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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5년 전 그 회사에 입사했더라면 10년 전 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20년 전 그 길을 선택했더라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한숨이 나오지 않으셨나요? 이제 와서 뭐 어쩌겠어? 이미 지나간 일인데 하지만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그 다른 인생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요.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요. 믿기 어렵죠. 과학자들이 아주 작은 입자를 관찰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전자 하나를 벽에 쏘는 실험이었어요. 전자가 벽을 통과할 때 어디로 갈지 궁금했던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과학자들이 관찰하지 않을 때는 전자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했어요. A라는 곳에도 있고 B라는 곳에도 있고 C라는 곳에도 있었습니다. 마치 분실수를 쓰는 것처럼요. 하지만 과학자들이 자 이제 어디 있나 보자라고 관찰하는 순간 전자는 한 곳에만 나타났습니다. A든 B든 C든 한 곳에만요. 처음에 과학자들은 실험 장비가 잘못된 줄 알았어요. 몇 번이고 다시 했습니다. 결과는 똑같았어요. 관찰하지 않으면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고 관찰하는 순간 한 곳으로 확정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관찰하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관찰하는 순간 하나의 현실로 확정된다는 거예요. 실험이 잘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을 위해 두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TV 리모컨을 들고 계신다고 상상해 보세요. 지금 2 1번 채널을 보고 계십니다. 드라마가 나오고 있어요. 주인공이 힘들어하고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계속됩니다. 그런데 채널을 돌려볼까요? 2번 채널에서는 코미디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웃고 있어요. 3번 채널에서는 다큐멘터리가 나옵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어요. 4번 채널 5번 채널 10번 채널 100번 채널 모든 채널이 지금 이 순간 동시에 방송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보든 안 보든 모든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에요. 그런데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수많은 채널 가능성 중에서 단 하나의 프로그램이 화면에 결정돼서 나타납니다.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여러 채널 중 하나가 선택되는 거죠. 당신의 인생도 똑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버전의 당신이 동시에 문제합니다. 부자로 사는 당신도 방송 중이고 건강하게 사는 당신도 방송 중이고 가난하게 사는 당신도 방송 중입니다. 모두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요. 다만 당신이 지금 선택한 현재 삶의 채널만 보고 있을 뿐입니다. 말도 안 돼요. 내 인생은 하나잖아요. 맞습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인생은 하나예요. 하지만 그것은 TV를 보는 사람이 한 채널만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에 하나의 채널만 보이지만 다른 채널들이 사라진 건 아니에요. 리모컨만 누르면 언제든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채널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당신 인생의 리모컨은 무엇일까요? 당신의 감정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보고 있느냐? 무엇에 집중하고 있느냐가 리모컨 버튼이에요. 매일 아침 눈 뜨면서 무슨 감정을 느끼시나요? 오늘도 힘들겠지. 일하기 싫다. 그 사람 보기 싫다. 그 순간 당신은 힘든 채널의 버튼을 누르면서 시작을 한 것입니다. 돈이 부족해. 그 순간 당신은 돈이 부족한 채널로 맞추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계속 그 채널만 보이는 거예요. 이제 조금 다른 예시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앞에 수백 개의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왼쪽으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가는 길 위로 올라가는 길 아래로 내려가는 길 모든 길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각 길의 끝에는 다른 미래가 이미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길 끝에는 성공이 있고 어떤 길 끝에는 가난이 있고 어떤 길 끝에는 풍요가 있습니다. 모든 길이 이미 만들어져 있어요. 당신이 걷든 안 걷든 그 길들은 거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게 될까요? 당신이 보는 길로 갑니다. 저 길은 험할 거야라고 보면 험한 길로 발이 향합니다. 저 길은 아름다울 거야라고 보면 아름다운 길로 발이 향해요. 한 걸음 한 걸음 당신이 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의식하든 못하든요. 과학자들은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주 작은 입자들을 관찰하는 실험을 통해서요. 입자는 관찰하기 전까지 모든 가능성으로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상태였어요. 하지만 과학자가 자 어디 있나 보자라고 관찰하는 순간 한 곳으로 확정됐습니다. 관찰하는 순간 정해진 겁니다. 보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관찰하는 순간 하나로 확정된다는 것 이것이 양자역학의 핵심입니다. 당신의 인생도 똑같아요. 모든 가능한 버전에 당신이 지금 동시에 존재합니다. tv의 모든 채널이 동시에 방송되듯이 모든 길이 동시에 펼쳐져 있듯이요. 그 중 어떤 것이 당신의 현실이 될까요? 당신이 리모컨으로 선택하고 보는 것이 현실이 됩니다. 지금 당신은 어느 채널을 보고 계신가요? 지금 당신은 어느 길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문제를 보고 계신가요? 해결을 보고 계신가요? 부족함을 보고 계신가요? 충분함을 보고 계신가요? 불가능을 보고 계신가요? 가능성을 보고 계신가요?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내일의 현실이 됩니다. 