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 : 28 - 없는 것들을 택하사 - 고전 1 : 30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고전 1 : 28 - 없는 것들을 택하사 -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셨다고 하였다.
세상의 천한 것들이란 초대 교회 당시의 노예 계층, 창기, 문둥병자 등과 같이 천대받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멸시받는 것들은 같은 뜻이다.
'없는 것들'이라는 <메 온타>는 존재가 없다는 말로서 존재 가치가 없음을 의미하며, 이상은 모두 같은 의미이다.
1]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천한 것들'의 헬라어 '아게네'(*)와 '멸시받는 것들'의 헬라어 '엑수데네메나'(*)는 낮은 계급에 처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선택이 적용됨을 강조한다.
이러한 표현은 당시 고린도에 노예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이 처한 특별한 상황에 적합한 것이었다.
또한, 바울은 '없는 것들'(*, 타 메 온타,the things that are not)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회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고 필요가 없는 자들까지도 선택의 대상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2]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있는 것들'의 헬라어 '타 온타'(*)는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는 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유력한 자일지라도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을 '선택하심'과 '폐하심'의 주체자로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이 대조법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신분은 구원을 얻기 위해 아무런 효력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Mare).
본 절의 의미는 겉으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들이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부르심에 응하여 구원을 얻은 자들이 많고, 오히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자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여 멸망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상에서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잘 못 믿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그들은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구원 얻는 길이 이렇게 너무나 쉽기에 잘난 사람들이 못 믿는 것이다.
바울은 또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의 약한 것들,’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많이 택하시고 구원하셨다.
그들은 과거에 세상에 속했던 미련한 자들, 약한 자들, 천하고 멸시받는 자들,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교회 대다수 교인은 그런 자들이다. 그들은 머리가 좋고 말 잘하는 자들이 아니다. 좋은 학교 출신도 아니다.
그들은 건강한 자들도 아니며 세상적으로 존귀하거나 인정받거나 잘난 자들이 아니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입었고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천한 자들과 멸시받는 자들과 없는 자들을 택하여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지식과 삶을 통해서 그런 일을 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의 근본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주와 인간의 근원을 알게 되고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고 도덕의 근거와 내용을 알게 된다. 이것은 지혜 중의 지혜이며 지식 중의 지식이다.
또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된 삶은 세상의 빛이다.
그들은 거짓되고 악한 세상 속에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생활을 한다.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소망과 용기를 가지며 그들에게는 평안함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공급하신다. 그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므로 세상 사람들은 성도의 이런 점들을 보고 놀란다.
고전 1 : 29 - 자랑하지 못하게 -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아무도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힘 있고 잘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가 힘들므로 오히려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약하고 소망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더 잘 받아들이므로 실제로는 그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자들이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무 육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사 사륵스'(*)는 문자적으로 '모든 육체'를 가리키며 비유적으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사람이 자신을 내세워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죄인이며 또 죄의 결과로 많은 고생과 슬픔과 허무함 가운데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이다.
사람의 육신적, 물질적, 세상적 자랑은 헛되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지 말자. 자신의 총명함이나 자신의 구변이나 출신 학교나 학벌을 자랑하지 말자.
자신의 미모나 건강이나 가문을 자랑하지 말고 자기 부모나 남편이나 자식을 자랑하지 말자. 또 기술이나 직업이나 실력을 자랑하지 말고 자신의 업적이나 성공이나 재산을 자랑하지 말자.
우리는 인간의 모든 교만을 꺾고 자신의 죄악 됨과 허무함과 무가치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으로 겸손해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의 근본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주와 사람의 근원을 알게 되었고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었고 또 도덕의 근거와 내용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지혜 중의 지혜이며 지식 중의 지식이다. 또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된 삶은 세상의 빛이다. 그들은 거짓되고 악한 세상 속에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산다.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소망과 용기를 가진다.
그들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공급하신다.
그들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의 이러한 지식과 삶을 보고 놀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것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는 자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무식하고, 무력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절대 약함에 머무를 필요는 없다.
세상의 지혜자와 권력자들은 자신을 믿고 살다가 멸망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힘있게 살아가면서 끝내는 세상을 이기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비록 세상 사람들보다 약한 상태에서 구원받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기는 지혜를 소유하게 되었고,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을 소유함으로써 만물을 소유한 능력 있는 자들이 된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가 어디에 속한 자들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만 우리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에 속하여 있는 것이다. 세상의 선진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자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사람'임을 자랑해야 할 것이다.
고전 1 : 30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중생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救贖)의 은혜와 복 안으로 들어가 그의 의와 생명 안에 거하며 그의 영광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1]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하나님께로 부터'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스 아우투'(*)에서 전치사 '엑스'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있게 하시는 궁극적인 동인(動因)이 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헬라어 원문에 나와 있는 반의적인 접속사 '데'(*, '그러나')와 강조형 주격 대명사 '너희'(*, 휘메이스)는 본 절이 앞 절과 강한 대조를 이름을 보여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말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음을 묘사한다.
2]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 데우'(*, '하나님께로 부터')는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출처가 하나님이심을 지시한다.
3]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다.
우리는 과거에 지혜가 없이 정신적 혼돈 속에 살았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이시며, 사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며 무엇이 선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지혜가 되셔서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 바른 대답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의 의로움이 되셨다. 의는 율법을 다 지킨 것을 말한다. 세상은 불의하고 죄악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율법의 요구 곧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완전한 의를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의 거룩함이 되셨다.
우리에게는 거룩함이 없었다. 죄악 된 세상은 더럽고 불결하며 거기에 사는 죄인들은 더럽고 불결하였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 모든 더러움과 불결을 다 씻어주셨다. 그는 우리의 죄를 씻는 샘이 되셨다.
* 슥 13: 1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구속(救贖)함이 되셨다.
구속은 값 주고 사서 건져내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다 지불하시고 죄와 그 형벌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救贖)함이 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된 것, 의인된 것, 성도된 것, 천국 시민된 것, 영생 얻은 것, 이것들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해야 한다.
바울은 그의 편지를 읽을 독자들에게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었음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본 절 초두에 언급한 바 있는 '너희'를 '우리에게'(*, 헤민)라고 바꿔 쓰고 있다.
본 절에서 '지혜'라는 개념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의 개념이 별개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오히려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지혜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속죄(贖罪)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가 '의, 거룩, 구속'의 개념으로 표현되는 것이다(Alford, Mare, Morris, Meyer).
위에서 '의로움'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의롭다함'을 입은 것, 곧 '칭의'를 의미한다.
그리고 '거룩함'이란 그리스도와의 영적 고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자들은 부정과 불법에서 벗어나 의의 종이 되는 것이다.
* 롬 6: 19 -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마지막으로 '구속함'이란 적당한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자유롭게 한다는 뜻에서 전용(轉用)된 말이다.
* 출 21: 8 -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상관하지 아니하면 그를 속량하게 할 것이나 상전이 그 여자를 속인 것이 되었으니 외국인에게는 팔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가로 인간을 죄의 속박에서 풀어놓으셨다는 뜻이다.
* 엡 1: 7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골 1: 14 -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히 9: 15 -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