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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는 일에도 마땅히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고 하는데--- 어떤 법도였을까? 딱히 酒法이란 法은 없지만 어느 정도 예를 지켜야 할 道理정도로 생각했다. 그냥 너무 취해 실수하지 말라는 정도의 너무 권하지도 너무 사양하지도 말라는 정도의 예의범절 수준이었다. 하여 선조들은 술도 음식이라 했던가?
*조선 전기의 문장가 손순효(孫舜孝)는 好酒家로 유명했다. 손순효가 자주 취하자 성종은 앞으로 석잔이상 마시지 말라고 명했다. 어느날 성종이 찾았을때 또 취해서 나타나자 꾸짖었는데 "대접으로 석잔 마셨을 뿐입니다"라면서 즉석에서 어려운 외교문서를 작성해 놀라게 했다고 <오산설림(五山說林)>은 전한다. 실록에도 "손순효는 늙고 쇠약하여 본래 술로 인한 실수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성종의 말이 기록돼 있는데 "소문쇄록"에는 손순효가 죽으면서 "좋은 소주 한병을 곁에 묻어달라"라고 말해 따랐다고 할 정도로 애주가였다.
조선은 국왕과 신하 사이에 자주 주연이 벌어졌고 세조는 정난(靖難) 동지들과 자주 어울렸다. 신숙주(申叔舟)가 영의정이었을때 구치관(具致寬)이 새로 우의정이 되자 세조는 두 정승을 불러놓고는 "신정승"을 불러 신숙주가 대답하자 "나는 새 정승을 불렀다"라며 벌주를 내리고 "구정승"을 불러 구치관이 대답하자 옛 정승을 불렀다면서 벌주를 내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임금이 부르는데 대답이 없다"면서 다시 벌주를 내려 모두 취했다는 내용이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전한다. 세조도 성종처럼 술에 관대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다른 술자리에서 세조가 신숙주에게 "나의 팔을 잡으라"고 했는데 너무세게 잡아 비명이 나왔다. 세조는 "나는 강하지만 너는 이러면 안된다"라고 경계했다.
그렇다면 술을 마실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숙주의 동생인 신말주(申末舟) 선생은 "忠臣은 不事二君"이라는 유교적 가치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는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부인 설씨의 고향 순창으로 내려가 자신의 호를 딴 "歸來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말년을 자연과 벗하며 살다간 선비였다. 선생이 순창에 내려가서 지은 "십로계축(十老契軸)"이라는 글에는 그 지역의 노인들과 함께 모여 술먹는 계를 조직한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글은 어떻게 술을 마셔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지혜롭고 실용적인 조언을 주고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인즉 첫째 술을 먹는 연회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검소하고 간략하게'이다. 둘째는 안주(按酒)는 한두가지로 준비하여 검소하게 차리고 술은 적당히 마시라고 권한다. 그럼으로써 그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우정을 돈독히 하는데 힘쓸것이지 과음하여 토하고 기운을 상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셋째 호과자정(壺果自呈)이라고 해서 술과 안주는 각자 준비하여 모이자고 제안한다. 한사람이 준비하다 보면 비용이 너무 과다해지기 쉬우니 자신이 먹을것은 자신이 준비하자는 합리적인 제안인 것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말은 "주불강권 객불고사(主不强勸,客不固辭)" 즉 손님을 초대한 주인은 억지로 술을 권하지 말것이며 초대받은 손님역시 지나치게 사양하지는 말아야 한다. 는 것이다. 술을 권하든 마시든 서로를 배려하며 마셔야 한다는 아름다운 술문화 얘기가 이글에 꽉 담겨있다.
부어라 마셔라 취하고 또 취해서 이밤이 새기전에 춤을 춥시다--- 이런식은 곤란하다. 일찍이 공자는 경고했다. "樂而不淫"하라고--- 덜취해 오래살라는 뜻이 담긴 "안주 안 먹으면 사위 덕 못본다" 는 속담이 있다. 권하고 마시며 취하기 전에 按酒를 꼭 챙기시라~ 按酒는 "술기운을 누르다"로 술을 마실때 너무 빨리 취하지 않게 하거나 건강을 위해 술에 곁들여 먹는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옛 선비가 제안했던 술문화가 오늘날 음주 습관을 생각케 한다. 특히 우리는 옛부터 주거니 받거니 하는 酬酌문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시기에 따라 약도 되고 독이 되는 지나친 음주의 폐해중 가장 무서운것이 "전도착란(顚倒錯亂)"으로 술에 취해 앞으로 고꾸라지는지 뒤로 자빠지는지도 분간을 못하는 것이다. 근자 술때문에 벌어지고있는 일련의 사태들~ 고위공직자를 포함 정치인들. 軍. 판검사 교수 아니 연예인들에 이르기까지 술때문에 패가망신하는꼴을 연속으로 보고있지 않은가? 볼라치면 지금 대한민국이 술독에 빠진꼴이다. 주법은 없소이까?