채널은 이미 다 있습니다. 길도 이미 다 만들어져 있어요. 부자인 당신도 건강한 당신도 행복한 당신도 이미 존재합니다. 리모컨만 누르면 됩니다. 그 길만 바라보면 돼요. 그렇다면 어떻게 리모컨을 누를까요? 어떻게 다른 길을 볼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 이제 당신의 인생으로 돌아와 봅시다. 당신이 5년 전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인생 그것도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10년 전 다른 길을 갔을 때의 인생 그것도 존재해요. 부자인 당신도 존재하고 가난한 당신도 존재하고 건강한 당신도 존재하고 아픈 당신도 존재합니다. 모든 버전의 당신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요. 다만 당신이 그 중 하나를 보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 그것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에요. 아니 말도 안 돼요. 내 인생은 하나잖아요. 맞습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인생은 하나예요. 하지만 경험하지 않는 인생도 존재합니다. 전자가 관찰되지 않을 때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듯이 당신의 인생도 동시에 여러 버전으로 존재하고 있어요.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왜 하필 지금 이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당신이 이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 실험에서 과학자가 보는 순간 한 곳으로 확정되듯이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의 현실로 확정됩니다. 내가 보고 있다고 나는 이런 인생 원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의식적으로는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보고 있었어요. 매일 아침 눈 뜨면서 뭘 생각하셨나요? 오늘도 힘들겠지. 또 그 사람 얼굴 봐야 하네. 난 왜 가난할까? 나는 안 돼. 이런 생각들이 스쳐가지 않았나요? 그 순간순간 당신은 힘든 인생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부족한 인생을 보고 있었어요. 안 되는 인생을 관찰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그것이 확정된 겁니다. 전자가 과학자의 관찰에 반응하듯이 현실은 당신의 관찰에 반응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보느냐가 무엇이 현실이 될지를 결정해요? 지금 당장 주변을 둘러보세요. 당신의 방 당신의 책상 당신의 삶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지난 몇 년간 무엇을 봤는지의 결과입니다. 부족함을 봤다면 부족한 현실이 만들어졌고 불안을 봤다면 불안한 현실이 만들어졌어요. 반대로 누군가는 풍요를 봤습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풍요를 먼저 봤어요. 그러니 풍요로운 현실이 만들어졌습니다. 누군가는 평화를 봤어요. 아직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만 평화를 먼저 봤습니다. 그러니 평화로운 현실이 만들어졌어요. 차이는 단 하나였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었느냐? 지금 이 말을 듣고 계신 당신은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내일의 현실이 됩니다. 과학자가 전자를 관찰하는 순간 위치가 확정되듯이 당신이 무엇을 관찰하는 순간 그것이 현실로 확정됩니다. 당신의 모든 가능한 인생은 이미 존재합니다. 부자인 버전도 건강한 버전도 행복한 버전도 모두 존재해요. 다만 당신이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계속 지금의 현실만 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이 바뀝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버전의 나를 볼 수 있을까? 리모컨을 누르면 채널이 바뀌는데 그렇게 간단한 일인데도 왜 우리 인생은 쉽게 바뀌지 않을까요? 매일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빌고 성공하고 싶어라고 간절히 말하는데 왜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인생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요? 여기에 결정적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리모컨을 누르는 방법 방법이 따로 있기 때문이에요. 잘못 누르면 채널이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채널에 고정되어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TV 앞에 앉아서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있는데 화면에는 지금 1번 채널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어요. 주인공은 가난하고 힘들고 불행한 모습으로 하면 가득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화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죠? 아 나는 10번 채널이 보고 싶어. 거기는 행복한 프로그램이 나오잖아 주인공이 웃고 성공하고 풍요롭게 사는 거 말이야. 하지만 눈은 여전히 일본 채널의 비극을 뚫어지게 보고 있어요. 리모컨은 손에 쥐고 있지만 10번 버튼을 누르지는 않은 채 그냥 1번 채널 화면을 응시하면서 10번이 보고 엑스포라고 주물거리기만 합니다. 채널이 바뀔까요? 절대 안 바뀝니다. 당신의 인생도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어요. 성공하고 싶어요. 부자가 되고 싶어요. 행복하고 싶어요 라고 간절히 말하면서도 눈은 여전히 실패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난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고 불행한 감정에 빠져 있어요. 나는 돈이 없어. 나는 능력이 부족해. 세상이 불공평해서 나만 손해 보고 있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채우면서 동시에 10번 채널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리모컨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서 채널이 저절로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예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나옵니다. 원하는 것과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겁니다. 원한다는 건 지금 내게 없다는 사실을 계속 직접 확인하는 행위예요. 