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卒記'考 / 草堂 辛奉承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아주 교훈적인 말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큰 모순을 안고 있는 말이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명예로운 삶이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결코 오명(汚名)이거나 악명(惡名)을 남기겠다는 염원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서 관 뚜껑을 닫아보아야 그 진면목을 안다는 말도 살아 있을 때의 언동에 양시(兩是)거나, 양비(兩非)를 쫓게 되어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한 것…, 그런 잘 잘못을 살아있을 때 판정하기 어렵기에 관 뚜껑 운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역사를 살피노라면 명예로운 이름을 남긴 사람보다 오명이거나 악명을 남긴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오명을 남긴 사람들은 때묻고 치졸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자신의 삶이 얼마나 치졸했는지, 또 얼마나 때가 묻고 부패했는지에 대한 판별을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또 일단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짧은 생각 탓으로 자신의 너절하게 더렵혀진 삶이 그 오명과 함께 후세에 전해 질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다.
명예로운 이름을 남긴 사람이나 오명이거나 악명을 남긴 사람들의 살아있을 때의 문장을 읽어보면 똑같이 아름답고 유려하게 쓰여져 있으며, 한결같이 교훈적인 내용을 구사하고 있다. 그들이 입에 담은 말을 들어보면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듯한 현자(賢者)의 말들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그들이 저지르고 다니는 행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다시 말하면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상반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역사인식에 대한 성찰이 없는 이러한 모순이 문자로 적혀서 후대에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들이 아무리 철면피라도 언행을 조심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살아서 그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오만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오만이 쌓이면 부정이 싹트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악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 고금의 이치다.
졸기(卒記)라는 말은 '죽음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국보 제151호요, 유네스코에서는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선정하여 인류의 보배임을 인정한 [조선왕조실록]에는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 날짜의 [왕조실록]에 '졸기'를 적어서 고인의 생애를 뒤돌아보게 하고 있는데, 역사인식이 투철하지 못한 민족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정부에서 편찬하는 공식문서에 공직에 관여한 한 인간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 그것이 그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듯 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가.
물론 그 기록은 사관(史官)들이 쓴 것이지만, 또 다른 사관들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서는 정부의 공식문서인 [실록]에 등재될 수가 없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그 기록이 관찬(官撰)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완벽한 신뢰를 보내지 않으려는 우를 범한다. 소위 말하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편견은 [실록]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무지가 빚어내는 푸념일 뿐이다.
[실록]에서도 '졸기'라는 기사로 등재된 인물들은 그 기사가 다소간 비판적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큰 영광일 것임이 분명하다. 문자그대로 죽어서 이름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졸기'를 적는 사관들의 냉정한 지성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고, 바로 그 냉정한 지성에 의해 조선왕조가 온전하게 보존된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사관에 의해서 쓰여진 '졸기'가 또 다른 사관들에 의해 검증된다는 역사인식의 지엄함이 우리를 소름끼치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승자의 기록'이라는 시각을 사관들 스스로가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미 채택된 '졸기'를 등재한 다음, 다시 [사신은 말하기(史臣 曰)를]이라고 명시한 '졸기'를 중복하여 등재하여 공정을 기하고자 했다. 물론 '사신 왈'이라는 비평기사는 모든 공직자의 졸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집필하지 않은 사관이 읽었을 때 불만스럽게 느껴지는 경우에만 '사신 왈'이 첨가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직에 봉사하고 있지만, 때로는 봉사한다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오만하고 방자하고 또 부패한 사람들의 행적도 수없이 많다.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관보(官報)와 같은 정부의 공식문서에 그들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졸기'를 적게 한다면 요즘 사람들은 인권의 침해라고 거부할지도 모른다. 역사 앞에서 경건하지 못한 그런 오만한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해서라도 현대판 '졸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졸기(卒記)란
조선 시대에 어떤 인물이 사망했을 때, 실록을 편찬하는 사관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경우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적은 기록을 말한다. 이 글은 일단 사초에 기록된 후 실록을 편찬할 때 첨가된다. 졸기의 대상은 반드시 긍정적인 인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역신일 때도 후세의 경종을 올리기 위해 졸기를 남기기도 했다. 여하튼 사관에 의해 졸기가 기록될 정도라면, 당시 조정에서 비중 있는 인물로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제문(祭文)은
조선 시대에 어떤 인물이 사망했을 때, 그가 조정이나 왕실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판단되었을 경우에 왕이 그 사람의 영전에 내리는 글이다. 대개 왕의 명을 받은 사자가 상가를 찾아 조문을 하고 제문을 읽게 된다. 제문의 경우도 사관에 의해 사료로서의 중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실록을 편찬할 때 첨가된다.
출처 : http://me2.do/FNBdGGmV
[출처] '卒記'考 / 草堂 辛奉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