아~ 술에 붙여진 이름들에서 정신이 번쩍 든다. 玉友_黃嬌_天乳_甘液_金花 그리고 濁酒는 賢人 淸酒는 聖人이라고 불렀다. 李圭景은 "청명주변증설(淸明酒辨證說)"에서 조선 각지의 名酒 넷을 들고있다. "대저 동방의 군읍들에 명주가 있으니 평양의 감홍로(紺紅露) 충청도 한산의 소국주(小麴酒)와 강원도 홍천의 백주(白酒) 전라도 여산(전북익산부근)의 호산춘(壺山春)이 일국의 이름난 명주다"라고 했다. 오~ 鄕愁를 달래주는 명주들 아닌가?
술은 마시기와 종류 그 때에 따라 藥酒가 되고 壽酒가 되기도 한다. 조선중기 시인 간이(簡易) 최립(崔립)의 시중에 "섣달 그믐 지새는 술은 모름지기 초주와 백주라네(小歲觴須椒柏온)"라는 시구가 있다. 초주(椒酒)와 백주(柏酒)는 새해 첫날 마시는 술이다(*온자는 술빚을온자임) 당나라 서견(徐堅)이 편찬한 <初學記>에는 산초의 꽃이나 열매로 담아서 정월 초하루에 집안 어른에게 올리는 술이 초주라고 전하는데 장수를 비는 술이다. 측백나무 잎으로 만든 백주도 나쁜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어른의 장수를 비는 술이었다. 그래서 새해 첫날 마시는 술을 장수를 빈다는 수주(壽酒)라고 한다.
철종은 재위8년(1857년)에 回婚을 맞이한 영의정 정원용(鄭元容)에게 축하주와 풍악을 내렸다. 철종이 술한잔을 가득 따라 준후 銀甁과 銀盃를 하사하자 정원용은 "신은 본래 술을 마실줄 모르지만 은병과 은배를 하사받았으니 이제부터 술을 마시겠습니다"라고 답했고 91세까지 장수했다.
아~ 이렇게 좋은 술임에도--- 왜? 세종 15년(1433년)에 반포했던 음주를 경계하는 교지문은 이렇다. "대개 들으니 술자리를 베푸는것은 술 마시는것을 숭상하기 위한것이 아니고 神明을 받들고 빈객(賓客)을 대접하며 나이많은 이를 부양(扶養)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시작해서 술때문에 패가망신한 중국의 여러 사례를 들었다. 그 사례중 하나는 "후한의 사례교위(司隸校尉) 정충(丁沖)이 자주 여러 장수를 찾아다니며 술을 먹다가 창자가 썩어 죽었다"라는 사레등이다.
그러나 음주 풍습은 교지대로 잘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세종의 아들 세조는 술자리와 政事자리가 구분이 안될정도의 애주가였고 후대인 예종 성종도 술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술술! 외로움을 술로 달래면 다음날 괴로움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다시 술을 찾는다. _그래_ 괴로움 견디는것보다 외로움 견디는게 훨씬 힘든 일이니까---" 그렇다! 술은 마시면 취하고 술기운을 누르는것은 按酒다.
때가 때인지라---? 仲秋佳節 이다. 올해는 유난히도 추석이 빨리 왔었죠. 하여 태음력(太陰曆)으로 閏9월이 또한번 오는고야~ 따라서 내년 추석은 10월에 온다. 豊饒와 幸福 그리고 감사의 계절이다. 안주는---? 콩깨,호두잣이냐 밤고구마냐? 쑥떡하고 꿀떡이구나! 아니 이건 주먹떡이잖아? 뭐라 계피떡이라고--- 여봐라~ 풍악을 울려라~ "달아달아 밝은달아 달아달아 둥근달아 이태백이 놀던달아~"
*두둥실 둥근달~Super moon~다이도 바이따 ,마이 좀 또이 또이 해(술독에 빠져서 發音이 좀 그러네 ~ ??!). 술과 안주여! 平安을 주오소---
ㆄ&❥술버릇---?
이웃집 여자들이 모처럼 만나 서로 흉금을 털어놓으며 한마디씩 했다. "세상 남자들이 모두 다 술마시는 나쁜 버릇을 버렸으면 좋겠어" 그러자 다른 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어머 저하고 동감이예요 저도 지난주 남편 술주정때문에 한바탕 싸움을 했지 뭐예요 그리고 남편하고 일주일 내내 입을 다문채 한마디도 안했는데 남편이 못 견디겠던지 결국 어제 저녁엔 말문을 열더라구요" "뭐라고 했는데요?" "소주잔 어딧어?---"
#!&§:술은 바보의 혀이며 건달의 마음이다/酒子의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