나는 성공하고 싶어라는 말 속에는 나는 지금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야라는 뼈아픈 인정이 숨어 있고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라는 말 속에는 나는 지금 가난한 처지야 라는 쓰라린 고백이 깔려 있습니다. 그 순간 당신은 대체 무엇을 관찰하고 있는 걸까요?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부유함이 아니라 가난을 가능성이 아니라 한계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채널이 바뀔 리 없는 거예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없는 채널 부족한 채널 안 되는 채널에 점점 더 깊이 고정되어 버리는 겁니다. 과학자들의 실험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입자를 관찰하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가능성 중에서 딱 하나가 선택되어 현실로 확정됐습니다. 관찰한 것이 곧 현실이 된 거예요. 당신 돈도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요. 돈이 부족해라는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순간 당신은 부족함이라는 현실을 선택하고 관찰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면 부족한 현실이 더욱 확고하게 확정됩니다. 나는 안 돼라고 중얼거리며 거울을 보는 순간 당신은 안 되는 자신이라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면 안 되는 현실이 당신의 삶으로 굳어지는 거예요. 관찰한 것이 현실이 되는 게 우주의 법칙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하는 것을 멈추고 보는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라는 바람이 아니라 나는 지금 이미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어라는 현실을 보고 성공하고 싶어라는 갈망이 아니라 나는 이미 가치 있는 존재 대야라는 진실을 보고 행복하고 싶어라는 동경이 아니라 나는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해라는 평화를 봐야 합니다 말도 안 돼요 그게 무슨 거짓말이에요. 나는 지금 정말로 부족한데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라는 거예요. 천만에요. 거짓말을 하라는 게 절대 아닙니다. 채널을 바꾸라는 겁니다. 지금 1번 채널인 부족함의 현실을 보고 있다면 고개를 돌려서 10번 채널인 충분함의 현실로 눈을 옮기라는 거예요. 10번 채널도 지금 이 순간 이미 방송되고 있고 충분한 버전의 당신도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채널이 동시에 방송 중이듯이 모든 버전에 당신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요. 다만 당신이 그쪽 채널을 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갈림길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당신 앞에는 수백 개의 길이 동시에 펼쳐져 있는데 그 중에는 부족한 길도 있고 충분한 길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부족한 길을 선택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고 그 길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니까 자연스럽게 몸 전체가 그쪽 방향으로 쏠려서 계속 걸어가게 됩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더 깊숙이 그 길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나는 충분한 길로 가고 싶어라고 애타게 외치고 있는 거예요. 발은 부족한 길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면서 말이죠. 채널을 바꾸고 싶다면 다른 길로 가고 싶다면 먼저 고개를 돌려야 합니다. 시선을 옮겨서 충분한 길을 똑바로 바라봐야 하고 그 길이 당신 눈에 들어와야 비로소 발이 자연스럽게 그쪽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정말 간단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 채널에 머물러 있는지를 예민하게 의식하기 시작하세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어떤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나요? 오늘도 힘든 하루가 시작되겠지인가요? 바로 그 순간 멈춰서세요. 잠깐 나 지금 힘든 채널을 선택해서 보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채널을 오늘은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로 돌리세요. 거짓말처럼 들리나요? 전혀 아닙니다. 두 가지 모두 동등한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힘든 하루도 일어날 수 있고 좋은 하루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2개의 채널이 모두 이미 방송 중이니 당신이 어느 채널을 선택해서 볼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에요. 통장 잔액을 확인할 때 어떤 감정이 솟아오르나요? 돈이 정말 없네. 이걸로 어떻게 살지인가요? 그 순간 멈추세요. 아 나 지금 부족한 채널에 완전히 빠져 있구나라고 깨닫고 의도적으로 지금 내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감사해요. 채널을 전환하세요. 부족함도 하나의 관점이고 충분함도 똑같이 유효한 관점이어서 둘 다 동시에 진실로 존재할 수 있으니 결국 어느 쪽 관점을 선택해서 볼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당신이 선택해서 보는 것이 당신의 현실로 확정됩니다. 부족함을 계속 보고 집중하면 부족한 현실이 더욱 단단하게 확정되고 충분함을 보고 느끼면 충분한 현실이 서서히 당신에게 펼쳐지게 되는 거예요. 리모컨은 지금 당신 손 안에 꼭 쥐어져 있고 어떤 채널을 선택할 권리 또 오롯이 당신에게만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걸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눌러왔고 늘 똑같은 일본 채널만 보는 패턴에 갇혀 있었어요. 이제부터는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리모컨을 누르세요.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느 채널을 보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채널로 과감하게 돌리면 됩니다. 매 순간마다 선택하세요. 부족함을 볼 것인가 충분함을 볼 것인가 실패를 볼 것인가 가능성을 볼 것인가 문제를 볼 것인가 해결을 볼 것인가를요? 당신이 선택해서 보는 것이 결국 당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