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 진나라의 제2대 왕(재위 559 ~ 566).
| 출생-사망 | 552 ~ 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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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왕조 | 중국 남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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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기간 | 559년~56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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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남북조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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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칭 | 문제(文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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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분야 |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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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진(陳), 자는 자화(子華), 이름은 천(蒨)이다. 시호는 문황제(文皇帝)이며, 묘호는 세조(世祖)이다. 천가(天嘉, 560~565)와 천강(天康, 566년)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남조(南朝) 진(陳)나라의 제1대 왕인 무제(武帝) 진패선(陳霸先)의 조카이며, 아버지는 무제의 큰형인 진도담(陳道談)이다. 안덕황후(安德皇后) 심묘용(沈妙容)을 비로 맞이해 폐제 진백종과 진백무(陳伯茂)를 낳았다.
진도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양(梁)나라에서 동궁직합장군(東宮直閤將軍)을 지내던 진도담은 후경(侯景)의 난이 일어났을 때 건강(建康, 지금의 난징)에서 사망했다. 그 뒤 진천은 숙부인 진패선과 함께 후경의 난을 토벌하는 데 참여해 오흥군(呉興郡) 태수(太守)를 지냈으며, 553년에는 신무장군(信武將軍)으로 임명되었다. 554년 서위(西魏)의 공격으로 강릉(江陵)이 함락되고 양나라의 제4대 왕인 원제(元帝) 소역(蕭繹)이 살해되자 진패선의 북벌군(北伐軍)에 참여해 선봉에서 활약했다. 555년 진패선이 왕승변(王僧辯)을 죽이고 경제(敬帝) 소방지(蕭方智)를 옹립했을 때에는 왕승변의 사위인 두감(杜龕)과 동양주자사(東揚州刺史) 장표(張彪) 등의 반발을 진압했다. 그러한 공으로 선의장군(宣毅將軍)의 칭호와 함께 화계군(會稽郡) 태수로 임명되었으며 회계군을 비롯한 10개 군(郡)의 군사(軍事)를 담당하는 도독(都督)이 되었다.
557년 진패선이 소방지에게 선양을 받는 형식으로 직접 제위에 올라 진(陳)나라를 세운 뒤에는 임천군왕(臨川郡王)으로 봉해졌으며, 안동장군(安東將軍)의 호칭과 함께 시중(侍中)의 직위에 올랐다. 진패선이 진나라를 세우자 상주자사(湘州刺史) 왕림(王琳)은 북제(北齊)에 인질로 가 있던 소방지의 조카 소장(蕭莊)을 영주(郢州)에서 황제로 옹립해 양나라의 부흥을 꾀했다. 그리고 강남 각지에서 토호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진나라의 장수인 주문육(周文育)이 금구(金口)에서 왕림에게 패하고 살해되자 진천이 진나라의 군사 업무를 이끌었다. 559년 음력 6월에 진패선이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죽자 진천이 제위를 잇게 되었다.
제위에 오른 진천은 북주(北周)와 화약을 맺고, 후진(侯瑱)을 보내 왕림을 토벌했다. 왕림이 무호(蕪湖)에서 후진과 싸우는 사이에 북주는 영주(郢州)를 공격해 점령했고, 결국 양나라의 부흥을 꾀하던 소장은 북제로 피신했다. 왕림의 세력을 토벌한 진천은 각지에서 할거하던 세력들을 토벌해 강남을 평정해 진나라의 지배체제를 확립했다. 각종 부역(賦役)을 감면시키고, 농업과 잠업(蠶業)을 장려하고, 수리시설을 보수하는 등 오랜 전란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쇠퇴한 강남 지역의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내정(內政)에도 힘을 기울였다.
진천은 566년 음력 4월에 사망했으며 영녕릉(永寧陵)에 매장되었다. 맏아들인 진백종이 제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렸으므로 진천의 동생인 진욱(陳頊)이 후견으로 국정을 주도했다. 그러나 진욱은 568년 진백종을 폐위시키고 직접 제위에 올랐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천 [陳蒨] (두산백과)