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사단 동년배 전우 집합!
며칠 전 일이다. 늦은 오후 시각인데 나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는 서른 명 안팎의 실버들을 전송하고 있었다. 그들은 태국 파타야에서 열리는 국제합창대회에 참가하는 용인 문화원 시니어 합창단원들이다. 나는 그들 틈에 끼어 객(客) 답지 않게 마구 떠들고 때론 파안대소에 휩쓸렸다.
그러나 내가 그런 한가한 일을 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난 <실버넷 뉴스> 기자로서 용인에서 거기까지 그들을 따라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며 온갖 각오들을 하나하나씩 취재 수첩에 옮겨 적는 게 내 임무였다. 스마트폰도 끊임없이 만지작거려야만 했다. 귀갓길엔 난생 처음으로 인천 국제공항 지하철을 이용했으니 시쳇말로 ‘출세했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고말고.
다음 날에 내가 쓴 ‘출국’ 기사를 읽으면서 난 적이 만족스러워했다. 특종이란 진단도 스스로 내리고 있었다. 20수년 전에 내 노인 학생 30명을 인솔해 갔었고 열흘 후에 떠나는 우리 가족 여섯 명의 여행 목적지인 파타야….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히고설킨 데인데 싶어 좋은 결과를 기대했고말고. 아니나다르랴 카톡으로 날아온 소식은 ‘은메달 획득’이었다. 나는 지금 그 후일담을 다시 기사로 한 꼭지 만들어 놓고 출국하려 한다.
그날 나는 뜻밖에도 엄청난 수확 하나를 거둔다. 이제 그걸 자랑삼으려 하는 것이다. 용인에서 버스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실버로 보이지도 않는 어떤 ‘남자’가 나를 아는 척하는 게 아닌가? 내 하사(下士) 모자에 시선을 꽂기 무섭게 말이다. 그러고서 그는 거수경례 흉내를 내더니 구호를 외친다. 충성!
나는 얼른 눈치를 챘다 그가 직업 군인 출신이란 걸. 오랜 반군인(半軍人) 행세를 해 온 내겐 그게 섬광(閃光)이었다. 맞았다. 몇 마디 주고받는 동안에 그가 내 모부대(母部隊) 26사단 포대대장이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43년생 육사 22기 출신 다른 부대 연대장까지 지내고 예편한 전우. 나는 인천까지 가는 동안 버스에서 그의 손을 계속 잡았다 놓았다 했다. 비록 26사단 출신은 아니지만 나와 갑장인 또 다른 예비역 대령이 또 있었으니 그 또한 기뻤고. 모든 전우 즉 장병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산이다.
난 근래 참으로 행복한 느낌에 푹 빠져 있다. 난 42년생이다. ‘빼기 일’ 혹은 ‘더하기 일’ 즉 41년 혹은 43년생을 동년배로 여기는데 거기 딱 맞는 26사단 출신 장병을 더러 만났기 때문이다. 아래에다 혈육만큼 소중한 그들의 면면을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면서….
<1>김의배: 나와 비한 시기에 26사단 예하대대 정보장교로 근무. 현 <실버넷뉴스> 편집국장. 같은 교육자 출신. 문학 동지(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사진작가. 중위 예편(42년생)/ <2>서성식: 부산 사범학교 동기 동창. 사범학교 입학 성적 수석. 서울 법대 진학. 외환은행 고위직 역임. 26사단장실 근무. 하사 예편(42년생)/ <3>고요한: 26사단 태권도 시범단 출신. 태권도 4단. 큰 회사를 경영하다 지금은 가수 활동 중(대한가수협회 정회원). 하사 예편(42년생)/ <4>이병수: 소위 중위 시절에 26사단 예하 포병 대대 근무. 육군대학교 졸업. 육군 중령 예편. <실버넷뉴스> 기자(41년생)/ <5>양정성: 연세대 졸업. 이학 박사. 중등학교 교사 근무하다 대학으로 옮겨 교수로 정년퇴직. 26사단 73연대 사병 복무. 일등병 전역(大在 중 입대). 현 <실버넷뉴스> 기자 (41년생)/ <6> 강윤호: 소위 시절 26사단 의무 중대 근무. 중령 예편. 대한 건설협회 기획 감사. 종합 광고업계 임원 역임(41년생). <실버넷뉴스>기자(41년생) / <7>이량: 육군사관학교 22기 졸업. 26사단 포병대대장(중령 시절). 이후 타 부대 연대장. 현 용인문화원 시니어 합창단 단원. 색소포니스트. 대령 예편 (43년생)/ <8>이원우: 26사단 부관참모부 사병 복무. 하사 예편. <실버넷뉴스 >기자(42년생)
이만하면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멤버다. 아니 찬란하다. 사상 최고의 ‘예비역 분대(分隊)’라 우긴들 누가 이의를 제기할 건가? 난 며칠 전 사단 공식 카페에다 부관참모부 출신 옛 전우들을 찾는‘광고’까지 실었다. 그들이 합류한다면 소대 병력(?)은 되리라 믿는다.
안 그래도 이병수 ‧ 강윤호 기자가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무조건 우리 한 번 모이자는 것. 분대장은 제일 연장자인 양정성 전우가 맡고 나는 ‘사단가’를 가르쳐서 전우애를 불태우고 싶다. 그러고 나서 같이 사단사령부를 방문한다? 사단장이 ‘대선배’들 앞에서 거수경례를 올려붙이리라. 공격!
--최고의 신문 <실버넷뉴스>에서 전재
<한국 최고의 사단 군악대장 허수진 대위와 손자 박종빈. 허수진 군악대장은 특급전사다.>
<난 이 친구들이 참 좋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나이 차이지만, 소중한 나의 전우들이다.>
<나와 손자가 군복을 입고 섰다. 종빈이가 총을 들고 겨누고 있다(물론 적군이다.) 진입로 옆인데, 이 진입로를 수도 없이 걸어 부대 출입했었다, 50년 전에. 붓으로 사단장 표창장을 썼는데 그 붓이 많이 닳으면 의정부 문방구로 나갔다. 주내 검문소를 거친다. 지금은 없다. 연병장 뒤에 후게소가 있어 면회객이 오면 거기서 기다리곤 했다. 그 옆에 洗心橋라는 다리를 놓고 조그마한 연못을 만들었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 글씨는 내가 아니고 병참 참모부의 어느 병사가 썼다. 그가 보고 싶다. 세계 최강의 기계화 보병 사단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