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 환란이라 말씀합니다.
인류역사상 단 한 번도 이러한 비극이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환란을 당하지 않도록 거룩하게 사는 사람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그리스도인입니다.
계 9:18절에
여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인류의 3분의1 이 죽임을 당한다. 말씀합니다.
인류의 3분의 1은 25억입니다. 25억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휴거와 7년 대 환란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1), 우리가 눈여겨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는, 이스라엘입니다.
마 24:32-3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
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 비유에서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했습니다.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땅을 되찾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그곳에 이슬람성전이 세워져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재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트럼프가, 많은 나라들이 반대를 했지만, 이스라엘의 수도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이라고 인정을 하고,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는 징조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과, 7년 대 환란의 시작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가, 유대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 보좌관입니다.
그는, 성전재건을 위해서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그리스도의 재림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와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살아야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믿음으로 준비해야합니다.
2), 두 번째의 징조입니다.
딤 후3:1-4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 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 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세에는, 도덕과 윤리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양극화가 일어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때,
이 전쟁을 해결해 주겠다고, 해결사로 나타나는 것이 적그리스도입니다.
트럼프는 전 세계 나라들 마다 무역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무역전쟁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고통을 줄 수 있는 전쟁입니다.
3), 세 번째 징조는,
다니엘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학이 얼마나 발달을 했는지,
시속 7000km로 물체가 날아다니는 극초음속 시대입니다.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 개발로 상상을 초월하는 지식들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지식이 발달하면 할 수 록, 세상은 인본주의로 발전하며고, 하나님을 배교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세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몇 년 있으면, 자율주행차가 보편화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것이 편리하고, 편안 할수록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거추장스러워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눅 18:8에서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한 여자가 다낭성난소증후군(혈루증)으로 하혈을 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병은 한달 내내 생리통으로 배를 움켜쥐고서 아무 일도 못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동네를 지나가실 거라는 소문을 듣고 무조건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어쩐지 자기의 고통스런 병이 쌱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을 뚫고 들어가 어찌어찌하여 손을 쭉 뻗어 예수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그런데 뭐든 다 아셔버리는(?) 예수님께서 그 와중에도 그녀를 돌아보시며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병이 나아버렸습니다.(마9:22) 누가 병을 고쳤습니까? 예수님이십니까? 옷입니까? 본인입니까?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믿음’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자기 자신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맘씨 좋은 너털웃음으로 음허허허허허허... 그렇게 웃고만 계실 뿐입니다. 자꾸 밖에서 찾아봐야 소용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그것은 이미 내 안에 다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것이 아니고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내가 누구이며,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내가 고민하고 있는 그 문제의 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귀한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밖에서 찾아봐야 피곤하기만 할 뿐 못 찾습니다.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다 보일 것입니다.
Ⅱ,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하는 이유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17절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계20:12-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고, 그 후에는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즉 인류의 역사에는 종말이 있으며, 그 때에 주님이 재림하시고, 창조 이래 죽었던 모든 사람이 부활하고, 하나님의 백 보좌 앞에서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와 불신자는 같이 심판을 받지만, 심판의 내용이 다른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성도들은,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지만,
불신자는 죄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날에는, 각 사람의 모든 행위가 하나도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은밀한 생각과 행위까지도 다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 두 번째의 사망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Ⅲ, 거룩한 삶을 사는 이유는, 내세에 대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21절에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미래가 없는 삶,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는 그 다음이 나아지리라는 믿음도 없고, 소망도 없는 것은 불행입니다.
소망도 없고,
믿을 곳도 없는 우리에게,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 보좌 심판 앞에 펼쳐진,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 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망하지 않고,
사방에 우겨 쌓임을 당해도 꺼꾸러뜨림을 당하지 않고, 거룩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말씀은 첫째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말씀합니다.
두 번째는,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거룩 하라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은이나 금이나 없어질 것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핏 값으로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고 권면했던 그 말씀들이
여러분에게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