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2024.7.25. 성 야고보 사도 축일)
김재덕 베드로 신부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이 말씀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만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 높아지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목받고 싶은 마음, 높아지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등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부르심이나 직분을 받게 되면 쉽게 찾아오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 안에 하느님을 따르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립니다.
‘하느님 일의 주인’이 되어 버려,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기도’는 메말라 가고 복음적 판단도 흐려지게 됩니다.
시기, 질투, 상처, 미움, 증오, 분노, 교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야 할 부르심 또한 자신을 드러내고 돋보이게 하려는 도구나 권력으로 써 버립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도직’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질그릇’에 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질그릇’은 바오로 사도 자신을 뜻합니다.
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보물을 담을 만한 그릇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사도직이 바오로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볼품없는 그를 통하여 당신 힘을 드러내시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자리는 ‘구유’였고, 마지막 자리는 ‘십자가’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볼품없고 낮은 모습으로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부르심과 직분이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려면 우리 스스로가 질그릇이 되고, 주님의 거처인 구유와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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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사도는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어부였던 야고보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동생 요한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베드로 사도, 요한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 가운데 하나다.
열두 사도에는 야고보가 둘 있는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소) 야고보’와 구분하여 ‘큰(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야고보 사도는 42년 무렵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였다.
특히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공경을 받고 있는데, 그곳에는 사도의 이름으로 봉헌된 유명한 성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