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1:1-8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 1장)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참고]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1차 석방된 후 마게도냐 지역에서 기록한 것으로 본다(A.D. 63년경).
그러나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다시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는 로마 대화재(A.D. 64년경) 직후 네로 대박해 때일 것이다(A.D. 64-66년경).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A.D. 67년경 로마 인근 오스티안 가도(Ostian Way)에서 목이 잘려서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 당하기 직전인 A.D. 66년 말-67년 초순에 로마 감옥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1:8; 2:9; 4:6-8).
(묵상/딤후 1:1-8)
◆ 거짓이 없는 믿음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오늘 본문에서 ‘밤낮 간구’, ‘청결한 양심’, ‘네 눈물’ 등, 모두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볼 수 있는 항목들을 발견한다. 신앙 생활하면서 이런 항목들이 있는가? 이런 사람이 주변에만 있어도 그는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 성도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기란 정말 어렵다.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이런 거짓이 없는 믿음을 보았다. 디모데의 이런 진실한 믿음은 외가 쪽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외할머니로부터 시작해서 어머니, 그리고 디모데에게까지 3대째 이어져 온 셈이다.
나는 이런 것을 보면서 오늘날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신앙교육 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수백 명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아들이 말씀과 믿음에 굳게 섬으로써, 아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인도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회 봉사는 열심히 하지만, 정작 자식들에게는 별다른 신앙교육을 하지 못한 부모들은 정말 회개해야 한다. 자식이란 하나님께서 내게 특별히 맡기신 존재인데, 그에게 신앙 교육을 안 시킨 것은 직무 유기다. 부모는 누구보다도 자식에게 최우선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내 품에 있으니까 아무 때고 천천히 시키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카자흐스탄의 선교사 부부는 그의 딸아이를 어려서부터 말씀을 암송하게 했는데, 아이가 암송을 잘하자 점점 늘리다가 결국 신약성경 전체를 암송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 아이를 아주 총명하고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히브리 대학에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려고 한다. 20대 청년이 확고한 믿음에 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전을 가슴에 품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사랑하는 내 자녀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권할 수 있을까?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정말 불행해진 것처럼 보인다. 늘 쫓기고, 감옥에 갇히고, 매 맞고, 조롱당하고, 굶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지금 죽기 전에 이런 삶을 후회하기는커녕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자기와 같은 삶을 살아주기를 권한다.
오, 도대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삶이기에 그렇게 모진 고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권하는가?
영원한 생명, 빛나는 천국, 하나님의 영광, 단순히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이론이 아니라, 바울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체험했다. 이런 믿음의 경지가 얼마나 놀랍고 도전이 되는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고난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매우 영광스러운 삶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뒤에 그 얼굴에 영광의 빛이 서려서 얼굴을 면사로 가렸다. 영광의 빛으로 얼굴이 빛나다니 얼마나 영광인가?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맡았는데, 주님께서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하셨다(마 11:11). 한마디로 세례 요한은 모세보다 더 위대한 사역을 한 것임을 주님께서 인정하신 셈이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런 세례요한보다 우리가 더 큰 자라고 하신 것이다. 모세, 세례 요한…. 이런 기라성 같은 사람보다 우리가 더 큰 자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바울은 이 말씀이 바로 사역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후 3:9). 오,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역이 모세보다, 세례 요한보다 더 영광스러운 사역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전하는 사역을 귀하게 여기자. 영광스러운 직무라고 생각하자.
조금 힘들다고 불평하지 말자. 바울처럼 신앙 때문에 매 맞고, 굶고, 감옥에 갇힌 정도도 아니면서, 겨우 교회 안에서 작은 인내와 사랑조차도 실천하기 힘들어하며, 형제들과의 작은 갈등 정도도 못 견뎌 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이 권면을 이제 교회 안에서 수고함으로 실천하자. 고난도 아닌 수고조차도 마다해서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광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복음을 위한 고난과 수고를 기꺼이 감수할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로와 평안, 성령의 임재와 능력…. 이러한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을 한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기꺼이 아들에게 이런 영광스러운 사역에 초대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전 1:5)
주님,
저를 하나님 나라 사역자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기쁨으로 충성하겠습니다.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제 마음을 잡아주시고,
십자가 군병 답게 행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딤후 1:1-8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